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홍련전과 콩쥐팥쥐전

category 관주와 비점 | Posted by 오씨 부부 | 2013/09/25 17:49


 

아주 어릴 적 그림책으로 봤던 <장화홍련전>과 <콩쥐팥쥐전>을 신원문화사 본으로 근래에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옥낭자전>도 함께 엮여있었지만 그다지 인상 깊은 작품이 아니어서 빼고 앞의 두 작품을 읽고 떠오른 생각을 간단히 메모해 둡니다.

 

먼저 전자는 장화와 홍련이 환생한 이야기까지 실린 것으로 보아 한문본이 아니고 한글본 중 하나인 듯합니다. <콩쥐팥쥐전>과 함께 계모와의 갈등을 다룬 ‘계모형 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전문학 전공자들이 많이 연구를 했을 것이므로 좀 다른 각도에서 왜 계모와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들이 널리 회자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계모는 본처 소생과 사이가 안 좋을까요? 단지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어서? 그러나 자신의 친자식이더라도 얼마든지 사이가 안 좋을 수 있고, 반대로 양자를 들여서 애정으로 잘 키우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정말 핏줄 문제일까 의심이 듭니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근대적 수명관리 시스템’이 등장하지 않아 여성들의 평균수명이 남성들보다 짧았다고 합니다. “수명관리 시스템”이라는 것은 보건, 영양, 경제적 평등, 위생적 주거환경, 행형제도, 복지제도, 정치체제, 사회안전망, 인구 정책, 일상의 각종 의사결정권 유무 여부 등등이 유기적 총합을 이룬 인구 관리의 핵심으로서 수명 연장을 위한 인간의 사고와 행위 일체를 말합니다. 수명 증가에 의학의 발전은 그다지 큰 영향이 없음도 이미 밝혀져 있지만, 아무튼 이 주제는 별도의 책을 써야 할 문제이니 여기서는 족보나 일기 등의 사문서 등을 통해 여성들의 사망 연령이 이미 입증되고 있으며 그로 미루어 부부 중 여성의 수명이 남성보다 15년~20년 이상 짧은 경우가 빈발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는 정도만 밝히고 넘어가겠습니다. 오늘날에는 한국을 포함해서 전세계적으로 여성 장수자가 많고, 남성이 더 장수하는 지역은 보고되고 있지 않으며 남녀가 동등한 정도로 장수하는 곳으로는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섬 정도가 유일하다고 하니,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셈이지요.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이유 중는 하나는 출산 중 사망이 오늘날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입니다. 다산에 대한 압력이 훨씬 컸기에 여성들로서는 임신할 때마다, 즉 2~3년마다 한 번씩은 죽을 위험을 넘긴 셈이지요. 지금이야 30대 후반에도 미출산 여성이 흔하지만, 100년 전만 해도 대개의 그 연령대 여성들은 적어도 4~5회의 ‘생사를 넘나든 위기’를 경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지배층 여성들에 대한 이중적 차별은 익히 짐작되거니와, 조금이라도 지체가 있거나 재산이 있는 집의 안주인들의 경우에는 야외에서의 육체노동도 거의 없이 고도의 남녀차별을 경험하며 자신의 삶에서의 선택권도 극도로 제한되어 만성적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있었을 것이고 영양이나 병 구완 등에 있어서도 남성보다 훨씬 제한된 서비스를 받았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평민 이하에서는 오히려 상황이 많이 달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부장제와 성 역할 분리의 정도와 무관하게 재산과 지위가 있는 지배계급 내에서의 여성 예속이 더 심한 것이 일반적이죠.

 

성 역할이 명확했던 전근대 사회의 지배층에서 아내가 일찍 죽을 경우, 남편은 자녀 양육과 가정사 전반을 주관할 여성을 후처로서 맞아들일 수밖에 없고 후처에게는 전처와 같은 ‘현모양처’로서 충실하게 성 역할을 이행할 것을 요구받게 됩니다. 동화 속 전처가 ‘현모양처’인 이유는 현실세계에서 후처를 길들이려는 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젊은 나이에 일찍 죽었다는 얘기는 남녀상열지사(?)를 한창 진행할 나이임에도 죽었다는 뜻이니 남성 입장에서는 일단 정서적ㆍ육체적인 면에서 아쉬울 것이고, 가정과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는 기회를 한 차례 놓치게 됨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러니 한 가족의 며느리이자 안주인 후보가 죽으면 모두가 아쉽게 되고 괜시레 요절한 그녀가 현모양처였던 것 같은 착각이 생기게 되겠죠. 그래서 설화 속에서 먼저 죽은 아내는 항상 ‘정숙한 현모양처’인가 봅니다.

 

한편 경제적 차원에서 보면 전처 소생과 후처는 자연스레 가부장의 재산을 둘러싼 경쟁자가 됩니다. 우리 전통사회는 18세기까지만 해도 남녀균등상속(전문 학술용어로는 미분화출계)이 보편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심심찮게 발굴되는 반가(班家)의 분재기(分財記)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율곡이 사임당의 부친을 외손으로서 봉사(奉祀)한 예에서 보듯 외손에게도 재산을 나눠주고 제사를 지내게 하거나, 심지어 문중 재산을 관리하게 한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엄격한 부계혈족 중심의 종법 질서는 우리 생각과 달리 조선 후기에나 널리 퍼졌다고 하며, 그나마도 워낙에 집안마다 상황이 달랐음을 감안해서 받아들여야겠습니다. 물론 이것도 물려주고 물려받을 지위나 재산이 있는 사람들한테나 해당되는 얘기이겠지만, 어쨌거나 1/n 하는 상속의 풍속 때문에 양반가는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후대로 내려가면서 재산이 줄고 가문이 몰락하게 됩니다. 조선 후기 지배층의 몰락에 대응하여 등장한 것이 큰아들에게 몰아주기(장자상속)라는 것이지요.

 

이런 각도에서 보면, 대개의 계모형 소설에서 양반지배층의 말단에 위치한, 향반 수준으로 재산은 그럭저럭 있어서 동리에 제법 이름이 있으나 딱히 '자리'로 쳐주기에는 좀 민망한 좌수니 생원이니 하는 사람들의 집안이 단골로 등장하는 것과 잘 연결지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예 가난하면 일찍부터 가족이 흩어지거나 계모를 들일 수 없거나, 들어와도 일단 먹고 사는 게 급해서 식구들이 단합을 하게 됩니다. 계모 문제가 불거지는 건 적어도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집에서 재산을 둘러싸고 상속 다툼이 벌어진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자기 핏줄이 아니어서 구박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사실 계모라는 존재는 굉장히 신화적인(=원형적인) 상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에게 야단 맞고 나서 “지금의 엄마는 날 낳아준 친엄마가 아닐거야”라는 상상을 어렸을 적에 한번쯤은 한다고 합니다. 구태여 표현하자면, 엄마가 엄마 같지 않게 느껴지거나 혹은 엄마와 타인의 중간에 있는 존재를 표현하는 것이 바로 계모라는 것이죠.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결혼하면 여자가 남자 집에 가서 살게 되는 부거제(partilocal) 사회에서 전근대 사회에서 여성 혼인 적령기가 16세~18세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많은 여성들이 친어머니 보다는 시어머니와 더 오래 같이 살게 됩니다. 내 외할머니도 18세에 시집와서 40년간 시어머니인 내 외증조모를 모셨으니 이런 얘기는 주변 노인들에게 물어보면 쉽게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전근대적 친족 관계 속에서 “엄마 아닌 엄마”와의 갈등에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공감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는 거죠. 친엄마라 해도 오빠와 남동생을 더 챙기는 모습에 오늘날에도 많은 여성들이 씁쓸한 기억을 갖고 있는데, 하물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겁니다. 당연히 그녀들의 “엄마 아닌 엄마”와의 갈등에 대한 원형적 상상은 현실 속에서 지금보다도 흔했을 계모와의 경쟁과 갈등에 대한 기억과 합쳐져 구전문학이 되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얘기들이 계모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후처를 맞는 돈 많은 남성이 대개 젊은 여자를 맞아들이는 건 동서고금에 흔한 일인데(그게 좋다거나 당연하다는 게 아니라!), 대개는 전처 소생들로부터 돈 노리고 들어왔다는 의심부터 사게 마련입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리지 않으면 그나마 서먹하게만 대하는 정도에서 수습이 되겠지만, 아직 상속, 특히 재산 분배 작업이 안 끝났으며 자식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집에서는 상당한 갈등과 견제가 생기고, 여기에 후처가 아이라도 낳는다면 그야말로 암투가 시작됩니다. 전처 소생들보다 어려서 더 챙길 수밖에 없는 자기 아이를 챙기는 것조차 편애라고 오해를 사기 쉽습니다. 물론 전처 소생이 아예 어리거나 분배를 이미 받은 상황이면 얘기가 또 달라지겠지만, 여하튼 이 모든 상황이 뭉쳐서 ‘계모’와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들이 떠도는 것 같습니다. 이제 아버지가 나이가 많고 자식들도 장성ㆍ독립하여 재산 분배가 끝난 상황에서 계모와의 갈등을 다루는 이야기들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 이유를  눈치채셨을 겁니다.

 

<장화홍련전>이 됐든 <콩쥐팥쥐전>이 됐든 핵심은 가족 구조와 재산 다툼의 문제인데, 계모의 악행과 불쌍한 아이들을 다룬 권선징악의 이야기로만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한 안 좋은 인식들이 대다수 선량한 후처들에게 흠집을 내고, 현실 속의 '계모'인 시어머니들과 관계맺기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간혹 전근대사회의 가족문화를 무턱대고 미화하거나, 옛 이야기를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권선징악의 메시지만 읽어내는 경우가 있는데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남의 아이를 자기 아이처럼 성실하게 잘 기른 수많은 후처계모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이런 이야기들은 이제 그만 읽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혼과 재혼이 세 집 건너 하나씩 있다고 할 정도의 시대인데 새로운 가족 관계를 정립하는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권해야 옳습니다. <콩쥐팥쥐전>을 보더라도 주인공 콩쥐의 신산한 고생에는 사리분별 못하는 남성 어른의 잘못이 큽니다. 그러나 모든 잘못은 계모와 배다른 동생으로 미뤄지죠. 후처의 악행도 눈치 못챈 콩쥐 아버지나 자기 부인 얼굴 바뀐 것도 모르는 콩쥐 신랑, 또 <장화홍련전>의 배좌수 역시 무력하기 그지 없는 늙은이에 불과합니다. 무능하고 집안일이나 가족 관계에 둔감한 남성에 대한 원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으니 전래동화 중 가장 유명한 이 두 이야기를 조금은 비판적으로 읽어도 좋을 듯합니다.

 

계모와의 갈등 말고도 생명이 꽃에 비유되거나(꽃이 태몽이라거나 죽어서 연꽃이 된다는), 판본에 따라 주인공들이 환생을 하는 것으로 있는 점 등은 두 작품 모두에서 보입니다. 이런 점은 원앙부인본풀이를 비롯한 우리네 샤머니즘신화들과 관련되는 것같습니다만, 공부가 짧아 그냥 짐작만 해볼 따름입니다. 팥쥐를 죽여 젓갈을 만든다거나 풍도지옥에 떨어진다는 내용을 보면 중국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9세기경 중국 문헌인 『유양잡조(酉陽雜俎)』에 콩쥐이야기와 유사한 내용이 이미 실려 있는 걸 보면 보다 확실해집니다. 거의 비슷한 내용인 신데렐라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부뚜막신인 조왕(결국 불의 신)과 관련이 있을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비교민속학적 연구들이 있지 않을까 싶군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가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원정을 통해 전파되었다는 설이 널리 받아들여지는데, 아마 콩쥐이야기도 그런 게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장화ㆍ홍련ㆍ콩쥐 모두 연못에서 죽거나 죽은 뒤 연못에 던져지는데 연못이나 동굴 등은 동서양의 많은 의례에서 죽음/재생과 연결되는 상징임이 분명합니다. 단군신화를 봐도 동굴은 새로운 존재로의 탄생을 위한 장소입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위 등의 변화 과정에서 벌어지는 것이 통과의례이고 그 가운데 가장 극적인 의례가 죽음과 재생의 의례라면, 두 이야기 모두 죽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인생의 전반과 후반을 가르는 일종의 통과의례적 장치임이 분명합니다. 물론 현실에서 그것은 혼인이 되며, 그것을 통해 '전생(중의적으로는 전반부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되는 필연적인 해피 엔딩의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죠. 이밖에도 콩쥐와 신데렐라의 경우 신발이 갖는 상징도 있을 텐데, 구전설화에 대해서는 공부가 많이 모자라 나름의 해석조차 못하여 부끄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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