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설명절을 맞아 “국민이 원하는, 국민이 주인인 ‘국민주권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가 운영 방향은 국민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다시 천명한 것이다. 박근혜·윤석열 탄핵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확인한 핵심 가치 또한 국민주권이었다.
과연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시대’를 열 수 있을까.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가능해졌다고 국민주권이 저절로 실현될 수는 없다. 국민이 정책 방향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선택이 실제 정책으로 집행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정부를 선택하더라도, 정부가 자주적으로 정책을 집행할 수 없다면 그 선택은 실질적 효력을 갖기 어렵다. 여기서 ‘국민주권시대’를 규정하는 하나의 전제가 등장한다. 바로 자주권이다.
주권은 대내적으로는 국민주권(민주), 대외적으로는 국가주권(자주)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가 외부 강대국의 전략과 이해에 구조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면, 국민이 선택한 정책은 언제든 외부 압력에 의해 수정되거나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민주주의는 절차만 남은 형식적 체제로 축소된다.
자주권이 침탈될 때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사례는 국제사회에서 반복되어 왔다. 지난 1월,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민이 투표로 뽑은 대통령을 납치함으로써 국민주권을 유린했다. 브라질에서는 트럼프가 부패 혐의로 수감된 친미 성향의 전직 대통령을 석방하라며 고율 관세로 압박했다. 이란과 쿠바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독재 국가’ 낙인을 찍어 수십년 동안 경제봉쇄와 체제 전복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동맹국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동맹국을 상대로 국방비 증액, 무기 강매, 대미투자 강요, 생산시설 미국 이전 압박, 대중국 무역 차단 등을 공개적으로 요구한다. 동맹국 국회에 입법을 강요하고, 자국 기업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동맹국의 사법기관을 협박한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무역·투자 조건을 미국 국익에 복종시킨다.
만약 한 국가의 통상 정책과 산업 전략이 외부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 조정되고, 안보 정책이 자율적 판단이 아닌 외국군의 전략에 종속된 방향으로 귀결된다면, 국민이 선거를 통해 선택한 후보의 정치·외교·경제 노선은 온전히 실행되기 어렵다. 공약은 존재하되, 구조적 제약 속에서 후퇴하거나 변형되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재명 정부가 임기 내 환수를 공약한 전작권 문제가 대표적이다.
군사주권 문제는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전작권이 주한미군사령관 손에 있는 조건에서 안보 정책은 구조적 제약을 안고 출발한다. 안보 의존은 외교 의존으로, 외교 의존은 통상·산업 정책의 제약으로 연결된다. 이처럼 국방에서 자주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민생 정책 역시 외부 환경에 의해 제약될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도 주권과 분리할 수 없다. 한국은 외형상 선진 경제로 평가받지만, 기술무역수지의 구조적 적자, 핵심 부품·소재의 해외 의존, 주요 기업 지분의 외국인 집중, 달러 자본의 은행 지분 잠식과 높은 가계부채 구조는 경제주권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와 금리 조정은 국내 금융시장과 가계부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외부 경제권력이 국내 경제 정책을 제약하는 이런 현실은 자주성과 경제민주화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한국이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라고 해서 종속성이 사라졌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요컨대 “자주 없이 민주 없다”는 명제는 낡은 이념의 산물이 아니라 지금 이재명 정부가 헤쳐나갈 시대적 소명이다. 자주권이 확보되지 않으면 국민주권이 제한되고, 민주주의는 확보된 자주권만큼만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제 ‘민주’와 ‘자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시 과제가 되었다. 이재명 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열 수 있느냐도 결국 ‘자주권’ 여부에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