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자식에게 '따' 당하면서도 섬에 다닌 섬에 미친 남자

2026/06/1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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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박섬 밀물 ⓒ 이재언

대한민국에는 약 3,400개의 섬이 있다. 그중 사람이 살아가는 유인도는 446개에 이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섬은 관광지로 알려진 몇몇 장소를 제외하면 낯선 공간이다. 누군가는 평생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섬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 섬들을 평생 기록하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 전국의 유인도를 세 차례나 직접 답사하고, 남한은 물론 북한의 섬까지 조사하며 한반도 섬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해 온 섬 연구자이자 탐험가, 이재언(74) 선생이다.

어린 시절 가출 소년으로 서울의 뒷골목을 떠돌았던 그는 어떻게 대한민국 섬 연구의 산증인이 되었을까. 전남 노화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바다와 섬에 바친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삶. 그리고 사라져 가는 섬의 기억을 기록해 온 그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섬은 그에게 연구가 아니라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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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항에는 바다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초여름 햇살이 항구를 비추고 정박한 어선들 사이로 갈매기 울음 소리가 퍼진다.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한 남자의 시선은 먼 수평선 너머를 향하고 있다. 그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는 아마도 또 다른 섬이 있을 것이다. 섬 전문가 이재언 씨. 그를 만나기 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은 섬에 미친 사람입니다."

섬을 기록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는 가진 것을 털어 배를 샀다. 그리고 직접 선장이 되어 30년 넘게 전국의 유인도를 누비며 섬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편의 역사로 남겼다.

"다른 것은 다 버려도 섬은 버릴 수 없습니다."

재산도, 명예도, 편안한 삶도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섬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섬은 지도 위 작은 점에 불과하지만 그에게 섬은 한 사람의 인생이고 한 공동체의 역사이며 바다 위에 남겨진 대한민국의 소중한 영토이기 때문이다.

▲죽도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죽왕면에있는 아기고래 형상의 섬 ⓒ 진재중

목숨을 건 항해, 섬을 향한 외길 인생

"아내와 자식들에게 '왕따'를 당하면서도 섬을 다녔습니다. 인생을 걸었고, 목숨도 걸었습니다."

농담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섬에 대한 집념이 함께 담겨 있었다. 주말과 휴일은 물론 명절에도 섬으로 떠나는 일이 많았다.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시간은 늘 섬이 차지했다. 집에서는 늘 "또 섬에 가느냐"는 핀잔을 들었지만 그는 발길을 멈출 수 없었다.

섬을 다닌다는 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거센 파도와 싸워야 했고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작은 배 안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태풍이 지나간 직후 위험한 바닷길을 건너야 했던 적도 있었고 통신이 끊긴 무인도에서 구조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때로는 식수와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며칠을 버텨야 했고 파도에 휩쓸릴 뻔한 아찔한 순간도 수없이 겪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 뒤에는 파도와 싸워온 세월이 묻어났다.

▲맹골도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리 ⓒ 이재언

▲거문도전남 여수시 거문도 삼산면 소재의 섬 ⓒ 이재언

대청도 조각바위와 전망대 ⓒ 이재언

"섬이 싫어 떠났지만 결국 섬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재언 선생의 삶은 역설적이다. 섬이 싫어서 고향을 떠났지만 결국 평생을 섬과 함께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목포에 나갔습니다. 전깃불이 반짝이는 도시와 기차, 자동차, 시장과 극장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결국 어머니가 숨겨둔 돈을 들고 목포를 거쳐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15세 소년은 명동과 충무로 거리에서 구두를 닦으며 생계를 이어갔다. 경찰관들의 도움으로 직업소년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신문 배달을 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그는 당시를 "인생의 밑바닥"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 시절의 경험은 훗날 섬을 바라보는 시선의 밑거름이 됐다.

말도선착장 ⓒ 이제언

교회에서 시작된 섬에 대한 사명감

서울에서 생활하던 그는 교회를 다니면서 삶의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교회를 다니면서 내가 떠나온 고향 주변의 작은 섬들이 생각났습니다. 노화도 주변에는 한두 가구만 사는 작은 섬들이 많았어요. 그 섬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신학교에 진학한 그는 1989년 낙도 선교사로 고향에 파송됐다. 2톤짜리 어선을 타고 14개의 작은 섬을 돌며 선교와 복지 활동을 시작했다. 전기도, 병원도, 우체국도 없는 섬들이 많았다. 그는 그곳에서 섬 주민들의 삶과 애환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선교를 위해 갔지만 점차 섬 자체에 매료됐습니다.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바닷가를 뛰놀던 소년은 성장한 뒤 바나바선교회 소속 섬 선교사로 활동하게 된다. 선교를 위해 찾았던 섬들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섬마다 역사와 문화가 달랐고, 주민들의 삶에는 육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동거차도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주인공 ⓒ 이재언

조선의 바다 정책과 대항해 시대가 준 충격

그가 전국 섬 탐험을 결심한 또 다른 이유는 역사였다.

"조선은 오랫동안 바다를 경계의 공간으로 바라봤습니다."

조선시대는 왜구의 침입과 외세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해상 활동을 제한하는 해금정책을 시행했고, 일부 섬은 주민을 육지로 이주시켜 비워 두는 공도 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변방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바다를 통한 교류와 해양 활동을 크게 위축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유럽은 대항해 시대를 맞아 바다를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으로 인식했습니다. 바다를 통해 세계를 연결하고 교역망을 확대하면서 경제와 과학,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결국 바다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도 달라졌다. 우리는 오랫동안 바다를 막아야 할 대상으로 여겼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바다가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이자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장보고와 청해진의 역사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조선의 폐쇄적인 해양 정책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콜럼버스, 마젤란 등 대항해 시대 탐험가들의 이야기는 그에게 강한 영감을 주었다.

"그들이 범선을 타고 세계를 탐험했다면, 나는 동력선을 타고 대한민국의 모든 섬을 탐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재언 선생은 그 생각을 단순한 꿈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직접 배를 마련해 선장이 되었고, 수십 년 동안 파도와 바람을 벗 삼아 전국의 섬을 찾아 나섰다. 수많은 섬을 오가며 사람들의 삶과 역사, 문화와 자연을 기록한 그의 여정은 대한민국 섬 탐험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흑산도 섬주민들과 섬탐방을 준비하는 주인공 ⓒ 이재언

전국 유인도 446개를 세 번이나 답사하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모하게 보였다. 섬을 연구하기 위한 전문적인 지리학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역사를 전공한 학자도 아니었다. 항해 전문가도 아니었으며, 넉넉한 연구비나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부족한 조건을 핑계로 삼지 않았다. 직접 현장을 찾아 배우고 기록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평생을 바쳐 대한민국의 섬을 기록하는 길을 걸어왔다. 1991년 첫 탐사를 시작으로 전국의 섬들을 하나씩 찾아 나섰다. 백령도와 울릉도, 흑산도, 홍도, 추자도, 마라도까지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후 더 큰 배를 마련해 두 번째 탐사를 진행했고, 세 번째 탐사에서는 사진작가들과 함께 전국의 섬을 체계적으로 기록했다.

행정선을 타고 섬을 답사하는 이재언 작가 ⓒ 이제언

죽음의 위기를 넘긴 섬 탐험

섬 탐험은 늘 위험과 함께했다. GPS도 없던 시절, 지도 몇 장에 의지해 항해하던 그는 수차례 사고를 겪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안개였습니다. 암초를 피하기 어려웠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배가 고장 나 해양경찰의 도움을 받은 일도 여러 번이었다. 2012년에는 신안군 압해도 인근에서 암초에 충돌해 배가 침몰할 뻔했다.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 생활까지 경험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위험과 고난을 떠올리면서도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살아남았으니 지금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수많은 풍랑과 위기를 견뎌낸 세월이었지만, 그의 말에는 후회보다 감사와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대청도 고목나무 바위를 담는 주인공 ⓒ 이재언

섬의 가치는 관광이 아니다

"사람들은 섬을 휴양지 정도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미래 자산입니다."

이재언 선생은 섬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국가와 바다, 역사가 만나는 중요한 공간으로 바라본다. 그에게 섬은 영토를 지키는 전초기지이자 해양 생태계를 품은 터전이며, 수산업을 떠받치는 기반이고 우리 역사가 남아 있는 현장이다. 독도와 백령도는 국가 안보와 영토 주권의 상징으로, 소안도는 항일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으로 기억된다. 또한 이름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많은 무인도들은 새와 물고기들이 살아가는 핵심 서식지로서 해양 생태계의 균형을 지키고 있다.

그는 섬을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삶의 터전이자 미래 세대에 남겨야 할 자산으로 본다.

독도 성문 ⓒ 이재언

하늘에서 기록하는 섬의 역사

"드론은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을 보여줍니다. 섬의 진짜 아름다움을 기록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입니다."

최근 그는 드론을 활용한 섬 기록 작업에 더욱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과거에는 배를 타고 해안선을 따라다니며 섬의 모습을 기록했다면, 이제는 드론을 통해 섬 전체의 지형과 해안선, 마을의 변화, 무인도의 생태 환경까지 입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특히 드론 촬영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과 암반지대, 갯바위, 무인도 등을 한눈에 보여주며 섬의 숨겨진 모습을 기록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섬의 풍경은 단순한 관광 사진이 아니라 섬의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중요한 기록물이 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수천 회의 드론 비행을 통해 전국의 유·무인도를 촬영해 왔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해안선의 모습, 개발로 인해 변화하는 마을 풍경, 사라져가는 어촌의 흔적 그리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무인도의 원형까지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영상들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학술 연구와 문화유산 보존, 관광 콘텐츠 개발을 위한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물론 위험도 적지 않았다. 강한 해풍과 갑작스러운 돌풍,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 변화로 인해 지금까지 여섯 대의 드론을 바다에 잃어버렸다. 수백만 원에 이르는 장비가 파도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드론 한 대를 잃는 것은 아깝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섬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풍경은 변하고, 사라진 것은 다시 촬영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드론은 단순한 촬영 장비가 아니다. 섬의 현재를 미래에 전하는 기록 도구이자, 후손들에게 남겨줄 소중한 역사 기록유산이다. 오늘도 그는 드론을 띄워 바다 위를 날며, 지도에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작은 섬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섬의 풍경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서다.

드론을 띄워 섬의 지형과 해안선을 기록하고 있는 이재언 소장. 그는 드론을 활용해 전국의 섬을 촬영하며 섬의 자연환경과 역사·문화 자원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 이제언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섬, 북한의 섬을 기록하다

"북한의 섬은 지금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섬입니다.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입니다."

그의 탐험은 남한에만 머물지 않았다. 최근에는 <북한의 섬> 1·2권을 출간하며 북한 전역에 분포한 1,045개의 섬을 연구하고 정리했다. 평생 섬을 찾아다니며 현장을 직접 확인해 온 그에게 북한의 섬 연구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발로 뛰는 탐험이 불가능했다. 직접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갈 수도 없었고,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었다. 그는 위성사진과 항공사진, 오래된 지도와 문헌자료를 하나하나 대조하며 섬의 위치와 역사, 지형과 환경을 추적해 나갔다. 수년간의 자료 분석 끝에 북한 섬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을 책으로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편에는 늘 아쉬움이 남아 있다.

"남한의 섬은 직접 걸어보고 냄새를 맡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북한의 섬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사진과 자료만으로는 섬의 진짜 모습을 모두 담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 섬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다. 바람의 냄새와 파도 소리,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까지 함께 기록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공간이다. 그래서 북한의 섬을 연구하면서도 가장 안타까운 점은 현장을 직접 밟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언젠가 자유롭게 북한의 섬을 찾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날이 온다면 책 속의 섬이 아닌 실제 섬의 모습과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제가 기록한 북한의 섬은 미완성입니다. 언젠가 직접 그 섬에 서서 바람을 맞고 해안선을 걸으며 진짜 북한의 섬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아직은 갈 수 없는 섬. 그는 오늘도 자료 속 북한의 섬을 들여다보며 언젠가 그 땅을 직접 밟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날이 오면 반세기 넘게 이어온 그의 섬 기록은 비로소 한반도 전체의 이야기로 완성될 것이다.

▲무송정 섬강원 고성군 현내면 마차진리 233-4, 금강산콘도 앞 섬, 남한에서 촬영할 수 있는 마지막 섬이다. ⓒ 진재중

섬은 나의 운명입니다

"저는 섬과 결혼한 사람입니다."

그 말 속에는 반세기 넘게 섬을 찾아 바다를 누벼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가족과 함께해야 할 시간보다 섬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고, 때로는 목숨을 걸고 파도와 싸우며 섬을 기록했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아픔과 가족들에게 남은 미안함도 있지만,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섬은 나의 운명이고 사명입니다. 앞으로도 섬을 기록하고 연구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섬의 가치를 알리고 싶습니다."

그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언젠가 5톤급 탐사선을 마련해 청소년들과 함께 전국의 섬을 찾아다니며 섬의 역사와 문화, 자연생태를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한다. 섬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우리 삶과 역사,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금구도 강원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에 있는 섬으로 화진포해변에서 조망이 가능하다. ⓒ 진재중

바다의 내일을 향한 끝없는 항해

항구를 떠나며 다시 한번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섬, 아직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가 수평선 너머 어딘가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산을 오르며 평생을 보내고, 누군가는 강을 따라 세상을 배운다. 그러나 이재언 선생은 평생 섬을 따라 살았다. 섬을 찾아 바다를 건너고, 섬을 기록하며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되새겨 왔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단순한 답사 기록이 아니다. 섬에 깃든 삶과 기억 그리고 우리 바다의 가치를 후대에 전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오늘도 그는 새로운 섬을 향해 눈을 돌린다. 바람이 부는 곳, 파도가 닿는 곳 그리고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으로...

섬은 그의 운명이었고, 기록은 그의 사명이었다. 그리고 그가 평생에 걸쳐 써 내려온 섬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대한민국 해양문화사의 소중한 기록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섬과 관련된 서적을 펴낸 이재언 연구원 ⓒ 이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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