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껌딱지'가 아니다!

2009/03/05 17:55

[긴급 호소 겸 성명]


우리는 ‘껌딱지‘가 아니다!
-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 농성장 습격 사건에 열받으며 -



  첫 마디를 욕으로 시작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실 분들은 그래도 좀 우리를 지지하거나 좋은 마음에서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봤더니 첫 마디에 쌍시옷이 난무하면 좀 기분 나쁠 테니까요. 그래도 욕은 좀 해야겠습니다. “가져가지마 아 씨X 가져가지마! 성질 뻗쳐서 증말!” 이건 문화관광부에서 욕이 아니라 감정을 못 이겨서 하는 표현이라고 공식 인정 발표했으니까요.
  우리가 왜 이렇게 화가 났냐 하면 오늘 밤 7시 즈음에 경찰 버스 세 대와 종로구청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트럭 두 대가 서울시교육청 앞에 오더니 일제고사에 반대하며 스티로폼이랑 돗자리만 깔고서 앉아 있던 청소년들을 습격했기 때문입니다. 그 옆에 있던 해직 교사 분들의 농성장도 같이 뺏어가더군요. 청소년들 6~7명과 교사들 4~5명이 저항했지만 워낙 수에 밀려서 다 털렸습니다. 침낭 몇 개나 전단지 조금은 구출하긴 했지만요. 

(트럭에 매달려 있는 농성하던 사람들)

  다 실어가고 난 다음 교육청 앞을 보니까, “털렸다”는 말밖엔 안 나오더군요. 침낭, 바닥에 깐 스티로폼, 피켓, 전단지, 인형, 모금함 모두 뺏어가고, 남은 건 바닥에 다 짓밟아서 더럽혀진 종이랑 전단지 쪼가리들이더라구요. 못 가져간다고, 가져가지 말라고 트럭에 매달리니까 경찰들이 강제로 뜯어냅디다. 그 과정에서 트럭을 붙잡고 있던 한 청소년은 손도 좀 다쳤습니다.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헬멧 쓰고 방패 든 떼강도한테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농성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서도 한 번 철거를 당하긴 했지만 그때는 그래도 우리 짐은 다 구출했고 스티로폼만 집어갔습니다. 그때도 열 받았는데, 지금은 경찰들까지 동원해서 강제로 뺏어가는 저 무식함에 눈물이 납니다. 평화롭게 농성하는 것도 다 뺏어가고, 정말 어느 것 한 가지도 내버려두지를 않는군요. 

 

 

(폐허가 된 농성장...)

to 명박, 정택, 등등

  당신들 눈엔 우리가 서울시교육청 앞에, 당신들 가는 길 앞에 보기 흉하게 들러붙은 껌딱지처럼 보이겠죠? 청소년들이 성적 올려서 서울시와 대한민국 이름을 반딱반딱 빛내줄 왁스가 되어야 하는데 윤기는 안 내고 교육청 문 앞에 신경 쓰이게 눌러 앉아 있으니 그럴 만할 겁니다.
  요즘 명박이랑 정택이랑 님들 힘든 건 마음 넓고 착한 우리가 이해하겠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얼마나 힘들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가져갈 것도 없는 청소년 노숙 농성장에서 침낭이랑 스티로폼을 뺏어가나 싶습니다. 개념도 없지 논리도 없지 딱한 인생들인 건 벌써 알았지만 거 참…. 고통을 분담하고 같이 살지는 못할망정 더 빈곤한 우리 걸 뺏어가려고 하니, 이건 뭐 답이 안 나옵니다.
  그 덕에 빈곤한 우리가 스티로폼 새 걸로 사와서 농성장을 새로 깔았습니다. 종로구청 직원들이 일주일 뒤엔가 찾으러 오면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가져가는 과정에서 피켓이랑 스티로폼은 다 박살을 내놓고 뭘 돌려주겠단 건지. 새로 까니까 농성장 깨끗해져서 좋긴 한데, 돈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피켓도 그렇고 수고도 그렇고 다른 피해가 막심합니다. 그렇게 걷어가도 우리는 우리가 하기 싫어질 때까지 농성 계속할 테니까, 그쪽이 우리 치우려는 거 포기하십시오. 우리는 질긴 형상기억 껌딱지입니다. 껌딱지보다 큰 바위덩어리입니다. 살아있는 교육과 정치의 주체인 청소년들입니다. 당신들이 일제고사랑 경쟁교육을 고집하는 이상 우리는 계속 당신들 앞길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to 우리를 지지하는, 아니면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분들게

  힘없는 우리들은 밟히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자근자근 밟아주시는 저것들 하는 짓이 열 받습니다. 우리를 지지하는 분들에게 호소합니다. 아직 저희가 농성을 하는 것이나 ‘일제고사 반대 오답 선언’ 참가자를 모으는 것, 일제고사 반대 등교거부 행동을 하는 것 등이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좀 띄워주십시오. 관련 글 인터넷에 올라오면 추천도 팍팍 해주시고 주변 사람들한테도 입소문 좀 타게 해주세요. 아직 봄보다는 겨울에 가까운 이 날씨에 농성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넉넉한 분들은 후원도 좀 해주시구요. 그리고, 일제고사를 없애기 위한 행동에 나서주세요. 교육을 무한경쟁으로 몰아넣는 막장* 시험 일제고사를 비롯한 입시경쟁 정책들은 모두의 삶을 괴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싸울 거예요. “불쌍한 청소년들, 날도 추운데 쯧쯧” 같은 말하기 전에 같이 싸워요!


2009년 3월 4일
무한경쟁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모임 Say No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 농성에 참여하던 사람들 일동


* 저희가 일제고사를 “막장 시험”이라고 하는 건, 탄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육체 노동을 비하하려는 뜻이 아니에요. 그 분들의 노동 환경이 열악하고 건강에 좋지 않은 것에 빗대어 교육 환경이 끔찍한 것을 표현하려는 것이지요.

 

 

*

당신들이 얘기하는 그 법이 뭔지 이해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뺏어가면 좋습니까? 물뿌리면 장땡입니까?

 

한국 사회가 걱정되신다구요? 제가 보기엔 당신들 같은 사람들 몇 제곱이 교육한답시고 들어가 일하고 있어서 더 걱정입니다. 교육청은 대체 뭘 하는 곳인가요. 이 끔찍한 현실을 알고는 계신가요. 당신들이 정녕 교육을, 청소년들의, 하루하루 바싹 말라가는, 사는 게 아닌 삶을 아시냔 말이죠.

진작에 얘기 나올 때 씹지를 마시든가요. 저희가 그 앞에서 기자회견을 몇 번이나 했는데요. 몇 번이나 일제고사 반대 얘기했는데요. 

 

열불터져 죽겠습니다, 아주.

 

그렇게 싹 쓸어버리면 다 되는 줄 아시는 분들, 그냥 끝까지 함 가보자는 거죠?

 

당신들이 자꾸 일제고사 따위를 밀어붙인다면, 아니, 이미 밀어붙이고 있지요.

우리는 절대 밟혀죽지 않을 겁니다. 계속 싸울 테니까, 그리 알고 계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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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 왜 이러니, 아마추어 같이, 오답선언 고고씽, 일제고사 반대, 입시경쟁으로 몰아넣는 당신, 니가 교육을 알어?, 청소년 농성, 청소년 농성장 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