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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자구?

동지가 정세와 노동에 쓴 글

 

 

               함께 살자구? 

 

                                                     - 노동예술단 선언(몸짓선언) 박현욱

 

 

 

 

“차라리 함께 죽자고 해라”


금속노조 간부의 조끼 뒤에 찍혀있는 “함께 살자”라는 구호를 보면서 뒤따라오던 한 조합원이 중얼거린다.




참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구호임은 확실하다. 바라건데 그 내용이 이 땅의 모든 억압받는 민중이 ‘함께 살자’는 외침이길... 뭐... 그런 의미도 없다고 할 순 없겠으나 여러 정황 상 보건데 필경 자본가들에게 ‘우리도 좀 같이 살자’라고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혹여 아니라 해도 억울해 하진 말아 주시길... 앞서 말한 조합원의 반응만 보더라도 그 문구에서 그런 해석을 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건 아닌 것 같으니 오해라면 분명 오해받을 짓을 한 것만은 확실한 것일테니.


경제가 어려우니 자본가들은 곳간을 열어서 재물을 풀라고 민주노총이 말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이 ‘함께 살자’는 구호가 의미하는 게 내가 느낀 바 대로일 가능성이 훨씬 크지 않겠나...



어쨌든 슬프다. 사실은 내 눈에 그 ‘함께 살자’는 구호는 ‘제발 좀 살려줘’라고 보이니 말이다. 역사의 주인이요, 세상 만물을 일구어 내며 진보의 주체로서 거침없이 몰아쳐 갈 노동자 계급의 대표 조직이 온 몸에 달고 다니는 으뜸 구호에서 그런 느낌밖에 가질 수 없으니...참...차라리 “가자!! 자본의 곳간을 부수러!”뭐 이 정도쯤 되어주면 몰라도...


 

“박동지, 정말 우리가 잘못 하는 건가요?” 한 공장의 노동조합 간부가 뜬금없이 물어본다. 뭔 소린가 했더니 웬만하면 양보교섭이요, 사측에 백지위임하는 게 대세인 지금에 임금투쟁 준비하겠다고 하니 주변 노동조합 간부들이 본인들을 이상한 놈 취급한다는 거다.


“잘못하는 거 맞죠. 그런게 대세가 되도록 노동조합 간부로서 놔뒀으니까요.”



어려운 상황이니까 한발씩 양보하라고 한다. 이게 뭔 소린가?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있는 돈 만원을 털렸다. 마침 경찰이 지나가길래 신고를 했더니 경찰 하는 말이 “두 사람 다 한발씩 양보해서 강도 씨는 5천원만 가져가셔. 어때 공평하지.함께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거 아닌가. 애초에 노동자의 임금투쟁이라고 하는 게 얼마나 덜 착취당할 거냐의 문제 아니던가.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를 착취하는 놈에게 좀 같이 살자고 부탁을 해야하는 처지니 이거 참.




얼마전 한 자동차 관련 노동조합의 간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미국 빅3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이 상황에서 고연비 엔진 기술을 갖춘 우리 한국 차들이 시장을 적극 개척하면 충분히 물량을 확보하고 고용을 안정시킬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 동지의 조끼에 ‘함께 살자’라고 써있다. 그 ‘함께 살자’는 구호의 ‘함께’는 적어도 미국의 ‘노동자들’이 아니라 한국의 자본임은 확실한 듯하다. 뭐 굳이 미국 한국 따지지 않아도 사정은 똑같지 않겠는가? 물량을 확보하는 것만이 고용을 보장하는 살 길이라고 생각하는 한 자신이 속한 회사의 제품이 시장을 차지해야 하는 것이고, 경쟁사의 노동자들은 아무래도 함께 살 처지는 못 되는 거고...



그 동지와 대화를 나누며 과잉으로 인한 공황인데 물량을 확보해서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하는 생각으로는 현재 노동운동은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우린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일자리 국가가 책임져라, 책임 못지면 국가를 우리에게 내놓아라’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 미안하지만 우린 저들과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적잖이 당황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허긴... 회사 간부들의 가슴에 달려 있는 것과 똑같은 뿔명찰을 노동조합 간부들의 가슴에도 달게했으니...심지어는 제법 유명한 노동조합의 조끼에는 “노사동등”이라는 네 글자가 찍혀있으니...동등하게 회사의 운명을 ‘함께’ 책임져야 하는 것일테고, 물량이 달려 어려운 상황이 되면 저들과 ‘함께’ 살아야 하기에 임금을 반납하는 것은 당연하고 무척 책임감 있고 정의로운 일일테고...



아까 조합원이 했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함께 살자구? 차라리 함께 죽자고 해라...”공황기를 살아가는 노동자가 뼛속부터 느끼는 괴로움을...분명히 함께 살 길이 없는데... 그럼에도 믿고 의지할 노동조합 하는 말이 가져다 줬을 절망감임음...



어쨌거나 난 함께 죽을 생각은 없다. 그 동지 다시 만나면 왜 함께 죽냐고 꼭 말해주고 싶다. 우린 살아야지. 적어도 우리가 일해 만들어 놓은 그 많은 생산물 때문에 우리가 왕따 당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 이제 좀 저들에게 단호하게 말하자 “당신들과 도저히 함께 못 살겠으니 우리가 만들어 놓은 생산수단과 생산물들을 놓고 조용히 꺼져 주시라”고...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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