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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협동1,2,3-판란드식 교육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협동1,2,3-핀란드식 교육

 

<프레시안>2008.10. / 성현석 기자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협동 (上)

 

어릴 때 읽은 동화 한 토막. 어떤 사람이 지옥 구경을 하게 됐다. 지옥에서는 밥 먹는 시간이 제일 괴로웠다. 밥상에 팔만큼이나 아주 긴 젓가락과 숟가락이 놓이는 까닭에, 음식을 제대로 입에 넣기가 힘들다. 밥그릇이 엎어지기 일쑤다. 그럼, 흙에 뒤범벅이 된 음식을 서로 먹겠다고 싸운다. 이런 모습을 보며 진저리를 치던 사람이 이번에는 천국 구경을 하게 됐다. 지옥과 반대로, 천국에서는 밥 먹는 시간이 제일 즐겁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밥상이 똑같다. 역시 긴 젓가락과 숟가락이 놓여 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음식을 흘리지 않는다. 긴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서로에게 떠 먹여 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협동'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내용이다. 같은 밥상, 즉 같은 물질적 조건에서도 '협동' 여부에 따라 행복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각자 생수 사서 마실 돈으로 수돗물 관리에 투자하는 게 낫다" 

북유럽을 돌아다니는 동안, 이 동화를 떠올리게 한 사례는 많았다. 핀란드에서는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된다. 스웨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 나라들은 수자원 관리 분야에서 세계 1, 2위를 다툰다. '숲과 호수의 나라'라고 불리는 자연환경도 한 이유다. 하지만 '깨끗한 물'을 시민에게 공급하기 위한 공적 투자에 적극적이라는 점이 더 큰 이유로 꼽힌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수돗물의 질을 믿을 수 없어서 각자 생수를 사서 마시는 경우, 그리고 수돗물을 믿고 마시는 경우. 이 둘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사회적 비용이 더 클까. 물론, 각자 생수를 사서 마시는 경우다. 생수를 사서 마실 돈을 모아서, 수돗물 관리에 투자하면 결국 모두가 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 이게 협동 모델이다.

북유럽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런 협동이 가능한 이유를 물었다. 부러움 섞인 질문이었다. 대부분 답변이 신통치 않았다. 누구나 뻔히 짐작할 수 있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이 더 착해서?…경쟁보다 협동이 더 실용적이니까!" 

귀에 쏙 들어오는 대답을 한 사람은 몇 명에 불과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한국인 유학생 신경아 씨였다. 신 씨는 캐나다에서 작곡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핀란드 헬싱키에서 오케스트라 지휘 전공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그는 "이곳 사람들이라고해서 특별히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며 대답을 시작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흔한 답변처럼 들렸다. 그래서 재차 물었다. "제도적 차이 외에,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는 생각에서도 다른 대목이 있지 않겠느냐"라고.

보다 자세하게 이어진 대답은 이랬다. "핀란드 문화는 아주 실용적이다. 협동과 연대에 바탕을 둔 사회 모델 역시 실용적인 판단의 결과처럼 보인다. 복지가 강한 사회니까, 유난히 착하고 이타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하면 틀렸다.

햇볕이 적은 핀란드는 사람이 살기에 썩 좋은 환경이 아니다. 게다가 오랜 식민지 경험을 갖고 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독립한 직후에는 격렬한 내전도 겪었다. 독일, 스웨덴의 지원을 받는 백위군과 러시아 혁명을 지지하는 적위군 사이의 유혈 충돌이다. 당시, 백위군이 승리하면서, 좌익은 대부분 러시아로 쫓겨났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독일 측에 가담했던 탓에 소련의 침략을 받기도 했다. 전쟁 뒤에는 소련과의 무역량이 많았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경제가 파탄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런 역사를 가진 나라가 살아남으려면, 내부적으로 무한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

이런 대답은 주 핀란드 한국 대사관 관계자가 전한 이야기와도 통하는 면이 있었다. 대사관 관계자는 "북유럽 국가들은 오랫동안 유럽의 변방 취급을 받았다. 게다가 핀란드는 자원이 적고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사람에 투자하는 수밖에 없다. 한 명도 낙오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했다. 인권과 연대 의식이 유난히 강해서라기보다, 경쟁을 자제하고 협동을 강조하는 모델이 더 '실용'적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각자 생수를 사서 마시는 것보다, 세금으로 수돗물 관리에 투자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설명과 닮았다. 북유럽에서 만난 한국인들 중에는 '믿을 수 있는 수돗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점수가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는 순간, 교육이 망가진다" 

'수돗물 모델'과 닮은 사례는 많다. 그 중 하나가 교육이다. 사교육에 들어가는 돈을 세금으로 거둬서 공교육에 투자하면 모든 아이들이 훨씬 질이 높은 교육이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돗물과 교육은 다른 측면이 있다. "내가 꼭 남보다 더 좋은 물을 마셔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자신이 마시는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가 문제일 뿐이다. 굳이 남과 차별화해야 할 필요는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꼭 남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많다. 모두가 좋은 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앞선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교육의 질보다 '남과 차별화'하는 데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다. "모두가 나쁜 교육을 받더라도, 우리 아이가 전체에서 1등을 하면 만족스럽다"라는 생각이 번지는 경우다. 수돗물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 나쁜 물을 먹더라도, 내가 그중에서 가장 좋은 물을 먹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리는 없으니까.

'차별화'하려는 욕망이 질을 높이려는 노력보다 두드러지면, 당연히 전체적인 질은 떨어진다. 교육이 사회적 차별화의 통로가 될 때, 이런 일이 생긴다.

"학교에 서열이 있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북유럽 사회가 결정적으로 돋보이는 대목이 이 부분이다. 직업, 학력, 학벌 등에 따른 차별이 매우 적다. 학교에서 받은 점수가 사회에서 받는 대우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적다는 뜻이다. 대학 교수, 법조인 등 오랫동안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직업으로 쏠리는 현상도 약하다. 오히려 생산직과 육체노동자가 높은 소득을 거둔다. 장인(匠人)을 존중하는 문화 때문에, 한 가지 기술을 꾸준히 익힌 사람에 대한 대우가 좋다.

출신 학교를 따지는 문화가 거의 없다. 북유럽에서 만난 교사, 교육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전한 이야기다. 한국에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북유럽 교육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 하는 '입에 발린 말'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헬싱키 시내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봤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통계청 공무원으로 일한다는 라울라 씨는 "학교 간에 서열이 있다고? 글쎄, 핀란드에서 그런 게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이야기 했다. 혹시 그가 '좌파'인 걸까. 그렇지 않다. 그의 정치 성향을 물었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중도 우파 지지자' 라고 일러줬다.

녹색당 지지자이며, 오케스트라 연주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앙띠 씨는 같은 질문에 "시벨리우스 음악대학이나 헬싱키 종합대학, 오울루 공과대학 등은 외국에도 좀 알려진 편"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무리를 하면서까지 이들 학교에 들어가야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또 관련 분야 종사자들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면, 학교의 명성 따위에 신경 쓰는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완벽한 평준화는 아니지만, 학교 간 순위 매기기에 열을 올리는 문화와 거리가 멀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우열반 없앤 이유…다양한 아이들이 팀 단위로 공부할 때 성취도가 높다" 

핀란드에는 명문고, 명문대가 없을 뿐 아니라 우열반도 없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부터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져 온 교육개혁이 핀란드 교육의 틀을 완전히 바꿨다. 우열반은 1985년에 사라졌다. 대신, 학력이 높은 아이와 낮은 아이가 한 교실에서 공부한다. 경쟁보다 협동을 중시하는 쪽으로 교육정책의 기조가 바뀌면서부터다.

교실 안에 다양한 수준의 아이들이 있고 이들이 팀(Team)을 이뤄 공부할 때, 학업 성취도가 높아진다는 게 정부 차원의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고 한다. 또 개인 간 점수 경쟁에만 열을 올리느라, 서로 협동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 채 졸업한 학생들이 사회에서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고려됐다. 사회 생활은 대부분 남과 협동하는 과정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더 실용적"이라는 한국 vs "경쟁은 경쟁력을 망친다"는 핀란드

경쟁에서 협동으로 교육 정책의 기조를 옮기는 변화 속에서 반발은 없었을까. 헬싱키에서 만난 한 대학원생과의 짧은 대화 속에 힌트가 있다.

"평등 교육이 이뤄지는 셈이네요." "그런 셈인가요. 아무래도 교육에서 차별을 없애는 게 더 실용적이죠." 

똑같이 '실용'을 내세웠지만, 한국 정부가 택한 방향과는 다른 길을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그 길의 끝은 어떻게 다를까.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협동 (中)

 

핀란드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신다. 1인당 술 소비량이 세계 1위다. 그래서 알콜 중독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꼽히곤 한다. 날씨가 좋은 금요일 저녁이면, 술병을 들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5월 1일 노동절에는 도심 한복판에서 거창한 술판이 벌어진다. 대통령이 직접 나와서 시민과 함께 건배를 외친다.

이렇게 술과 가까운 문화 탓인지, 고등학생들도 술을 많이 마신다. 한국에도 술을 마시는 고등학생이 종종 있지만, 핀란드에서는 공원 등 눈에 띄는 곳에서 마시는 학생들이 많다는 점이 다르다.

핀란드, 공부하는 시간은 가장 적은데 학력은 1위  

술병을 들고 몰려다니는 고등학생들을 보며, 이 나라가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력조사)에서 종합 1등을 놓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물론, 청소년 시기에 술을 접하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유분방한 문화 속에서도 높은 학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부러운 일임에 분명하다.

실제로 핀란드는 수업 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짧다. 사교육도 거의 없다. OECD가 학생들이 학교 밖·가정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조사한 결과 역시 최저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국도 PISA 순위는 최상위권이다. 핀란드를 바짝 뒤쫓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핀란드와 달리 사교육이 활발하고, 학생들이 학교 밖·가정에서 공부하는 시간도 매우 긴 편이다.

"수학 숙제 있으면 마음이 매우 무겁다"…한국 33.2%, 핀란드 6.7%  

그런데,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핀란드는 학력과 학습흥미·동기가 모두 높은 반면, 한국은 학습흥미·동기가 최하위권이다.

2003년 PISA 수학 부문 결과를 보면, 한국은 홍콩과 핀란드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도와 학습 동기는 전체 41개 나라 가운데 각각 31위와 38위였다.

당시 학습태도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수학 숙제를 하려고 하면 마음이 매우 무거워진다"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비율이 한국은 33.2%, 일본은 51.5%였다. 반면, 핀란드는 6.7%에 그쳤다. OECD 평균은 29.2%다.

"수학 문제를 풀고 있으면 안절부절 못한다"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한국 학생들은 44.3%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일본 학생들은 42.1%로 비슷했다. 핀란드는 15%, OECD 평균은 29.0%였다. 학습흥미·동기에 관한 답변에서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교육제도 및 문화가 비슷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합은 2분지엔의 초뿔말이다?"…'염불 외기'가 수학 교육을 대신한 사회

수학 문제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린 학생들만이 아니다. 어른들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어른들 역시 그렇게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학 공부는 군 복무만큼이나 괴로운 일이라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이런 사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글이 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 주역(周易)을 어찌나 즐겨 읽었는지 책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닳아 끊어졌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기자의 위편삼절은'수학의 정석(定石)'이었다. 읽고 풀고 베개 삼아 베고 자다 일어나 다시 읽고 풀다 보니 책이 걸레처럼 돼버렸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 1000쪽 넘는 책 두 권이 거의 암기(暗記)된다. 문제의 관상(觀相)만 척 보고도 정답을 고를 지경이 되는 것이다. 그 덕에 입시 점수는 좋았지만 암기의 힘은 끈덕졌다. 요즘도 꿈속에서 기자를 시그마와 인테그랄 사이로 몰아넣고 진땀 흘리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달 27일자 <조선일보> 기사 일부다. 문갑식 기자가 <수학의 정석> 시리즈 저자인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을 인터뷰한 기사다.

같은 지면에 문 기자가 쓴 글을 보면, 더 적나라한 이야기도 나온다.

"1977년 겨울 서울 종로2가 뒷골목 학원가가 생각납니다. 중3 겨울방학 때 '기본수학의 정석'과 '고교기본영어'를 수강했습니다. 수학강사는 염불(念佛)처럼 공식을 외우게 했습니다. '말은 초뿔엔마일의 공차' '합은 2분지엔의 초뿔말이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첫째는 수열의 말항(末項) 구하는 것, 두 번째는 수열의 합(合) 구하는 공식입니다. 수학 정석의 저자이자 상산고를 최고의 자립형사립고로 만든 홍성대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떠오른 31년 전 기억입니다." 

"수학의 본질은 자유"인데…"한국 학생들은 왜 가만히 있죠?"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가 한국남자들끼리는 재미있지만 외국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처럼, 문제풀이 요령을 염불처럼 외운 이야기도 역시 '국내용'일 뿐이다.

이처럼 엽기적인 방식으로 공부한 이야기를 북유럽 사회에 전하면, 한국에 대해 아주 이상한 인상을 심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핀란드 학생들이 "수학 숙제를 하려고 하면 매우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대답한 비율이 6.7%에 그친 데서도 눈치 챌 수 있는 사실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한국 학생들은 문제풀이 요령을 외우는 것으로 수학, 과학 공부를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과장해서 이야기 한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학생들이 가만히 있느냐"라고 물었다. 재미도 없고, 쓸모도 없는 일을 강요하는데 저항이 생기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대답할 말이 궁색했다.

집합론을 창시한 수학자 칸토어는 "수학의 본질은 자유"라는 말을 남겼지만, 수학 교과서 첫 페이지에서 '집합'을 배우는 한국 학생들은 "수학의 본질은 고통"이라는 말에 더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

"수학이라면 진저리를 치던 내가 수학과에 가리라고는…"

그래서 한국에서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이 북유럽으로 건너가면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문 기자보다 세 살쯤 어린 스웨덴 교포가 겪은 일이다. 정혜영 <프레시안> 스웨덴 통신원의 남편인 그는 1980년대 초에 가족과 함께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당시 한국에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스웨덴에서도 고등학교에 다니게 됐다.

스웨덴 사민주의가 낳은 성과가 절정을 구가하고 있을 당시, 그가 놀란 대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중 하나가 "수학이 재미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수학이라면 진저리를 치던 그였다.

뒤늦게 수학의 재미에 눈을 뜬 그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 내가 수학과에 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스웨덴 방정식과 한국 방정식이 다를 리는 없다. 수학 교과서 속에 담긴 개념은 만국 공통이다. 단지, 가르치고 평가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시그마와 인테그랄 사이에서 진땀을 흘리는 악몽을 꾼다는 문갑식 기자도 스웨덴에서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면, 수학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문제의 관상(觀相)만 척 보고도 정답을 고를 지경"을 '병리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권장하는 사회에서는, 학생들이 칸토어가 말한 '수학의 본질'로부터 계속 멀어지기만 할 뿐이다.

수학 교과서 속 개념을 차분히 숙지할 여유 없이 문제 풀이 요령을 외우기에만 급급한 풍토에서는 "단지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제약만 받을 뿐, 어떤 생각도 허용되는" 수학의 자유를 실감하기 어렵다. 또, 눈에 보이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 추상적 사고를 제대로 경험하기도 힘들다.

"□+□=10"과 "1+9=□"의 차이…"'생애 첫 지식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나"  

스웨덴 학교에서는 덧셈·뺄셈을 가르칠 때, "□+□=10. □에 각각 들어갈 숫자는?"과 같은 유형의 문제를 자주 출제한다. 아이들은 "1과 9, 2와 8,…9와 1" 등 여러 개의 답을 적는다.

초보적인 산수를 배울 때부터 "문제의 답은 여러 개일 수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배어든다. 음수와 양수, 유리수와 무리수, 실수와 허수 등 수(數)에 대한 개념이 넓어질 때마다, 아이들은 어릴 적 접했던 문제의 답이 더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만났던 산수 문제의 답은 "1과 9, 2와 8,…9와 1"만 있는 게 아니라 "-79와 +89, 5.13과 4.87, 1+10i와 9-10i…" 등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 □에 들어갈 숫자는?"과 같은 문제가 주를 이루는 한국, 일본 등과 다른 대목이다. '생애 첫 지식 활동'을 답이 하나인 문제로 시작하는 셈이다.

산수를 익히는 것은 추상적 사고를 하는 첫발을 떼는 작업이다. 이전까지는 사과, 배, 엄마, 아빠 등의 낱말을 익히는 수준에 머무르던 아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과, 배, 엄마, 아빠 등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지만 하나, 둘, 셋은 그렇지 않다. 숫자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개념화하는 데 주로 쓰이지만, 실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다.

이런 개념을 처음 익힐 때, 답이 하나뿐인 문제로 시작하는 것과 답이 무궁무진한 문제로 시작하는 것은 얼핏 사소해보이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다. 이런 차이가 훗날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창의와 혁신을 장려하는 문화로 이어질 수 있다.

평가가 교육의 목적으로 통하는 한국ㆍ일본

한국, 일본 등에서는 왜 '답이 하나인 문제'로 산수를 가르칠까? 이 역시 '답이 여러 개인 질문' 이다. 콕 짚어서 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답이 여러 개인 문제'로 산수를 가르치기 어려운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이유로 꼽을 수 있는 게, '평가'가 목적이 돼 버린 교육 문화다. 평가는 아이들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 그런데 평가 결과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에서는, '평가 점수를 잘 받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돼 버린다. 이렇게 되면, 답이 모호하거나 무수히 많은 문제는 내기 어렵다. 답이 선명한 문제, 그래서 평가 결과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기 힘든 문제만 제시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 문제와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어른이 돼서 겪는 문제들은 대부분 답이 모호하거나 무수히 많은 문제들이라는 뜻이다. 답이 하나인 문제를 푸는 데만 능해서는 좋은 어른이 되기 어렵다.

반면,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평가는 수업이 제대로 진행됐는지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라는 입장에 충실한 편이다. 이곳 교사들이 교육에 대해 유난히 더 뚜렷한 신념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학교에서 '등수'를 매기지 않는 문화' 때문이라는 게 교육 전문가들이 흔히 하는 설명이다.

성적표에 '등수'가 없다

핀란드와 스웨덴 모두 7세~15세까지의 의무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9학년제 기초학교(종합학교)가 의무 교육 기관이다. 단, 핀란드에서는 원하는 학생에 한해 10학년까지 다닐 수 있다. 스웨덴에서는 기초학교 8학년(한국의 중학교 2학년에 해당) 때 처음으로 성적표를 받는다. 핀란드에서는 1~2학년 때는 점수가 아닌 문장 표현으로 된 성적표를 받는다. 3학년 이상이 되면, 성적표에 평점이 나오기도 한다. 점수에 따른 평가를 실시할지 여부, 점수를 매기는 기준 등은 지방 교육위원회가 정한다.

성적표에 점수가 기재돼 있다면, 당연히 '등수'도 매겨져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적어도 의무교육 기간 동안에는, '등수 매기기'가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또 굳이 '등수'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거의 없다. 평가의 성격 역시 다른 학생과 비교하기 위한 게 아니다.

게다가 전국, 혹은 지역 단위의 일제고사도 금지돼 있다. 이미 폐지된 일제고사를 부활시킨 한국과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다.

정답이 없는 과제에 대한 주관적 평가  

'등수'가 무의미한 문화는 수업 방식과도 관계가 있다. 북유럽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특정 주제에 대해 조사해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아이들이 똑같이 푼 뒤, 정답을 택한 비율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방식에서는 객관적인 '등수'가 매겨질 수 있다.

하지만, 보고서 작성처럼 뚜렷한 정답이 없는 과제에 대해 교사가 평가한 내용에 대해서는 등수가 큰 의미가 없다. 성적표에 기재되는 점수는 학생이 내놓은 결과물에 대한 교사의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학생, 학부모들도 이런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물론, 교사를 믿고 존중하는 문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문화는 특히 핀란드에서 견고한 편이다. 스웨덴 등 다른 북유럽 국가에서는 교사에 대한 불신이 상대적으로 강해서 사회 문제로 꼽히기도 한다.

개인별 평가가 아닌 팀별 평가…자기 점수만 챙기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그리고 북유럽 학교에서 가장 흔한 수업 방식은 팀(Team)을 이뤄 진행하는 협동 작업이다. 이 경우, 평가 역시 팀 단위로 이뤄진다. 팀에 속한 학생 개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팀 전체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는 뜻이다.

학력 수준이 높은 아이도 팀 성적이 나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따라서 팀 구성원은 혼자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애쓰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좋은 결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또, '혼자서만 똑똑한 사람'보다 팀워크(Teamwork)에 능한 사람이 기업과 정부에서 더 뛰어난 '경쟁력'을 발휘한다는 실용적인 고려도 작용했다. 자기 점수를 높이는데만 골몰하는 아이들이 생겨나는 것을 막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제도를 속속 도입하고 있는 한국 교육과 대조적이다.

수업에서 협동 작업을 진행하는 팀은 학력 수준이 서로 다른 아이들로 구성된다. 교사는 각각의 팀이 학력과 성격 등 여러 면에서 최대한 다양한 아이들로 구성되도록 배려한다.

학력 수준이 다른 아이들끼리 계속 대화하면서 개념을 터득한다  

기자가 헬싱키에 있는 라또까르따노 학교를 방문했을 당시, 5학년 교실에서는 과학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교사가 던진 질문에 대해 아이들이 팀 단위로 토론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인터넷과 도서관을 이용해 미리 관련 자료를 찾아왔다. 서로 다른 자료를 갖고 있는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답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같은 팀 안에서도, 어떤 아이는 이미 관련 자료를 충분히 읽었다. 다른 아이는 자료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 토론해서 함께 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아이가 앞에 나가서 팀이 찾아낸 답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팀 단위 토론이 시작되면, 처음에는 전혀 엉뚱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교실은 시끄럽게 달아오르고, 교사는 가만히 지켜본다.

이 과정에서 관련 개념을 먼저 깨닫는 아이가 나온다. 이 아이가 다른 팀 구성원에게 스스로 이해한 바를 설명한다. 아직 이해하지 못한 아이는 여전히 엉뚱한 질문을 퍼붓는다. 이런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먼저 이해한 아이도 설명을 계속 보완하고, 스스로 이해한 바를 되짚어 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팀 구성원 대부분이 개념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교사가 제시한 문제의 답을 찾는다.

토론 과정에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 아이도 주눅 드는 기색이 없다. 이해가 안 되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남보다 조금 먼저 깨달아서, 수업 내내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던 아이들은 대화하고 설득하는 능력을 키운다.

토론에서 뒤쳐진 아이들, 그들을 위해 학교와 교사가 있는 것  

이런 설명을 듣고서, 궁금증이 일었다. 학습 속도가 유난히 더뎌서 팀에 기여하지 못하는 학생이 따돌림을 당하는 일은 없을까.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교사에게 물었더니,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과연?' 그래서 이 학교 사뚜 홍깔라 교장에게 다시 물었다. 그의 대답을 요약하면 이렇다.

"끝내 토론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종종 있다. 학교와 교사의 역할은 이런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수업에서 다루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교육과정을 별도로 마련한다.

아이들이 이런 과정을 이수하는 것에 대해 창피스러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학력이 낮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거나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교와 교사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문화는 학교와 사회에서 학력 차이에 따른 차별을 겪지 않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다."

사뚜 홍깔라 교장은 이야기를 마치며 학교를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boat)'에 비유했다. 출렁이는 배 위에서는 한 명만 몸을 잘못 움직여도 배가 균형을 잃고 뒤집어진다.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한 명만 생겨나도, 학교는 제 구실을 못하는 셈이라는 뜻이다.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협동 (下)

 

핀란드에는 '친일파'가 많다. 일본에 대해 호감을 가진 이들이 흔하다는 뜻이다. 이 나라를 오래 지배했던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한 이유다. 이런 반감은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를 꺾은 작은 섬나라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핀란드가 독일, 일본 등과 같은 편에 섰던 사실도 한몫했다. 1939년 겨울, 부동항(不凍港, 얼지 않는 항구)을 탐낸 러시아의 침략으로 영토의 10%를 잃어버린 핀란드가 "적의 적은 동지"라는 판단에 따라 러시아의 반대편에 섰던 것.

물론, 이런 호감은 일방적이었다. 일본에서 '친핀란드파'라고 할만한 사람은 드물었다. 폐허 위에서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이 대륙 반대편에 있는 추운 나라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별로 없었다.

모방의 나라 일본, 핀란드 교육에 관심 갖다 

하지만, 최근 일본에서 핀란드에 대한 호감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력조사) 결과가 이유다. PISA 2006 수학 평가에서 일본 고등학생은 10위를 기록했다. 읽기 능력 평가에서는 14위에 그쳤다. 3년 전보다 각각 4위, 1위씩 후퇴한 결과다.

 일본 교육계가 들썩였다. 일본 학생들도 한국처럼 혹독한 입시 교육에 시달린다. 그런데 늘 PISA 1등을 차지하는 핀란드는 평균 학습 시간이 가장 짧다. 또 아이들의 학습 만족도 역시 1위다. 괴로움을 꾹 참고 공부한 일본 학생들이 실컷 놀면서 지내는 핀란드 학생들에게 한참 뒤지는 셈이다. 일본 정부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게 당연하다.

여기서, 자신보다 앞선 사례를 배우는 일본 사회의 순발력이 발휘됐다. <아사히>, <요미우리> 등 일본 유력 신문은 핀란드 교육에 관한 분석 기사를 여러 차례 실었다. NHK 등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출판계 역시 분주해졌다. 핀란드 교육을 다룬 책들이 서점가에 쏟아졌다. 이 가운데 일본 츠루분카 대학 후쿠타 세이치 교수가 쓴 <경쟁하지 않아도 세계 제일>은 큰 호응을 얻었다. 이를 보완한 책이 <경쟁을 벗어나 세계 최고의 학력으로-핀란드 교육의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최근 한국에서 번역돼 나왔다.

또, 일본 안에서 핀란드 교육에 대한 관심이 치솟자, 주일본 핀란드 대사관은 핀란드 교육을 알리는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경쟁 없이 최고가 된 비결" 

핀란드 교육에 대한 일본 교육계의 관심은 "경쟁 없는 교육이 높은 성취도를 거두는 이유"에 맞춰져 있다. 실력을 쌓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괴로움을 참고 견뎌야하며, 이 과정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다는 일본 사회 주류의 오랜 통념과 배치되는 사례인 까닭이다.

물론, 핀란드 교육에 관심을 기울인 게 일본만은 아니다. PISA 결과가 나온 뒤, 핀란드 정부에 '1등의 비결'을 묻는 세계 언론의 취재 요청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는 11가지 교육 원칙을 공통 답변으로 발표했다. 내용은 이렇다.

1. 가정, 성별, 경제 상황, 모국어와 관계없이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할 것.

2. 지역에 관계없이 교육 활동이 가능할 것.

3. 성별에 따른 분리와 차별을 부정할 것.

4.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할 것.

5. 종합제 학교 운영을 통해, '선별하지 않는 기초 교육'을 실시할 것. (특정 기준에 따라 골라낸 아이들만으로 채워진 학교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 평준화 교육을 옹호하는 입장인 셈이다.)

6. 전체적인 틀은 중앙에서 조정하지만 각 지역의 실정에 맞게 실행할 것. 교육행정은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입장에 서서 유연하게 이뤄져야 함.

7. 모든 교육단계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협동하여 활동할 것. (윗 학년과 아래 학년, 초등교육과정과 중등교육과정 사이에 긴밀한 연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

8. 학생의 학습과 복지에 대해 개인의 특성에 맞게 지원할 것.

9. 시험과 성적에 의한 등수 제도를 없애고, 학생의 발달 시점에 맞춰서 학생을 평가할 것.

10. 교사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것.

11. '사회적 구성주의'에 따른 학습 개념을 도입할 것.

협동을 통한 개념 형성…'사회적 구성주의'에 바탕을 둔 수업 설계  

이들 11가지 원칙 가운데 후쿠타 세이치 교수가 특히 주목한 것은 마지막 원칙이다. 핀란드 학생들이 "경쟁하지 않아도 세계 제일" 학력을 갖게 된 결정적 요인이 '사회적 구성주의'에 바탕을 둔 교육방식이라는 것.

'사회적 구성주의'가 뭘까. 교육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사회적 구성주의를 이해하려면 먼저 구성주의에 대해 알아야 한다. 구성주의에 따르면, 지식은 교사의 머릿속에서 학생의 머릿속으로 복사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식은 학습자가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완벽하게 객관적인 지식은 없다. 이렇게 보면, '사실(fact)'이 하나여도, '지식'은 학습자의 수만큼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을 놓고 지식을 구성하는 작업은 혼자 진행할 수 없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 속에서 이뤄지는 작업이다. 더구나 모든 지식은 사회적 '맥락(context)' 속에서만 고유한 의미를 띤다. 얼핏 사회와 동떨어진 것처럼 여겨지는 자연과학 지식조차 이런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생각이 구성주의 위로 겹치면서 나온 개념이 '사회적 구성주의'다.

협동을 통해 학생들이 개념을 형성하는 핀란드식 수업 방식은 철저하게 '사회적 구성주의'에 따라 설계돼 있다. 핀란드 교육당국자들은 '사회적 구성주의'에 따른 수업이 학생들의 창의성을 고양한다고 믿는다. 교사가 객관적인 지식을 학생에게 전수한다는 발상에 바탕을 둔 수업은 학생들로 하여금 이미 나와 있는 모범답안을 모방하도록 유도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교육에서 경쟁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 애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치열한 경쟁은 모방하는 능력을 키우는데는 유리하지만, 창조성을 소모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창의성을 기르려면, 경쟁보다 협동을 장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교육 당국자들 사이에 퍼져 있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교육과정을 적용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사회적 구성주의'는 고도로 철학적인 개념인데, 핀란드 교사들이 이런 개념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을까. 후쿠타 세이치 교수가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 이르멜 하리넨 보통교육국장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이르멜 하리넨 국장은 "그렇다. 핀란드에서는 모든 교사들이 '사회적 구성주의'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런 대답이 과장된 것인지, 실제에 정확하게 부합하는지 여부는 확인하기 힘들다.

다만, 핀란드 학교에서 교사에 따라 수업 내용이 다른 경우가 흔하다는 점은 사실이다. 지식은 학생이 스스로 구성해가는 것이므로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교육과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수업 방식도 드물다. 대개의 수업이 팀 단위로 진행된다. 평가 역시 팀 단위로 이뤄진다. 그래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학생과 경쟁하며, 자기 점수만 챙기는 학생은 나타나기 어렵다. 한 교실 안에 있는 팀들이 각기 다른 내용을 익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교실 안에서 획일적인 척도에 따른 경쟁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진도의 압박"이 없다…교사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설계

그런데 구성주의, 사회적 구성주의 등은 한국 교육계에 낯선 표현이 아니다. 현행 7차 교육과정이 구성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학생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는 7차 교육과정의 취지가 실제 수업에서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한국 교사들은 구성주의, 혹은 사회적 구성주의에 따라 수업을 하기 힘든 이유로 "진도의 압박"을 꼽는 경우가 많다. 학생의 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교사가 같은 속도로 교과 진도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개념을 형성하도록 할 만한 여유를 갖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핀란드 학교에서 사회적 구성주의에 따른 수업이 잘 진행될 수 있는 이유 한 가지가 드러난다. 핀란드에서는 개별 교사가 사실상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하도록 돼 있다. 국가는 큰 틀에서 개별 교과교육의 목표를 정할 따름이다. 이런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어떤 교재를 택해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가르칠지 여부는 전적으로 개별 교사에게 맡겨져 있다. 교사마다 수업 내용과 진도가 다를 수 있는 배경이다.

'표준'은 경계 대상이다…등수 매기는 시험은 없다 

학생들이 교사에 따라 다른 내용을 익히고 있으므로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공통 평가도 불가능하다. 또 학력에 대한 표준을 정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표준(Standard)'이라는 낱말은 핀란드 교육에서 경계 대상으로 여겨진다. 모든 학생이 따라야 할 표준이 없으니, 개별 학생이 표준에 얼마나 다가갔는지 측정하기 위한 시험도 없다.

핀란드 학생들은 종합학교(한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합친 과정)을 졸업하는 16세가 돼서야 첫 시험을 치른다. 종합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남과 비교하는 시험을 겪지 않는다. 두 번째 시험은 인문고등학교 3학년 때 치르는 대학입학자격시험이다.

교사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것은 핀란드만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스웨덴 등 북유럽 교육이 대부분 이런 특징을 띠고 있다. 안승문 스웨덴 웁살라 대학 객원연구원이 겪은 사례에서도 이런 특징이 드러난다.

한 주제를 파고들면서, 탐구하는 법을 익힌다

안 연구원의 딸은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니다 웁살라에 있는 종합학교로 전학했다. 딸은 지금 학교에서 받는 역사 수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학기 내내 '로마'만 다뤘다고 했다. 로마 역사에서 주제를 정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수업을 학기 내내 했다는 것.

핀란드, 스웨덴 등에서는 이런 식의 수업이 흔하다. 대학 강의처럼 한 가지 주제만 다루는 이런 식의 수업은 교과 내용 전체에 대해 고르게 시간을 안배하는 한국 수업과 많이 다르다.    학기 내내 한 가지 주제만 다루면, 학생들이 고른 지식을 갖추기 힘들지 않을까. 그렇다. 실제로, 학생들은 천차만별의 지식을 갖게 된다. 어떤 학생은 로마 역사에 정통한 반면, 프랑스 혁명사에 대해서는 백지에 가깝다. 다른 교사와 함께 수업한 학생은 1차 세계대전에 대해 해박하지만, 고대 그리스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 있다. 그러니까,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문제를 풀도록 요구하는 게 무의미해진다.

이런 식의 교육이 가능한 배경에는 단편적인 지식을 고르게 습득하는 것 자체는 교육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있다. 오히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이 탐구하면서, 지식의 구조와 맥락을 이해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지식 자체보다 탐구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주제에 대해 폭넓은 자료를 수집해서 고유한 시각으로 엮어낸 경험은 다른 주제를 탐구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고른 지식을 쌓기보다 깊은 통찰력을 키운다

그리고 한 학기 내내 '로마'를 주제로 보고서를 쓴다면,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다. 또 특정 시기에 명멸한 숱한 인간 군상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로마'라는 프리즘으로 인간과 사회의 보편적 특징을 살피는 것. 이 정도면 역사 수업의 목표로 충분하다는 게 북유럽 교사들의 생각이다. 모든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지식의 범위는 매우 좁게 설정돼 있다.

학생들이 단편적인 지식을 외우기보다 개념을 깊이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수학 수업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핀란드, 스웨덴 등에서는 수학 시간에 학생들이 각각 다른 문제를 풀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복잡한 응용문제를 모든 학생이 풀 필요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관심 있는 학생만 풀면 된다.

대신, 교사는 모든 학생이 방정식, 함수 등 추상적인 개념을 깊이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문제 풀이는 이런 개념이 구체적으로 활용되는 사례를 소개하는 절차일 뿐이다. 수학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도 문제만 빠르고 정확하게 풀어내면 높은 평가를 받도록 돼 있는 한국, 일본 등과 다르다.

교사는 전문직…자율성에 걸맞은 책임감을 요구받는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교사에게 높은 자율성을 보장하는 북유럽 식 교육이 실효를 거두려면, 교사의 전문성과 책임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문제 풀이 요령을 가르치는 수준이라면,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 없다. 하지만 개념을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하려면, 교사의 실력이 중요하다.

또 교사가 자율적으로 수업 내용과 교재를 정하도록 돼 있는 상황을 게으른 교사가 악용할 수도 있다. 교육 내용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교사가 학생들이 왜곡된 개념을 익히도록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위험에 대해 북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뚜렷한 답은 없다. 교사의 전문성과 책임감을 믿을 따름이라고 한다. 이런 경향은 핀란드에서 더욱 뚜렷하다.

핀란드에서는 교사가 전문직이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모든 교사가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다. 교직의 사회적 위상도 높다. 안승문 연구원은 핀란드에서 초중등 교사는 한국에서의 대학 교수와 비슷한 위상을 누린다고 전했다. 그래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을 꼽을 때면 교사가 늘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급여 수준은 높지 않다. 사회적 평균 임금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 핀란드 교사들은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주당 35~40시간쯤 일한다. 하지만 아이들과 부대끼다보면, 갑작스럽게 처리할 일이 생겨서 노동시간이 확 늘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휴가일수는 다른 직업과 비슷하다.

반면, 정신적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다. 핀란드 교육 전문지 <오뻬따야(Opettaja)> 보도에 따르면, 2005년 핀란드 교사 5명 중 1명이, 교장 3명 중 1명이 학부모들로부터 심한 정신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핀란드 학부모들은 교사의 전문성을 신뢰하면서도, 사소한 권리 침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특징이 한편으로는 교사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핀란드에서 교직이 왜 인기가 있을까. '안정적인 직업'이어서? 그렇지 않다. 북유럽 사회는 노동조합이 강력하고, 복지가 잘 돼 있는 편이어서 무슨 일을 하건 고용 불안을 심하게 느끼지 않는다.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도 교사, 공무원과 비슷한 안정성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안정성'이 직업 선택의 기준이 되는 일은 드물다.

"가르치는 즐거움, 협동 속에서 싹 튼다"

핀란드 학생들은 교직을 택하면서 "재미있는 일"이라는 이유를 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핀란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학 전공이 예능 계열이라는 사실에서도 드러나듯, '일의 즐거움'은 직업이나 전공을 택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교사가 되려는 이들은 보통 "어릴 때부터 남을 가르치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라고 이야기한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대부분의 수업이 협동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동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남보다 조금 먼저 개념을 터득한 학생은 동료들을 돕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다보면, 이런 역할을 즐기는 학생들이 나온다. 이런 학생들은 자신이 먼저 터득한 개념을 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법을 늘 궁리한다. 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 주로 교육학 계열을 택한다.

동료들과 가장 잘 협동하는 학생이 교사가 돼서 다시 협동하는 법을 가르친다. 이런 순환이 이뤄지는 한, 핀란드식 교육을 향해 쏟아지는 "경쟁하지 않아도 세계 제일"이라는 찬사는 시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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