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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보사노바를 하는 가수라 한다.
복많게도 이번 두리반 공연에서 소히를 직접 보았다. 아~보사노바 스러운 기타연주도 매력이었다.
가수 소히, 그 봄바람을 베낀 노래에 대하여... | |||||||||
보사노바 싱어송라이터 소히와의 감성 인터뷰 | |||||||||
가수 소히는 봄바람같은 목소리를 지녔다. 시린 귀를 부드럽게 스치고 여린 솜털들을 어루만지는 봄바람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일부러 지어낸 기교가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잔잔히 흔드는 마력을 지녔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 2집 앨범을 들고 왔다. 2집 앨범은 탁월한 송메이커 이한철이 프로듀서를 맡아 제작한 앨범으로 타이틀 곡 '그럼 그렇지'는 발랄한 분위기에 현 세태를 풍자한 가사가 돋보이고, '산책'은 소히의 시적인 감수성이 잘 묻어난다. 그녀는 국내 음악계에서 보기 드문 싱어송라이터다. 보사노바 아티스트가 귀한 국내에서 기존의 보사노바 앨범들이 대부분 카피곡 위주였다면 그녀는 한국과 브라질의 감성을 잘 녹여내 '한국적 보사노바'를 맛깔나게 들려준다. 문화저널21은 합정동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가수 소히를 만나 그녀의 음악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한국적 보사노바'란 어떤 색깔인가.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색깔이 있다. 일본에는 일본만의 감성이 있고, 영국에는 영국 특유의 감성이 있다. 나는 브라질 음악을 하고 있지만 한국만의 감수성과 멜로디 라인을 통해 브라질 음악을 표현하고 있다. 브라질 음악을 어떻게 하면 한국적으로 만들까 생각하며 굿거리 장단, 자진모리 장단 등을 연구하기도 한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시와 소설 등 문학을 주로 읽었는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여성학, 사회학 서적도 즐겨 읽는다. 최근에는 자기계발서도 읽고 있다. 1집과 이번에 발매한 2집 'MIGLE'을 비교한다면? 1집에선 음반사의 의도가 살짝 들어가서 재즈풍의 느낌이 있었다면 2집에서는 보다 내가 하고 싶었던 보사노바 음악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한강 송전탑 위엔 사람이 살았어'라는 노래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이 양화대교 옆에 있는 송전탑 위에 올라가 투쟁을 할 때 그 아래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그 위험한 송전탑 위에 사람들이 있는데도 사람들이 아무런 관심도 없이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한강을 거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다. 그런 한강에서 목숨을 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같은 공간에서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하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그 노래를 듣고 소히씨를 민중가수로 생각하기도 한다. 나의 전체적인 음악을 들어보면 분명 다르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민중가수라고 생각한다해도 나로서는 불만이 없다. 민중가요도 다양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음악적 형식이 비슷한 민중가요를 듣다가 '이런 민중가요도 있네'라고 느낀다면 민중가요가 다양해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평소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은가. 음악활동을 하면서 사회문제에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됐다. 음악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1집을 만들 당시 20대였는데 2집을 들고 나온 지금은 30대다. 30대에 들어서 음악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20대 때는 음악이 좋아서 한다는 생각이었지만 30대에 들어서는 음악을 하는 자세가 더 치열해졌다. 좀 더 완벽주의가 되려고 하는 거지. 또 예전엔 음악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다면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를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음악에서 8~90년대 아날로그 감성이 느껴지는 것 같다. 옛 감성을 좋아한다. 90년대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그리움의 감성이 있었다. 팝적인 음악과 사회비판적인 노래 등 다양한 음악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노래들을 공중파에서 들을 수가 없다. 점점 획일화되고 있는 것 같다. 특유의 자연스럽고 깨끗한 창법이 인상적이다. 마치 조미료가 안 들어간 정갈한 음식 같은 느낌이랄까. 기교 섞인 노래보다는 목소리 자체를 깨끗하게 전달하고 싶다. 또 목소리의 모서리를 최대한 없애 좋은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나같은 가수들은 노래를 못 부른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기교와 고음처리를 해야만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참 힘들다. 평가를 그런 식으로 받아야 하니까. 나는 내 목소리를 맑고 깨끗하게 전달하면서 오래오래 노래하는 보컬이고 싶다.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지는 몇 달됐다. 음악활동으로 많은 돈을 벌 수는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좀 더 대중의 입맛에 맞는 음악을 할 생각은 없는지. 대중의 요구를 배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최대한 접점을 찾고 싶다. 이번에 나온 음반은 대중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낸 음반이다. 만약에 성과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접점을 찾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방송 출연을 할 생각도 있다. 예전에는 얼굴이 많이 보여지는 것이 창피하고 그랬는데 나이가 드니까 용감해지는 것 같다. 앞으로도 보사노바 음악을 할 생각인가. 처음엔 락밴드로 음악을 시작했고 그 다음엔 흑인음악을 했다. 관심이 가는 음악이 계속 변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예측불허다. 보사노바 음악도 워낙 다양해서 지방마다 특색이 다르기 때문에 보사노바 음악만으로 다양한 변화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직접 만나본 소히는 모딜리아니 그림에 나오는 여인처럼 목이 길고 신비로운 이미지였다. 속삭이듯 조용한 목소리, 잔잔한 미소. 그녀는 마음이 여려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 긴장이 많이 된다고 한다. 모서리 없는 목소리만큼이나 마음에도 모서리가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란성 쌍둥이다. 쌍둥이 남동생과 자주 만나지는 않는다. 그녀는 합정동에 산다. 홍대와도 가깝고 한강과도 지척이다. 동네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녀가 좋아하는 일들 중 하나다. 문화저널21 배문희 기자 baemoony@mhj21.com |
어차피 그 이후 다시 만나지도 않았어. 만날 수가 없었어. 다시 만나면 의도치 않게 흔들릴 것만 같은 내 마음 때문이었어...언젠간 재결합해 다시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른단 건 알고 있었지
사랑하는 마음이나 미워하는 마음은 옅어져갔지만 정체 모를, 한동안 알았었던 사람으로서의 정이랄까? 기억?그렇게 안정되게 살길 바랬었지
새로운 가족을 하늘로부터 맞이한 소식을 블로그에서 접하니 묘하게 궁금해진다.
상상못한 낯선 일이기도 하다. 그라는 사람에게는... 하지만 좋은 일이지.
참 이상한 마음인게다. 그는 재결합을 하겠다고 했고 그래서 나는 그와의 인연을 어렵사리 끊었었고.
그는 다시 그의 가족에게로 돌아간 것일까? 난 정확하게도 모른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조금 있었으니.
그 이후 한번도 보지 않길 잘 했어 하지만 언젠가 한 번 춤명상 후 생각이 나 문자메세지를 보냈지... 그리고 얼마 전에도. 하지만 전화는 받고 싶지 않더라구.
그런데, 한 번 받았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고, 내가 전화를 받아서 고마웠다고 했어. 그 이후론 전화를 받지 않고 하지 않았지. 2년 사이 그의 부모와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사실 그는 나의 좋은 친구이자 선배였었지만 하지만 절대 어떤 면에서는 만나지 않아야 할, 맞지 않는 사람이었어. 그래도 좋은 조언자였어.
그래, 이젠 확실히 마음 속으로 그의 안정과 행복을 빌어주겠어. 그래야겠어.
나와 타인 사이에 존재하는 과거의 기억이란 복잡미묘하고, 떠올릴 때면 아프기도 해.
그래서 그런 기억을 만드는 것이 괴로워.
만들고 싶어질 때면 나는 그냥 문을 닫게 돼.
어떤 순간이 올지 알 수 없는 삶.
여인들과의 관계는 동지적이고, 복잡미묘한 기억을 덜 만들지만
남자와의 관계는 그렇지 않아. 뭐,당연한 거지. 자꾸 끄달리게 된다구.
굴러다니던 깔때기를 발견. 득템.
사무실 말통 하나 들고가야겠음.
요강을 비울 때 말통에 깔때기를 꽂고 비우면 되겠군 드디어 해답을 찾았다
핫핫핫
사무실 앞 조그만 텃밭에 꽃씨를 뿌렸다.
메마른 가슴에 꽃씨를 뿌려요~ **
농장에는 오늘 파종한다는데 난 사무실 일이 있어서 못 가고 있다.
그런데 비가 온다. 그래, 안 가서 다행인건가...
몸쓰는 일이 조금은 더 익숙해진다면. 그것은 다행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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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자전거와 버스로 환승해 출근했다.자전거로 15분만 달리면 버스정류장이 나오고 거기에서 버스를 타면 10분 후면 사무실 앞에 도착한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보인다.ㅋㅋ
나는 운이 좋다. 이 정도 교통환경이면 교통 좋은 거다.
몇 가지 구상을 해 본다.
어떻게 하면 활용할 수 있을까 요러한 구상을 해보는 것이 재미다.
어제 마당에 구덩이를 팠다. 이미 배설한 것을 처리하는 구덩이다. 강아지똥 및 애들 것+언니것은 요강이 있으니 거기에 일을 봐서 비우면 된다. 그것은 큰아이가 하기로 했다.
여기에 동의해주는 언니는 역시 가리는 게 없고 마음이 고운 분이다.
내가 뒷물을 한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에도 "그래? 우리 애들도 하면 좋겠다."이런 이야기를 바로 하셨던 분이다.
왠만큼 깊게 파서 될런지...는 모르겠다 하하.
그리고 마당 귀퉁이에 야외 배설용 구덩이를 하나 더 팠다. 이것은 그 자리에서 배설하는 것이다.
아니면 요강을 마련해서 일을 보고 비우는 것이다. 배설의 방법은 일단 두 가지가 나온다. - 배설용 구덩이에 파거나 요강에 파서 구덩이에 묻거나...하지만 내가 눈 똥을 요강을 비우면서 확인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똥을 누고 요강에 쌀겨를 좀 뿌릴까? 그러면 덜 거북하겠지 ㅠ.ㅠ.
그것보다, 아무리 언니가 거부감이 없다고 해도, 어떤 게 언니나 애들이 보기에 덜 불편할 것인가 가 중요하다.
"똥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 일단 냄새를 제외하고 모양만 봤을 때 - 본능적인 반응인가, 학습된 반응인가? " 얼마 전부터 생각해오기 시작한 탐구주제인데, 아직 답은 못 찾았따. 그리고 본인의 똥냄새는 그런 대로 참아줄만하다... 이것도 신기하다. -.-;;
오줌을 말통에 받아서 삭히는 게 좋다고 했는데, 화장실 구조상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새로 지을수도 없구. 구덩이에다 일을 봐서 삭혀서 그 흙을 쓰는수밖에... 텃밭 비료를 마련해야 하므로 어떻게든 오줌과 똥을 다시 텃밭에 돌려주고 싶다...
요새 재미난 것을 알게 되어서 탐구중이다. 빈집이라고...
나도 한동안, 그리고 지금도...그런 공간을 꿈꾸었기에...
내가 살아가는 집이라기보다 , 어느 정도 뜻이 비슷하고, 거처가 필요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
그곳이 집이다.
나는 내 집을 소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 사는 집도 언니네가 고친 것을 나는 그냥 몸만 들어가 살고 있는 것이다. 대신 나의 방식대로 요리와 청소를 부지런히 하는 것으로 보답한다. 언니는 미안해하지만...(너무 착한 사람이다..)
진안에서도 그 비슷한 생활을 했을 때 아주 많은 것을 배웠고 즐거웠다.
물론 정서적인 부분이나, 대화와 토론에 있어서 어려운 난관들도 있었지만
남녀가 물론 다른 집을 쓰지만 여성과 남성, 여동생과 언니 오빠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정서적인 외로움을 충족시켜주고 이성과의 대화도 하게 해 주는 그런 대화거리와 시간,공간이 가능하기 때문에 좋은 점이 많았다. 그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개인 방을 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함께 사는 것의 불편함에 무뎌서인지 나는 그저 그렇게 살만했다.
그러나, 내가 피해를 조금 주었을게다.
변온동물이라 보일러를 켰다 껐다 하면서 다른 사람의 발을 실수로 밟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서만큼은 내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불편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 컴플렉스이긴 하다.
지금도 언니와 아이들 둘과 강아지와 한 집에 산다
우리는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보다 더 유대감이 느껴진다
성품이 좋으시고, 배려심이 있어서다.
강아지가 한밤중에 짖어서 잠을 설치는 것이 딱 한 가지 문제라면 문제겠다.
어젠 밭을 일구었는데 큰아이가 자기는 일을 좋아한다며 나서서 괭이질도 하고 삽질도 했다.
보기 드문 어린이다. 아버지가 농사를 짓는 것을 보고 자라서 일이 낯설지가 않댄다.
둘째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라 귀엽지만 땡깡 부리는 걸 보면서 나중에 내가 아기를 키우고 대할 때 많은 참고가 되리라는 것을 느꼈다.
행복하다
또 다른 사람들과의 동거생활
여자들만의 생활이라는 것이 주는 안정감
그리고 또 한 친구 부부네 집은 손님들이 많아서 가끔 손님들과의 대화가 간절해지면 그 집으로 놀러가면 된다. ㅎㅎ 그래서 오늘은 그 집으로 고고씽이다.
어느 새 나는 또 다른 이들과 한 집에서 생활한다.
솔직히 혼자 사는 것은 재미없다... ㅠ.ㅠ
하지만 결혼이나 동거생활은 하고 싶지 않다. 왜인지...
남자와 살기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나보다.
여성성을 갖고 있는 남자라면 조금 나을까?
나는 진안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조금 부지런해졌다. 그리고 요리실력과 의지도 조금 늘었다.
그래서 지금은 청소가 습관화가 되었다. 같이 사는 건 여러모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준다.
그것이 비록 안 좋은 경험일지라도...
이 아니라
자발적인 뭔가 즐거울 것 같은 일..을 하고 싶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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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의 개들' Take 1. 남한강, 인디밴드 '윈디시티' 참가
[메디컬투데이 박엘리 기자]
4대강 중 남한강을 배경으로 한 이 뮤직비디오는 인디 밴드 ‘윈디 시티’의 강을 위한 창작곡 ‘위하여’란 곡으로 제작됐으며 다양한 생명의 터전인 강의 소중함을 환기하고 4대강 사업의 이면을 드러내는 내용으로 구성돼있다. 4대강 뮤직비디오의 제목은 우리 강을 죽이는 4대강 사업의 보 건설이 결국 강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끊어 강을 흐르지 않는 호수와 저수지로 만들 것이란 뜻의 ‘저수지’와 4대강을 헤집고 있는 거대한 삽질, 그리고 완공 후 그 저수지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할 우리들을 상징하는 ‘개’를 합한 것으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동명 영화제목 '저수지의 개들'을 차용했다는 설명이다. 4대강 뮤직비디오가 촬영된 경기도 여주 남한강 일대에는 3개의 보 건설과 준설 작업, 그리고 하천변을 파괴하며 조성되는 위락단지 공사 등이 진행 중에 있다. 촬영팀은 지난 3월13일, 당초 준설 작업이 진행 중인 신륵사 인근 금당천 공사 현장에서 첫 촬영을 시도했으나 공사 관계자들의 강한 출입 제지로 인해 공사 현장이 바라보이는 제방도로 위에서 윈디 시티의 미니콘서트와 함께 촬영을 진행했다. 아울러 위락단지가 조성되는 신륵사 앞 남한강변과 탁수 발생 등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강천보 공사 현장 등에서도 촬영이 이뤄졌다. 저수지의 개들 - Take 1. 남한강은 추후 20분 내외 단편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또한 영상 프로젝트 '저수지의 개들'은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에서 각각 다른 개성을 가진 뮤지션들이 참가하는 릴레이 게릴라 콘서트 형식의 로드 무비이자 음악 다큐멘터리로 제작된다. 뮤지션들은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생각하는 음악과 함께 성장 및 개발 지상주의 논리 아래 돌이킬 수 없을 파괴의 위기에 직면한 강의 의미를 돌아보는 내용을 담게 될 것이다. 각 공연은 짧은 뮤직비디오와 20분 내외 단편 다큐멘터리로 제작되며 전체 60분 내외 장편 다큐멘터리 한 편으로 완성될 예정이라고 환경연합측은 밝혔다. 이 뮤직비디오의 감독인 최진성 영화감독은 "커다란 포클레인에 의해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강물과 더불어 그 속에서 집을 잃어버린 나무와 물고기와 새들의 모습은 지금 대한민국의 도시 곳곳에서 개발에 의해 쫓겨나는 힘없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 감독은 " '세상에서 제일 멋진 밴드' 윈디 시티와 함께한 남한강에서의 즐거운 '놀이'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이어질, 낙동강, 영산강, 금강에서의 또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이어질 우리의 '놀이'를 기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계를 멈추고, 같이 즐겁게 뛰어다니며 놀고 싶습니다"라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한편 '저수지의 개들 - Take 1. 남한강' 뮤직비디오는 지난 1일 저녁 7시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인디다큐페스티발 폐막식에서 깜짝 상영됐으며 4일 환경연합 홈페이지 등 온라인으로 에서 동시 공개된다. 또한 15일 목요일에는 환경운동연합 주최로 오프라인 공식 시사회 및 제작 파티가 홍익대 앞 클럽에서 열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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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동 철거민' 유 이사, 사고 치다"
기사입력 2009-03-12 오전 7:16:59
<프레시안>은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기업연구센터와 공동으로 최근 큰 관심을 모으는 '사회적 기업(social entrepreneur)'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더 나은 모습을 찾는 새로운 인터뷰 연재를 마련한다. 전문 인터뷰어 권은정 씨가 직접 한국의 다양한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가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 이 연재는 총 20회에 걸쳐 매주 목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이 연재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기업연구센터(소장 이영환 교수)는 사회적 기업가 인적 자원 개발 교육과 사회적 기업 발전을 위한 연구 활동을 하는 성공회대학교 부설 연구기관이다. (☞사회적기업연구센터 바로 가기) ① "'금호동 철거민' 유 이사, 사고 치다" ② "20대 청년의 반란…빗자루 들고 아줌마와 함께 청소를!" ③ "일하고 싶은 실업자는 다 모여라" ④ "중고를 새 컴퓨터로…덤으로 세상도 재생합니다" ⑤ "'대박' 연극 흥행 비결은? '옆집 아저씨·아줌마!" ⑥ "귀농? 농사 지을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세요" |
▲ 유영우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상임이사. ⓒ프레시안 |
▲ "철거 운동에서 신협으로. 유영우 이사가 만들어낸 이 연결점은 우리가 제대로 해낸 운동이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다." ⓒ프레시안 |
▲ 유영우 이사는 1993년 금호·행당·하왕 지역 재개발에 맞서 철거민 운동을 조직해 가이주 단지 입주를 쟁취했다. ⓒ프레시안 |
▲ "주거가 안정되자 철거 운동은 바로 다음 단계로 들어갔다. 지역 주민 운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리 삶을 어떻게 개척할 것인가. 가난한 우리가 힘을 모아서, 남의 도움 받지 않고 지역 사회에 기여하면서 잘 살 수 있는 그런 운동을 해보자.'" ⓒ프레시안 |
▲ 유영우 이사의 철거민 운동은 협동 운동으로 전화했다. 논골신용협동조합은 그 성과다. ⓒ프레시안 |
▲ 유영우 이사는 신용협동조합 활동이 궁극적으로 지역 주민 통합에 큰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프레시안 |
▲ "운동을 통해 배운 것, 그걸 모르고 살았다면 지금쯤, 인생 헛살았다는 생각했을 겁니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결코 후회해 본 적 없었지요." ⓒ프레시안 |
세상을 바꾸는 혁신 '사회적 기업' 사회적 기업(social entrepreneur)에 대한 관심이 놀랍게 증폭되고 있다. 불과 수년 전에 빈곤 대책의 일환으로 거론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시민운동의 핵심 화두가 되었다. 지속 가능하고 인간적인 사회를 일구는 대안에 대한 간절한 열망 때문일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사회적기업육성법(2007)을 제정하는 등 기대감을 한껏 높였고, 복지 정책에 시들한 현 정부에서도 사회적 기업에 대한 기대는 여전하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의 의미에 대한 인식은 다양하고 혼란스럽다. '착한 기업', '윤리적 기업', '대안 기업', '이윤이 아니라 빵을 위한 기업' 등 긍정적인 의미 부여가 많지만, '낮은 질의 주변부 일자리'라는 비판도 무시할 수 없다. 우선 사회적 기업의 개념 자체가 분명치 않다. 사회적기업육성법에서는 '취약 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영업 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정의에는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모든 기업은 크든 작든 나름대로의 사회적 의미와 목적을 가지기 때문이다. 또 현행법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인증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요건에 맞는 기업이나 단체만 사회적 기업으로 배타적으로 인정됨으로써, 사회적 기업의 정신을 공유하는 수많은 조직체들이 배제되고 있다. 특히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지만 영리활동을 하지 않는 수많은 NGO, NPO 등이 체계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적 기업의 엄밀한 개념보다는 그 기본 정신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회적 기업의 기본 정신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필자는 그 핵심은 사회적 기업가 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이고, 이는 곧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실업과 빈곤, 사회적 배제와 소외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야기한 사회적 폐해를 해결하고자 하는 혁신적인 모색이 사회적 기업의 기본 정신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은 이러한 사회적 혁신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차원의 경제적 활동을 의미한다. 물론 좁은 의미의 상공업 활동에 국한하지 않는다. 실직자를 위해 고용을 창출하거나 창업을 지원하는 일은 물론, 장애인을 교육하고 불우 청소년의 자존감 회복을 지원하는 등 취약계층에게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장애인이 중심이 되는 일터,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운영하는 기업, 환경을 보호하고 생태마을을 만드는 기업, 농촌공동체를 회복하는 귀농·귀촌운동, 대안화폐로 지역사회 공동체를 만드는 레츠(Lets) 운동, 소규모의 커뮤니티 비즈니스, 가난한 사람들에게 신용대출하는 협동조합, 주민들의 다양한 욕구에 대응하는 워커즈 컬렉티브(workers' collectives) 등 그 영역은 다양하고 무궁하다. 사회적 기업은 현대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공백을 채워나가는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모색의 너머에는, 사람들 간의 신뢰에 기반을 둔 대안적이고 협동적인 사회경제 체제의 모델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희망이 놓여있는데, 이는 상품과 이윤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비인간적인 시장경제 체제를 넘어서고자 하는 희망이다. 사회적 기업이 영리활동에만 의존하지 않고 보다 폭넓은 사회적 자원동원을 필요로 하고, 또 그것을 바람직하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사회적 기업 운동은 이제까지 우리 사회의 변혁을 위해 애써온 사회운동의 정신과 별개의 것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변혁의 과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고, 이를 시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출발하여, 창의적이고 지속가능하게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회적 기업은 사회운동과 사회복지를 보는 새로운 시각(new perspective)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시민들의 방치된 욕구를 충족하고, 낙후된 지역사회를 재생하며, 보다 높은 삶의 질을 향한 혁신을 창의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꾀하는 것이 사회적 기업가 정신일 것이다. 물론 사회적 기업 운동은 사회적 기업가 혼자의 운동이 아니다.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소유와 운영에서 주체적이고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핵심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이를 조직화하는 것은 사회적 기업가의 사명이므로 사회적 기업의 성패가 이들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사명을 체현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가와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확인하는 것이 본 기획의 목적이다. 앞으로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기업연구센타'와 <프레시안>은 20회의 기획 연재를 통해 이를 확인해 보고자 한다. 위에서 강조한 대로 여기에서 다루는 사회적 기업은 정부의 협소한 개념 정의에 구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체현하고 있지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회의 변혁을 위해 헌신해온 많은 분들을 폭넓게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이영환(성공회대 교수·성공회대 사회적기업연구센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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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항상 갈등만 하고 고민만 했다. 그리고 난 글을 잘 쓴다는 생각 절반과, 능력 없다는 생각 절반을 가지고 살았다. 기자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시민의 소리 기자학교 프로그램도 듣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었지만 열심히 쓰지 않았다. 항상 내 마음 한 켠에는 응어리가 있었는데 마을조사단을 하면서 기록자로서 일을 할 적에는 그런 응어리가 많이 풀렸다. 하지만 과거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를 기록할 필요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꿈을 이루는 방법은 꼭 정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직업 기자가 되지 않아도 글을 쓸 수는 있으니까말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고민은 많이 줄었고
시민기자로 글을 때때로 쓰던 2001년의 나는..9년이 지나서야 다시 글을 쓰고 있다.그 동안 그렇게 여러 경험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곳에 있었으면서 왜 글을 써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가... 이제 9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내 마음 속에서 쓰고 싶어진 것일까?
강이 나를 움직였다. 강을 걷고 와 이것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겠고 너무 쓰고 싶었기 때문에 쓰기 시작했다
가끔은 시덥쟎은 글도 쓰고 싶지만, 그래도 밥값을 하는 글을 쓰고 싶다. 아무도 쓰지 않는 것에 대해서 쓰고 싶다.. 써야 한다...
그 동안 놓친 글감과 열정,경험들이 무지 후회스럽지기는 하다...
예전에 사귀던 선배가 일 하면서 열심히 글을 써 보라고 했던 말이 이제서야 실감난다.
그 선배의 말은 이제서야 내 마음에 박혀온다. 많이 사랑했고, 보지 않지만 선배는 종종 댓글로 나를 격려해준다. 선배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요즈음 내가 드는 생각은 말이다.살아간다는 건, 사랑이라든가 하는 감정따위가 아니라.."서로가 서로를 기억해 주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여긴단다.
그러게요, 그게 맞는 듯해요. 난 기억을 잘 지우지 못하거든요.
# 2
어제는 해외에 나가있는 친구에게서 이메일 답장도왔고
돕 님께서 다정한 댓글도 달아주셨고
섬진강 은어님께서 한 달 전에 달아준 댓글을 우연히 확인했다
그리고 기타로 김광석 노래를 연주하는 기쁨도 누렸다.
그리고 땅의 여자를 보고 감독님이 존경스러웠다. 솔직히 질투심도 있다. 여성농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때때로 하고 있기에... 그래도 존경스럽다.같은 여자로서 더.
그리고 오늘아침엔 이사를 했다. 행거가 필요했는데 마침 하나 있었다. 더 이상 살림을 살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다.고맙고 반가운 인연이다. 행복한 일이 많다.
#3.낙동강을 가려다가 여주로 발길을 틀기로 했다.
낙동강은 차편이 이루말할 수 없이 복잡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제 그렇게 낙동강이 확 땡기지 않았던 것이었군
#4
난 지금 이 곳에서 출퇴근하면서 논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고 곧 흙을 만질 것이기에 행복하다.
사랑과 상처에 대한 부담없이 눈 마주치고 만질 수 있는 강아지가 있어서 행복하다
강아지에게 다시 사랑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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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개떡 (망망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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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누구여 오랜만이네 그랴 많이 이뻐졌다잉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