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무너뜨리기.http://blog.jinbo.net/rollingstone/블로그를 다시 살렸습니다.
예전보다는 희망에 찬 글을 많이 쓰려 노력하렵니다. 전보다는 좀 살만해졌걸랑요 ㅋㅋㅋ (2010.12.09)2012-07-22T16:42:45+09:00Textcube 1.8.3.1 : Secondary Dominant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구르는돌http://blog.jinbo.net/rollingstone/3712012-07-18T18:31:14+09:002012-07-18T18:31:14+09:00<p>
이것도 페이스북에 썼던 글. 2011.08.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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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두번째로 읽었다. 처음 읽을땐 그냥 쏟아지는 질문공세가 짜증나서 대충 읽고 별 생각 안하고 있었는데, L모 선생의 '생각보다 허접한 책'이라는 평가에 귀가 솔깃하여 '대체 얼마나 허접하길래!?'라는 의문으로 다시 집어들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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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책을 단순히 허접하다고(물론 L선생도 그런 의미로만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말하기에는 부족한 뭔가 이 책이 담고 있는 파괴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말미에 가서 샌델이 끊임없이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로부터 연유하는 도덕과 가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소위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선택의 자유만을 앞세우다가 그런 도덕과 가치라는 중요한 정치적 자원을 보수주의자들에게 빼앗겼다는 비판 속에서 나온다. 이 대목을 읽다가 프레임 전략을 외치며 보수주의에 대항할 것을 주장했던 조지 레이코프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면 레이코프나 샌델 모두 (그들이 아무리 고전철학적 논의를 하더라도) 순수하게 '현실정치적' 고민 속에서 나온 철학을 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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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현실적인' 철학이 대중들에게 일정한 설득력, 파급력을 갖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겠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공동체의 가치, 미덕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경계는 어디인가가 문제다. 샌델은 '충직 딜레마'라고 이름 붙인 장에서 갑자기 '애국심'이라는 쟁점을 들고 나온다. 웹사이트를 통해 네티즌이 자발적으로 불법 이민자들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의 정당성 문제를 논하면서 그는 마이클 왈저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한다. "사회 구성원이 되는 조건을 규제하는 능력, 즉 입국허가, 거부 규정을 정하는 능력은 공동체 독립의 핵심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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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가 앞에서 이러저런 쟁쟁한 철학자들을 등장시키며 신나게 썰을 풀었지만, 결국 그가 말하는 미덕은 '국경'을 근거로 하는 미덕, 즉 타국의 인민을 배제하고 내부의 동일성을 단단히 하고자하는 '도구'로서의 미덕이다. 뒤에 가서 그는 이를 '연대'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건 연대라고 이름붙이기 민망한</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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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식구 감싸기'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이명박 대통령의 영포회 감싸기도 훌륭한 연대의 사례다. 반면 어떠한 공동체적 소속의 근거를 공유하지 않음에도 새롭게 관계를 만들어내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꿈구고 공유하는 한진중공업 앞의 희망버스 난장은 샌델식 정의론으로는 당췌 설명이 안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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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서운 것은 이런 식의 '정의론'이 보수주의에 맞서는 진보주의적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이 고려해야 할 정의는 내가 속한 공동체의 서사속에 구현된 가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아니라, 서로 다른 공동체간의 가치 충돌이 빈번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더욱 보편적인 가치를 '새롭게' 형성할 것인가가 아닐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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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페이스북에 썼던 글들을 정리하기 위해 블로그로 옮겨옵니다. 그런데 2011년에 썼던 글들이 다 확인되지 않네요. 페이스북 나빠!!!</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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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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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터진 이 판국에 나는 일본의 반핵운동가 타까기 진자부로오의 라는 책을 읽고 있다. 원자핵공학을 연구하던 대학교수가 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농민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과학'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반성하고 고뇌하는 모습들이 내 가슴이 꾹꾹 눌러 담기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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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를 강제수용하려고 공항공단 측에서는 대규모의 경찰력을 동원해서 반대파 학생들을 밀어낸 뒤 불도저로 땅을 뒤집어엎고 나무를 쓰러뜨리고 있었다. 그때 자신의 몸을 사슬로 나무에 묶고 저항하는 농민들과 지하땅굴 속에서 저항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았다."(82쪽)</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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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저항을 지속시키고 농민들이 생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려면, 농민들이 대지 위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푸른 들을 파괴하고 공항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사회에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이야말로 나 같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84쪽)</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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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326집회때 장애인동지들이 쇠사슬 사진관을 하면서, 쇠사슬로 자신의 삶과 투쟁을 표현하는 모습들이 인상깊었다. 그런데 농민들에게는 쇠사슬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장애인투쟁에서 쇠사슬이 시설과 집안에만 묶여있던 자신의 몸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 당당하게 알리는 것이었다면, 농민들에게 쇠사슬은 이 땅과 농민 자신은 절대 분리될 수 없음을, 그것은 이 땅과 농민 자신 모두의 죽음임을 처절하게 알리는 것이었다. 죽음의 공항에 반대하며 삶의 농토를 추구했던 나리따 농민들의 쇠사슬과 죽음과도 같은 침묵만이 강요되는 시설을 뛰쳐나와 온전한 삶을 추구하는 장애인의 쇠사슬은 왠지 다른듯 하면서도 닮았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삶을 위한 투쟁들과 함께 손을 잡을 수 있을까? 암담하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밤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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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style="width: 160px; float: left; margin-right: 5px">
<t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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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706053&copyPaper=1&ttbkey=ttbtruesig1916001"><img alt="세계공화국으로" src="http://image.aladin.co.kr/cover/cover/8991706053_2.jpg" style="border-bottom: 0px; border-left: 0px; width: 160px; border-top: 0px; border-right: 0px" /></a></td>
</tr>
<tr>
<td style="text-align: center">
<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706053&copyPaper=1&ttbkey=ttbtruesig1916001">세계공화국으로</a><br />
가라타니 고진<br />
비(도서출판b), 2007</td>
</tr>
</tbody>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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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style="width: 160px; float: left; margin-right: 5px">
<t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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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4226&copyPaper=1&ttbkey=ttbtruesig1916001"><img alt="자본주의 이행논쟁 - 동녘신서 15" src="http://image.aladin.co.kr/cover/cover/8972974226_1.jpg" style="border-bottom: 0px; border-left: 0px; width: 160px; border-top: 0px; border-right: 0px" /></a></td>
</tr>
<tr>
<td style="text-align: center">
<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4226&copyPaper=1&ttbkey=ttbtruesig1916001">자본주의 이행논쟁 - 동녘신서 15</a><br />
高橋幸八郞 외<br />
동녘, 1997</td>
</tr>
</t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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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의 책은 충격적이다. 그의 <세계공화국으로>에 담긴 주제는 역사적 교환양식, 칸트와 맑스, 세계제국과 세계경제 등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버거운 것들인데, 이걸 300쪽도 안되는 얍실한 책 한 권에 다 담았다. 심지어 쉽다!! 어쨌든 난 이 책을 산지 두어달 만에 두 번 완독했는데, (감히 용기내어 말하자면) 난 이 책의 내용이 뭐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적어도 15분 정도는 쉬지 않고 혼자 떠들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전적으로 내 능력이 아니라, 저자의 능력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책 자체가 원래 고등학생도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저자가 작정하고 쓴 책이라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어쨌든 이 책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자기가 줄곧 주장해 온 내용을 거의 다 쏟아낸 듯 하다. 이 책의 부제를 굳이 붙이자면 '1시간만에 읽는 가라타니' 정도?</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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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렇게 쉽게 세계화 속의 자본-네이션-국가의 문제를 둘러싼 쟁점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신 덕에 내가 앞으로 고민하고 공부해야 할 것이 뭔지가 좀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 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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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고진에게 특이한 점은 그가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생산양식'이 아니라 '교환양식'을 통해서 발견한다는 점이다. 그가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이런 논의는 20세기 중반 모리스 돕과 폴 스위지 간에 벌어졌던 자본주의 이행논쟁에서 스위지의 계보를 잇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진을 이 논쟁에 가담시켜 본다면, 그에게는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봉건제 조차도 그 내부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봉건제는 '제국의 아주변'에서 출현한, 즉 제국권력이 영향력을 뻗치는 범위의 (상대적)외곽 또는 사이공간에 존재하는 타자였다. 이를테면 서유럽 봉건제는 로마제국의 아주변에서, 일본의 봉건제는 중국제국의 아주변에서 발생한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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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서 국가는 역사적으로 존재해 왔던 4가지 교환양식(호수 / 약탈-재분배 / 상품교환 / 어소시에이션) 중 약탈-재분배를 기초로 성립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상품교환은 기본적으로 독립적인 자유민의 존재가 보장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국가와는 다른 토대를 갖는 것이다. 즉 상품교환은 공동체의 바깥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상품교환은 공동체가 끝나는 곳에서,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 또는 그 성원과 접촉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마르크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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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가 국가와 상품교환이 완전히 별개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근대 자본주의 등장 이후에 네이션(나는 이것을 그냥 '민족주의'정도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이 등장해 이 둘을 매개하여 자본=국가=네이션의 보로메오의 매듭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이들 각각은 상품교환, 약탈-재분배, 호수적 교환관계를 상징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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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또 다시 가라타니의 주장이 자본주의 이행논쟁과 관련해 쟁점을 형성하는 부분은 '소비자로서의 프롤레타리아'라는 주장이다. "상인자본과 달리 산업자본은 생산과정에서 잉여가치를 얻지만 이는 아직 잉여가치의 실현이 아니다. 잉여가치가 진짜로 실현되는 것은 그 생산물이 유통과정에서 팔릴 때"라고 주장하고 또,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자를 직접적으로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로서의 노동자가 스스로 만든 것을 다시 사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말한다. 이렇게 그는 산업자본주의의 특징으로서 노동과정에서의 노동자의 자본가에 대한 예속과 이를 통해 얻어지는 잉여가치에 대한 부분은 일정정도 상대화시키고, 스위지가 그랬던 것 처럼 유통과정과 상업에 방점을 찍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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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를 고민하다가 결국 2년 가까이 책꽂이에서 잠자고 있던 <자본주의 이행논쟁>을 꺼내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난 스위지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하지만(그런데 이 책만 보면 스위지가 돕, 다까하시, 힐튼, 힐 등에게 다구리 당하는 형국이다), 아직 고민이 좀 남는다. 스위지의 논점은 이후 월러스틴이 잘 계승해서 논의했듯이, 분석의 시야를 세계체계로 확장시켰다는 측면은 있지만, 어쨌든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모순의 변증법'을 상대화시킨 것 아닌가? 또한 자본주의의 기원을 가치체계 사이의 계산적 차이를 이용해 이윤을 얻는 상인자본에게 초점을 맞추면, 자본주의의 고유한 노동과정에 대한 분석은 어떤 로를 통해 이뤄질 수 있는가? 나아가 이 논의의 끝까지 밀고 나가면 노동가치론은 폐기되는 건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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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돕과 다까하시 등의 논리로는 스위지가 제기한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들은 봉건제 붕괴의 원인이 봉건 영주의 과도한 수입욕구와 이를 견디지 못한 농노들을 영지 이탈에 있다고 했다. 이에 스위지는 영주의 수입욕구라는 것도 국제 사치품 교역의 성장에 따른 결과이고, 농노들의 이탈은 도망갈 곳이 있어야 가능한데 이 당시 봉건영지 외부에 성장하던 상업에 기반한 도시가 이를 가능케 했다고 답한다. 딱히 도망갈 곳이 없던 동유럽의 경우에는 재판 농노제가 나타났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는 것이다. 이에 돕은 봉건제 외곽에 존재하던 도시들도 사실상 봉건 영주의 영향력 하에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이들은 오히려 반동적인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내가 볼 땐 좀 부족해 보이는 대답이고, 그가 가장 힘주어 강조하던 바는 "스위지 너, 계속 그렇게 말하면 넌 마르크스주의자 아니야" 뭐 이런 게 아니었을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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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style="text-align: justify">
아직 잘 모르는게 많아서 대충 정리해 봤는데, 어쨌든 이 두권의 책 덕분에 앞으로 공부할 게 더 많아졌다. 일단 올 여름이 가기 전에 <자본론> 1권부터 제대로 정독하자!!</p><div class="buttons-bottom center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4034',332,'/rollingstone','');"><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png');" /></a><br /><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332+%22%EA%B3%A0%EC%A7%84%EC%9D%98%20%3C%EC%84%B8%EA%B3%84%EA%B3%B5%ED%99%94%EA%B5%AD%EC%9C%BC%EB%A1%9C%3E%EC%99%80%20%EB%8F%95%2F%EC%8A%A4%EC%9C%84%EC%A7%80%EC%9D%98%20%3C%EC%9E%90%EB%B3%B8%EC%A3%BC%EC%9D%98%20%EC%9D%B4%ED%96%89%EB%85%BC%EC%9F%81%3E%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png');"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332&t=%EA%B3%A0%EC%A7%84%EC%9D%98%20%3C%EC%84%B8%EA%B3%84%EA%B3%B5%ED%99%94%EA%B5%AD%EC%9C%BC%EB%A1%9C%3E%EC%99%80%20%EB%8F%95%2F%EC%8A%A4%EC%9C%84%EC%A7%80%EC%9D%98%20%3C%EC%9E%90%EB%B3%B8%EC%A3%BC%EC%9D%98%20%EC%9D%B4%ED%96%89%EB%85%BC%EC%9F%81%3E"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png');"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332&title=%EA%B3%A0%EC%A7%84%EC%9D%98%20%3C%EC%84%B8%EA%B3%84%EA%B3%B5%ED%99%94%EA%B5%AD%EC%9C%BC%EB%A1%9C%3E%EC%99%80%20%EB%8F%95%2F%EC%8A%A4%EC%9C%84%EC%A7%80%EC%9D%98%20%3C%EC%9E%90%EB%B3%B8%EC%A3%BC%EC%9D%98%20%EC%9D%B4%ED%96%89%EB%85%BC%EC%9F%81%3E','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png');"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rollingstone/332?commentInput=true#entry332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조봉암과 박헌영, 다른 길을 간 두 혁명가의 초상구르는돌http://blog.jinbo.net/rollingstone/3222010-12-09T22:00:39+09:002010-07-04T23:06:17+09:00<!--FCKeditor--><p> </p>
<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 style="width: 168px; height: 247px" src="http://image.aladdin.co.kr/cover/cover/8990106222_1.jpg" /> <img alt="" style="width: 164px; height: 272px" src="http://image.aladdin.co.kr/cover/cover/8939206207_1.jpg" /></p>
<p> </p>
<p> </p>
<p>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지난달에 이 두 권의 책을 함께 읽고 몇 마디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시간을 낸다.</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조봉암과 박헌영. 이 둘은 모두 해방 이전 조선 공산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거목들이다. 하지만 해방과 함께 맞이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 다른 길을 택해 결국 사실상의 정치적 반대파가 되고, 둘 모두 각각 남한과 북한에서 부당하게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법살 당했다. 정태영의 <조봉암과 진보당>과 안재성의 <박헌영 평전> 모두 이 법살의 희생자들의 정치적 명예 회복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 하지만 이러한 저자들의 목적이 나의 관심사는 아니다. 어차피 해방 이후 조선공산당의 스탈린주의적 편향을 비판하면서 독자적 길을 걸은 조봉암이 북한의 간첩이 아니라는 것과, 평생을 조선공산당의 정치적․이론적 지도자로 살아왔던 박헌영이 반공주의의 본산인 미국의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은 상식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 동의할 만한 내용 아닌가?</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오히려 나는 이 둘을 통해 해방 전후 공산주의 운동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비극성을 발견한다. 조봉암은 왜 둘도 없는 동지 박헌영을 향해 매서운 비판의 문건을 날려야만 했는가? (비공개로 전하려던 조봉암의 계획과는 달리 미군정의 수색에 의해 문건이 발견되면서 부득이 공개되고 말았지만) 이 문건을 받게 된 박헌영은 왜 성실하게 토론에 임하지 못하고 조봉암을 축출하는 것으로 사태를 종결하고야 말았는가?</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 조봉암, 박헌영 개개인의 최종적인 정치적 결과물에 대한 평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봉암과 진보당>에 실린 박헌영을 향한 조봉암의 편지를 읽어보면 상당히 합리적이고 근거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소양국간의 대결로 치닫고 있는 국제정세를 고려하여 지나친 친소적 노선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으며, 신탁통치 문제와 관련하여 대중을 설득시키려는 노력에 힘써야 한다는 등의 주장들 말이다. 어쩌면 당시의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 상황에서 그의 그런 구상은 꿈 같아 보이는 측면도 있지만, 그런 평가는 사실 사후적인 결과를 중심에 두고 하는 것이고 당시 상황에서 정치세력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였다고 보는 편이 옳다. 그런 면에서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조선공산당은 지나치게 코민테른의 지령을 조선 정세에 무매개적으로 대입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이에 대한 조봉암의 비판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반면 (약간 저자의 주관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박헌영 평전>에 묘사된 박헌영의 정치적 토론 자세나 정세적 치밀성으로 미뤄봤을 때, 박헌영이 이런 비판을 조금이라도 수용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다소 미스테리다. 설령 박헌영이 스탈린주의자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김일성이 ‘권력형 스탈린주의자’라면 박헌영은 그보다는 죄질(?)이 덜한 ‘이론형 스탈린주의자’라고 볼 수 있고, 그래서 박헌영의 합리적인 대처가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어쨌든 이 사건 이후 조봉암은 철저한 대중지향적 노선에 기반하여 현실정치 참여로 방향을 잡았고, 박헌영은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의 반공주의에 맞선 전국적 저항을 통해 조선공산당 사수에 힘을 쏟는다. 어차피 둘 다 50년대 한반도 정치에서 축출 당했다는 면에서 패배자임에 틀림없지만, 최근 남한 진보정치 내부의 평가 움직임을 봤을 때, 둘 간의 경쟁에서 조봉암이 ‘역사적’ 승리를 거둔 듯 하다. 작년 조봉암 법살 50주기를 맞아서 주대환의 사회민주주의연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모두 그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토론회를 열면서 조봉암 노선의 복권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조봉암을 대한민국 건국공신으로 치켜세우는 사민련의 입장이나, 그의 진보당 건설 투쟁을 현재적으로 해석하면 ‘반MB연대’라고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조봉암의 법살이라는 비정상적인 정치 행태가 현재까지 내려져오면서 노무현의 죽음과 노회찬 X-파일 사건 유죄 판결을 낳았다는 진보신당 조현연 교수의 주장도 말이야 맞는 말이래도, 그런 주장이 미래지향적 정치적 비전을 형성하는데 그리 중요한 주장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진보신당 장석준 정책실장이 말한, 미소대립이 직접적으로 투영된 한반도 현실 속에서 평화통일이라는 구상(그는 이를 당시 반둥회의로 대표되는 중립국 제3세력 노선과 맞닿아있다고 말한다)을 제시했던 조봉암의 국제정치에 대한 혜안을 본받아 21세기에 걸맞는 정치적 리더쉽을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표를 주고 싶다. 이런 관점 하에서라면 나는 앞으로 조봉암 노선의 적극적 해석을 통한 진보정당의 비전형성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하지만 이런 결론을 내리기 이전에 단서들을 몇 가지 달아야 한다. 내가 제시하려는 단서들은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조봉암의 노선이 더 현실적이고 대중정치에 부합하는 것이었다면, 왜 그의 시도는 법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버렸는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 ‘그래서 이승만이 나쁜 놈이다’가 제시되는 건 부당하다. 왜냐하면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박헌영도 변명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박헌영과 조선공산당도 잘 해보려 했지만, 미군정을 등에 업은 우익들의 테러가 만연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은 탄압에 의해 지하 비합정당이 되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대구총파업, 4.3항쟁 등 대중들의 자생적 봉기를 끝까지 책임지고 지도하려는 노력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박헌영의 북한행도 이런 상황에서 조직의 붕괴를 막으면서 대중투쟁에 대한 지도를 유지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조공의 이런 노력을 언급하지 않고 이들의 스탈린주의적 오류만 지적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사실 조봉암이 제헌의회 선거에서부터 다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엄혹한 투쟁의 시기에 침묵을 지켰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span><span style="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다만 인터넷 참세상에 소개된 책에서처럼 조봉암을 변절 지식인이라 표현하는 것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다.</span><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2px; line-height: 19px; font-family: "><a target="_blank" href="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49075"><span style="color: #0000ff">(변절 지식인 조봉암과 비극의 뿌리 조선공산당)</span></a></span></span><span style="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조봉암의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지 그가 역사적으로 성공한 북유럽식 사민주의와 비슷한 내용을 주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실패가 예정되어 있던 코민테른식의 사회주의를 거부하고 자주적으로 국제정세를 읽으며 제3노선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맥락에서 봤을 때에도 코포라티즘의 물적 토대가 전무했던 50년대 한국 상황에서 텍스트적 유사성만을 근거로 조봉암이 개량적인 북유럽식 사민주의를 주장했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적 상황을 무시한 해석이다.</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그와 비교해 박헌영은 고지식하다고 할 정도로 조직적인 인간이었고, 그래서 그 조직(코민테른과 조선공산당)의 오류가 그대로 박헌영의 오류가 되어버렸다. 안재성의 설명대로 박헌영이 김일성의 주전론에 거부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라 해도 전쟁에 반대하는 실제적 행동을 하지 않은 이상 그도 전쟁의 공범이긴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진보운동의 역사에서 박헌영을 버리고 조봉암을 택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옳지 않다. 조봉암의 현실주의는 비슷한 시기에 터져 나온 노동대중들의 자생적 투쟁을 우회한 현실주의였다. 당시의 대구총파업, 4.3항쟁등이 조선공산당의 모험주의의 소산이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 당시 조선공산당은 사실상 전국적 지도 체계가 붕괴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공산당은 대중 투쟁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극의 길로 빨려들어 갔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와 함께 조선공산당의 오류에 대해서도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나는 이재유를 비롯한 경성 트로이카의 중심들이 해방 이후에도 살아남았다면 적어도 코민테른 입장에 따라 반탁에서 친탁으로 우왕좌왕하는 조공의 행보는 나타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이재유는 박헌영이 자신의 밀사를 통해 상해에서 보내주는 공식 문건과 코민테른의 지령에 따라 활동할 것을 권하였을 때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문건이 도착하는데만 한달이 넘게 걸리는데, 어떻게 조선의 구체적 정세에 맞는 운동을 하겠냐는 것이다. 가혹한 탄압에 의한 것이었지만, 어쩌면 이들의 죽음이 조선공산당에 가장 큰 비극이 아니었을까 싶다.</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그래서 장석준 등 진보신당의 브레인들이 주장하는 ‘조봉암 계승론’은 ‘비판적 계승론’으로 바뀌어야 한다. 21세기 진보정당의 정치적 리더십은 폭발하는 </span><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대중적 불만과 투쟁</span><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을 수평적 토론과 연대 속에서 대안적 사회체제에 대한 구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이끄는 리더십이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50년대 민중항쟁과 함께했던 조선공산당의 긍정성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 </p><div class="buttons-bottom center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4034',322,'/rollingstone','');"><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png');" /></a><br /><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322+%22%EC%A1%B0%EB%B4%89%EC%95%94%EA%B3%BC%20%EB%B0%95%ED%97%8C%EC%98%81%2C%20%EB%8B%A4%EB%A5%B8%20%EA%B8%B8%EC%9D%84%20%EA%B0%84%20%EB%91%90%20%ED%98%81%EB%AA%85%EA%B0%80%EC%9D%98%20%EC%B4%88%EC%83%81%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png');"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322&t=%EC%A1%B0%EB%B4%89%EC%95%94%EA%B3%BC%20%EB%B0%95%ED%97%8C%EC%98%81%2C%20%EB%8B%A4%EB%A5%B8%20%EA%B8%B8%EC%9D%84%20%EA%B0%84%20%EB%91%90%20%ED%98%81%EB%AA%85%EA%B0%80%EC%9D%98%20%EC%B4%88%EC%83%81"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png');"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322&title=%EC%A1%B0%EB%B4%89%EC%95%94%EA%B3%BC%20%EB%B0%95%ED%97%8C%EC%98%81%2C%20%EB%8B%A4%EB%A5%B8%20%EA%B8%B8%EC%9D%84%20%EA%B0%84%20%EB%91%90%20%ED%98%81%EB%AA%85%EA%B0%80%EC%9D%98%20%EC%B4%88%EC%83%81','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png');"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rollingstone/322?commentInput=true#entry322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주대환, <대한민국을 사색하다>구르는돌http://blog.jinbo.net/rollingstone/2942010-12-09T22:00:39+09:002010-05-26T16:49:32+09:00<!--FCKeditor--><p style="text-align: center"><img height="300" width="200" alt="" src="/attach/4034/270217201.jpg"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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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오랜만에 서평.... 이라기보다는 몇 가지 코멘트를 달을 수 있을 만한 책을 읽었다. 주대환의 글은 예전에 그가 우파 잡지 <시대정신>에 기고했다고 하여 논란이 된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좌파는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유명한...)를 대충 보고, "이건 뭥미?" 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어제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심심하던 차에 읽게 되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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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사실 이 책을 예전에 서점에서 대충 본 적이 있긴 한데,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제는 그냥 훑어보던 중에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만 부르자>(131쪽)라는 아주 도발적인 제목을 발견하고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사실 나도 요즘 비슷한 고민으로, 어지간하면 앞으로 '동지'나 '민중'같은 단어는 쓰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의 말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하 임진곡)과 같은 민가나 '동지', '민중'하는 단어들은 "그 곡조와 가사의 지나친 비장함은 일상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고, 그 정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낯설고 닫혀 있다는 느낌을"(132쪽) 주기 때문이다. 이제 껍데기만 남은 '운동권 하위문화'와는 단절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좀 하고 있던 터였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부분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이 꽤 있기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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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strong>1.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말자?</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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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그에 따르면 우리가 80년대적 운동권 동창회 정서를 버리지 못하면 이른바 '토종좌파'(그는 칸트적인 합리주의적 사고를 버리고 경험주의와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토종좌파'라는 말로 개념화한다. 그가 대표적 토종좌파로 칭찬하는 사람이 제주대 이상이 교수다.)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이 토종좌파라는 말이 한국적인 정세와 조건에 맞는 운동을 하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집단을 말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의 말에 백번 동의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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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하지만 그게 '임진곡'을 버려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는 노무현 정부때 이 노래가 청와대에서 불려졌다는 말을 듣고, 이런 자유주의자들과 같은 부류로 엮여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임진곡'을 부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이유라면 오히려 나는 더 열심히 임진곡을 부를 것이다. 그가 그렇게 애타게 찾는 한국적 '토종좌파'는 단순히 맑스-레닌의 교조주의에 빠져있지 않다고해서, 외국이론에 심취해서 현실을 보는 눈을 갖지 못하는 먹물적 근성을 버린다고만 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게 아니다. 철저하게 우리의 지난 저항운동의 역사에 근거해야만 한다. 그 스스로가 그것으로부터 절대적 영향을 받았을, 518을 잊고서는 우리는 앞으로 어떤 진정한 의미의 저항운동도 시작할 수 없다. 518에 대한 해석이야 다를 수 있지만, 그 저항현장의 상징인 노래를 폐기하자고 하는 것은 감정적인 대응일 뿐이다. 물론 나도 그로부터 연유한 운동권 하위문화가 얼마나 심각하게 운동 전반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질식시켰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80년대 저항운동이 앙상한 운동권 하위문화로 귀결된 것이 유일하거나 필연적인 경로는 아니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는 이미 그렇게 형성되어져 버린 조건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em>"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즉 자신이 선택한 조건들 속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조건들 속에서 만든다.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마치 악몽처럼 살아 있는 세대들의 머리를 짓누른다."</em>(맑스,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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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strong>2. 토지개혁 때문에 대한민국의 출발은 진보적이었다?</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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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우리는 지난 저항운동의 역사가 남겨놓은 한계와 가능성을 명확히 하고, 그 가능성을 중심으로 계승해 나가야 겠지만, 그렇다고 맘에드는 것만 골라서 이어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면에서 여운형과 조봉암을 치켜세우며 "대한민국은 진보적인 시대에 건국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찍이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역사에 대한 '편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두 명의 훌륭한 정치인이 해방을 전후하여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이었고, 시대를 앞서나간 인물이란 점에는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실제 이들이 현재의 대한민국 '체제'를 긍정적으로 형성하는데 얼마나 큰 공을 세웠느냐 하는 문제로 오면 그리 대답할 만한 게 없다. 실로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포부를 채 펼쳐보지도 못한 채 타살되었고, 그러니 그들이 역사에 남긴 것은 말과 글, 즉 '사상'뿐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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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주대환의 말대로 해방 직후 유력한 정치인(김일성, 박헌영, 여운형, 김규식, 김구, 이승만) 중에 좌우 양극단의 두 사람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타살되면서, 한반도는 사실상 극우와 극좌의 나라가 되었다. 적어도 50년대 남한은 '이승만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텐데, 토지개혁 하나만 가지고 이 나라가 조봉암의 업적 위에 세워졌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해도 비약이 너무 심하다. 이에 더해 (그것이 북한과의 체제경쟁 과정에서 출현한 정책이었다는 점을 제외한다해도) 토지개혁을 현재 대한민국 체제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논의는 문제가 많다. 이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주대환은 자신이 아무리 신좌파를 외치고 다녀도 구좌파적 사고방식, 즉 단계론적/진화론적인 사고방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여진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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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그는 남한의 토지개혁을 치켜세우면서, 그것은 집단농장으로 전락한 중국 공산당의 토지개혁이 아니라 79년 덩샤오핑 체제 하에서 실시된 토지개혁이 남한의 그것과 견줄만 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농민들에게 자기 소유의 땅을 쥐어주고 "모두 부자가 되라!"라는, 우리나라 모CF의 "부자 되세요~"와 견줄만한 지상명령을 제시한다. 이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으로 잘 드러나는데, 이것을 보통 중국의 자본주의로의 전환에 있어 첫 기점으로 삼는다. 주대환에게 이것은 한국의 토지개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시 말하자면 건국 당시 대한민국은 소농의 나라였습니다. 토지 개혁으로 조그만 땅뙈기를 갖게 된 수많은 자영농민들의 자발적 중노동과 창의력이, 그 말릴 수 없는 교육열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기적을 만든 에너지의 원천입니다."(226쪽)</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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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정리하자면 중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토지개혁을 통해 자본주의로의 발전과 번영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고, 대한민국은 이런 '위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낡은 NL과 PD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보면 제2인터내셔널 당시 자본주의의 성숙이 자동적인 사회주의로의 진화로 나아가게 한다고 말한 일부 '정통 맑스주의자'(주대환이 따르는 베른슈타인류나 그가 반대하는 스탈린류나 모두 여기에 속한다)들의 사고방식과 뭐가 그리 다른지 궁금하다. 게다가 '자발적 중노동'이라니!! 이런 식이라면 인클로저 운동 당시 도시로 내몰린 빈민들의 노동도 '자발적'이었고, 먼지 소굴 평화시장에서 어린 여공들의 일을 대신해주기도 했던 전태일의 노동도 자발적인 것이다. 어쩌면 주대환의 생각은 작년에 광주항쟁에 대해 '선진국에서도 다 그런 과정을 겪더라'라며 통과의례쯤으로 발언했던 황석영의 관점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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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월러스틴이 말했듯이, 서양의 부르주아 혁명은 신흥 자본가계급의 출현이 아니라 기존 귀족계급의 '환상변신'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는 '근대로의 진화'라고 보는 관점은 옳지 않다. 한국의 50년대도 마찬가지 아닌가? 조선 말기와 일제 식민지 시기에 봉건 지주였던 놈들이 반민특위를 짓밟고 자본가계급으로 '환상변신'을 했다는 것은 굳이 월러스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상식이 아니던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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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strong>3. 전쟁은 '평등주의'다!?</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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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나아가 내가 주대환을 다음의 인용문을 근거로 '주전론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또 하나의 억지일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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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margin-left: 40px;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그리고 한국전쟁에서 두어 차례 전선이 밀려 내려오고 밀고 올라감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다니고, 월남 또는 월북함으로써 뒤섞이는 사이에 신분 질서와 귀족의 생활양식, 전통문화는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고급문화를 대중이 따라하여 전반적으로 문화적 상향평준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거꾸로 모두가 어떤 가식도 핑계도 없이 노골적으로 돈과 힘을 추구하는 천민이 된, 위대한 천민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 ...) 그리하여 대한민국은 평등하기 때문에 위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천민자본주의의 나라, 대한민국이 평등하다니요? 그렇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건국 당시 대한민국은 평등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물의 평가는 상대적입니다. 건국 당시의 대한민국이 평등하다는 것은 절대적인 평가가 아니라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span><span>(222-3쪽)</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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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한국전쟁이 기존의 신분관계를 청소해서 대한민국은 모두가 천민인 나라, 평등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원래 자본주의 자체가 천한 것이니 한국식 천민자본주의가 부끄러울 이유도 없고, 지금의 대한민국 발전을 이끌어 온 엄청난 교육열도 이 '천민적 평등주의'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위대하신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팔할이 전쟁이었다. 오 전쟁이시여~ 뭐 이런건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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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이런 식의 주장은 사실상 종말론적으로 읽힌다. 모든 것이 파괴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새로 지을 수 없다는...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대전이 전지구적 경제성장의 기회를 가져왔다고 말하는 제국주의자들의 주장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것을 앞에서 지적한 그의 '자발적 중노동'이란 표현과 연결해 생각해 보면, 전쟁으로 피폐화된 상황 속에서 한국은 근대적 평등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얻었고, 이로써 근대화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일제의 식민통치와 세계대전 참전이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뉴라이트의 역사관과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인가? 이런 식이라면 현재 전쟁을 겪고 있는 중동지역 시민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을 축복의 폭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인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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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strong>4. 여전한 남의 것에 대한 맹목적 추종</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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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이에 대해 나의 과잉해석이라고 말한다면 인정하겠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일때 한 쪽 눈엔 블라인드를 쳐버리는 습관은 여기서 그치는게 아니었다. 이를테면 "마찬가지로 뒤집어 보면, 한국이 OECD에 가입했다는 사실 역시 때로는 고맙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충분한 준비 없이 졸속하게 OECD에 가입해서 구제금융을 받아야만 하는 외환위기를 초래했다고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그러나 과연 OECD가 한국의 가입 조건으로 제시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 엄두를 내었겠습니까?"(230쪽) 같은 구절 말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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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한국 정부가 언제부터 그렇게 국제기구의 말을 잘 들었다고 공무원노조 탄생의 공을 OECD로 넘기는지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주대환은 자기가 그렇게 부르짖는 '토종 좌파'로서의 자질이 매우 부족하다. 그는 대한민국을 긍정하자고 말하면서도 그 근거를 대한민국 내부가 아니라 항상 외부에서 찾는다. 대한민국 최초 헌법이 가장 선진적인 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인 결과라는 것도 사실상 서구문물에 대한 찬양이다. 그가 여운형, 조봉암을 존경하는 이유도 그들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을 좋아하는 것도 그들이 '서구적' 국가관료제도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는 식민지 시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저항운동의 역사 속에서 피어난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의 모조품으로서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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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진보신당 상상연구소의 장석준은 주대환의 이런 주장을 두고 역사 속에서 어떤 기원적 사건을 찾고 그것으로부터 정통성의 계보를 작성하는 것은 전형적인 주자학자들의 역사관인데, 주대환의 주장이 딱 그 꼴이라고 비판했다. (장석준, <진보좌파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시민과세계 2008 하반기호) 여기에 덧붙이자면 주대환은 한국 땅에서 한 번도 자리를 잡은 적 없는 서구형 민주주의/복지국가를 대한민국 정통성의 기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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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오히려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면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는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3.1운동으로부터 시작된 수많은 대중들의 저항행동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긍정해야 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장석준이 말하듯이 "민주공화국을 위해서 대한민국을 넘어서야"한다. 그런 방향으로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다시 써내려가야 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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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사실 이런 글을 읽는 것은 나로서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앞서서 운동했던 대표적인 분이 이렇게 매력없는 글로서 사람을 실망시키니 후배의 마음은 찢어진다. 한 논평자의 말처럼 주대환의 이런 선회는 이미 90년대초 '신노선'을 선언할 당시의 선택이 "주어진 선택지들 중에서 선택한 무엇이 아니라 '더는 이대로 돌파할 수 없는 한계선'을 맞닥드리며 어쩔 수 없이 포기하며 좌파에게 남은 기획을 '새로운 기획'이라 믿고 또 다시 헌신해온, 좌파의 총체적 위기와 기획의 빈곤 위에서 싸워온 우리 운동과 우리 자신의 현실적 자화상"(최윤식, "사민주의가 대안일 수 없는 이유", 레디앙, 08.09.08)인 것처럼 예정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어차피 좋든 싫든 주대환류의 역사적 효과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우리의 미래도 이렇게 예정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운동의 혁신'이란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난 운동의 결과들과 단절을 선언하는 것 밖엔 길이 없지 않는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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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부탁드린다. 어린 놈이 더 이상 이런 절망스러운 결론에 다다르지 않도록 선배님들이 지난 운동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좀 더 성실하게 해 주시기를... 그래서 그것이 '대안사회'로 불리든 '진보한국'으로 불리든, 그것을 이뤄나가는데 미력한 지성을 보태는데 망설일 이유를 만들지 않게 해 주시기를...</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div class="buttons-bottom center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4034',294,'/rollingstone','');"><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png');" /></a><br /><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94+%22%EC%A3%BC%EB%8C%80%ED%99%98%2C%20%3C%EB%8C%80%ED%95%9C%EB%AF%BC%EA%B5%AD%EC%9D%84%20%EC%82%AC%EC%83%89%ED%95%98%EB%8B%A4%3E%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png');"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94&t=%EC%A3%BC%EB%8C%80%ED%99%98%2C%20%3C%EB%8C%80%ED%95%9C%EB%AF%BC%EA%B5%AD%EC%9D%84%20%EC%82%AC%EC%83%89%ED%95%98%EB%8B%A4%3E"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png');"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94&title=%EC%A3%BC%EB%8C%80%ED%99%98%2C%20%3C%EB%8C%80%ED%95%9C%EB%AF%BC%EA%B5%AD%EC%9D%84%20%EC%82%AC%EC%83%89%ED%95%98%EB%8B%A4%3E','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png');"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rollingstone/294?commentInput=true#entry294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오쿠다 히데오구르는돌http://blog.jinbo.net/rollingstone/2732010-12-09T22:00:39+09:002010-04-13T13:34:38+09:00<!--FCKeditor--><p>오쿠다 히데오. 일본 소설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참 좋아한다.</p>
<p> </p>
<p><남쪽으로 튀어>에서는 혁명의 꿈을 잃고 방황하는 자족적 아나키스트의 삶이 조금은 유쾌하면서도 조금은 가슴아프게 그려졌고, <공중그네>에서는 삶의 이면들을 아주 코믹스럽게 그려졌다.</p>
<p> </p>
<p>이번 주말에 읽은 <마돈나>는 <공중그네>와 비슷한 컨셉이긴 한데, 그것보다는 뭔가 더 인간에 대한 애정 같은게 느껴졌다. <마돈나>에는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과장급 샐러리맨의 5가지 에피소드를 그렸는데, 특히 마지막에 실린 '파티오'라는 단편은 살짝 애잔하기까지 하다.</p>
<p> </p>
<p>토지개발회사에 근무하는 노부히사는 미나토파크를 상업적으로 활성화시키는 2년짜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항상 그 곳의 파티오라는 뜰에서 독서를 하는 노인에게 눈길이 간다. 부인과 사별하고 고향에서 혼자 텃밭을 가꾸면 사는 자신의 아버지 생각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노부히사는</p>
<p> </p>
<p>....</p>
<p> </p>
<p> </p>
<p>"그런 것이다. 아버지는 불평을할 권리도 없다. 그리고 오효이 씨도. 세상이 이래도 좋은 것인가. 노인에게는 기득권이 있는 것이다. 오래 살아온 인간의, 그곳에 있어도 좋은 권리."</p>
<p> </p><div class="buttons-bottom center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4034',273,'/rollingstone','');"><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png');" /></a><br /><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73+%22%EC%98%A4%EC%BF%A0%EB%8B%A4%20%ED%9E%88%EB%8D%B0%EC%98%A4%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png');"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73&t=%EC%98%A4%EC%BF%A0%EB%8B%A4%20%ED%9E%88%EB%8D%B0%EC%98%A4"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png');"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73&title=%EC%98%A4%EC%BF%A0%EB%8B%A4%20%ED%9E%88%EB%8D%B0%EC%98%A4','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png');"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rollingstone/273?commentInput=true#entry273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다시, 고통스럽게 '사유'하기 위하여 - <리영희 프리즘> 서평구르는돌http://blog.jinbo.net/rollingstone/2552010-12-09T22:00:39+09:002010-03-11T14:56:10+09:00<!--FCKeditor--><p><!--StartFragment--> <!--StartFragment--></p>
<p style="font-size: 2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20pt; color: #000000; line-height: 32pt; font-family: ">다시, 고통스럽게 '사유'하기 위하여</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 『리영희 프리즘』서평, 그리고 나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center"> </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돋움체';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img alt="" src="http://image.aladdin.co.kr/cover/cover/8958284528_1.jpg"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얼마 전 친구 하나가 쌍꺼풀 수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와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나 그리고 나의 여자친구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물론 그 친구는 엄마가 하도 보채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말했다지만, 나이가 올 해 스물여섯이나 먹은 성인이 제 얼굴에 칼 대는 일을 엄마가 하란다고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 친구가 아무리 변명한다 해도 그 선택에 자신의 욕망이 조금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믿기는 어려운 일이었다.</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하지만 단 한번의 수술로 그간 우리가 지켜왔던 여성주의 운동의 대의를 배신한 친구의 선택에 분노를 터뜨리고 난 후에도 </span><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뭔가 개운치는 않았다. 나조차도 부지불식간에 그 친구에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절대 보편이 될 수 없는 도덕률 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 식의 도덕률로 그를 욕한다면 알량한 대학 졸업장을 받아보겠다고 두 달간 토익학원에 시간과 돈 그리고 영혼까지 갖다 팔았던 나는 얼마나 정당한가? 냉정하게 말해서 그와 나의 차이점이라고는 노동시장에서 나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자기계발의 기술을 외모에 까지 적용했느냐 안했느냐 정도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나면 내가 감히 그 친구에게 들이밀은 도덕주의는 혹시 '꼰대스러운' 운동권의 자격지심의 발로는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그런 의미에서 "이런 시대에 좌파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분열증에 시달린다는 것을 의미"(한윤형, <냉소주의시대의 우상과 이성>, 206쪽)한다는 한윤형의 지적은 이미 그런 분열증 증세 속에 살아가는 나에게는 의사가 작성해준 진단서를 읽는 기분이 들게 한다. 학생운동을 할 때, 우리는 비대해진 사교육 시장과 경쟁교육을 비판하면서도 밀린 방세를 내기 위해 영수과외를 해야만 했다. 이쯤 되면 과연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MB교육인지,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하루에 세 번씩은 꼭 울어대는 내 배꼽시계인지 헷갈리는 지경이다.</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내 앞엔 지금 『리영희 프리즘』이란 책 한 권이 놓여져 있다. 70년대 대학생에겐 '스승'이었고, 그래서 프랑스 진보언론 르몽드로부터 '사상의 은사'라는 별칭까지 얻은 상징적인 지식인 리영희. 그는 70-80년대 대학생들에게 쉼 없이 '몽롱한 의식에 끼얹은 찬물 한 바가지'같은 글들을 쏟아냈고, 그렇게 리영희로부터 세례 받은 청년들은 소위 '의식화'가 되어 80년대를 분노와 저항의 세월로 채워갔다.</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2010년 3월 11일. 나는 리영희의 일생의 화두였다는 우상(偶像)과 이성(理性)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도 거의 대다수의 청년세대가 리영희를 모르고 리영희의 사상에 빚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2010년 3월 11일에.</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스승이 없는 시대, 우상맹목의 시대</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지난 21세기의 첫 10년간, 우리는 확실히 '스승이 없는 시대'를 살았다. 70년대 대학생을 감화 받게 했던 리영희도, 80년대 대학생이 리영희를 경유하여 만난 마르크스도 우리에겐 없다. 91년 사회주의권 붕괴를 찍고 턴한 청년세대의 사상적 좌표는 그간 '모셔왔던' 스승들을 사정없이 패대기를 쳐대더니 결국 지금의 청년세대를 탈이념, 탈정치 그리고 냉소주의를 뼛속 깊숙이 받아들인 'Cool'한 이들로 성장시켰다. 그러는 동안 리영희가 치열하게 마주해왔던 군부독재라는 우상은 자본독재로 새롭게 옷을 갈아입었지만, 우리는 이전 청년세대와는 다르게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 우상을 치열하게 대면하고 파괴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Cool'했기 때문에.</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그러했기에 사르트르식으로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으로서 지식인 또는 그람시식으로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지식인은 소위 '꼰대' 취급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는지.(이대근, <다시, 지식인의 책무를 묻다>, 133쪽 참조) 어쩌면 우리에게 '지식인'은 특정한 기술(Technique)을 전수해주는, 이를테면 메가스터디 손주은 사장같은 사람이 아닌지.</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그렇게 스승이 부재한 가운데,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워졌는가? 우리는 분명 고통스럽게 억압과 마주해야 할 부담에서 자유로워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탈정치'라는 이름으로 그 부담으로부터 자유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 부담이 자리잡고 있던 자리에 지금 무엇이 들어 앉아 있는가? 얼마 전 삼성 총수 일가를 비판한 책에 대한 광고를 거부한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의 고위간부라는 사람들이 'Cool'하게 던진 말들 속에서 나는 그것의 실체를 본다. "삼성은 우리의 파트너", "삼성은 해체의 대상이 아니라 상생의 대상". 이미 우리시대 우상(偶像)이 되어버린 삼성은 그들에게 신문사 경영의 일부가 되었고, 리영희에겐 그것과 맞서기 위해 벼려내야 했던 무기였던 이성(理性)이 그들에겐 삼성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적응의 기술'이 되어버렸다. 이 '적응의 기술'이 시장주의를 통해 자유의 가면을 쓰는 과정을 안수찬 기자는 <진짜 기자의 멸종>이라는 글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다시, 고통스럽게 '사유'하기 위하여</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우리는 그렇게 억압과 마주해야 할 부담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은 대신, '생각'을 잃었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의 존재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보았지만, 우리는 지금 확실히 의심의 여지없이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고병권,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15쪽 참조) 우상의 지배 하에서 작동되는 두뇌의 의식작용은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화학적인 생리작용과 다르지 않다. 화학적 생리작용으로만 유지되는 유기체를 우리는 '노예' 또는 '짐승'이라고 부른다.</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확실히 이 구절은 아팠다. 너무 아파서 읽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리영희는 사르트르를 인용해 자유의 의미를 절절하게 전했다. 사르트르는 독일 점령 하에 있을 때처럼 자유로웠던 예가 없었다고 했다. 일체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매일 정면으로 모욕을 당할 때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자유라고 했다. 막다른 골목에 쫓겨 있었던 까닭에 거동 하나하나가 앙가주망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고 했다. 억압자에 저항함으로써 자유를 느꼈던 그에게는 저항만이 진정한 민주주의였다." (이대근, <다시, 지식인의 책무를 묻다>, 144쪽)</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나와 같이 범속한 인물이 저런 자유에 털끝만큼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심지어 앞에서 말한 '진보언론'의 간부들(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상과 이성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등을 맞대고 붙어 있는, 우리 삶의 두 부분일 따름이라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그러나 나는 또 아프게 되새김질 한다. 나치 전범재판에 회부된 아이히만을 관찰하면서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에게 사유는 '능력'이 아니라 '의무'이다. 우상이 끊임없이 이성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고 둘 사이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는 조건 속에서, 우리가 그 둘을 분리해내려는 고통스러운 사유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만 아이히만의 변종일 뿐이다. 아이히만은 가정에 충실했고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다만 너무 성실한 나머지 유태인을 살해하라는 우상의 명령에 대해 '사유'하지 못했을 뿐이다.</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그래서 나는 나 자신과 나의 친구에게 묻는다. 성실하게 일주일에 세 번 토익학원에 다니는 동안, 그리고 유행에 맞춰 성형외과를 찾는 동안, 너는 얼마나 자유로웠냐고. 너는 얼마나 네 안에 자리 잡은 우상에 대해 사유했느냐고. 5.18의 시인 김남주는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라고 했다. 그리고는 "사람들은 맨 날 겉으로는 소리 높여 자유여, 해방이여, 통일이여, 외치면서 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네."라고 꾸짖었다. 시인 앞에 한 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br />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스승 없는 시대를 함께 버텨내온 나의 친구에 대해 생각한다. 그 친구는 얼마 전 만났을 때 김규항의 『예수전』이라는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나도 최근에 그 책을 접했다. 종교와 별 다른 인연을 맺지 않았던 나도 이 책을 통해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친구였던 '최초의 사회주의자' 예수의 삶에 깊이 감동했다. 나는 그렇게 우리가 스승 없는 시대에 스승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는 사실에 감사했었다. 나는 여전히 나의 친구와 함께 사유하고 싶다. 자유롭기 위하여. 나의 이성과 육체 모두가 진정 자유롭기 위하여.</span></p><div class="buttons-bottom center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4034',255,'/rollingstone','');"><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png');" /></a><br /><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55+%22%EB%8B%A4%EC%8B%9C%2C%20%EA%B3%A0%ED%86%B5%EC%8A%A4%EB%9F%BD%EA%B2%8C%20%27%EC%82%AC%EC%9C%A0%27%ED%95%98%EA%B8%B0%20%EC%9C%84%ED%95%98%EC%97%AC%20-%20%3C%EB%A6%AC%EC%98%81%ED%9D%AC%20%ED%94%84%EB%A6%AC%EC%A6%98%3E%20%EC%84%9C%ED%8F%89%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png');"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55&t=%EB%8B%A4%EC%8B%9C%2C%20%EA%B3%A0%ED%86%B5%EC%8A%A4%EB%9F%BD%EA%B2%8C%20%27%EC%82%AC%EC%9C%A0%27%ED%95%98%EA%B8%B0%20%EC%9C%84%ED%95%98%EC%97%AC%20-%20%3C%EB%A6%AC%EC%98%81%ED%9D%AC%20%ED%94%84%EB%A6%AC%EC%A6%98%3E%20%EC%84%9C%ED%8F%89"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png');"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55&title=%EB%8B%A4%EC%8B%9C%2C%20%EA%B3%A0%ED%86%B5%EC%8A%A4%EB%9F%BD%EA%B2%8C%20%27%EC%82%AC%EC%9C%A0%27%ED%95%98%EA%B8%B0%20%EC%9C%84%ED%95%98%EC%97%AC%20-%20%3C%EB%A6%AC%EC%98%81%ED%9D%AC%20%ED%94%84%EB%A6%AC%EC%A6%98%3E%20%EC%84%9C%ED%8F%89','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png');"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rollingstone/255?commentInput=true#entry255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강신주,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구르는돌http://blog.jinbo.net/rollingstone/2532010-12-09T22:00:39+09:002010-03-06T13:56:51+09:00<!--FCKeditor--><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 src="http://image.aladdin.co.kr/cover/cover/8972976091_1.jpg"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강신주는 보기 드물게 친절한 철학 선생님이다. 그 동안 대학 새내기쯤을 대상으로 한 철학 입문서로 이진경의 <철학과 굴뚝청소부> 정도가 각광을 받아왔지만, 이 책 또한 잘난척하기 좋아하는 얘들 몇을 빼놓고는 그다지 쉽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런데 2006년에 강신주의 <철학, 삶을 만나다>라는 책을 만나고 '요것 참 물건이 나왔구나'싶었다. 그래서 여기저기에 이 책을 추천도 많이하고, 그래서 몇몇 얘들은 그걸 가지고 새내기와 함께하는(^^;;) 철학 세미나를 하기도 했었는데...</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랬던 강 선생께서 이번에 또 하나의 물건을 내놓으셨다. '시를 통한 철학읽기'라고 해야 더 정확할 듯 싶은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이 그것이다. 내가 원래 문학과 그리 친한 편은 아닌데, 시는 더더군다나 인연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예전에 '투쟁 자료집' 만들때 빈 공간 채워 넣으려고 갖다 쓰던 브레히트나 도종환의 몇몇 구절 정도가 좀 인연이 있었을 뿐... 사실 시라는게 나같은 범속한 인간이 읽으면 '그래서 대체 뭐 어쩌라고'라는 반응이 나오는게 대부분이어서 딱히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지 않는 세계였다. 그런데 또 강 선생께서 친히 철학-삶-시의 삼각관계를 자연스럽게 풀어헤쳐주셔서 우리는 또 수줍게 시 속에서 나의 삶과 철학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게 된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일단 내가 이 책에서 소개된 책 중에 가장 맘에 든 시는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이다. 원래 김남주 시인의 직설적인 화법과 따가운 질책은 언제나 좋았지만, 이 시는 더욱이나 울림이 크다. 각설하고 감상을~</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a name="[문서의 처음]"></a></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trong><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어떤 관료 - 김남주 </span></span></strong></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 />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span>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 />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span>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 />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미국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span>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 />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 />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span>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 />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 />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 />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span>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span>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 />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span></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근면하고 정직하게!</span>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성실하고 공정하게! </span></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 시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사유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다"라는 명제를 꺼내드는데, 요즘 내 삶에서 그럴만한 계기는 딱히 없었지만 왠지 이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구청에서 일하다 보면 내가 조금 귀찮아하는 기색만 보이면 공무원들을 말한다. "이 자식 이거 군대를 보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선 근면함은 무사유의 다른 표현이다. 군대는 무사유 속에서 근면함을 형성시키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만 언제나 악인이 될 수 있는 무사유의 일상성.</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어쨌든 이 책은 강추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div class="buttons-bottom center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4034',253,'/rollingstone','');"><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png');" /></a><br /><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53+%22%EA%B0%95%EC%8B%A0%EC%A3%BC%2C%20%3C%EC%B2%A0%ED%95%99%EC%A0%81%20%EC%8B%9C%EC%9D%BD%EA%B8%B0%EC%9D%98%20%EC%A6%90%EA%B1%B0%EC%9B%80%3E%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png');"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53&t=%EA%B0%95%EC%8B%A0%EC%A3%BC%2C%20%3C%EC%B2%A0%ED%95%99%EC%A0%81%20%EC%8B%9C%EC%9D%BD%EA%B8%B0%EC%9D%98%20%EC%A6%90%EA%B1%B0%EC%9B%80%3E"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png');"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53&title=%EA%B0%95%EC%8B%A0%EC%A3%BC%2C%20%3C%EC%B2%A0%ED%95%99%EC%A0%81%20%EC%8B%9C%EC%9D%BD%EA%B8%B0%EC%9D%98%20%EC%A6%90%EA%B1%B0%EC%9B%80%3E','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png');"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rollingstone/253?commentInput=true#entry253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한 내 코멘트구르는돌http://blog.jinbo.net/rollingstone/2502010-12-09T22:00:39+09:002010-02-18T13:08:16+09:00<!--FCKeditor--><p><a href="http://blog.jinbo.net/rollingstone"><b>구르는돌</b></a>님의 <a href="http://blog.jinbo.net/rollingstone?pid=248">[<삼성을 생각한다>를 꼭 사서 봐야할 이유.]</a> 에 관련된 글. <br />
<br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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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p>현재 알라딘에서 <삼성을 생각한다> 출간 기념으로 "삼성,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라는 이름으로 이벤트를 진행중이다. "삼성의 공과를 당신에게 묻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생각을 간단한 댓글로 올리면 되는 이벤트인데, 아래는 거기에 내가 쓴 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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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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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p> </p>
<div class="evtext">예전에 한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TV에서 김용철 변호사 관련 뉴스를 하고 있었다. 이를 보시던 식당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저 놈 아주 나쁜 놈이야, 괜히 삼성 배신해 가지고 주가나 떨어뜨리고..." 그런데 이번에 나온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으면서 이 아주머니의 말씀이 정치적으로 옳고 그르고를 떠나 기본적인 사실관계의 측면에서도 완전히 틀린 말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그의 양심고백이 있은 후 오히려 삼성의 주가는 더 올랐다고 한다.<br />
<br />
물론 이 아주머니에게 사실관계의 정확성을 따져보고 말하라고 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아주머니는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를 포함한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삼성은 누구로부터도 상처받아서는 안될 말 그대로 '물신'이기 때문이다.<br />
<br />
오히려 우리가 이 상황에서 물어야 할 것은 김용철 변호사의 발언으로 우리가 공포를 느끼게 되는 감성의 주된 영역이 왜 우리사회의 '무너진 도덕성'이 아니라 '떨어지는 주가'가 되어버렸는지에 대한 것이다. 시장에서 팔려나갈 우리의 가격을 지켜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양심, 가치, 도덕, 윤리 쯤이야 시궁창에 처박아도 된다는 우리의 '상식'(Common Sense).<br />
<br />
굳이 삼성의 '공'(功)을 말하자면 바로 이 점, 우리 모두에게 도덕과 양심, 그리고 윤리적 관계의 시체 위에 삼성제 가전제품이 딸린 아파트 한 채씩 쥐어주고 '여전히' 식민지적인 착취의 성과물들을 포식(飽食)할 권리를 분양해 줬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div><div class="buttons-bottom center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4034',250,'/rollingstone','');"><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png');" /></a><br /><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50+%22%3C%EC%82%BC%EC%84%B1%EC%9D%84%20%EC%83%9D%EA%B0%81%ED%95%9C%EB%8B%A4%3E%EC%97%90%20%EB%8C%80%ED%95%9C%20%EB%82%B4%20%EC%BD%94%EB%A9%98%ED%8A%B8%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png');"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50&t=%3C%EC%82%BC%EC%84%B1%EC%9D%84%20%EC%83%9D%EA%B0%81%ED%95%9C%EB%8B%A4%3E%EC%97%90%20%EB%8C%80%ED%95%9C%20%EB%82%B4%20%EC%BD%94%EB%A9%98%ED%8A%B8"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png');"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50&title=%3C%EC%82%BC%EC%84%B1%EC%9D%84%20%EC%83%9D%EA%B0%81%ED%95%9C%EB%8B%A4%3E%EC%97%90%20%EB%8C%80%ED%95%9C%20%EB%82%B4%20%EC%BD%94%EB%A9%98%ED%8A%B8','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png');"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rollingstone/250?commentInput=true#entry250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박영균,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구르는돌http://blog.jinbo.net/rollingstone/2472010-12-09T22:00:39+09:002010-02-12T11:30:23+09:00<!--FCKeditor--><p style="text-align: center"><img alt="" src="http://image.aladdin.co.kr/cover/cover/8991402143_1.jpg"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요새 한창 박영균의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와 이진경의 <역사의 공간>을 읽고 있다. 또한 웹서핑 차원에서 이러저런 블로그에 들어가는데 그 중에 문화평론가 이택광의 블로그도 있다. 의도적으로 이들을 비교해 봐야겠단 생각은 없었지만, 독서의 와중에서보니 이들의 차이점과 교집합이 조금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다. 일단 그 첫번째로 박영균의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감문.</p>
<p style="text-align: justify">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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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strong>* * *</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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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justify">지금 읽고 있는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는 08년 말쯤에 산 책인데, 50페이지쯤 읽다 포기해 버렸었는데 그 새 내 머리가 좀 컸는지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도 되면서 그럭저럭 읽고 있다. <진보평론>등에서 그의 논문을 몇 번 보긴 했는데, 이 책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는지 제대로 읽은 적은 없다. 앞으론 별 두려움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 책은 맑스주의 '정통'의 붕괴라는 이론적 조건에서 마주하게 되는 '탈현대적 맑스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 및 수용하면서 맑스 사상 속에서 이러저런 방식으로 왜곡되어 왔던 변증법과 유물론을 저자 나름대로 복권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사실 저자는 좌파 이론 진영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Orthodox한 맑스주의를 고수하는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텐데, 그런 포지션의 사람들은 스피노자, 니체 등으로부터 연유하는 탈현대적 맑스주의 비판을 그간 적지 않게 해 왔다. 그래서 어떤 면에선 이 책은 참 식상한 면이 있다. (박영균의 주장과는 많은 편차가 있긴 하지만) 나름 Orthodox한 맑스주의를 고집한다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 있자면 이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좀 짜증나는 구석도 있었다. 예전에 한 선배가 이들을 두고 농담조로 던진 한 마디가 생각난다. "걔네들은 메이데이날 공장가서 기도나 올리라 그래라."</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러나 적어도 박영균은 이런 비판을 들어야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물론 그는 서론에서 "오늘날 많지 않은, 그렇지만 탁월한 탈현대적인 맑스 철학의 모색이 몇몇 논자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이 최종적으로 결여하고 잇는 것은 맑스 철학의 근본적인 지반이다. 그것은 맑스 철학의 정체성이 아니라 탈현대적 기획과 흐름들에 정세적으로 묶여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런 경우, 맑스는 프랑켄슈타인의 얼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여러 시체들의 얼굴들을 짜깁기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지적인 공포를 유발한다. 맑스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모를 지적인 공포가 방향을 잃은 담론들의 난무와 지적 진지함에 대한 의욕 상실을 낳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맑스 철학의 '근본'을 옹호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이러한 옹호는 맑스주의자로서의 원칙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고 보여진다. 한편 그는 탈현대적 맑스주의 근저에 있는 철학적 배경에 대해서 편한대로 넘겨짚지 않고 꼼꼼하게 따져보고 평가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알튀세르의 '철학의 실천'과 그람시의 '실천의 철학'이라는 철학의 두 계기와 스피노자의 유물론과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이라는 두 계기를 설명하는데, 난 이 부분의 한 문장 한 문장을 힘겹게 읽으며 참 공부 제대로 했다. -_-;; 사실 Orthodox한 맑스주의자들의 글에서 이렇게 성실하게 탈현대적 흐름을 분석한 경우는 처음 본다. 그래서 이 책에 좀 고마웠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는 끊임없이 맑스와 알튀세르, 맑스와 그람시, 맑스와 스피노자, 맑스와 들뢰즈를 대면시키고 대질심문한다. 그래서 그가 도출한 결론 중에 눈에 띄는 것은 "포스트적 담론들의 과학 비판과 해체는 윤리학적 문제설정이나 윤리적인 실천을 넘어서지 못하고 적대적 실천의 장으로 집중되는 정치를 해체하는 효과를 낳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212p)는 지적이었다. 이 점은 나도 얼마간 고민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요즘 이러저런 문화평론이라는 것을 읽으면서 느꼈던 어떤 공허감 같은 것을 잘 표현해 준 것 같다. 아래 문장에서는 그가 세운 '원칙'이 잘 드러난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margin-left: 40px;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이제, 던져야 할 질문은 포스트적 담론에서 이야기하듯이 '어떻게 사람들은 파시즘을 자신의 욕망으로 생산하는가'가 아니라 '그렇게 표상하고 욕망을 그런 식으로 생산할 수밖에 없었던 물질적 토대가 무엇인가'이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그 토대의 효과가 어떻게 사람들의 욕망을 채취하고 굴절시키며 지배 권력으로 절합시키는가'를 찾아야 한다. (233p)</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러나 이 문장 바로 앞에 나오는 "그러므로 우리가 근본 변혁적 실천을 모색한다면 그것은 이 토대 중심성과 그 중심성에 의해서 제시되는 현 지배체제의 외부를 극한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적대성을 내재하고 있는, 그리하여 자본의 외부를 생성하는 운동의 동력이 될 수 있는 계급을 찾아야 한다."는 말은 그가 세운 원칙의 타당성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토대중심성에 대한 철학적 의문?) 특히 다음의 문장을 읽고 난 이후로 난 갑자기 이 책의 결론이 예상이 되면서 급 실망 모드로 돌아섰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margin-left: 40px; text-align: justify"><span style="color: #0000ff">우리는 부-자, 부-부의 관계맺음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노/자의 관계맺음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관계맺음의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부-자, 부-부 관계 또한 이런 본질적인 강제력에 의해 그 차이 또한 변형된다. 차이는 적대의 질서를 따라 절합되고 구획된다. 내가 아무리 선한 아버지라도 아들을 대하는 방식은 자본주의와 봉건제에서 다르다. 부-자 관계에 의해 노/자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자 관계에 의해 부-자 관계는 변형된다. (222p)</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이런 (내가 보기에는) 황당한 결론을 내기 위해 400페이지 넘는 책을 썼단 말인가? 과연 우리는 부-자, 부-부 관계 없이 살 수 있는가? 난 저자의 결론을 반박하기 위해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쓰진 않겠다. 이런 결론을 내기 위해 400페이지를 달려나간 저자에겐 이를 반박하기 위한 실증적, 논리적 반박 모두 무의미하게 들릴것만 같다. 왜냐면 사실 그 자신도 노/자 관계가 왜 우선인지 '증거'를 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탈현대론자들이 주장하는 '차이의 존재론'과는 다른 맑스의 '모순의 변증법'과 '역사 유물론'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차이의 존재론은 차이 그 자체로 모든 운동을 '생성'으로 일반화하지만 모순은 그렇지 않다. 생성운동은 '구별'이 아니라 '대립'에 있다. 대립을 통해서 포착되는 '모순'은 운동이 하나의 강제적인 힘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성, 존재의 가능성을 제시한다."(223p)라고 말한다. 동의한다. 그러나 이 말 어디에도 그 모순의 중심이 노/자 관계라고 나와 있지 않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게다가 "맑스가 자본주의에서 해방 주체를 찾고 그 존재를 노동자계급으로 설정한 것은 진정한 운동운 불가피하게 강제되었을 때에만 성립된다고 보기 때문"이라는데, 만약 그렇다면 이는 수동적/소극적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이 아닐까? '불가피하게 강제'되었을 때에만 성립하는 운동을 과연 진정한 운동이라 할 수 있을까? 그의 이론적 논의 속에는 대중의 자율적 의식화의 가능성, '불가피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운동으로 조직화시킬 가능성에 대해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나는 이 책의 평론가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읽었기 때문에 저자가 제기한 쟁점에 대해 가타부타 따지고 들어갈 여유 또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하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왜 그는 모순의 담지자를 존재론적으로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고, 그 관계를 체현한 존재라면 오히려 그 존재를 존재 가능성을 변화시키는 관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순의 중심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중심되는 모순이 어떤 것인지는 '역사유물론'의 관점에서도 변화 가능한 것이고, 모순의 과잉 또는 과소 결정되는 지점의 변화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성의 차별화는 노/자의 계열화 속으로 절합되며 이주노동자는 노/자의 계열화 안에서 이중적인 차별화로 강제되며 특이성 자체를 변형한다"(232p)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p style="text-align: justify">여하간 이 책은 나름 '학습의 기쁨'과 함께 실망도 함께 준 책이다. 어쩌면 이 책이 현 시점에서 Orthodox한 좌파가 보여줄 수 있는 발전된 논의의 최대치가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고마움과 씁쓸함을 함께 느끼게 되었다.</p><div class="buttons-bottom center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4034',247,'/rollingstone','');"><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chuchon.png');" /></a><br /><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47+%22%EB%B0%95%EC%98%81%EA%B7%A0%2C%20%3C%EB%A7%91%EC%8A%A4%2C%20%ED%83%88%ED%98%84%EB%8C%80%EC%A0%81%20%EC%A7%80%ED%8F%89%EC%9D%84%20%EA%B1%B7%EB%8B%A4%3E%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logo-square.png');"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47&t=%EB%B0%95%EC%98%81%EA%B7%A0%2C%20%3C%EB%A7%91%EC%8A%A4%2C%20%ED%83%88%ED%98%84%EB%8C%80%EC%A0%81%20%EC%A7%80%ED%8F%89%EC%9D%84%20%EA%B1%B7%EB%8B%A4%3E"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logo-square.png');"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2mb18noma.jinbo.net%2Frollingstone%2F247&title=%EB%B0%95%EC%98%81%EA%B7%A0%2C%20%3C%EB%A7%91%EC%8A%A4%2C%20%ED%83%88%ED%98%84%EB%8C%80%EC%A0%81%20%EC%A7%80%ED%8F%89%EC%9D%84%20%EA%B1%B7%EB%8B%A4%3E','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onmouseover="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_3.png');" onmouseout="jQuery(this).attr('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logo-square.png');"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rollingstone/247?commentInput=true#entry247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