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했던 세종호텔은 서울 중구 명동 남산 아래에서 58년째 영업을 하는 호텔이다. 객실 수 333실에 한때 5성급까지 갔던 호텔인데. 지금은 3성급 관광호텔로 등급이 떨어진 채 운영하고 있다.
세종대학교 사학재단이 운영하는 수익 사업체인 세종호텔은 이렇듯 오랜 기간 영업하면서 호텔 자체적으로 가진 자산만 2천억 원이 넘는 '기업'이고 워낙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서 외국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안정적인 호텔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250명이 넘는 직원들이, 그것도 70% 이상 정규직으로 일하던 호텔이 지금은 정규직 20명에 하청 비정규직 40여 명이 일하는 일터가 되었다. 왜 45년간 잘 운영되던 호텔이 10년 만에 직원 수가 1/5로 줄고 등급도 3성급으로 떨어진 채 운영하고 있을까?
콕 집어 세종호텔노조 조합원'만' 당한 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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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세종호텔은 사측에 유리한 소위 '어용노조'와 단체협약을 시작하며 부서를 하나씩 외주화했다. 성과연봉제, 탄력근로제로 임금을 삭감하고 비정규직이 확대되었다. 상시적인 구조조정으로 인원이 줄고, 임금 인상도 그 후 10년이 넘도록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세종호텔 직원들은 사스, 메르스, 사드 사태 등 질병과 국제관계의 영향을 받아 객실 수요가 떨어지고 수익이 줄어도, 또 다른 한 축인 식음사업장과 세종대학교, 우리은행, 한국전력, 금융감독원 등에 출장 웨딩 사업을 확장하며 열심히 일해왔다. 그렇게 직원들이 애사심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하는 동안 사측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저리의 관광진흥지원금을 수차례에 걸쳐 받아서 객실을 공사하고,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지분을 늘리는 데 사용해 왔다.
2017년 국감 자료에 따르면 세종호텔은 5년간 9차례나 융자를 받아 가장 많은 관광진흥지원금을 받은 호텔 중 하나로 지목됐다. 그래 놓고 매출원가에 이런 부채를 포함해 매년 적자를 외치며 직원들을 옥죄었다.
세종호텔에는 두 개의 노조가 있다. 하나는 민주노총 세종호텔노조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노총 세종연합노조다. 2011년 복수노조법이 시행되고 바로 만들어진 세종연합노조는 사측의 지원을 받아 수개월 만에 다수 노조가 되었다. 기존의 세종호텔노조는 사측으로부터 독립된 노조를 지키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를 걸고 파업을 진행해 4명의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성과를 이루고 파업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세종호텔노조가 소수노조가 되고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악법'으로 노조가 유명무실하게 힘이 약화된 시기에 세종연합노조는 사측과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합의하고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포기했다. 한때 198명이나 되던 세종연합노조 조합원조차 이제 10명도 채 남지 않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한편, 파업 이후 50여 명 남짓의 세종호텔노조는 임금 삭감과 전환 배치를 수시로 당하며 탄압을 받았다.
차츰 부서가 하나씩 외주화되고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적정 인원 부족으로 노동 강도가 계속 늘어나자 일터의 노동자들은 이전만큼의 동료애와 애사심이 생겨나지 않고 오랫동안 일한 일터를 스스로 떠났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마저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일들이 늘어났다.
이렇게 일터에서 생동감이 떨어져 가던 때에 코로나가 발생했다. 이전에 있었던 전염병과는 차원이 달랐던 코로나는 특히 외국 관광객에게 주로 의존하던 호텔 객실 영업을 마비시켰다. 식음사업장 또한 단계적으로 제한이 늘어나며 호텔 영업이 주춤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세종호텔 주변 호텔들은 자가격리자를 받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했고, 장기 투숙 등의 방식으로도 판매는 가능했다. 그러나 세종호텔은 정부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을 한 차례 받으며 고용을 유지하는 듯했으나 구조조정으로 돌아섰고 몇 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을 진행해 끝내 전 직원이 50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8년 만에 세종호텔노조가 다수 노조가 되어 사측과 교섭을 진행했다. 교섭에서 우리는 코로나는 곧 끝날 것이고 이후 억눌렸던 관광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으니 정부지원금을 받으며 남은 이들의 고용을 유지하자고 제안했다. 정부지원금 외 회사에서 지급하는 10%의 임금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측은 세종호텔노조 소속 조합원들 12명만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쫓겨난 지 만으로 4년... 코로나가 끝나도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 2021년 12월 10일, 12명의 조합원은 성탄절을 앞둔 엄동설한에 회사에서 쫓겨났다. 부당한 해고를 인정할 수 없던 해고자들은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에 돌입했고, 이제 그것도 내일이면 만으로 4년이 된다.
(코로나가 곧 끝난다던 세종호텔노조의 예측대로) 정리해고가 된 후 불과 1년 반 만에 호텔 객실 매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더니 2024년부터는 사상 최대의 객실 매출을 연일 갱신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해고자들의 복직은 안 된다고 한다.
하청 노동자들이 담당하는 객실 청소 업무는 세계적으로도 하루에 12개의 객실을 청소하는 게 표준인데, 지금 세종호텔은 20개 이상의 객실을 청소하고 있다. 수익은 넘치는 데 인건비에 쓰지 않는다.
그 사이 복직을 요구하는 해고자는 12명에서 6명이 남았다. 재판부는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10년을 임금 삭감과 전환 배치를 당하며 버티다 정리해고를 당했으니 대법 판결이 끝났다고 해도 싸움을 멈출 수는 없다.
그렇게 윤석열 탄핵 광장의 열기 속에 겨울의 끝자락인 지난 2월 13일 세종호텔 앞 교통시설물에 올랐다. 분명 탄핵은 될 거고 새 정부가 제대로 역할한다면, 세종호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농성을 시작했다. 탄핵이 미뤄지면서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사측이 교섭에 나왔고 세종호텔 재단 이사회에서도 해고자 복직 방안을 마련하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네 차례 이어진 교섭에서 시종일관 해고자 복직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공농성을 250여 일 지속해 온 날들보다 최근의 50여 일이 오히려 더 힘이 든다. 새 정부 초기에도 노동에 대해서는 힘이 발휘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