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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시간

20060507-20060508 

 

9am  안양집

10am 안양 평촌

1pm  안양집

4pm  종로구민회관

5:30pm 서울아트시네마

7:30pm 동대문 평화시장

8pm  청계천변

9pm  동대문 에베레스트 식당

11:30pm 대학로 흑맥주집

3am  동대문 집  

6am  동대문 평화시장

8am  안양 집

 

지난 24시간 동안 나의 동선.

 



일요일 오전 일찌감치 일을 마쳤다.

오랫만에 맛보는 일요일 정오의 홀가분한 발걸음은 리듬을 타고

봄소풍 가듯, 외갓집에 놀러가듯, 동대문으로 향했다.

 

NBF(네팔 불자 모임)의 11주년 행사가 열리는 종로구민회관으로 가는 길.

꼬불꼬불한 골목길 한귀퉁이 가게에서 섀커가 친구랑 나오고 있었다. '섀..커'라고 부르는 찰나 뭔가 머쓱한 표정으로 섀커가 지나갔다. 설핏 본 섀커는 그동안 살도 많이 쪘고, 머리에 노란색 염색도 했지만 여전히 눈은 흐릿해 보였다. 섀커가 나온 가게집 아저씨가 신경질적으로 빈 패트병을 던지면서 섀커의 뒤통수에 대고 욕을한다.

 

종로구민회관에는 여기저기 네팔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샤킬동지가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피곤에 지친 헬쓱한 얼굴이었다.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하는 방글라데시 영화를 보자고 하니, 조금있다 의정부에 가야한다고 했다. 어제 방글라데시 사람 한명이 공장 탈수기에 빨려들어가 죽었다고 했다. 샤킬 동지의 낡은 구두위에 시선이 갔고, 인권영화제와 내 경쾌한 발걸음이 어색했다.  좀있다보자는, 약속도 그 무엇도 아닌 애매한 인사를 하고 어색함을 피해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언젠가,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는 전 지부장의 이야기에 팔자좋네 라며 속으로 중얼거렸던 그 때가 떠올랐다. 아마 샤킬 동지도 나에게 그렇겠지.

   

행사장 입구에는 말쑥하게 정장을 입은 NBF멤버들이 정중하게 사람들을 맞이했다. 부드러운 저음을 갖은, 언제나 젠틀한 커르나 동지와 악수를 하고, 방명록을 쓰고, 게스트 명찰을 받아 쿵쾅거리는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라주,검, 찬드라, 구말, 비누 동지, 보통 싸잡아 '동대문 네팔동지들'이라고 불리우는 동지들이 있는 곳에 껴서 네팔 가수의 공연을 보았다. 옆에 앉은 구말 동지가 "평택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고, 나는 잘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사람들이 많이 다쳤다고, 계속 싸워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구말 동지는 "벌써 다 끝난거야!"라고 했다.

 

트로트 가수 장윤정을 연상케하는 네팔 신인가수가 노래를 하자, 몇몇 사람들이 무대 아래에서 춤을 췄다. 노란 머리의 섀커도 그 속에 있었다. 구말 동지는 의사가 경고를 했는데도 섀커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있고, 저러다가 오래 못살수도 있다고 했다. 누군가 섀커를 춤추는 무리에서 밀어내는 것도 같았다. 머쓱한 표정의 섀커.    

 

찬드라,라주 동지와 함께 서울아트시네마로 갔다. 미리 자리를 잡은 정은쥬엘 커플이 저 쪽에서 손을 흔들고, 영화는 곧 시작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란 방글라데시 출신 영화감독의 다큐멘터리 였다. 나레이션은 방글라말인데다가 한글 자막이 영어자막을 다 가리고 있어서, 보는 내내 라주동지와 찬드라동지가 어떻게 이 영화를 보고 있을지 힐끗힐끗 쳐다 봤다. 한참 보던 중에, 좀 슬프고 심각한 나레이션과 함께 방글라데시의 풍경이 나오는 장면이 있었다. 잠시 감정 이입이 되고 있었는데, 옆에서 라주 동지가 물어본다. "쏘냐, 저 트럭에 있는 과일 먹어 봤어?" 

 

영화가 끝나고, 쥬엘정은 커플과 찬드라,라주 동지를 인사 시켜줬다.'이쪽은 음 예전 ETU-MB 마석 멤버들이었고, 이 쪽은 동대문에 사는 네팔 동지들'이라며. 마석에 사는, 축구 잘하는 네팔 사람 아식씨에 대한 이야기로 쥬엘과 찬드라 동지는 금새 이야기를 시작했다. 몇 해전, 동대문에서 경찰에 잡혀간 디네쉬 이야기를 했다. 찬드라 동지의 어릴적 친구이자, 쥬엘의 마석 친구였던 네팔사람 디네쉬는 경찰이 그냥 가라고 했는데, 술이 너무 취한 상태에서, 잘못한 거 없으니 잡아갈테면 가라며 경찰차에 타버렸고, 곧 추방되었다. 면회실 플라스틱 창 너머 보았던 디네쉬의 충혈된 눈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서울에 나와 데이트를 즐기는 쥬엘정은 커플과 헤어져서, 우리는 동대문 평화시장으로 갔다. 어버이날 선물로 아빠 모자를 사야한다고 했더니, 쇼핑에 일각연이 있는 찬드라 동지가 싼 모자집이 있다며 데리고 갔다. 모자를 사고, 우리는 청계천변을 걸었다. 새로 산 찬드라 동지의 사진기로 폼잡고 사진도 찍고, 동대문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검 동지 이야기도 하면서 천변을 걸었다. 분회장인 검 동지는 조합원들의 밀린 조합비를 받기 위해 사흘 동안 집에도 안 들어가며 이집 저집 조합원들 집에 다닌 끝에, 결국 조합비가 10만원이나 밀린 조합원한테서도 다 받아낸 사람이라며 라주 동지가 연신 칭찬을 해댄다. 

 

동대문으로 넘어가는 신호등 앞에서 선주를 만났다. 하루종일 집에서 혼자 자다가 심심해서 그냥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는 선주. 청계천 다리를 배경으로 우리 넷은 또 사진을 찍었다.나는 사진 찍히는 어색함을 무지 싫어하는데, 언젠가 누군가의 부재를 알려줄 이 사진을 꼭 찍고 싶었다. '언제 잡혀갈지 모르니 찍어야지'라는 라주 동지 이야기에 '뭐야?그런 말'이라고 했지만, 사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동대문역 3번 출구에는 네팔 사람들로 북적 거렸다. 섀커도 그 안에 있었다. 술이 취한건지, 정신이 없는 건지 눈이 풀려서는 오랜만이라고 했다. 예전에 사말의 집에서 처음봤던 앳딘 섀커의 얼굴은 그새 너무 많이 부어 있었다. 라주 동지가 왜 요즘에 집회 안 오냐며 섀커한테 뭐라고 했고 바뀐 전화 번호를 받았다. 섀커와 인사를 하고 걸어가면서 라주 동지도 섀커가 술 때문에 큰일이라며 걱정을 한다.

 

네팔식당 에베레스트에는 쏘니 언니가 있었다. 몇해 전, 여성주의 모임의 학생들이 연대하고 싶다고 해서 함께 만났던 쏘니 언니. 그날 학생들은 이주여성의 삶에 대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언니한테 했고, 학생들의 어려운 단어가 무지 귀에 거슬렸던 기억이 났다. 그 여성주의 모임의 활동 목표였던 여성 마임팀을 위해, 배가 아펐던 쏘니 언니와 리뚜, 신라 언니가 학생들과 함께 문화제 무대에 섰었다. 세 사람이 문화제에 오지 않을까봐 전전긍긍 전화를 해대던 그 학생들은 그 후에는 언니네 집에 찾아가지 않았고, 나는 가끔씩 집회나 행사 때 쏘니 언니를 보면 어색해했었다. 사실 미안함이 맞는 말이다. 마임팀을 함께 했던 신라언니는 얼마전 유방암 수술을 해 가슴한쪽을 도려내고 내일 세번째 항암 주사를 맞을 거라고 했다. 너무나 당차서, 그래서 더 손 잡고 싶었던 리뚜는 지금 의정부에 있다고 했다. 쏘니 언니랑 이야기를 하는데 언니의 일행이었던 꼬불꼬불한 머리의 네팔 남자가 계속 한국사람이냐며 추근덕 거렸다.

 

라주,찬드라,선주 그리고 나는 맛있는 '란'과 야채 소스로 배가 터지게 먹었고, 네팔에서 처음 마셔본, 너무나 맛있는 술 '뚬바'를 마셨다. 2000cc는 되는 큰 나무 통에 '마법의 씨앗'을 따뜻한 물로 우려내고, 쇠로 된 빨대로 마시는 뚬바는 오래전부터 우리가 먹자고 먹자고 벼르던 술이었다. 나는 뚬바의 맛 보다도 큰 나무통과 쇠빨대를 좋아하고, 계속 따뜻한 물을 부어 마실 수 있는 이 술의 신기함이 좋다. 우리는 뚬바를 기념하며 또 사진을 찍었다.

 

지하철 막차 시간을 코 앞에 두고, 에베레스트에서 나왔지만 집에 가려던 나도, 세사람도 다들 조금씩 헤어지기를 망설였다. 언제나 마시면 아침까지 끝장을 보는 습관 때문인지 뚬바가 너무 약해서 그랬는지, 여튼 우리는 대학로로 2차를 갔다. 동대문의 시끌벅적함을 피해 좀 조용하고 오붓하게 술을 마시자는 취지였다.

 

비타민 씨 섭취와 건강을 생각해 과일샐러드를 안주로 시키고 흑맥주를 마셨다. 옆자리에 술취한 한국인 아저씨가 계속 주인한테 시비를 건다. 우리도 시선이 자꾸 그 쪽으로 가고, 행여 그 사람이 우리한테 시비를 걸까 나는 내심 걱정을 했다. 그런 사람들 너무 많으니까. 예전에 마석에서는 술취한 정육점 집 주인이 고기 자르는 칼을 들고 방글라데시 식당에 들이닥쳐 큰 싸움이 난 적도 있었는데, 이유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시끄럽기 때문이었다. 그 때 정육점 집 주인 친구들한테 피투성이가 되어 끌려다니던 아펠과 싸움의 한 가운데서 울면서 소리치던 비두씨의 영상이 너무나 선명한 탓에 나는 이런 상황이면 좀 걱정을 한다.

 

간단히 2차를 하자던 지키지 못할 약속은 온대간대 없고, 우리는 계속 피쳐를 시켰다. 나는 요즘 길을 가다보면 애기 엄마아빠들이 대체로 나보다 어리다는 데 놀라고 있으며, 얼마전에 버스 기사 아저씨랑 싸우다가 기사 아저씨가 '이 아줌마가' 라고 해서 그 것 때문에 말도 안되는 항의를 했다는 얘기를 했다. 선주도 그렇다고 했다. 네팔에 있는 열여덟살 짜리 동생도 결혼하고, 자기는 뭔가 다른 사람들 처럼 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어느 새 이야기는 찬드라 동지의 사랑 이야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예전에 찬드라 동지가 라다 언니랑 헤어질 즈음, 라주 동지랑 나는 위로를 해준답시고 삼겹살집 테이블 가득 소주병을 쌓아놓고 마신적이 있었다. 찬드라 동지가 라다 언니랑 전화 통화를 하고 힘들어 하면 우리는 그냥 무작정 마시라고 했었다. 하여튼 그날의 소주병은 여전히 전설이고, 아무도 어떻게 농성장으로 들어갔는지, 집으로 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만땅 취한 내가 명동 길거리에 앉아 있던 장면이 토르나 목사님에 의해 목격되었을 뿐. 

 

라다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사랑 이야기에, 언니가 고생한 이야기에, 네팔에서의 근황 이야기에. 찬드라 동지가 사랑했던 라다 언니. 그 사랑. 라주 동지가 담배를 2개나 계속폈다. 그런 모습 처음이었다. 선주가 신기하다며 놀린다. 

 

집에 간 줄 알았던 검 동지가 전화를 했다. 이제 동대문에서 집에 간다고 했다. NBF행사를 했던 친구들이랑 술을 많이 마신 모양이었다. 술이 잔뜩 취해서는 오늘 같이 술 못 마셔셔 미안하다고 계속 말한다. 새로 이사간 집 집들이 하라고 하니까 20일로 벌써 날짜를 잡는다. 그리고 계속 똑같은 말을 한다. 오늘 같이 못 마셔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동지란 말 뭔지 꼭 기억하라고. 동지.     

     

라주 동지는 자꾸 내 사랑 얘기를 하라고 하고, 찬드라 동지는 쏘냐한테 뭐 별거 있겠느냐고 만났다. 헤어졌다. 그거 아니냐고 그런다. 나는 평생 운동할 수 있도록 돈 대 주고 싶다던 남자가 있었는데, 가끔 돈 없어서 힘들 때 생각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정말 별거 아닌 얘기만 해 버렸다. 술은 계속 취하고 집으로 갈 시간이었다. 몇 시간 있으면 다 일하러 가야 하는데, 마시기 시작하면 항상 이런다.

 

동대문까지 걸어갔다. 선주가 나보고 '우리 때문에' 집에 못가서 어쩌냐고 했다. 술취한 꼬장이 발동을 했다. 우리는 누구고 나는 누구고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맞아. 우리는 우리고 나는 나지. 맞는 말이야! 라며 중얼 거렸다. 선주가 미안하다며 팔짱을 낀다.

 

동대문 집에는 마숨과 비누동지가 자고 있었다. 술취한 우리는 깨우고 장난치는데, 머리카락이 별로 없는 마숨 동지의 정수리 부분이 상처로 부풀어 있었다. 노가다 일당 일하러 갔다가 깨졌다고 했다. 시끄럽다며 비누 동지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선주가 끓인 맛없는 베트남 라면을 꾸역꾸역 먹고 다들 쓰러졌다.

 

자리에 누웠는데 라다 언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선주의 우리라는 말도 생각났다. 하염없이 눈물이 나고, 환하게 날이 샌 옥탑방 옥상에 앉아 울었다. 언니가 맨날 놀러 오라고 했는데, 언니가 살던 방에 예전에 어떤 여자가 애기를 낳다가 죽었고, 어떤 친구는 그 방에서 귀신이 냉장고 문을 열고 있는 걸 봤다는 얘기를 들은 담부터 무서워서 놀러가지 않은게 속상했다. 이주여성노동자의 대표로 여기저기 인기 많았던 언니한테 내 존재가 별거 아닐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놀러가지 않았던 것도 자꾸 눈물이 나게 했다. 찬드라 동지가 준 츄리닝에 눈물 콧물 닦으며 울다가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아서 나왔다. 

 

잠겨진 문을 열어놓고 나오는게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 한꺼번에 단속될지도 모른다는, 이 문을 열어 놓고 나가서 단속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스쳐간다. 나는 대체로 시간과 공간의 단절에 무심한데, 이렇게 한 번씩 그 단절이 절절해질 때가 있다. 가령, 새벽 첫차를 타기 위해 동대문역 3번 출구로 걸어가다가, 처음 사말이랑 동대문에 와서 검동지 집에서 자고 새벽 첫차를 타기위해 걸어가던 장면이 떠오를 때 말이다. 

 

술이 덜 깬 상태로 평화시장에서 어버이날 엄마한테 줄 선물을 고르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며칠 동안 일 안나가서 오늘은 꼭 가야한다는 재단 기술자 찬드라 동지랑 가게 맞겨 놓고 포카치러 간 사장이 얄미워서 1시간 일찍 문닫는다는 전자제품 AS 전문가 라주 동지가 출근을 제대로 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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