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 무죄 8건' 임휘윤…간첩조작 묻자 "쓸데없는 소리"

2026/06/25 10:03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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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25 09:20

  • 수정 2026.06.2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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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임휘윤 편

김제 출신으로 TK들 차지하던 공안·강력부장

1981년 학림사건 안강민·김경한과 공판 진행

박동운 재일간첩 고문조작 "기억 자체가 없다"

김태홍 조작 사건 "그 말이 그 말 아니오" 억지

송씨 일가 간첩단 핑퐁재판의 또다른 주역

최양준, 오주석, 김장호 등 모두 재심에서 무죄

초원 복집 사건을 도청 사건으로 본말 뒤집어

승승장구 검찰 인생, 이용호 게이트로 마감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임휘윤(任彙潤, 1944~2021) 항목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그가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했던 말이었다. 2018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PD가 박동운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에 대해 물었다.

"한 분은 사형 선고 받으시고 한 분은 10년 선고 받으셨는데, 그분들 사건에서 전혀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임휘윤의 대답은 이랬다.

"전혀, 기억 자체가 없고 나는 정상적으로 처리했겠지."

그리고 "영장 없이 체포가 되고 고문이 있었는데"라는 후속 질문에는 "쓸데없는 얘기 말고 돌아가쇼"라고 쏘아붙여 인터뷰를 끝냈다.

이 한마디가 임휘윤이라는 인물을 가장 정확하게 압축한다.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재심 무죄 사건의 검사, 무려 8건이었던 사람의 마지막 말이 "돌아가쇼"였다.

 

임휘윤(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호남 출신으로 TK의 자리를 차지

임휘윤은 1944년 4월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1962년 이리(익산) 남성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1970년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이 동기에는 양승태(1948~ ), 김승규, 이종찬, 강재섭 등이 있다. 1973~75년 육군법무관으로 복무한 뒤 전주지검 검사로 시작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흥미로운 지점을 짚는다.

"TK 출신이 아니고는 할 수 없다는 서울지검 공안1, 2부장과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지검장, 대검 강력부장 등을 지냈다."

호남 출신이 TK 카르텔의 핵심 요직을 차지했다는 것이 그가 얼마나 철저한 충성으로 인정받았는지를 보여준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냉정한 기술자'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유형이 떠오른다. 동독 슈타지의 일부 심문관들은 신념이 아니라 직업적 효율성으로 움직였다. 그들에게 피의자의 고통은 업무의 변수일 뿐이었다. 임휘윤이 제일교포 유학생으로 한국어 구사력이 완전하지 않았던 김태홍에게 사형을 구형하면서 보인 태도가 그렇다. 우리말이 서툰 김태홍이 자신이 사형을 구형받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옆자리에 있던 친구에게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인권 감수성이 거의 없는 임휘윤에게 그것은 일상적인 절차였을 뿐이다.

 

‘재일동포 간첩사건’ 김태홍씨 재심 무죄', 김민경 기자, 한겨레신문, 2017-06-15

1981년 학림사건, "쓸데없는 소리"의 시작

임휘윤의 반헌법 행위 첫 정점은 1981년 학림사건이다. 전민노련-전민학련 사건으로 이태복, 이선근 등이 무리한 고문 조작 수사를 당했다. 임휘윤은 안강민(1941~ ), 김경한(1944~ ), 박순용(1945~2026)과 함께 이 사건의 1·2·3심 공판검사로 관여했다. 피해자들은 검사 앞에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텐데 누가 책임 질래"라는 협박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2012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31년 만이었다.

 

“늦었지만 진실 밝혀져 다행”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 두 번째) 등 ‘학림사건’ 연루자들이 7일 서울 명동 민들레영토 카페에서 진실화해위의 발표를 환영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민규기자. “81년 ‘학림사건’ 신군부가 조작했다”, 경향신문. 2009.07.07

박동운 사건, "기억 자체가 없다"

같은 해 임휘윤은 박동운 간첩조작 사건도 담당했다. 한국전쟁 중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남파간첩이라는 가정에 가정을 거듭해 24년간 고정간첩 활동을 했다는 죄목을 만들어낸 사건이다. 박동운은 사형, 무기징역을 거쳐 18년을 복역했다. 어머니와 동생, 작은아버지까지 옥살이를 했다. 2009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바로 이 사건에 대해 임휘윤은 30여 년 뒤 카메라 앞에서 "기억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2009년 11월 13일,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던 날. 오른쪽부터 피해자 박동운씨, 한등자씨. ⓒ 진실의힘 제공

김태홍 사건, "그 말이 그 말 아니냐"

1981년 재일한국인 유학생 김태홍 간첩조작 사건에서 임휘윤은 35일간 보안사 불법구금 끝에 만들어진 자백을 그대로 받아 기소했다. 김태홍이 "북에 갔다 온 적은 있지만 간첩행위는 안 했다"고 항변하자 임휘윤은 "그 말이 그 말 아니냐"며 듣지 않았다. 김태홍은 우리말이 서툴러 자신이 사형을 구형받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옆자리 친구에게 물어봐야 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15년을 복역했다. 2017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최종 무죄 확정 받은 재일교포 조작간첩 피해자 김태홍 씨.(뉴시스, 2013.11.23.)

송씨 일가, 핑퐁재판의 또 다른 주역

1982년 송씨 일가 간첩단조작 사건에서 임휘윤은 김경한과 함께 수사를 맡았다. 대법원에서 두 차례나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됐지만, 안기부와 검찰이 법원에 공작을 펴 끝내 유죄를 받아냈다. 임휘윤은 피해자 송기준이 안기부에서 한 진술을 부인하자 안기부 수사관을 다시 불러 "이 사람 또 부인한다, 이야기 좀 잘 해주지"라며 협박했다. 송기준은 평화박물관 면담에서 "임휘윤 검사 얼굴이 지금도 빤하지, 뭐. 꿈에도 자꾸 나오는데…"라고 증언했다.

 

1982년 '송씨 일가 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인 송기복 씨가 2008년 10월 29일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민변과 참여연대가 검찰 60주년을 맞아 공동으로 개최한 '검찰의 과거사 반성 촉구 및 피해자 증언 기자회견'에서 증언하고 있다. 2008.10.29. 연합뉴스 자료사진

8건의 재심 무죄, 가장 많은 기록

임휘윤이 담당한 사건들, 학림사건, 박동운, 김태홍, 송씨 일가, 최양준, 오주석, 김장호, 함주명은 모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한겨레는 임휘윤을 "가장 많은 재심 무죄 사건의 검사"로 보도했다.

1992년 부산 초원복집 사건, 본질을 뒤집다

검사로서 출세를 이어가던 임휘윤은 1992년 대선을 앞두고 터진 부산 초원복집 사건의 선거법 위반 수사책임자였다. 정부 기관장들이 모여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선거에 개입한 이 사건에서, 임휘윤은 사건의 본질을 선거법 위반이 아닌 도청 사건으로 뒤집는 역할을 했다. 권력의 부정행위를 들춰내기 위해 도청 장치를 심은 이가 오히려 처벌 대상으로 몰렸다.

검찰의 꽃까지, 그리고 이용호 게이트로 추락

임휘윤은 1998년 대검 강력부장, 1999년 서울지검장, 2000년 부산고검장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01년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사표를 제출하며 검찰 인생이 끝났다. 정치권 진출설이 돌았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임휘윤(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동독 슈타지 심문관들에 대한 평가는 명확하다. 신념이 없었다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신념 없는 잔혹함이 더 무섭다. 임휘윤이 보여준 "기억 자체가 없다"는 태도는 신념의 부재가 아니라 책임의 완전한 외면이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임휘윤의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네"를 떠올렸다. 사형 선고와 18년 옥살이를 만든 사람이, 30여 년 뒤 카메라 앞에서 그 일을 "쓸데없는 얘기"로 치부했다. 그 무책임이 공안검찰의 가장 깊은 병폐였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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