한국 보수의 수준... '트럼프 당선' 팔아서 얄팍한 술수만

2024/07/08 09:30

[강명구의 뉴욕 직설] 떠들면 떠들수록 핵무장이 더 어려워지는 이유

24.07.08 06:50최종 업데이트 24.07.08 06:50

▲ 나경원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지난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안보의 새로운 비전 핵무장 3원칙'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인 나 의원은 대표가 되면 핵무장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남소연


최근 일부 정치권과 보수 진영에서 '자체 핵무장론'이 재부상하고 있다. 이는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체결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이 협정은 상호 군사 지원(제4조)과 원자력 협력을 명시하며 (제10조), 북한의 핵 보유를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이에 따라 한국도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사실 한국이 국제제재를 받지 않고 자체 핵무장을 할 수 있다면야 이를 반대할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여론조사 상으로도 대략 10명 중 7명의 국민들은 자체 핵무장의 필요성을 지지해 왔다. 점증하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핵으로 핵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정서적, 논리적으로 분명 설득력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의 핵무기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핵무장을 지지하느냐 마느냐의 이분법적인 접근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복잡한 안보 문제를 오히려 더 악화시킬 수 있다. 특히 미국 일부 보수주의자들의 발언을 근거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탄생할 경우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용인할 것이라는 주장은 위험하다. 이는 미국의 실제 의도를 오해한 것이거나, 정파적 이익을 위해 대중을 호도하는 왜곡된 해석이다. 이런 단순화된 주장은 현실의 복잡성을 간과하고 안보 논의를 왜곡할 수 있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진정성 있게 주장하려면, 먼저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4월 조 바이든 정부와 합의한 '워싱턴 선언'의 폐기를 요구해야 한다. 이런 구체적 요구 없이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안보 불안 심리를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얄팍한 술수에 불과하다. 

워싱턴 선언과 핵무장 포기
 

▲ 지난해 4월 26일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4월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해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다. 당시 대통령실과 한국 언론들은 한미 확장억제강화에 따른 이점만을 주로 보도했다. 특히 이 선언을 통해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새롭게 창설하여 핵 정책에 관한 협력을 강화하고, 핵 및 전략무기 운영 계획에 대한 정보 공유를 확대하기로 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하지만 이 선언을 통해 윤석열 정부가 자체 핵무장을 공식 포기했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당시 선언의 구체적 내용을 보자.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완전히 신뢰하며 한국의 미국 핵억제에 대한 지속적 의존의 중요성, 필요성 및 이점을 인식한다."

"윤 대통령은 국제비확산체제의 초석인 핵확산금지조약(NPT)상 의무에 대한 한국의 오랜 공약 및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 준수를 재확인하였다."

위의 문장들이 보여주듯, 윤석열 정부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와 한미 원자력 협정 준수를 재확인했으며, 미국 핵억제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한국의 지속적 의존을 인정했다. 또한 한미 원자력협정 재개정을 포기해 핵무기 개발 기술 확보 경로를 자발적으로 차단하기도 했다. 따라서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이 '워싱턴 선언'을 폐기한다는 의미다. 

워싱턴 선언에 대한 미국의 시각

바이든 정부를 지지하는 미국 민주당 지지세력은 대체로 '워싱턴 선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무엇보다도 이 선언을 통해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 공식 포기와 NPT 의무 준수 확약을 받아낸 것은 미국의 확실한 승리였다고 자평한다. 일부 확장억제 강화 조치들은 어차피 기존에 해 오던 관행들에 핵잠수함 기항 등 몇몇 상징적인 조치만이 추가된 것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측에서 좀 더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것은 이 '워싱턴 선언'에 불만을 품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대비한다고 할 경우, 바로 이 보수주의자들의 시각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가장 크게 문제 삼는 부분은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의 한국에 대한 모든 핵 공격은 즉각적, 압도적, 결정적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선언한 점이다. 이들은 이 약속이 미국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북한의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미국 주요 도시가 북한 핵미사일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확장억제 관련 상설협의체 강화와 시뮬레이션 계획을 비판한다. 이런 긴밀한 협력이 미국의 독자적 의사결정을 제한하고, 한국 안보에 과도하게 연루될 수 있다고 본다. 즉, 미국이 원치 않는 상황에서도 한국을 위해 군사 행동을 취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우선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부 한국 언론이 인용한 트럼프 1기 행정부 전직 관료들의 발언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이들의 발언에 근거해 트럼프 2기 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고 전망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자 왜곡이다. 이는 복잡한 국제 관계와 비확산 체제의 현실을 무시한 채, 단편적인 발언을 확대해석한 위험한 추론이다.

트럼프 2기 정부는 한국 핵무장을 용인할까?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가 지난 5월 23일 뉴욕 브롱크스 자치구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는 현실성이 전혀 없는 주장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해 온 트럼프가 그의 임기 4년을 기존 비확산체제를 스스로 무너뜨리며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할 이유가 없다. 그로 인해 얻을 정치적, 전략적 이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바이든 정부의 대부분 정책을 거부하거나 폐기할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 선언' 역시 폐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은 복잡하고 긴 과정을 필요로 한다.

양국 정부의 협상 개시부터 시작해, 초안 작성, 국내외 검토, 미국 정부 내 광범위한 검토, 대통령 승인, 의회 심사, 그리고 최종적으로 한국 국회의 비준까지 많은 절차가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어도 최소 1~2년이 소요된다. 트럼프가 그의 재집권 초기 2년을 이처럼 큰 정치적 업적으로 평가받기 어려운 일에 투자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더군다나 미국은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약 25개국 및 국제기구와 유사한 원자력협정을 맺고 있다. 유럽원자력공동체, 일본, 캐나다, 호주, 인도 등이 모두 이에 포함된다. 물론 각 협정들의 세부사항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핵심 목표는 공통적으로 핵비확산체제 유지에 있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만을 위해 이 광범위한 양자 및 다자 원자력협정 체계를 훼손할 이유가 전혀 없다.

나아가 국제 비확산체제의 견고함도 간과할 수 없다. NPT에는 현재 191개국이 가입해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을 얘기하지만 이들 국가는 NPT에 가입조차 한 적이 없다. 북한이 NPT 탈퇴 선언 이후 지금까지도 혹독한 국제 제재에 시달리는 이유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한국에만 예외를 적용해 줄 수는 없다.

원자력 원료 공급 체계 역시 소수의 국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주요 우라늄 생산국인 카자흐스탄, 캐나다, 호주, 나미비아, 니제르, 그리고 농축 서비스를 제공하는 러시아, 프랑스, 중국, 미국, 영국, 네덜란드, 독일 등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 하에 원료를 공급하며, 핵무기 제조에 사용될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의 공급은 극도로 제한한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일본, 대만 등 주변국의 핵 개발 도미노 현상을 촉발할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한다면 이런 핵 도미노 효과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이런 모든 제약을 무시하고 한국에만 핵무장을 허용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이득은 거의 없다. 오히려 동북아 전체의 핵 균형을 무너뜨리고 미국의 글로벌 비확산 정책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안보포퓰리즘 경계해야

한국의 핵 딜레마는 단순한 해법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최근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 강화, 그리고 미국 대선으로 인한 정책 변화 가능성은 상황을 더욱 불확실하게 만든다. 여기에 국가의 안보와 자존심 문제가 얽혀 감정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핵무장이라는 단순한 해결책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희망적 사고'에 근거해 있더라도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핵무장이 복잡한 안보 관련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 리더란 사람들이 대중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해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안보 포퓰리즘은 오히려 안보에 더 해롭다. 핵무장하겠다고 동네방네 떠드는 것은 오히려 실질적인 핵무장으로의 진전을 방해할 뿐이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핵무장을 주창하는 이들을 경계하는 것이 오히려 핵 능력 확보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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