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참, 사람도 나이를 드니 소리가 쇠하는구나... 예전엔 더 좋았던거 같은데.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면서 결코 정결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욕망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것을 보고 윤동주의 서시를 생각했다.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
정말 잎새에 이는 바람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그것이 정말로 괴로웠을까?
괴로워해야 할 것에 괴롭지 않은 자신이 괴로운 건 아니었을까?
잎새에 이는 바람에 불과하기를 바란 건 아니었을까?
등등등.
스물 대여섯의 어린 친구라면 그럴수도 있긴 하지.
하지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어찌 멈출 수가 있겠는가.
" 黑夜已深、白晝將近.我們就當脫去暗昧的行為、帶上光明的兵器 . "
지금부터 대략 80여 년 전 지리산 천은사 삼일암(三日庵)이라는 선원에서 어느 해 겨울 통도사에서 계신 박성월(朴性月, 1850~1926) 스님을 모셔놓고 전국에서 난다 긴다하는 선객 50여명이 모여 한철 정진을 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천은사 큰절에 나이 70여세 되는 호은(湖隱)스님이 있었다. 일찍이 출가하였으나 강당이나 염불당, 또는 기도처만 사판승으로 다녔기 때문에 그 방면에는 아는 것이 많았으나, 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호은스님은 대처승이었다.
하루는 결제 전날 입승 스님에게 와서 "소승도 큰절에서 오르내리면서 다른 스님네와 같이 공부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입방을 원했다. 입승스님은 "한 철 양식을 미리 내어도 방(榜)을 받을 수 없는데 어림도 없소. 그 따위 말은 하지도 마시오."하고 호통을 치며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 뜻을 굽히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으면서 사정사정하였다. 그러자 그 사실을 아신 조실 스님이 "우리 대중이 공부하는데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받아주어야 한다. 그 노장님 뜻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느니라. " 하시고, 그 노장님에게 "이왕이면 아주 올라와서 공부하시는 것이 좋지 않겠소?"하시었다. 그러나 그 대답이 가관이었다.
"돈 빌려준 문서와 쌀 빌려준 문서를 지켜야 하고, 더구나 우리 마누라 궁둥이는 떠날 수 없어서......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당시 최혜암스님 및 대중 모두는 조실스님을 모시고 보람 있게 한철 공부를 잘 성취하려고 하였는데, 이 말을 듣고 나니 모두 신심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조실스님의 명령이라 대중의 불평도 어쩔 수 없었다. 결제가 시작되고 노장스님은 큰절에서 오르내리면서 참선을 하였는데 본인은 시간을 잘 지키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으나 가끔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어떤 날은 한 낮이 되어 오기도 하였고, 어떤 때에는 추운 새벽에 수염에다 고드름을 주렁주렁 달고 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대중들이 모여 앉아 공부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는 깜깜 절벽이었다. 그래서 대중은, "원숭이가 참선하는 흉내만 내고도 천상락(天上樂)을 받았다고 하는데 저런 자도 무슨 인연이 있을까?"하고 비웃었다.
마침 반 살림이 끝난 어느 날 조실스님이 법문을 마치고 법상에 내려오셔서 차를 마시고 계셨다. 그때 최혜암 스님이 6년 전 혜월(慧月: 경허선사 법제자)스님 회상에서 들은 법문이 생각나 성월(性月) 조실스님께 여쭈어보았다.
그 내용은 어떤 수좌가 혜월스님에게 묻기를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騎牛覓牛)는 말이 있는데 그 도리는 어떤 도리입니까?"라고 묻자, 혜월스님은 그를 보시고 "왜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혜월스님이 그 젊은 수좌에게 대답하신 말씀이 잘한 것입니까?라는 말이었다.
듣고 있던 성월스님은 혜월스님에게 방망이를 내리는 뜻으로 "그 늙은이가 그래가지고 어떻게 학인들 눈을 뜨게 하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혜암스님이 "그럼 조실스님 같으시면 그 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하고 묻자, 조실스님은 "그 젊은 수좌가 혜월스님에게 묻듯이 그대가 내게 물어보게."하셨다. 혜암스님은 가사 장삼을 수하고 큰 절을 세 번 드린 뒤에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騎牛覓牛)는데 그것이 무슨 도리입니까?"하고 물었다.
조실스님은 "그대가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니, 그 찾는 소는 그만두고 탄 소나 이리 데리고 오너라."하셨다.
혜암스님은 말이 막혀 어리둥절하여 앉아있었고, 여러 스님들도 멍하니 앉아만 있었는데, 그때 참선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늦게 공부를 시작한 호은스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춤을 덩실덩실 추며 "대중 스님들은 몰라도 나 혼자만은 알았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곧이어 "탄 소를 잡아 대령하였으니 눈이 있거든 똑바로 보시오."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때 대중은 모두 웃으면서 "어지럼병이 지랄병이 된다더니 저 노장님이 이제 미치기까지 하는구나."하고 비웃었다. 그러나 조실스님은 그러지들 말라 하시고 그 노장님을 조실 방으로 불러 불조(佛祖)의 공안에 대하여 차근차근 물어보시니 하나도 막힘 없이 다 대답하므로 조실스님은 그 노장님을 깨달았다고 인가를 하였다. 조실스님이 대중들에게 법상을 차리게 하고 높이 앉게 한 후 대중들 보고 3배 하게 하니, 호은 노장이 툭 터진 목소리로 법당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한 소리를 읊었다.
홀문기우멱우성 忽聞騎牛覓牛聲
돈각즉시자가옹 頓覺卽時自家翁
비거비래법성신 非去非來法性身
부증불감반야봉 不增不減般若峰
홀연히 소 타고 소 찾는다는 말을 듣고
즉시 자기의 주인공인줄 깨달았네.
오고 감이 없는 것이 법성신이고
늘지도 줄지도 않는 것이 반야봉이라.
이것이 바로 호은 노장의 오도송(悟道頌)이었다. 이 소리를 들은 당시 젊은 최혜암스님은 눈앞이 캄캄하여지고, 사흘 동안은 먹는 밥이 마치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았다고 하였다. 또한 그때 대중 가운데에 박추월(朴秋月)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이것을 듣고 돌아앉아 꼬박 16일 동안을 단식하며 지독하게 정진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이 화두 통명(通明)은 못하고, 아래 윗니가 모두 솟고 내려앉아 거의 죽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혜암스님는 거의 백리 길을 다니면서 약을 구해 겨우 박추월스님을 살렸다고 하였다. 당시 공부 잘한다고 뽐내던 수십 명 선객들이 비웃고 업신여기던 그 노장님이 그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그 때 그 노장님이 조실스님 앞에서 큰 소리로 "조실스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겁(永劫)으로 무명(無明)속에서 헤맬 뻔하였습니다."하면서 흐느껴 우는 것을 혜암스님이 직접 보았다고 하였다. 그 뒤 그는 강원에서 불경 공부하던 몇 명의 제자들을 모두 불러내 선원으로 보내 참선 공부하게 하고, 떨어지기 싫어하던 마누라도 한 살림을 차려 따로 살게 마련해주더니, 해제하기도 전에 큰 사찰인 금강산 석왕사의 조실 스님으로 초청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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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滿空禪師 제자인 蕙庵禪師의 법문집에 나오는 내용이란다. 예전에 어디서 봤을때 하도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역시 웹을 뒤지니 나오네. 참, 후반부에 나오는 젊은 스님네들의 황망함과 낙담이 어찌나 생생하게 동감이 되는지, 원.
2. 어쨌든, 글쎄 세상이 이렇다니깐.
타이페이에 들른 김에 산 책들. 간만에 뿌듯한 쇼핑을 했다.
뭐부터 읽을 지 고민중.
1. Kierkegaard 책을 있는대로 긁어 왔고,




2. Borgess 논픽션.

3. 어둠의 왼손도 한 권. 재미가 있을라나.

역시 丈夫一大事, 혹은 MAGNUM OPUS.
결국 스스로에게 물을 수 밖엔.
HBO에서 우연히 보게 됐다. 왜 이런 영화를 모르고 넘겼을까?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은,
“베토벤의 방문 앞에서, 그가 새 곡을 놓고 저주하며 신음하고 노래하는 것을 들은 한 친구가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 드디어 베토벤이 문을 열었다. 그는 마치 악마와 싸웠던 사람 같았고, 그의 격노를 피해 요리사와 하녀가 떠났기 때문에 36시간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있었다.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
편벽되지 않으면 삶의 고갱이에 이르지 못하는......것일까? 라훌라, 라훌라....

주여! 우리에게 가치없는 것에 대해서는 스치고 지나갈 수 있는 눈을 주시고 당신의 모든 진리에 대해서는 그 진리를 분명히 볼 수 있는 혜안을 갖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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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는 병' 서문 앞에 나오는 구절. 알베르티니란 사람의 설교문에 나오는 글이라고 함.
작은 남비에 물을 올리고 나서 한참이 지나도 끓는 기색이 보이지 않아 다가가보니, 갑자기 '덜컹' 하면서 끓어 오르기 시작한다. 혼잣말로 '유난스럽게도 끓네,' 라고 말하는데, 나도 저처럼 끓어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조용히 끓고 있는 물을 바라보면서, 나는 '奈若何, 奈若何,' 라고 중얼거렸다.
...
Of all ridiculous things, it seems to me the most ridiculous is to be a busy man of affairs, prompt to meals and prompt to work. Hence when I see a fly settle down in a crucial moment on the nose of a business man, or see him bespattered by a carriage which passes by him in even greater haste, or a drawable opens before him, or a tile from the roof falls down and strikes him dead, then I laugh heartily.
...
라고 Kierkegaard 님이 Either/Or 에서 말씀하셨단다.
다른건 모르겠지만 뭔가 진정한 핵심에 다가가려면 'retreat from the worldliness to infinite resignation'이 필요하고, 그런 경우 'insane'한 인간으로 취급당하거나 '비웃음거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은 정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凡俗으로부터의 비웃음....은 사실 두려운 것이긴 하다. 역시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 해. -_-;;
......
맑은 7월의 시원하고 달밝은 밤이어서, 그들은 동이 틀 때까지 침대에서 시시덕거리며 놀았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프르덴치오 아귈라의 일가친척들이 내는 통곡소리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날 있었던 일은 명예를 걸고 싸운 정당한 결투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두 사람은 양심에 꺼림직한 뒷맛이 남았다. 어느날 밤, 잠이 오지 않아서 물을 마시러 마당의 우물가로 갔던 우르슬라는 물독 옆에 서 있는 푸르덴치오 아귈라를 보았다. 그는 납덩이처럼 굳은 슬픈 표정을 짓고, 수염새풀로 목에 뚫린 창자국을 막으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르슬라는 무서움보다 가련함을 느꼈다. 우르슬라는 방으로 돌아가 조금 아까 본 것을 남편에게 얘기했지만 그는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해서 그런 헛것이 보이는 거야.」이틀이 지나서 다시 밤에 우르슬라는 목에 말라붙은 피를 수염새풀로 닦아내려고 애쓰는 푸르덴치오 아귈라를 목욕탕에서 보았다. 또 어느날 밤에는 그가 빗속에서 방황하는 것도 보았다. 환상에 사로잡힌 아내 얘기를 듣다못해 화가 난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창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랬더니 죽은 사람이 슬픈 표정을 짓고 정말 그곳에 있었다.
「어서 지옥으로 가버려라!」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죽은 사람에게 소리쳤다. 「돌아올 때마다 내가 다시 죽여줄 테니까.」
푸르덴치오 아귈라는 도망치지 않았고,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도 감히 창을 던지지 못했다. 그 다음부터는 그는 편안히 잘 수가 없었다. 그는 빗속에서 만난 그 죽은 사람의 표정에서 본 헤아릴 수 없는 외로움과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리워하는 깊은 향수와 수염새풀을 적시려고 집안에서 물을 찾으려던 그 초조감 때문에 고통을 느꼈다. 「죽어서 무척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그는 우르슬라에게 말했다. 「그가 얼마나 외로워하는 지 한눈에 당장 알겠어.」우르슬라는 그 말에 감동을 했고, 다음에 스토브 위에 놓인 물통 뚜껑을 열려는 푸르덴치오 아귈라를 다시 보고 그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낸 우르슬라는 집안 곳곳에 물항아리를 즐비하게 늘어놓았다. 어느날 밤 자기 방에서 상처를 씻고 있는 그를 발견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걱정 말아, 푸르덴치오! 」그는 말했다.「우린 곧 여기서 떠날 거야. 아주 먼곳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어. 그러니까 이제는 평화롭게 잠들어도 좋아. 그리하여 그들은 산맥을 넘게 되었다.....
- 백년동안의 고독, 안정효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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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려고 누웠다가 이 구절이 생각나서 뒤져봤더니 어디선가 나온다. 왠지 침대에 누워있으면 그 긴 책중에서도 꼭 이 구절이 생각나면서, '수염새풀로 목에 뚫린 창자국을 막으려'는 푸르덴치오 아귈라가 자꾸 생각이 난다.
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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