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숲 방치한 지 1년…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2026/03/26 08:47

입력 2026.03.26 07:00

영남산불 1년, 고운사 실험의 결과는?

‘역대 최대 규모’ 사찰림 98% 탔다

1년 뒤, 불에 탄 나무에서 움튼 새싹

회복 빠른 자연복원, 동물도 돌아와

고운사, ‘자연복원 참고 사례’ 될까

경북 의성군 고운사의 지난해 3월26일(왼쪽) 화재 당시 모습과 지난 17일(오른쪽) 자연복원이 진행된 모습. 성동훈·백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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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5일)는 산불 피해에 대처하는, 고운사의 ‘무심한’ 실험이 시작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 실험이란 불에 탄 숲의 복원을 자연에 맡기는 건데요. 환경단체들은 이곳에서 자연의 탁월한 회복력이 관찰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직 ‘인공조림보다 낫다’고 단언하긴 이르지만 주목할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는 건 사실인데요. 1년 동안 경북 의성군 고운사 숲에서 벌어진 일들과 그 의미, 점선면이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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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 규모’ 사찰림 98%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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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25일 고운사 서남쪽 16㎞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번졌습니다. ‘천년고찰’로 널리 알려진 고운사도 불길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절과 주변 숲이 송두리째 타버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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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불로 연수전·가운루 등 보물뿐 아니라 고운사의 자랑이던 사찰림의 97.6%(243㏊)가 타버렸는데요. 국내 사찰림 산불 피해 중 역대 최대 규모였습니다. 당시 고운사 스님은 “열기가 있어 새싹이 못 자란다”며 기약할 수 없는 복원에 막막한 심정을 드러냈습니다.

지난해 3월25일 경북 의성군 고운사 주차장에서 바라본 산들이 불타고 있다. 경북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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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 불에 탄 나무에서 싹이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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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년 만인 지난 17일 고운사 사찰림에는 1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나무들이 솟아 있었습니다. 검게 변한 나무에는 수십개의 흰구름버섯류(곰팡이)가 점처럼 박혀 있었고요. 현장을 둘러본 이규송 강원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불에 탔지만 완전히 죽지 않은 나무가 살아남은 조직에서 싹을 틔우려고 시도하는 현상”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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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회복을 지켜본 고운사 주지 등운스님도 “산 능선을 따라 나무가 되살아나는 현상이 뚜렷하게 관찰되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실제로 ‘고운사 사찰림 자연복원 프로젝트’ 연구진에 따르면 고운사 사찰림 면적의 약 4분의 3(76.6%)에서 높은 자연 회복력이 관찰됐습니다. 빠른 회복에 비례해 토양침식 위험도도 크게 감소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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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맡기는 것이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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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는 고운사가 숲 복원을 자연에 맡긴 결과입니다. 등운스님은 지난해 7월 경향신문과 만나 “이렇게 땅과 산이 다 타버린 열악한 환경에서는 자연에 맡기는 게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라며 자연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도록 기다리겠다고 말했는데요. 그것이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합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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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도교의 ‘무위자연’도 떠오르지만 철학적인 개념만은 아닙니다. 최근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인공조림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거든요. 인공조림은 침엽수를 주로 심는데, 침엽수가 산불에 취약할 뿐 아니라 조림 시 산불 피해목과 뿌리를 제거하기 때문에 산사태 등 추가 재난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자연복원은 비용이 적게 들고, 탄소 저장량·수종 다양성 측면에서 인공조림보다 낫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고요.

지난해 9월 고운사 인근 야산에 불에 탄 나무 사이로 풀이 자라나 있다. 이규송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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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속도 빠른 ‘자연복원’, 동물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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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000년 4월 동해안 산불 뒤 인공조림(52%)과 자연복원(48%)으로 비교하는 실험이 진행된 바 있는데요. 2020년 중간 점검 당시 자연복원지의 숲이 더 촘촘한 것으로 관찰됐습니다. 초반 회복 속도도 더 빠른 것으로 평가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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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숲으로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침엽수림이었던 고운사 사찰림은 활엽수림으로 바뀌고 있는데요. 산불 전 침엽수림 면적이 235.8㏊에 달했지만 이후 3.4㏊로 급감했습니다. 반면 활엽수림은 25.3㏊에서 363.5㏊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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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회복력 덕분에 고운사에서는 멸종위기종 등 야생 생물의 관찰 빈도도 크게 늘었습니다. 삵은 고운사 경내에서, 수달·담비는 숲에서 관찰됐는데요. 지금까지 포유류 17종과 조류 35종 등이 확인됐습니다. 향후 조류는 70~80종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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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복원도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환경생태학자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는 “한국의 산림은 마을이나 농경지와 가까운 곳이 많아 산사태 등의 2차 피해 우려가 있어 자연복원이 어렵다”고 지적했는데요. 자연복원만 기다리다 인명·재산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척박한 토양에서는 소나무 위주의 인공조림이 낫다는 주장도 있고요.

지난해 8월22일 경북 의성 고운사 인근 숲에서 오소리 한 마리가 풀 밭에서 배설을 한 뒤 지나가고 있다.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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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 사례 참고해 자연복원 과정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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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고운사 사찰림의 자연복원 조사를 계기로 인공조림 일변도였던 국내 산림정책의 방향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산불 피해지역에 자연복원을 기본으로 하고 식생의 회복력을 진단한 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복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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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송 강원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숲의 대부분은 자연복원에 의해 회복된 것”이라며 “고운사의 사례를 참고해서 자연복원 과정을 만들도록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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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영남산불 피해지의 생태계가 복원되려면 최소 10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후변화로 산불은 더 잦아지고,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요. 그런 규모라면 변화에 적응하는 해법은 자연만이 알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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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고운사 자연복원 프로젝트는 오는 5월까지 이어집니다. 연구진은 어떤 결론을 내릴까요? 직접 변화를 확인하고 싶은 분께는 고운사 방문을 추천드립니다. 산불에도 살아남은 일주문 기둥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운사에 갈 이유는 충분합니다.

고운사 일주문. 고운사 홈페이지 갈무리

“하나를 보더라도 입체적으로” 경향신문 뉴스레터 <점선면>의 슬로건입니다. 독자들이 생각해볼 만한 이슈를 점(사실), 선(맥락), 면(관점)으로 분석해 입체적으로 보여드립니다. 매일(월~금) 오전 7시 하루 10분 <점선면>을 읽으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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