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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리핑]일다

민주사회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없다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에 반발

김영선 기자
2007-06-11 18:35:20

 

행정자치부가 4월 23일 ‘대한민국 국기법’(이하 국기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하자, 시민사회가 반발하고 있다. 시행령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

그 동안 한국에서는 ‘국기에 대한 맹세’는 법률이 아닌 규정으로 존재했다. 올해 1월 국기법이 ‘국기에 대한 경례’ 조항을 담아 신규 제정되었으나, 법 상에서도 ‘국기에 대한 맹세’를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이는 맹세의 존폐 여부를 두고 각 정당이 입장 차이를 보여, 국회에서 이 내용을 제외시켰기 때문.

그러나 행정자치부는 법 상에서 제외된 맹세를 이 법의 시행령에서 규정했다. 시행령이 통과되면 국기에 대한 경례는 물론, 맹세도 법령의 지위를 얻게 된다.

애국심 강요하는 건 독재의 산물

행정자치부가 국기법 시행령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포함시켰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사회에서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에, 행정자치부는 기존 국기에 대한 맹세를 수정하는 안을 제시했다. 수정안은 다음 세 가지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서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위하여 국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사랑과 자유와 평등의 이름으로 국민의 의무를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써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하지만 시민사회 각계에서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권운동사랑방,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등 85개 인권사회단체들은 11일 오전,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폐지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국기법 시행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이들 단체는 2003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서 고등학교 입학을 거부당한 박준규씨의 사례와, 2006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 것은 국가공무원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라는 이유로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은 이용석 교사의 사례 등을 들었다. “경례와 맹세는, 법제화 이전부터 피해자들을 양산해왔다”며, 앞으로 피해가 더 증폭될 것으로 예상했다.

참가자들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가 “일제 잔재”이며, 개인의 내심을 국가가 획일적인 방식으로 외부로 표현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애국심을 강제나 훈육을 통해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교육적 양심에 따라서, 혹은 우상숭배를 하지 않겠다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거부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비판하고 거부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박탈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국제결혼 이주여성, 이주민에 대한 ‘차별’

기자회견에서는 국기법 시행에 반대하는 김유현, 오민석 등 102명의 청소년들이 성명을 발표하고 거부선언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일 민족감정에 기대어 국기에 대한 맹세가 (굳이) ‘일제의 잔재’라는 점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며, 대신 “히틀러나 박정희 등을 떠올려 보라”고 말했다. “애국을 강요했던 사람들치고 평화로운 세상 만든 이 없었다”는 요지다. 이들은 “인간이 애국자이기 이전에 인간답게 살려면 어떻게 하는가부터 먼저 생각하라”며 정부를 질타했다.

기자회견에 학부모 입장으로 참석한 김태정씨는 “5, 6살 된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애국가를 2절까지 외우는 교육을 받더라”며, “민주화를 외쳤던 6.10 항쟁을 기리는 행사에서조차 국기에 대한 맹세가 행해지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상황을 반성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조국과 민족’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 내용이 인종적, 민족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라는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우삼열 사무국장은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사회주의로 인해 여성인권이 (한국에 비해) 비교적 높았던 나라의 여성들이, 한국에 와서 한복을 입고 절을 하는 ‘예절’ 교육을 받고 있다”며, “국기에 대한 맹세로 요약되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이기적 국가주의는 이주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요소”라고 꼬집었다.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반대하는 인권사회단체들은 행정자치부 측에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안’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 조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국기법에 대한 시정 권고와 의견 표명을 촉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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