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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60년', 우리는 과연 성공했는가

'해방 60년', 우리는 과연 성공했는가

8ㆍ15 이후 꼬박 60년이 되었다.

그날 '해방'의 날 이후 지금까지 이 땅은 엄청난 변화를 겪어 왔다. 비록 남북분단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식민지 지배와 전쟁으로 초토화된 땅에서 놀라운 생명력으로 사람들은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발전도 이루어졌고, 또 혹독한 시련 끝에 정치적 민주화도 실현되었다.

이런 변화를 두고 지금 '성공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운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로서 한국의 경우처럼 산업화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도 예외적이라 할 정도의 민주주의의 제도와 관행을 정착시켜 온 예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이른바 보수적 지식인들만의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시대를 평가함에 있어서도 그 시대가 비록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지만,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그 공로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지식인들의 공통한 사고방식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시각의 근간에 있는 것은 어떻든 이만한 경제력을 갖게 됨으로써 우리도 세계에서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주의적 사고일 것이다. 이것은 일견 타당한 논리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 세계는 혼자서 고립되어서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며, 그동안 특히 한국의 경제발전은 주로 수출주도형 산업성장 방식을 취해 왔기 때문에 해외의존도가 극히 높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판국에 자주적, 자립적 경제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몽상에 가깝다는 것도 일리가 있는 주장임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른바 글로벌 경제의 바깥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거의 없고, 따라서 우리는 싫건 좋건 설혹 그것이 제국주의적 지배의 논리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세계화의 지배체제 속에서 활로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은 아마도 논박하기 어려운 논리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과연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경제성장과 사회적 발전이 정말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할 때, 그것은 구체적으로 누구의 무엇을 위한 발전인가?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지금은 지난 몇십년 간 계속되어 온 것과 같은 방식의 경제성장과 그 성장을 둘러싼 세계관과 욕망의 구조로는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음을 알려주는 온갖 불길한 사회적, 생태적 징후를 우리가 일상적으로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전지구적인 기후변화에 직면하여, 종래와 같은 '풍요로운' 생활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는 이미 범죄적인 행위에 가까운 것이 되고 있다는 것도 빠트릴 수 없는 문제다. 왜냐하면 그러한 풍요로운 생활이라는 것은 아무리 뛰어난 과학기술의 도움이 있다 하더라도 세계 전역으로 확산할 수는 없는 '특권적'인 생활방식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자원과 에너지 약탈적인 '선진적인' 생활양식을 계속해서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부족한 자원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을 부추기고, 나아가서는 전쟁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추세로 볼 때 우리 사회에서 경제성장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당분간은 전혀 없어 보인다. 누군가가 양보를 해야 한다면 우리 자신이 아니라 딴 사람, 다른 나라가 그래주기를 내심으로 우리는 바라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세계의 생태학적 장래를 생각할 때, 가령 중국이나 인도의 계속적인 산업화는 매우 우려스러운 사태라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성장이나 더 이상의 개발을 멈춘 상태를 감히 상상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힘의 논리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뿌리깊은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에 나온 박노자 교수가 쓴 <우승열패(優勝劣敗)의 신화>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강자숭배, 약자멸시라는 정신적, 정서적 풍토가 구한말에서 일제 식민지를 거쳐 해방 후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형성·전승되어 온 것인가를 특히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예리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책이다. 서양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침략이 노골화되고 있던 19세기 말엽의 상황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지식인들은 어떤 이유로든 대부분 약육강식의 논리를 골자로 하는 '사회진화론'에 경도되어 있었다. 이 사상적 신념에 의거하여 당대를 대표했던 조선 지식인들 대부분도 힘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흔히는 그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힘있는 자에게 순종해서 살 수밖에 없다는 기회주의적 사고에 길들여졌다. 서재필, 유길준도 사회진화론의 신봉자였고, 친일 지식인 최남선, 이광수는 말할 것도 없고, 신채호, 한용운의 초기 사상도 강자의 지배를 어쩔 수 없는 자연적 법칙으로 보는 데는 예외가 없었다. 아마도 가장 노골적인 예는 윤치호의 경우일 것인데, 어렸을 적부터 신동으로 이름났고, 미국 유학 이후 평생 동안 영어로 일기 쓰기를 계속했던 그는 3·1 독립운동에 가담해주기를 청하는 한용운의 요청에 대하여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없는 법칙인 만큼, 약자는 강자에게 순종해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논리로 거절하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친일인사들의 행적을 놓고 단순히 비난하기는 쉽다. 그러나 지금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아마도 친일의 논리와 심리를 좀더 깊이있게 이해해보려는 노력일지 모른다. 이광수든 윤치호든 혹은 그 누구든 소위 '민족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해서 스스로 자신의 민족을 능멸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끝내는 민족을 배신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되었던가. 그것은 결코 그들이 원래 부도덕하거나 비윤리적인 인간이었기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되었던 것은 그들이 현상을 넘어 볼 수 있는 비전이나 상상력을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텐데, 그러한 상상력의 결핍은 그들이 엘리트로서의 자각 이전에 당대의 밑바닥 풀뿌리 민중과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었던 점에 연유했을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신채호나 한용운의 경우, 최초에 얼마간의 사상적 혼란기가 지난 다음에 그들이 끝끝내 사회진화론의 함정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자신이 늘 민중과 함께 있겠다는 철저한 평등주의 사상, 혹은 근원적 자유의 사상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엘리트 중심의 지식과 교양이 아니다. 엘리트는 흔히 그 자신의 사회적 특권에 대한 의식으로 매우 좁은 사고의 지평을 벗어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이른바 '근대주의적' 개념들에 의해 그들의 정신은 오염되어 있기 쉽다.

이와 관련해서, 재일조선인 지식인 서경식(徐京植)이 최근에〈한겨레〉에 기고한 글은 매우 흥미로운 얘기를 담고 있다. 서경식은 꽤 알려져 있듯이, 박정희시대의 대표적인 간첩조작 사건의 희생자들인 서승, 서준식 형제의 아우로서 자신의 형들이 겪은 고난을 자기 속에 내면화함으로써 현대세계에서 식민주의와 난민(難民)이 갖는 의미를 집요하게 천착해 온 대표적인 재일동포 지식인이다. 그는 이번에 신문에 발표한 글에서 예전에 자신의 어머니가 일본으로부터 한국의 감옥에 있는 아들들을 면회하기 위해서 드나들던 때를 회고하면서, 그때 한국의 관리들이 이 두 사상범의 사상전향을 위하여 어머니가 설득하도록 엄청난 압박을 가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식들과 자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관리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옥중의 자식들에게 그 어머니는 눈물을 보인 일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한국 관리들은 "역시 빨갱이 어머니답다. 재일교포에게는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도, 충성심도 없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그 가혹했던 시절에 자식들의 고통 앞에서도 어머니가 그토록 의연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하고 서경식은 자문한다. 그것은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무슨 이데올로기적인 확신 때문이 아니었다. 식민지 시대에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무학으로 어렸을 적부터 일만 하고 살아 왔던 그 어머니는 학교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않은 대신에 "애국심이니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니 하는 쓰잘 데 없는 것을 주입받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밑바닥에서도 가장 밑바닥으로 밀려난 소외의 삶을 살아 왔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 어머니에게는 "근대적인 교육이 가져다준 지식이나 이론은 없었지만 근대적인 개념에 지배당하지 않는 지혜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라고 서경식은 말하고 있다. 요컨대, 그 어머니의 삶을 이끈 것은 흔히 지식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근대, 전근대, 탈근대 따위의 관념적 언어로써는 절대로 포착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과 의식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비근대적인' 지혜라고 부르고 싶지만, 아마도 이것은 어느 모로 보나 특권계급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근대적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에게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생존방식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밑바닥으로부터의 시선과 감각이다. 거기서 볼 때도 과연 지난 60년간의 한국의 역사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경제성장이 고도화되고, 개발이 확산되고, 산업화가 심화될수록 이 모든 사회적 변화의 움직임은 풀뿌리 민중의 생존의 바탕이 붕괴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립적 생존의 물질적 바탕인 땅과 갯벌과 바다가 사라지거나 오염되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민중생활의 근원적인 조직원리로 기능해 왔던 상부상조와 협동의 공동체와 호혜적 생존기술이 돌이킬 수 없이 파손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약자들의 운명은 갈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오래된 농민공동체는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해체되었고,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도 경악할 일이지만, 나날이 늘어가는 청년 실업률과 함께 빈부격차에 의한 사회적 양극화는 위험수준을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적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사회에 정말 희망이 있는지 의심스럽게 하는 가장 단적인 척도는 급격한 출산율 저하현상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인간공동체로서 이 사회의 실패와 좌절을 가리키는 명백한 징후이지 결코 '성공한 대한민국' 운운할 수 있는 사태가 아닌 것이다.

출산율 저하라는 문제를 여기서 거론하는 것은 사회보장 제도의 지속성에 대한 염려 때문이 아니다. 생태적 수용능력을 고려하더라도 한반도에서 마냥 인구가 늘어가는 것을 우리가 좋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출산율 저하 현상이 내포하고 있는 좀더 정확한 진상을 볼 때, 이것은 이 사회가 지금 도저히 아기를 낳아 건강하게 기르고 교육할 수 없는 상황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사태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이 경쟁지상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출산과 보육과 교육과정에서 단계단계마다 부모나 자식이나 어김없이 겪을 엄청난 시련과 스트레스를 사전에 조금이라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떤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를 엄두를 내겠는가. 이것은 결코 출산장려금 따위로 해소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지금 출산율 저하라는 현상은 사람들이 대부분 무의식 중에 행하는 '보이콧' 행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 보이콧은 그동안 한국의 경제적 발전의 성과를 긍정하고 미화해 온 무수한 '교육받은' 엘리트들의 논리가 한마디로 허위이며 거짓말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일찍이 간디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에서 정치적으로 해방되더라도, 만약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생존양식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그것은 인도 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 지배자의 피부빛깔이 달라진 것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간디의 정치적 후계자 네루는 간디의 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네루는 산업주의적 생산양식은 시대의 필연적인 추세라고 생각했고, 그의 지도 밑에서 인도는 현대적인 산업국가가 되기 위한 수많은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대형 댐이 아직도 건설중인 국가가 되었고, 교육받은 소수 엘리트들과 대다수 민중 사이의 소득·생활수준의 격차는 갈수록 심화되어 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독립 이전보다도 풀뿌리 민중의 삶은 비교할 수 없이 참담한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확대는 전통적인 민중의 생활수단과 협동적 공생의 터전인 공유지(commons)를 뿌리로부터 공격, 훼손하는 것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공유지'란 반드시 토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호혜적 관계의 총체적 그물이다. 이 그물이 찢어질 때 풀뿌리 민중의 삶은 속절없이 붕괴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도시의 변두리, 밑바닥을 헤매는 유랑민의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상황이 과연 본질적으로 인도의 것과 얼마나 다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세계 전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풍요로움과 평화와 진보"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자본주의 세계화 경제의 주창자들과 신봉자들의 믿음이 갈수록 근거없는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영국의 사회평론가 제레미 씨브룩이 말하듯이, 지금 산업국가에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당면한 긴급문제', 즉 노사간의 갈등이라는 문제에 매달린 나머지 '진정한 문제'를 잊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 진정한 문제란, 지난 수세기 동안 서구문명이 비서구인들에게 강요해 온 서구식 발전의 모델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 관계되어 있다.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60년, 그동안 우리가 이룩했다고 하는 경제적 발전이라는 것이 풀뿌리 민중의 삶터를 불모지로 만드는 것을 의미해 왔다면, 간디의 말과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지배자의 얼굴만 바뀐 식민주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지금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구호 밑에서 중앙행정기구를 지방으로 이전하고, 공공기관들을 각 지역으로 분산하려는 움직임이 요란하다. 근본적으로 농업을 천시하면서, 국토의 균형적 발전이 국가 및 공공기관의 이전으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인지 우리는 이해할 수가 없고, 어디에서도 명쾌한 설명을 들어볼 수가 없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지금까지 이 사회를 지배해 온 약육강식의 논리가 조금도 완화됨이 없이 좀 더 큰 규모에서 본격적으로 관철된다면, 국토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이름 밑에 벌어질 새로운 잔치판은 결국 국토의 균형적 파괴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광란의 잔치를 언제까지 우리가 허용할 수 있을 것인가.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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