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자라고 싶지 않았다. 작은 몸으로 그냥 살고 싶었다. 몸이 자라면 무엇인가 되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되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른들을 싫어했다. 그러나 자라는 것이 겁났고, 자라더라도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던 처음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나도 모르게 자라 작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그리고, 정신작업을 하는 사람들까지 다른 일을 하는 기술사회의 어른들처럼 태연한 얼굴로 귀중한 것들을 골라 배반하고, 반쯤은 장님이 되어 사태파악도 못한채 적응 기술만 익히고, 그것도 모자라 오만과 무지 무능에 악의의 옷까지 둘러 감싸 불쌍하게도 열등해져 끝내는 그것들의 희생물이 되어갈 때, 도도새처럼.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날개가 퇴화하여 멸종했다는 한 마리의 불쌍한 도도새가 되었다. 어느 한 사람의 영향으로 이렇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이다. 그에게는 책임이 없다. 신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다만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면 신은 인간의 모습 그대로 만들어졌을것이라고 그가 쓴 적이 있나 없나 나는 알고 싶었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그에 대해 내가 알고있는 것은 세가지이다. 그의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라는 것, 그래서 그는 도스토예프스키답게 글을 썼다는 것,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도스토예프스키답게 쓴 글을 남기고 이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감동을 받았다. 얼마 전에도 나는 우리가 잘아는 비평가와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그의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렇죠"
비평가가 말했다.
"그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였기 때문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니면 도저히 쓸수 없는 글을 썼습니다"
"반갑습니다"
내가 말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죽었죠. 그렇지만 그는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바른 지적입니다. 그는 절대로 죽은 사람이 아니죠"
"그는 거듭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가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비평가의 말을 듣고, 살아 있느나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하늘을 보면 안 된다고 나는 말했다. 그러자 비평가는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그는 담배를 빨아대었다.
그러면 우리는 좀처럼 하늘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비평가는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그날의 대화를 우리는 슬픈 마음으로 끝냈다. 비평가가 헤어지기 직전에 다음에 나를 만났을 때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만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 싫었다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작가가 되었으나 나는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작가라고 꼭 글을 써야 한다는 법은 없다. 나는 없는 법에 감사하며 우리가 사는 도시에 낯선 무엇이 기어들어와 사람들의 본성에 상처를 입히며 자리를 잡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결국 쓰고 말았다. 어른들 때문이었다. 우리 동네의 어른들은 한사람 한 사람의 행복의 무게를 달아 더한 다음 전체 사람수로 나누어 행복의 평균치를 냈다.
질도 제쳐놓고 양만 문제삼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아는 난장이의 실질행복은 마이너스 1백37kg이었는데 동네 어른들이 발표한 우리 전체의 행복의 평균치는 66kg이었다. 나는 난장이를 찾아가 물었다.
"사람들이 행복을 달러 왔었습니까?"
난장이는 힘없이 대답했다.
"왔었죠. 그렇지만 달아 볼 필요도 없다면서 그냥 갔어요"
"얼마라고 적지 않던가요?"
"적었죠. 0이라고 적더군요"
"아저씨의 행복이 어떻게 0이나 됩니까?"
"마이너스는 인정하지 않는대요"
글은 쓰지 않았지만 나는 작가였다. 이 이상 슬픈 일은 있을수 없다고 나는 작가로서 생각했다. 마이너스는 신이 인정했다. 그리고 행복은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달 수도 없는 것이다.
어른들은 그것을 달아 나타내기 위해 지수화의 기술개발을 꾀했고 결국은 마음의 상태를 몸무게처럼 달아 kg으로 적고 있었다. 그래서 난장이의 이야기를 썼다. 난장이의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몇번이나 울었다. 그렇게 쓴 이야기가 한권의 책으로 꾸며져 나왔다.
제책소에서 나의 책에 울긋불긋한 옷을 입혔고, 그것도 모자라 비닐로 또 쌌다. 많은 사람들이 난장이의 이야기를 읽고 눈물이 나 혼났다고 말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경쾌하게 들렸다. 말할 수 없이 창피하고, 말할 수 없이 슬픈 일이었다.
나는 스스로 하늘을 보지 않기로 했다.
조세희 / 부끄러움 / 경향신문 1978년 9월 30일
어렸을 때 나는 자라고 싶지 않았다. 작은 몸으로 그냥 살고 싶었다. 몸이 자라면 무엇인가 되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되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른들을 싫어했다. 그러나 자라는 것이 겁났고, 자라더라도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던 처음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나도 모르게 자라 작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그리고, 정신작업을 하는 사람들까지 다른 일을 하는 기술사회의 어른들처럼 태연한 얼굴로 귀중한 것들을 골라 배반하고, 반쯤은 장님이 되어 사태파악도 못한채 적응 기술만 익히고, 그것도 모자라 오만과 무지 무능에 악의의 옷까지 둘러 감싸 불쌍하게도 열등해져 끝내는 그것들의 희생물이 되어갈 때, 도도새처럼.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날개가 퇴화하여 멸종했다는 한 마리의 불쌍한 도도새가 되었다. 어느한 사람의 영향으로 이렇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이다. 그에게는 책임이 없다. 신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다만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면 신은 인간의 모습 그대로 만들어졌을것이라고 그가 쓴 적이 있나 없나 나는 알고 싶었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그에 대해 내가 알고있는 것은 세가지이다. 그의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라는 것, 그래서 그는 도스토예프스키답게 글을 썼다는 것,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도스토예프스키답게 쓴 글을 남기고 이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감동을 받았다. 얼마 전에도 나는 우리가 잘아는 비평가와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그의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렇죠"
비평가가 말했다.
"그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였기 때문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니면 도저히 쓸수 없는 글을 썼습니다"
"반갑습니다"
내가 말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죽었죠. 그렇지만 그는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바른 지적입니다. 그는 절대로 죽은 사람이 아니죠"
"그는 거듭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가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비평가의 말을 듣고, 살아 있느나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하늘을 보면 안 된다고 나는 말했다. 그러자 비평가는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그는 담배를 빨아대었다.
그러면 우리는 좀처럼 하늘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비평가는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나으 잘못으로 말미암아 그날의 대화를 우리는 슬픈 마음으로 끝냈다. 비평가가 헤어지기 직전에 다음에 나를 만났을 때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만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 싫었다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작가가 되었으나 나는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작가라고 꼭 글을 써야 한다는 법은 없다. 나는 없는 법에 감사하며 우리가 사는 도시에 낯선 무엇이 기어들어와 사람들의 본성에 상처를 입히며 자리를 잡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결국 쓰고 말았다. 어른들 때문이었다. 우리 동네의 어른들은 한사람 한 사람의 행복의 무게를 달아 더한 다음 전체 사람수로 나누어 행복의 평균치를 냈다.
질도 제쳐놓고 양만 문제삼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아는 난장이의 실질행복은 마이너스 1백37kg이었는데 동네 어른들이 발표한 우리 전체의 행복의 평균치는 66kg이었다. 나는 난장이를 찾아가 물었다.
"사람들이 행복을 달러 왔었습니까?"
난장이는 힘없이 대답했다.
"왔었죠. 그렇지만 달아 볼 필요도 없다면서 그냥 갔어요"
"얼마나고 적지 않던가요?"
"적었죠. 0이라고 적더군요"
"아저씨의 행복이 어떻게 0이나 됩니까?"
"마이너스는 인정하지 않는대요"
글은 쓰지 않았지만 나는 작가였다. 이 이상 슬픈 일은 있을수 없다고 나는 작가로서 생각했다. 마이너스는 신이 인정했다. 그리고 행복은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달 수도 없는 것이다.
어른들은 그것을 달아 나타내기 위해 지수화의 기술개발을 꾀했고 결국은 마음의 상태를 몸무게처럼 달아 kg으로 적고 있었다. 그래서 난장이의 이야기를 썼다. 난장이의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몇번이나 울었다. 그렇게 쓴 이야기가 한권의 책으로 꾸며져 나왔다.
제책소에서 나의 책에 울긋불긋한 옷을 입혔고, 그것도 모자라 비닐로 또 쌌다. 많은 사람들이 난장이의 이야기를 읽고 눈물이 나 혼났다고 말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경쾌하게 들렸다. 말할 수 없이 창피하고, 말할 수 없이 슬픈 일이었다.
나는 스스로 하늘을 보지 않기로 했다.
어렸을 때 나는 자라고 싶지 않았다. 작은 몸으로 그냥 살고 싶었다. 몸이 자라면 무엇인가 되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되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른들을 싫어했다. 그러나 자라는 것이 겁났고, 자라더라도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던 처음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나도 모르게 자라 작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그리고, 정신작업을 하는 사람들까지 다른 일을 하는 기술사회의 어른들처럼 태연한 얼굴로 귀중한 것들을 골라 배반하고, 반쯤은 장님이 되어 사태파악도 못한채 적응 기술만 익히고, 그것도 모자라 오만과 무지 무능에 악의의 옷까지 둘러 감싸 불쌍하게도 열등해져 끝내는 그것들의 희생물이 되어갈 때, 도도새처럼.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날개가 퇴화하여 멸종했다는 한 마리의 불쌍한 도도새가 되었다. 어느한 사람의 영향으로 이렇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이다. 그에게는 책임이 없다. 신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다만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면 신은 인간의 모습 그대로 만들어졌을것이라고 그가 쓴 적이 있나 없나 나는 알고 싶었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그에 대해 내가 알고있는 것은 세가지이다. 그의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라는 것, 그래서 그는 도스토예프스키답게 글을 썼다는 것,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도스토예프스키답게 쓴 글을 남기고 이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감동을 받았다. 얼마 전에도 나는 우리가 잘아는 비평가와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그의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렇죠"
비평가가 말했다.
"그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였기 때문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니면 도저히 쓸수 없는 글을 썼습니다"
"반갑습니다"
내가 말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죽었죠. 그렇지만 그는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바른 지적입니다. 그는 절대로 죽은 사람이 아니죠"
"그는 거듭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가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비평가의 말을 듣고, 살아 있느나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하늘을 보면 안 된다고 나는 말했다. 그러자 비평가는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그는 담배를 빨아대었다.
그러면 우리는 좀처럼 하늘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비평가는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나으 잘못으로 말미암아 그날의 대화를 우리는 슬픈 마음으로 끝냈다. 비평가가 헤어지기 직전에 다음에 나를 만났을 때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만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 싫었다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작가가 되었으나 나는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작가라고 꼭 글을 써야 한다는 법은 없다. 나는 없는 법에 감사하며 우리가 사는 도시에 낯선 무엇이 기어들어와 사람들의 본성에 상처를 입히며 자리를 잡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결국 쓰고 말았다. 어른들 때문이었다. 우리 동네의 어른들은 한사람 한 사람의 행복의 무게를 달아 더한 다음 전체 사람수로 나누어 행복의 평균치를 냈다.
질도 제쳐놓고 양만 문제삼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아는 난장이의 실질행복은 마이너스 1백37kg이었는데 동네 어른들이 발표한 우리 전체의 행복의 평균치는 66kg이었다. 나는 난장이를 찾아가 물었다.
"사람들이 행복을 달러 왔었습니까?"
난장이는 힘없이 대답했다.
"왔었죠. 그렇지만 달아 볼 필요도 없다면서 그냥 갔어요"
"얼마나고 적지 않던가요?"
"적었죠. 0이라고 적더군요"
"아저씨의 행복이 어떻게 0이나 됩니까?"
"마이너스는 인정하지 않는대요"
글은 쓰지 않았지만 나는 작가였다. 이 이상 슬픈 일은 있을수 없다고 나는 작가로서 생각했다. 마이너스는 신이 인정했다. 그리고 행복은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달 수도 없는 것이다.
어른들은 그것을 달아 나타내기 위해 지수화의 기술개발을 꾀했고 결국은 마음의 상태를 몸무게처럼 달아 kg으로 적고 있었다. 그래서 난장이의 이야기를 썼다. 난장이의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몇번이나 울었다. 그렇게 쓴 이야기가 한권의 책으로 꾸며져 나왔다.
제책소에서 나의 책에 울긋불긋한 옷을 입혔고, 그것도 모자라 비닐로 또 쌌다. 많은 사람들이 난장이의 이야기를 읽고 눈물이 나 혼났다고 말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경쾌하게 들렸다. 말할 수 없이 창피하고, 말할 수 없이 슬픈 일이었다.
나는 스스로 하늘을 보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