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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
그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죠
푸르던 나뭇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져
연못 위에 작은 배 띄우다가 깊은 속에 가라앉으면
집 잃은 꽃사슴이 산속을 헤매다가
연못을 찾아와 물을 마시고 살며시 잠들게 되죠
해는 서산에 지고 저녁 산은 고요한데
산허리로 무당벌레 하나 휘익 지나간 후에
검은 물만 고인 채 한없는 세월 속을
말없이 몸짓으로 헤매다 수많은 계절을 맞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죠
- 김민기 작사 / 작곡
............................................................................
작은 연못 - 김민기
몇해전 내 실력을 과신하다 바윗길에서 오도가도 못한 상황이 있었다.
깍아지는 낭떨어지에서 이대로 죽는가 하는 탄식을 하며
가슴에서 들려오는 두려움을 느낀적이 있다.
요즘 우리 운동판을 보며 이러다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들곤한다.
분노도 실천도 없고 오직 의무적인 일상활동만을 할뿐...
사장실에서 크레인에서 배골고 찌는 더위에 고생한 동지들만 바보가 되는 현실
정녕 칼날같은 절벽에 서야만이 죽어있는 우리가 나올 수 있는 것인가???
미술에는 백치이지만 공산주의자 '피카소'는 익히 들어서 조금은 알고 있다.
참으로 우연이기는 하지만 얼마전 "최세진" 동지의 책(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메이데이)이 나와서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그 내용중에 피카소에 대하여 나오는 부분이 있다. 제목이 "미술은 적에 맞서는 무기이다" 이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위대한 미술가가 아닌 공산주의자,실천하는 예술가로서의 피카소에 대하여 일면을 알수 있었던 같다.
요즘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위대한세기 - 피카고 展" 이 열린다고 한다. 벌써 구름같은 관람객들이 몰려들고 온갖 언론에서 전시회를 소개하는 글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피카소란 위대한 화가에 대한 칭찬 일변도와 흔하게 보지 못하는 세계각지의 미술품들이 모였다는 것만 강조할 뿐, 이번전시회에 못와서 와서 아쉬워하는 게르니카가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단지 "위대함" 만이 강조 되고 있을분...
미술작품들도 단지 작품의 기교가 기법뿐만 아니라 그 작품들이 가지는 내면들과 그 시대적배경들을 같이 말 할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 어디에도 알 수가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눈에 거슬린것은 요즘 기업들이 협찬을 안해주면 전시회 자체가 안되는 것인지... 현대-기아차 부터 포스코 KT 모비스 SK텔레콤 까지, 피카소가 생존해 있었다면 노동자 탄압에 열을 올리는 이들 기업들의 협찬을 받았을까?
한번 가볼 수 있을까?

한국에서의 학살/피카소/1951
Brokeback Mountain 2005
The Maker Makes
Rufus Wainwright
The Maker Makes / Rufus Wainwright
One more chain I break, to get me closer to you
나는 당신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사슬을 하나 더 끊지만
One more chain does the maker make, to keep me from bustin' through
신은 내가 끊어버리지 못하게 사슬을 하나 더 엮지
One more notch I scratch, to keep me thinkin' of you
나는 너를 잊지 않도록 사랑의 상처를 하나 더 긋지만
One more notch does the maker make, upon my face so blue
신은 내 얼굴에 그늘이 지도록 상처를 하나 더 긋지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little doggies
보잘 것 없는 것들이여 살아가자
One more smile I fake, 'n try my best to be glad
나는 한 번 더 가장 기쁜 것처럼 거짓 미소를 지어보지만
One more smile does the maker make, because he knows I'm sad
신은 내가 슬프다는 것을 알기에 나를 미소짓게 만드네
Oh Lord, how I know
오 신이여 제가 어떻게 아나요
Oh Lord how I see that only can the maker make a happy man of me
오 신이여 오직 당신만이 제 행복을 쥐고 있다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아나요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보잘 것 없는 것들이여 살아가자 살아가자
스스로도 당황스럽지만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동성, 아니 서로에게 이끌린 이들은 속내를 정확히 털어놓지도 못한 채 한철을 다 보내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성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 아이를 낳는다. 남들과 같은 평범한 생활에 젖어드는가 싶지만 브로크백 산에서의 기억은 이들의 운명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젊은 날의 치기와 충동이 빚어낸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었음을 직감하는 데 무려 4년의 시간을 낭비해버린 두 남자는 기어이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 첫눈에 부둥켜안고 키스를 나눌 만큼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지만,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20년간 이어질 두 남자의 밀회와 사랑, 질투와 너무 늦은 고백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 모든 해후는 브로크백 산에서 이뤄진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도 남을 것 같은 대자연의 너그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 산에서 말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끌벅적한 수상 결과와 평단의 반응을 거론하는 것은 지면을 낭비하는 도배 행위다. 이것은 극도로 절제된 러브스토리다. 아니, 사실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떤 감정에 위대하다는 수식어가 가능하다면, 그리고 그것이 불필요한 감정의 과잉이나 결핍, 신격화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면 <브로크백 마운틴>이야 말로 그에 적합한 영화일 것이다. 2.jpg)
영화는 시대를 초월하는 사랑의 참 의미 따위의 고전적 찬사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들부터 게이 커플의 사랑 이야기가 영 마뜩찮을 보수적 평자들까지 모두를 품고 안아 흔들 만한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이안 감독이 포착한 풍경들, 특히 로키산맥의 험준한 봉우리와 만년설, 그 안의 푸른 초원으로 채워지는 브로크백 산의 이미지에 힘입은 바 크다.
애니스와 잭이 살아가는 인간 사회는 어딘가 결여돼 보이는 상실의 공간인 반면, 브로크백 산은 묵묵히 모든 것을 관조하는 절대자의 아우라를 불러온다. 산은 애니스와 잭의 육체가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긴장과 낯선 감정의 교류, 그리고 서로를 어쩌지 못하는 안타까움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지켜본 터다. 그 산은 언제나 그곳에 서 있었다. 조바심과 의구심을 품고 소유를 향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은 늘 인간의 몫이다. 
관객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드는 애니스의 마지막 대사를 들어주는 것 역시 어느 누군가가 아닌 브로크백 산이다. 이처럼 이안 감독은 대자연의 존재를 단지 보기 그럴싸한 병풍으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갈등과 해소를 담아내는 공간이자 치유의 메타포로 격상시키고 있다.
물론 이런 식의 근사한 코멘트는 공간을 사유하는 여타 영화들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들과 <브로크백 마운틴>의 결정적인 차이는 극도로 사려 깊은 광각의 렌즈가 담아내는 세밀한 지점들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들 잎 끝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조차 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시선의 힘을 목격한다. 산과 눈, 바람과 비, 풀과 꽃, 그리고 그 가운데 자리한 동성 커플이 온전히 한 화면에 담겨지는 그 순간, 우리는 이미지 앞에 숙연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논할 때 수상 결과와 평단의 반응을 다루는 것이 지면 낭비라면, 배우와 음악 이야기를 거르는 것은 직무 유기다. 이 적막한 영화가 그토록 많은 눈물과 감정의 폭발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의 팔 할은 이 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히스 레저가 보여주는 발군의 연기는 단연 이 영화의 발견이자 백미다. 주인공들의 사랑을 억누르는 사회문화적 금기의 공기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기가 뽑혀나갈지 모르는’ 긴장과 억압의 기재가 느껴지는 것은 히스 레저의 낮은 목소리와 불안한 눈빛이 직조해낸 정서들 탓이다.
감정을 쉽게 노출하지 않는 방법으로 그 이상의 감정에 호소하는 침묵의 연기는 어떤 특별한 정서를 관객의 심장 주변 내밀한 지점까지 파고들게 한다. 이는 어느 순간 부지불식간에 폭발하는데, 신파적 대사나 장면들 없이도 사람을 정신 없이 흐느끼게 만드는 비결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그리움 속에서 괴로워하는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 역시 탁월한 것은 매한가지다. 감정을 폭발시키는 방법으로 관객에게 소구하는 질렌할의 연기는 히스 레저와는 정반대 지점에서 각별한 성취를 이룬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끝자락은 배우나 풍경이 아닌 음악의 힘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장면이 지나간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와중에 울려 퍼지는 두 개의 음악은 끝내 울음을 참아낸 냉혹한 인간들마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후폭풍 속으로 인도하고 있다.
윌리 넬슨의 목소리로 듣는 밥 딜런의 명곡 ‘He Was a Friend of Mine'과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The Maker Makes'는 수십 년에 걸쳐진 애니스와 잭의 가슴 아픈 사연
을 한꺼번에 응축해 환기시킨다. 마치 애초부터 <브로크백 마운틴>을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하는 이 곡들을 듣지 않고서는 이 영화를 온전히 봤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묘한 선곡이다. 
인생에 단 한 번 마주칠 수 있을지 단정하기 힘든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는 내 친구였어요, 그는 내 친구였어요, 이제 그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어요, 그건 그가 내 친구였기 때문이에요.”
Brokeback Mountain, 2005
감독 Ang Lee
음악 Gustavo Santaolalla
주연 Jake Gyllenhaal 잭 트위스트 역
Heath Ledger 에니스 델마 역 
루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는 일찍이 커밍아웃한 가수로 알려져 있다.
라이센스반은 아직 국내 발매되지 않았지만
영화 '아이 엠 샘' 의 OST에서 비틀즈의 Across The Universe 를 부른 가수로,
슈렉의 삽입곡 Hallelujah 의 주인공으로,
물랑루즈 초반의 삽입곡 Complainte De La Butte 의 목소리로,
막상 들어보면 전혀 생소하지 않다.
A Love That Will Never Grow Old / Emmylou Harris
play 누르시면 조금있다가 노래 나옴
만화방 가서 그동안 밀린 만화책 실컷 봤다.
산에 가는것 여행가는것 다음으로 내 스트레스 해소법인데...
요즘에는 그것조차 여유가 점점 없어진다. 쩝~~~
눈비들이 떨어져 그리움 익은 하늘을 본다.
아파하는 고통소리 장강에 띄우고, 옷자락 흩어진 바람을 잡고
돌아서는 그대 가냘픈 어깨.
붉은 눈을 찍어 허공에 붓필로 상사의 날개를 펄럭이고
흐려지는 사랑을 맑은 공적(空寂)의 꽃으로 피운다.
혼령의 체향(體香) 연두 산 빛에 가득하고 먼 침묵, 한(恨) 씻은 노래로 고이는 눈물.
나는 유정(有情)한 장승이 되어 백년을 선다.
이사야(李士爺)
뻔한 내용의 무협 만화이지만 왠지 이 시만큼은 가슴에 다가온다.
재목도 모르고.
월요일 다시 일터에서 피터지는 하루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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