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람들의 지역감정은 정신병 수준이다 이용제한  개쌍도밥상머리교육

2006/05/17 05:42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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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nahata | ga2002
원문 http://blog.naver.com/ga2002/40011130568

영남인의 지역감정은 지역감정이 아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2년간을 대구에서 다녔으며 중·고등학교를 전남 순천에서 나오고 대학은 서울에서 나와 지금은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40대 초반의 주부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의도는 영남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남의 미래를 위해서 나는 충고를 하고 싶어서 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서 대구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경상도 사투리에 익숙해져 갔으며 대구 사람이 되어갔다.

그런데,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대구 사람들의 특이한 행동 양식을 자각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TV 뉴스를 보다가 호남인 관련 사건이 보도되면 반사적으로 수저를 내려놓고 호남인에 대해서 욕설을 해댔다. 그런데, 여러 친구 집을 놀러가 보면 한결같이 친구 아버지들은 이런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한 번은 아버지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한 적이 있었다. 서울 토박이인 아버지는 전라도와 경상도는 옛날부터 사이가 않좋아서 그러니 그런데 신경쓸 것 없다고 하시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또 다시 순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나는 경상도 말을 쓰게 되었으므로 전라도에 가서 봉변이나 당하지 않을까 하여 겁부터 났다. 내가 가게된 학교는 이전에 황산성 변호사가 나온 학교였다. 그런데, 순천에서 학교 다닐 때 어느 학생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나를 흉내내거나 공격하는 학생이 없었다. 그리고 친구들 집에 많이 놀러 다녔어도 경상도에 대해서 욕을 하는 것을 목격할 수 없었다. 훗날 황산성 변호사의 자서전이 나왔길래 그 책을 읽어보니 경상도 출신인 그 분도 순천에서 학교 다닐 때 사투리나 출신지를 가지고 문제가 있는 적이 없었다고 적고 있었다.

대학교 진학하고 얼마 안되어 아버지는 직장을 옮겨 다시 서울로 오시면서 지금까지 계속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대학원을 다닐 때 일이었다. 우연찮게 대학교 때 내가 다녔던 대구 초등학교의 동창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대학교 재학 중에 결혼을 하였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그 친구가 집으로 놀러 오라고 여러 번 연락이 와서 놀러 갔을 때 참으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뉴스 시간에 DJ관련 소식이 나오자 케익을 먹다가 스푼을 내려놓으면서 대뜸 "빨갱이" 운운하며 호남인들을 싸잡아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내가 대구에서 학교 다닐 때 본 대구 아저씨들의 모습과 너무도 똑같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한 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지역감정에 대한 영남인들의 "밥상머리 교육"이구나 하는 씁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의 지역감정에 관하여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남인들과 같은 편집증적 지역감정 반응을 하는 곳은 이 지구상에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영남인들의 어이없는 지역감정 행태는 어디에서 올까하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안동 출신 어느 여교수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여교수의 집에 함께 있으면서 TV에서 지역 발전의 불균형 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장면이 방영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엘리트인 그 교수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대뜸 하는 말이 "우리 영남이 호남보다 잘살아본 것이 이제 얼마나 됐다고 저러는지 몰라!"하면서 골을 내면서 TV를 꺼버렸다.

영남의 호남에 대한 편집증적 공격 성향은 바로 호남에 대한 오랜 역사적 콤플렉스에서 기인함을 분명하게 알게된 순간이었다. "니네들은 지금껏 잘먹고 잘살아왔으니 이제 좀 못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발상. 참으로 어이가 없는 사고 방식이었다.

서울 토박이 동네 어르신 말을 들어보니 6·25때 전라도를 가니 난리중에도 주민들에게 이 따금 흰쌀밥에 진수성찬을 얻어 먹었는데 경상도로 후퇴를 해서 밥 한끼 얻어먹을까 하고 가보니 처마에 먼지가 잔뜩 앉은 시래기만 걸러 있었는데 이것을 가지고 보리를 넣어 죽을 쑤어 내놓는데 풀냄새가 역겨워서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회상을 했다. 그리고는 호남은 만석군이 드문드문했는데 영남은 천석군도 찾기 힘들었다는 말을 실감하였다고 했다. 한 마디로 영남의 궁핍함은 식문화 자체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박대통령이 경제개발하기 전에는 한국 재벌의 1위부터 9위까지가 호남 재벌이었던 것도 이러한 전통적 경제구도에 기인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즈음 들어 시중 출판물 중에도 해묵은 경상도의 좌금 논쟁이 등장하고 신라인에 혈통에 대한 좋지 않은 구체적 언급이 등장하는 것을 보게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천편일률적인 국정교과서의 신라 위주의 역사 서술을 거부하는 흐름을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그간의 경상도적 사고 방식은 세간에서 이미 힘을 잃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는 멀리로는 신라인이고 가까이로는 신라인의 범주에 넣었던 경상도, 강원도 출신이다. 조신시대 영남학파의 거두라고 하는 이들은 보면 퇴계 이황으로부터해서 김일손, 김종직등 영남학파의 학통을 잇는 사람들의 십중팔구가 다 중인 출신의 미천한 신분이었던 것은, 호남이 고향인 조선 왕조의 임금들이 경상도 출신들의 출사를 제한하였기 때문이다. 경상도가 호남에 비해서 과거 급제자가 조금 많은 것도 사실 경상도 출신들이 중인 신분을 벗어나서 양반 신분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과거에 급제하는 것 밖에 없었기 때문에 목숨 걸고 공부를 한 결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출사한 선비들의 출신 성분을 보면 호남 출신은 열의 아홉은 고려시대부터 양반가문 출신이고 영남 출신들은 정 반대로 열의 아홉은 고려시대부터 중인 출신의 아웃사이더이다.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특히 고려가 건국이 되었을 때 왕건은 신라 때부터 귀족 가문인 사람들을 비옥한 호남에 식읍을 주어서 이곳으로 이주 시킨 것에도 원인이 있다.

이러한 것이 중첩적으로 작용하여 영남은 허위의식으로 세뇌되어 평생을 이 허위의식 속에서 호남에 대한 적개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한번은 대구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영남이 가난하였을 때 박대통령을 호남 사람들이 밀어주어서 오늘날 영남이 잘 살게 되었는데, 왜 하필 호남을 공격하느냐고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얼굴만 빨개지고 대답을 못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다시는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고 얼마 전 우연히 학교에서 마주쳤을 때 내 앞을 지나면서 고개를 땅으로 처박고 지나가는 행동을 하였다.

나는 영남인들에게 제정신을 차리라고 충고하고 싶다. 군사정권 때의 주입식 영남 우월적 역사교육과 영남 위주의 여론몰이 시대가 먹혀들어 가는 시대는 끝났다. 지역감정의 칼날은 결국 영남에 향할 것이고 지금 그렇게 되어가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전통적인 한국의 역사의 실체인 것이다.

나는 영남인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고한다. 
호남은 영남인들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아니 우리나라 어디 곳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아니 지구상의 어느 곳도 넘볼 수 없는 고대의 위대한 역사가 숨어 있는 곳이다. 영남은 호남을 자극하지 말라. 호남인들의 인내가 끝나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직시하고 자중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영남인들이 미래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충고한다.
지금의 영남인의 지역감정은 지역감정이 아니고, 호남에 대한 콤플렉스에 의한 편집증적 허위의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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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1 17:04 2013/09/2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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