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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누구일까요?(김여진)

 누구일까요?

 

 김여진

[한겨레] 등록 : 20111110 20:18 | 수정 : 20111111 11:50

 

‘사소한’ 사람들입니다

단 한번도 ‘국가 이익’과 같은 편에 서본 적 없는 사람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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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무엇에 대해 쓰이게 될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속 여러 사람들이 아우성칩니다.

흐느낍니다.

아니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먼 산만 바라봅니다.

 

오래되고 오래된 문제들, 가장 가까운 얘기부터 해볼까요.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이야기부터요.

300일이 되는 날 공개적으로 전화통화하는 자리에서 저는 울었지만 그녀는 웃었습니다.

건강하셔야 한다는 제 당부에 당신이나 잘하라고, 아프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끝끝내 ‘절차상’ 문제가 없다며 사쪽의 손을 들어준 중앙노동위원회의 발표가 있던 날,

지켜보던 사람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날,

“우선 모두의 생활이 걸린 한-미 에프티에이 강행처리를 막아야 합니다. 수많은 한진이, 수많은 해고노동자가 생길 수 있습니다. 관심 가져 주십시오”라고 말하던 사람입니다.

땅을 밟지 못하고 300여일을 떠 있던 그녀의 발은, 이 땅에, 자신만이 아닌 모두의 삶 속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나 봅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치는 날.

자식의 시험에 차마 행운을 빌지 못하던 아버지가 있습니다.

한진의 해고노동자입니다.

대출을 받을 수도 없어 사채로 생활을 이어가는 형편에 대학 등록금은 엄두를 낼 수가 없는 아비입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아르바이트에 등이 휠 아이 생각에 가슴이 무너져도 이 부당한 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어 크레인 앞을 떠나지 못하는 아비입니다.

조금 더 오래전에, 결국 목숨을 끊은 다른 아비가 있던 그 자리이지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이엠에프 때, 나라의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조정’되었던 수많은 부모들이 있습니다.

나이 오십도 전, 아직 대학을 다니는 자식, 대학을 가고 싶어하는 자식이 있던 그 부모들이 있지요.

회사를 쫓겨나 알량한 퇴직금으로 작은 가게라도 해보려 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 돈마저 다 잃고 빚더미에 앉았지요.

어디 버틸 수가 있나요?

커다란 대형마트에, 통닭집, 꽃집, 빵집 할 것 없이 그 큰 덩치의 대기업들이 골목상권까지 다 들어왔는데요.

경비일도 청소일도 구하기 쉬운 게 아닙니다.

훨씬 더 젊은 소장에게 머리 숙여야 하고 짤릴까 두려워 최저임금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써야 합니다.

 

올림픽을 한다, 월드컵을 한다, 아무튼 뭘 한다고 할 때마다 살던 자리에서 쫓겨나던 사람들은 어떻구요.

더 외진 곳으로 더 불안한 곳으로 쫓겨나고 또 쫓겨납니다.

 

올해 돌아가신 많은 분들 중에 또 빼놓을 수 없는 분들이 있죠.

우리 정부의 무관심 속에, 일본 정부의 뻔뻔함 속에 한 분 한 분 소리 없이 세상을 뜨고 계신 군대위안부 할머니들.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에 보상금을 다 줬다고 하죠.

우리 정부는 그 돈으로 경제개발 했습니다.

그러니 이분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이미 받을 걸 다 받은 겁니다.

 

네.

제가 얘기한 사람들은 ‘사소한’ 사람들입니다.

국익을 위해, 국가 경쟁력을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사소한 ‘손실’의 일부입니다.

어쩌자고 저리 일일이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입장에 서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옛날, 청계천에서 잠 안 자고 미싱 돌리던 그때부터,

큰비 쏟아지는 날 은마아파트 지하에서 숨이 끊어져도 어떤 위로도 보상도 받지 못하는 지금까지,

누가 시킨 건도 아닌데 말입니다.

단 한번도 ‘국가 이익’과 같은 편에 서본 적 없는 사람들 말입니다.

에프티에이 체결되면 ‘국익’이 얼마나 증가할 텐데,

선진국이 될 텐데,

경쟁력이 높아질 텐데,

허구한 날 국익하고는 상관없는 저쪽 편에 서 있는 저 사소한 사람들을 상관할 순 없지 않습니까?

 

저들이 누구냐구요?

그냥. 대한민국 국민이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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