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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너무 좋다...

비가 너무 좋다...

그치지 않았으면...하고 바라지만...

빗소리를 들으면서 잠에 드는 것...

우산 밖으로 손을 뻗어 빗줄기를 받는 것...

우산이 없을 때 그냥 맞아보는 것...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빗방울들...

희미하게 변해가는 시야...

비가 내리면 마치 엄마의 품속으로...뱃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포근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내일은 제발 내리지 말아줘...

목요일만은 내리지 말아줘...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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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나의 불신과 혐오는 정도를 지나칠 정도이다...

그렇지만 나와 인연의 고리를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애착 역시 마찬가지로 정도를 지나친다...

항상 눈치를 보고...항상 넘겨짚고...항상 앞서서 걱정한다...

 

언제나 인간이라는 존재가 사라져야만 된다고 생각하지만...

내 곁에서...내 눈 앞에서...누군가가 아프거나 힘겨운 것은 정말이지 견디기가 힘들다...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나의 심리적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 나의 감정은 폭주.

나라는 인간은 결국은 모순 덩어리.

 

카라님으로부터 G8에 반대하는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이지 완전 흥분 상태.

그땐 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그저 보탬이라도 되었으면...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일본행이 쉽게 결정되고 나니 더 무서워져버렸다.

 

티켓팅까지 마치고 여권 재발급 신청도 끝냈는데...

 

언니랑 이야기하다가...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언니 말처럼...어린시절의 나는 항상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단 한순간도 진심으로 행복했던 적은 없었다고...

그래서 나는 행복해선 안된다고 자기암시를 걸고 무언가 굉장히 기쁘거나 가슴 벅찬 일이 생기면 죄책감부터 먼저 들었다.

 

그래서 연애도 힘들었고...

 

극복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죄책감과 불안감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내가 가도 되는 것일까...

 

내 일인데도...무언가 다른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듯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바보처럼 들떠있으면서도 겁은 겁대로 먹고...

허둥지둥.

 

양군님 말처럼 열심히 해야하는데, 잘 준비해야하는데,

또 걱정만 쌓아두고...

또 마음만 졸이고...

 

그렇지만 정말 기쁘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정신 차리자.

 

안드로메다에서 내려와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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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

모두가 임계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

솔직히 모두가 함께 있는 그 시간, 그 공간, 그 느낌이 너무 좋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나로서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매주 한번씩 있었던 길바닥에 겨우겨우 가는 것도 힘들어서 매번 못가곤 했었지만...

 

어제는 집회 자체도 굉장히 힘들었고...

뭐랄까 알 수 없는 분위기의 변화...

이제까지의 촛불집회와는 다른 무언가...변화하는 느낌...

 

지금이 중요하다...

 

정도의 느낌 말고는 뚜렷하게 표현할 수 없지만...

 

고비라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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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

나는 기독교 가정의 4대째 신자이다.

모태신앙이라는 뿌리깊은 기독교 정서 속에 살아왔다.

20살 이전까지 단 한번도 나 자신의 신앙과 내가 섬겨왔던 신에 대한 의심이란 있을 수 없었고 온전한 복종과 헌신만을 다짐했을 뿐이었다.

20살, 헌신을 위해 결정한 진학. 그리고 나는 나 자신 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질문과 대면했지만 마주서서 나를 부르는 참 나의 호명을 피하기 위해 줄곧 뒤돌아서 있었다.

이 뒤엎어진 세상, 이런 빛바랜 세상 가운데 내가 믿어왔던, 섬겨왔던 신은 없었다.

혜정이가 그 가녀린 삶을 아홉살의 나이로 접었을 때.

그제서야 나는 참 나와 직면할 수 있었다.

응답할 용기가 생겼다.

단지 나에게는 신이 필요했고 신은 내가 도망갈 수 있는,

내가 살아야하는 지금에서 도피할 수 있는 탈출구요 무덤이었다.

내가 줄곧 고수해왔던 신앙 속에서 나는 죽어갔다.

나의 양심과 나의 정신과 나의 신념은 계속해서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차고 헛웃음만을 띄고 있을 뿐이다.

 

신의 존재에 대해서, 그 유무에 대해서 논하고 싶지도 않다.

있든 없든 더이상 나와 상관없다.

죽은 뒤에, 그 이후가 어떻든 그것이 뭐 어쨌단 말인가.

그것이 내가 살아야만 하는, 지금과 그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내겐 더이상 신이 필요없다.

 

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나는 더이상 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신에 기대서 내가 보아야할 것들과, 내가 들어야할 것들과, 내가 살아야할 것들과, 내가 지켜야할 것들을 밀쳐내지 않을 것이다.

나의 책임을 신에게 전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신의 몫이 아닌, 나의 몫이고 나의 삶이어야 한다.

 

올해가 가면 모든 것을 마무리 지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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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목요일...

이제 곧 출발해야지...

라고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언제부터인가 목요일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목요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느낌???

 

오늘은 또 어떤 노래...어떤 음악...어떤 생각...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는 것이 요즘처럼...기분 좋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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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ers의 노래

“디거스(Diggers)의 노래; 뒤엎어진 세상”

 

17세기 영국 '땅 파는 사람들'의 수난과 이상을 노래하다

 

 
류은숙
 
 
2006년 5월 4일, 판교 ‘로또’가 발표돼 들썩거리던 날, 평택 대추리에서는 평생 살아온 자기 땅에서 늙은 농민들을 내쫓으려는 군경 합동 작전이 벌어졌다. 법률도 정치가도 군인도 경찰도 이 늙은 농민들에게 땅을 파서 먹고 산 것이 죄라고 윽박지르며 폭력으로 짓밟았다. 현장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국가인권위의 직원들이나 기자들은 ‘인권은 없다’라는 탄식을 주워 담기라도 했을까? 땅 파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피눈물을 우려내며 경찰과 군대, 용역깡패들로 중무장한 국가권력이 인권을 패대기친 5월, “왜 쏘았니 왜 찔렀니 트럭에 싣고 어딜 갔니”라던 광주의 노래가 소스라치게 기억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노래 가사이다. “디거스의 노래”를 통해 17세기의 땅 파는 사람들과 21세기의 땅 파는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 노래의 원작자는 17세기의 디거스가 아니지만 사실상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17세기에 있었던 디거스의 주장을 녹여내어 20세기의 영국 민요가수 레옹 로젤슨이 만든 노래가사이다. 로젤슨은 디거스의 지도자였던 윈스턴리가 팜플렛에 남긴 말들을 녹이고 전해 내려오는 구절들을 모아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 디거스의 주장이 담긴 팜플렛을 모두 읽지 않더라도 이 노래 가사에 함축된 그들의 주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진설명<그림 출처 http://www.online-web-comics-galumph.com>



여성과 아이들까지 내몬 지주들

디거스(Diggers)는 직역하면 ‘땅 파는 사람들’이란 뜻인데, 1649년에서 1650년, 잉글랜드의 성조지라 불리는 작은 언덕에 농사를 지으러 모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의 수는 수십 명에 불과했고 분명 행색은 초라했겠지만 그들이 품은 이상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땅을 갈고 씨 뿌릴 준비를 하며 디거스는 대토지소유에 반대하고 재산공유제를 요구했다. 1649년은 영국 국왕 찰스 1세가 처형된 해였다. 이때 디거스는 영국의 시민전쟁이란 왕과 대토지소유자들에 맞서 싸웠던 것이니 왕이 처형된 마당인 지금, 토지는 마땅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경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던 것이다. 디거스의 활동은 공화정 정부를 놀라게 했고 지역 지주들의 반감을 북돋았다. 법적인 탄압은 물론이고 고용된 패거리(요즘말로 용역이라 할 것이다)와 군대까지 나서 아이나 어른에게나 폭력을 행사하고 집을 불사르고 경작물을 파괴했다. 모욕당하고, 체포되고, 감금당하는 속에서 디거스는 결국 1650년 3월 말경 폭력으로 해산됐다. 디거스가 황무지를 일구어 만든 땅에 자기 가축을 몰아넣고 폭도들을 동원해 집을 부수고 여성과 아이들까지 내몬 사람은 지주이자 성직자였다. 1650년 4월 1일, 윈스턴리와 14명의 디거스는 불법 집회, 침입, 공안방해를 이유로 기소됐다. 기소의 결과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이것이 디거스의 작은 실험의 끝이었다. 그러나 과연 끝이었을까?


땅을 갖는 사람들, 땅 밖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공산주의적 농경사회를 꿈꾸었던 디거스의 이상은 그 지도자였던 제라드 윈스턴리가 썼던 팜플렛에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잉글랜드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중선언’(1649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땅의 모든 소산은 적과 동지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의 공통 생계를 위해 창조되었다.”
“애초 토지 소유는 전쟁으로 얻어진 것이고 토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인류의 한편이 다른 한편에 대해 살인과 절도를 하게 되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살인하고 훔치는 무력의 힘이 정부를 세웠고 그 정부를 지탱하고 있다.”

디거스와 윈스턴리의 주장을 계속 들어보자.

“함께 일하라, 함께 빵을 먹어라.”
“내 것이고 네 것이라 하는 이 특별한 재산은 인민에게 모든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첫째 재산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훔치게 만들었고, 둘째 훔친 사람들을 처형하는 법을 만들었다. 재산은 사람들에게 악마의 행동을 하도록 유혹하고 나서는 그런 일을 했다고 사람들을 죽인다.” - [새로운 정의의 법, 1648년]

“진정한 종교와 순수함은 이것이다. 정복자들의 힘으로 보통 사람들에게서 빼앗아간 땅을 되돌려놓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억압받는 자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왕권이 법을 세우고 정부의 통치가 이를 지킨다. 정의인 척 하고 있지만 법이란 억압하는 무력을 온 힘으로 지탱하는 것이고 그 자식인 재산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법은 누구에게는 울타리를 쳐서 토지를 갖게 하고 누구는 토지 밖으로 내몬다. 일부 사람에게는 토지를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토지를 부인한다. 이는 정의의 법에 반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대개의 법률은 빈민을 부자의 노예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억압을 유지하는 것이고 재산의 엄중한 수호자인 것이다.” - [의회와 군대를 위한 새해선물, 1650년]

“그 누구도 부자일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노동에 의해서나 또는 그를 돕는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인해서 부유한 것임에 틀림없다. 사람이 이웃에게서 어떤 도움도 얻지 못한다면 결코 일 년에 수백 수천의 재산을 모을 수 없다. 타인이 그가 일하도록 도왔다면 그 재산은 그 사람의 것일 뿐 아니라 그 이웃의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노동뿐만이 아닌 타인들의 노동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부자들은 편하게 살고, 타인의 노동으로 먹고 입는다. 이는 그들의 수치이지 고결함이 아니다. 받는 것 보다는 주는 것이 더 축복받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들은 노동한 사람들의 수고로부터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받기만 하는 것이고, 부자들이 주는 것이란 자기의 노동이 아닌 타인의 노동을 양보하는 것이다.” - [자유의 법, 1652년]

“경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일단 지주인 자는 출세하여 판사, 지배자, 장관이 된다.” - [진정한 수평파의 진보된 기준, 1649년]

이렇듯 디거스는 사유재산, 특히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 소유를 “모든 전쟁, 유혈, 도둑질과 인민을 비참하게 만들고 노예화시키는 법률의 원인”으로 보았다. ‘재산권의 신성불가침’을 초석으로 만들어진 승리자(부자)들의 인권선언들과는 궤도를 달리하는 민중의 인권선언들에서는 한결같이 발견되는 점이다. 부자들의 인권선언이 입으로만 만인의 평등을 외치며 재산권에 따른 권리의 불평등을 법의 이름으로 합리화한 것과는 다르다.


‘땅의 사유’ 부정, 평화주의로 연결돼

사유재산의 부정은 평화주의로 직결된다. 윈스턴리는 “전쟁이 부자를 더 부자로,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며 권력의 동맹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꿰뚫어 보았다.

디거스의 사유재산 없애기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들이 받는 숱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디거스 자신들은 폭력 사용을 거부했다. 디거스는 공유지와 황무지를 경작하는 것이 허용되기만 한다면, 영국의 모든 빈민들이 자신들의 실험을 따를 것이라 믿었다. 자신들이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면 전 영국 사회에 스며들 것이고 전 유럽도 그러할 것이고, 결국에는 부자들과 권력자들도 자신들에게 합류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폭력이 아닌 자신들의 ‘실험’과 ‘보기’로서 그렇게 될 것이라 믿었다.

너무 순진하다고, 경제사회적 조건이 그런 요구에 귀 기울일 단계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디거스의 이상과 실험은 오랜 세월 겉만 번지르르한 인권선언에 도전해온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에 면면히 이어져온 생각이며 팔과 다리로 옮겨졌던 실천이지 않았던가.

17세기의 디거스가 받았던 수난을 21세기의 ‘땅 파는 사람들’이 여전히 당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와 자유 무역으로 수탈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세계 최고의 전쟁광 미국의 전초기지를 마련해주려고 땅 파는 사람들을 땅에서 내모는 폭력이 오늘 평택에서 계속되고 있다. 17세기의 디거스가 품었던 믿음대로 우리가 ‘합류’해주는 일이 21세기의 땅 파는 사람들을 살릴 길일 것이다.

 

 

 


THE WORLD TURNED UPSIDE DOWN


In 1649 to St. George's Hill
A ragged band they called the Diggers came to show the people's will
They defied the landlords, they defied the law
They were the dispossessed reclaiming what was theirs.

"We come in peace," they said, "To dig and sow.
We come to work the land in common and to make the wastelands grow.
This earth divided, we will make whole.
So it can be a common treasury for all."

"The sin of property we do disdain.
No man has the right to buy and sell the earth for private gain.
By theft and murder, they steal the land;
Now everywhere the walls rise up at their command."

"They make the laws that chain us well;
The clergy dazzle us with heaven or they damn us into hell.
We will not worship the gods they serve:
The god of greed that feeds the rich while poor men starve."

"We work, we eat together, we need no swords.
We will not bow to the masters or pay rent to the ords.
We are free men, though we are poor.
You Diggers all stand up for glory; stand up now."

From the men of property the order came:
They sen thired men and troopers to wipe out the Digger's claim.
"Tear down their cottages. Destroy their corn!"
They were dispersed but still the vision carries on.

You poor, take courage. You rich, take care.
Thsi eart was made a common treasury for everyone to share.
All things in common. All people one.
"We come in peace," the order came to cut them down.
 
 

 

디거스의 노래; 뒤엎어진 세상

  
 1649년
성 조지 언덕에
디거스(the Diggers)라 하는 남루한 집단이
인민의 의지를 보이려 등장했다
디거스는 지주에게 도전했다
디거스는 법에 도전했다
디거스는 토지를 빼앗긴 사람들
자신들의 것이었던 땅의 반환을 요구하는
 
우리는 평화로 왔다, 말하기를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리려고
우리는 공동의 땅에 일하러 왔다
또 황무지를 경작하려 왔다
이 나뉘어진 땅을
우리는 완전한 전체로 만들 것이다
그래서 땅이 모든 사람을 위한 공통의 보물 창고가 될 수 있도록
 
재산이라는 죄악을
우리는 경멸한다
사적으로 갖기 위해 땅을 
사고 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도둑질과 살인으로
그들은 땅을 취했다
그들의 명령에 이제 사방에서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그들은 법을 만든다
우리를 꽁꽁 묶어두려고
성직자들은 천국으로 우리를 현혹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라고 저주한다
우리는 경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는
부자들을 배불리는 탐욕의 신에게는
반면에 가난한 이들은 굶주리고 있다
 
우리는 일한다, 우리는 함께 먹는다
우리에겐 어떤 무기도 필요없다
우리는 주인들에게 절하지 않겠다
지주들에게 지대를 지불하지도 않겠다
우리는 자유인이다
우리는 비록 가난하지만
디거스는 영광을 위해 모두 일어섰다
 
이제 일어서라
재산가들로부터 
명령이 떨어졌다
그들이 용역과 군대를 보냈다
디거스의 요구를 묵살하기 위하여
디거스의 오두막을 무너뜨리려고
디거스의 곡식을 파괴하려고
그들은 흩어졌고 오직 비전만이 남아있다
 
너희 가난한 이들은 용기를 가져라
너희 부자들은 조심해라
땅은 공통의 보고로 만들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만물은 공유이며
모든 사람은 하나이다
우리는 평화로 왔다
그들을 해치우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출처: http://cafe.daum.net/cchereandnow/9ZoL/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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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간다

 

이름하나못짓고의 우리는 간다...

가사를 받아적어보려고 노력했는데 중간중간 들리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아쉽다...

귀가...사오정이라...

 

가슴을 뜨겁게 하는 노래다...

들으면 들을수록 눈물이 나서...

마음이 먹먹해져서...

 

이 노래처럼 살고 싶다...

 

자꾸만...자꾸만...

그들처럼 변해가는 내 자신이 두렵고 경멸스러워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부끄럽다...

 

 

방금 다음에서 검색해서 찾았다...

 

"1649년 성 조지 언덕에 디거스(the Diggers)라는 남루한 집단이 인민의 의지를 보이려 등장했다"

우리는 간다 인민의 의지

우리는 도전한다 법과 질서 억압의 굴레

우리는 간다 빼앗긴 사람들

우리의 것 되찾기 위해 나간다


우리는 평화 모두의 땅

씨앗을 뿌려 황무지를 갈고 일할 뿐이다

나눠진 땅 이것은 원래

모든 사람들의 공동의 창고


그들의 땅 착취와 살인

누구도 땅을 사고 팔 권리를 갖지 않는다

재산은 죄악 경멸할 뿐

그들의 땅에 두른 벽을 허물라


그들의 법 우리를 가둬

탐욕의 신은 부자들을 배불릴 뿐이다

굶주리는 자 가난한 우리

우리는 법을 경배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어섰다 가난한 우리 

일하고 함께 먹는 우리 바로 자유인이다

어떤 무기도 필요치 않아

우리는 당신들에 절하지 않아


(간주)


이제 일어서라 군대가 온다

우리를 짓밟고 무너뜨리고 파괴하려고

이제 일어서라 우리는 간다

뒤엎어진 세상을 바로 세우러


우리는 평화 우리는 하나

만물을 공유한다 필요한 건 용기 뿐이다

우리는 간다 저들의 세상

뒤엎어진 세상을 바로 세운다

우리는 평화 우리는 하나

만물을 공유한다 필요한 건 용기 뿐이다

우리는 간다 저들의 세상

뒤엎어진 세상을 바로 세운다

 

============(원 가사 번역한 거)=============

 1649년
성 조지 언덕에
디거스(the Diggers)라 하는 남루한 집단이
인민의 의지를 보이려 등장했다
디거스는 지주에게 도전했다
디거스는 법에 도전했다
디거스는 토지를 빼앗긴 사람들
자신들의 것이었던 땅의 반환을 요구하는

우리는 평화로 왔다, 말하기를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리려고
우리는 공동의 땅에 일하러 왔다
또 황무지를 경작하려 왔다
이 나뉘어진 땅을
우리는 완전한 전체로 만들 것이다
그래서 땅이 모든 사람을 위한 공통의 보물 창고가 될 수 있도록

재산이라는 죄악을
우리는 경멸한다
사적으로 갖기 위해 땅을
사고 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도둑질과 살인으로
그들은 땅을 취했다
그들의 명령에 이제 사방에서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그들은 법을 만든다
우리를 꽁꽁 묶어두려고
성직자들은 천국으로 우리를 현혹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라고 저주한다
우리는 경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는
부자들을 배불리는 탐욕의 신에게는
반면에 가난한 이들은 굶주리고 있다

우리는 일한다, 우리는 함께 먹는다
우리에겐 어떤 무기도 필요없다
우리는 주인들에게 절하지 않겠다
지주들에게 지대를 지불하지도 않겠다
우리는 자유인이다
우리는 비록 가난하지만
디거스는 영광을 위해 모두 일어섰다

이제 일어서라
재산가들로부터
명령이 떨어졌다
그들이 용역과 군대를 보냈다
디거스의 요구를 묵살하기 위하여
디거스의 오두막을 무너뜨리려고
디거스의 곡식을 파괴하려고
그들은 흩어졌고 오직 비전만이 남아있다

너희 가난한 이들은 용기를 가져라
너희 부자들은 조심해라
땅은 공통의 보고로 만들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만물은 공유이며
모든 사람은 하나이다
우리는 평화로 왔다
그들을 해치우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출처는 차별없는 세상 꿈꾸는 활동가 밴드 - 다음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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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화갯벌 이야기

 

계화갯벌 이야기...

참 좋아하는 노래인데...

이번 G8잡는 고양이 페스티발에서 루드의 상상력의 연주를 녹음한 것이다...

사실...사전 허락도 없이 뜬 거라...조금 찔리기도 하지만...

뭐랄까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새만금이지만...계화갯벌이지만...이제는 막혀버렸지만...

그곳에 서서 그 바다에서 갯벌을 걷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렇게 희망을...그리고 생명을 노래할 수 있는 그 감수성이 참 좋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데...나는...

 

음악이란 것은 참 묘하다...

마음을 움직이고...생각을 움직이고...몸을 움직이고...삶을 움직인다...

 

뜨끔뜨끔 움찔움찔 들썩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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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 밤을 새는 것은 꽤 힘들었다...

이미 체력이 빠져있어서일까나...

게다가 양군님의 오카리나를...깨먹어버려서...

진짜 울뻔했다...

양군님이 그냥 괜찮다고 웃어줘서 더 나한테 화가 나버렸다...

맡겨놓은 것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애처럼 들떠서는...

 

요즘은 진짜 정말이지 매일매일이 축제다.

예전에 시청에서 운동화를 잃어버릴 때는 이렇게 광화문 앞에서 즐겁게 노래하고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전진 또 전진. 그것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수많은 사람들, 이런 저런 다른 생각들이 모여서 각자의 삶과 생각을 나누고 연대한다...

 

이 경험은 정말이지 나에게 있어 소중하다...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고 민중에 대한 불신과 의심, 분노가 꽉 차있던 나에게...이런 경험은...

 

언니 말이 맞다...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경멸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살아가고 있다...

내 기준 내 가치, 내 잣대로 잴 수 없을만큼.

 

모두가 살고 있는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의 고민은 아직 끝나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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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와 위장

나는 참 단순한 사람이다...

누구든 언제든 어디서든 금방 나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존재 자체가 낱낱이 까발려지는 것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특히나 웹 상에서 그런 강박은 나라는 존재를 은폐와 위장으로 점철시키고 수없이 많은 가면과 허울을 준비해두고 어두운 방 한켠에서 회심의 미소를 날리고 있다...

기실 알고 보면 그닥 볼 것도 없고 취할 것도 없는 구차한 삶에 불과한데도 그 삶의 테두리를 지켜보겠다고 아둥바둥대고 그렇게 덕지덕지 가려놓은 내 꼴을 봐달라고 허우적대는 모양새가 우습고 우스워서...

어느새 웃다가 또 어느새 울고 있다...

더럽고 추한 내 속내를 행여나 들킬세라...

꽁꽁 틀어쥐고...

쓰잘데 없는 생채기를 내고 곪아터져가면서도...

악을 쓴다...

 

좀 지겹다...

이런 나 자신이...

 

언제나 손에 잡힐 듯한...

 

그렇지만 언제나 멀리 가버리는 그런 꿈들을 뒤쫓으면서...

꿈만 꾸어대는...환상 속에서 헤매는 그런 보잘 것 없는 내 삶이

더없이 애처롭지만...

 

그래도 요즘은 사는 것이 다시 즐거워졌다...

 

사는 게 지겹고...

의미가 없어서...

구차해서...

구질구질하던 내 삶이 다시 조금씩 조금씩 온기를 찾고 있다...

멈춰버린 심장이 다시 조금씩 조금씩 뛰고 있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희망이 어디선가 움트고 있다...

 

다시 살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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