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이다.
사람은 논리로 설득되는게 아니라 감정으로 설득된다고 하던데...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부탁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1. 투쟁 요구안을 둘러싼 문제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투쟁의 요구는 지금 크게 "단체협약 체결"과 "해고자 전원복직"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 요구안이 1896일을 경과하는 내내 주장된 것은 아니다.
1896일전에 처음 혜화동 본사앞 농성투쟁을 시작한 이래, 투쟁의 요구안은 완만하게 변해왔다.
대체로 알려져 있듯이 이 투쟁은 2007년 당시 이현숙집행부가 사측과 체결한 단협이 재능선생님들의 임금에 치명적인 타격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개악안을 개정하자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처음 천막 농성을 돌입하기 직전 사측은 개악된 단협에 의거 삭감된 임금제도를 수용하는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는 조합원은 해고하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었고, 노동조합은 "단체협약 재협상, 해고반대"을 요구안으로 내걸고 투쟁에 돌입했다. 당시 투쟁의 성과로 조합은 조합원에 대한 해고를 저지했으며, 단협에 대해서도 사측과 간헐적인 교섭을 진행했다. 조합내부에서는 향후 체결할 단협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사측이 내놓은 안과 워낙에 이견의 폭이 컸기 때문에 조합내부적으로 별다른 충돌없이 사측안을 거부하고 투쟁을 이어갔었다.
투쟁이 소강사태로 접어들며, 사측은 조합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다. 개악되었지만 그나마 부정하지 못하던 단협을 급기야 파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단협파기에 따른 후속조치로 전임자로 인정하던 지부장(유명자)와 사무장(오수영)에게 현장복귀 명령을 내리고, 조합사무실에 대한 명도소송을 진행해 조합집기를 들어내는 등의 일련의 탄압이 이어졌다. 조합은 이때부터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내걸고 투쟁을 이어가게 된다. 아직까지 해고자 복직의 요구는 단협의 회복에 의한 부속물 정도로 별도로 제기되던 수준은 아니며, 이 때 ‘해고자’란 당면 투쟁에서 해고된 자로 한정해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다.
투쟁이 길어지면서 사측은 탄압의 강도를 한층 높인다. 알려진 바대로 용역깡패를 동원한 폭력이 일상화 되고, 조합원 개인의 살림살이와 부동산에 대한 압류를 추진하며, 탈퇴하지 않은 조합원 전원을 해고한다. 이 시기부터 조합은 “단체협약 원상회복”에 “해고자 전원복직”을 더해 투쟁하게 된다. 여기서 ‘해고자 전원’이란 고이지현 조합원과, 당면 투쟁 이전에 해고된 황창훈 조합원을 포함하게 되는데, 황창훈을 복직요구에 포함하는 과정에서 조합은 다소간의 논란을 겪기도 하였다.
거칠게 정리한 대로 지금 조합의 투쟁 요구안은 크게 “단체협약 체결”과 “해고자 전원복직”이다. 거기에 더해 단협에 핵심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사항들에 대해서도 큰 그림에서의 논의를 꾸준히 이어왔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과정의 논란과는 무관하게 이 요구안은 재능지부와 학습지노조의 통일된 견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란이 벌어진 이후 비대위와 유명자간에 요구안을 둘러싼 어떤 모종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 언설들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예가 “단협 원상회복”과 “단협 체결”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어디서 얼핏 봤는데, 출처를 찾을 수가 없다.) 대체로 유명자가 주장하는 “단협 원상회복”이 ‘원칙’적이고 ‘비타협’적인데 반해, 비대위가 주장하는 “단협 체결”이 ‘타협’적이거나 심지어 ‘노사협조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우선 확인해야 할 것은 유명자가 실제로 그렇게 주장하고 있고, 비대위가 실제로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가이다. 나는 비대위 성원들이 성향에 따라 체결과 원상회복을 둘다 사용하지만, 체결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 유명자가 어떤지는 모른다.
유명자가 원상회복을 주장하고, 거기에 어떤 ‘원칙’적인 함의를 내세운다고 가정했을 때 궁금한 것이 있다.
원상회복 주장에서 회복되어야 하는 원상태란 어디인가? 이현숙집행부가 맺은 사측에 의해 파기되기 직전의 단협인가? 아니면, 이현숙집행부 이전 개악되기 전의 단협인가? 위에 거칠게 요약한 배경에 의하면 원상회복은 당연하게 이현숙집행부가 맺은 단협으로 해석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의견인건가?
단협 체결의 주장에서는 단협에 포함될 조항들의 내용을 가지고 얘기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사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잘 모른다. 예상컨대 조합원수 만큼이나 다양한 의견이 있을 듯하지만, 대체로 큰 그림에서 모든 조합원(유명자를 포함하여)이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누가 나한테 “단협 체결”을 준비하면서 드러난 어떤 ‘원칙’적인 ‘타협’이나 ‘노사협조주의’를 고발해 주었으면 좋겠다. 문제는 드러난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지난 1896일을 지켜본 소감으로 말하자면, 나는 비대위에 유명자보다 더 수위가 높은 요구안을 주장할만한 성향의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자신할 수 있다. 물론, 유명자가 수용하지 못할 후퇴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게 우리가 이 논란을 점검하는 데 어떤 곤란을 야기하는가? 자, 부탁하건데 유명자가 ‘원상회복이건 체결이건 + 해고자 전원복직’이라는 큰그림에서의 합의를 번복하고자 한다면, 이유를 설명하고 번복하면 된다. (이 논란와중에, 하종강선생은 점잖은 체 비대위더러 요구 수위를 높이지 말라고 한다. 나는 유명자가 자신의 ‘진정성 입증’을 위해서 기존의 합의를 번복하고 요구안의 수위를 높인다 하더라도 그걸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을 못느낀다. 그저 자신의 책임감없음을 확인시켜주는 에피소드를 하나 늘리는구나 정도로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라도 필요한 토론을 할 수도 있다. 나는, 유명자가 차라리 이런 방식으로 나와준다면 고마울 거 같다.)
다시한번 말하는데 나는 원상회복과 체결에서 어떤 원칙적인 차이를 발견해 낸 사람의 사고체계가 참 궁금하다. 제발 나한테 그 원칙을 좀 설명해 주라.
원상회복과 체결에 관한 심오한 뒷담화를 제쳐둔다면, 사실 큰 문제는 앞으로 실제 단협 내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지금의 논란보다 더 파괴적인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판단할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과거의 논의와 현재의 합의를 무효화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다시한번 말하는데, “단협 체결(또는 원상회복)과 해고자 전원복직”이라는 큰 그림에서의 요구안에 조합원들은 모두 동의한바 있다. 이것은 전제된 것이다. 다른 사정이 생긴 사람이 있다면, 설명해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이다.
쓰잘데기 없는 거짓부렁은 집어 치우고, 제대로 설명하라.
2. 조합원 간의 상호불신과 불통에 대해
투쟁을 오래 하다 보면 사람들은 힘들고 지친다. 싸우다가 닮는다는 말, 참 안타깝지만 사측의 비인간적인 공격에 오래 노출되어 있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피폐해졌다.
하여간, 재능지부 조합원들은 참 많이도 싸웠다. 대략 아는 범위에서 말 해 본다.
1) 재능지부 조합원들은 이 투쟁이 시작되기 전부터도 서로서로 참 많이 싸웠다.
1)-1 조합이 생긴 이래 초기 집행부가 된 사람들(유명자, 유득규, 여민희, 강경식 등등 - 나는 그들을 노사협조적 경향이라고 판단했었다)과 반대파(황창훈, 오수영 등등)가 싸웠다.
1)-2 그러다가 유득규/유명자/여민희/강경식 집행부와 부산출신의 자주파(이현숙/김경은/정순일/최민정 등등)가 싸웠다. (나는 사소한 감정+밥그릇 싸움이라고 판단했었다.)
1)-3 이현숙집행부가 단협개악안을 체결한 후, 어찌되었건 서로간의 싸움을 대충 정리하고 새 집행부를 꾸려 투쟁을 시작했다. (학습지노조 강종숙위원장/유득규사무처장, 재능지부 유명자지부장/오수영사무국장)
2) 투쟁을 하다보면 잘났네 못났네 참 지겹게도 싸운다.
2-1) 이런 투쟁을 하자, 저런 투쟁을 하자. 역량상 된다, 안된다. 위험하다, 감수해야 한다. 모험적이다, 아니다. 농성투쟁은 농성투쟁이고 조합원들을 만나러 다녀야 한다, 투쟁에 집중해야지 역량을 분산해서는 안된다. 등등 투쟁전술을 둘러싸고 참 많이도 싸웠다.
2-2) 조합원 중 일탈하는 사건, 사고가 있을 때(잠수를 타거나, 보고없이 취업에 나서는 등)마다 잘했네, 못했네 싸운다.
2-3) 성실하다 불성실하다, 무책임하다 등등 을 가지고 매일 같이 싸운다.
2-4) 조합의 민주적 운영과 관련해서 강종숙/유명자에 맞서 여러 사람들이 싸운다.
3) 싸움이 일어났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싸움을 해소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특정한 조직에서 그 구성원들이 일치된 의견을 갖기는 상당히 어렵다. 의견의 차이가 적대적인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이가에 따라, 이 의견차를 해소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대처법들이 다르겠지만, 건강한 조직이라면 이 의견차 해소를 위해서 민주적인 토론과 다수결에 의한 의결, 의결 내용에 대한 통일된 행동 등을 이루어 가야 한다.
학습지노조와 재능지부는 조합원 간의 민주적토론, 책임있는 역할의 분배, 책임있는 점검등이 실종된지 오래다. 그 사태를 야기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3. 종탑농성과 일련의 사태에 대해...
투쟁을 오래하다 보면, 사측도 지치기 마련이다. 배째라로 일관하던 사측은 여론의 압박이 심해지자 용역깡패를 철수시키고, 압류집행을 중지하는 등, 탄압의 수위를 조절하다가 급기야 11명 복직시키고 선복귀후 단협을 논의하자는 안을 내놓고 플랭카드를 건다. 행정법원에서 유의미한 판결도 나오고, 기륭투쟁 기록을 넘어서는 날도 다가오고 등등등..
조합원들은 당연하게도 고강도투쟁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한다. 요구안을 쟁취하고 현장으로 복귀하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질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1) 비대위는 유명자를 배제한다?
우리 모두는 지금 특정의 노동조합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성장하던 시기 파업투쟁을 되돌아보자.
우선, 강직한 조합집행부가 능동적으로 쟁대위, 파업위원회 등의 투쟁체계로 조직을 전환하고,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총회민주주의를 거쳐 의결하고, 집행한다.
어용이거나 타협적인 조합집행부는 조합의 의지를 자신들의 의지에 종속시키려 하지만, 투쟁하는 조합원들이 사수대등을 구성하고, 쟁대위등의 확대된 의결구조를 요구하며, 결국에는 파업위원회를 구성해서 타협적인 집행부를 대체한다.
재능지부에는 투쟁하는 해고자가 11명 남아있다. 비대위가 게시한 공지에 의하면 재능지부 비대위원은 10명이다(부산의 최민정조합원이 빠진것 같은데, 이유는 모른다).
1896일째 하루하루를 전쟁같은 노조탄압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아무도 이 상황이 일상적인 상황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투쟁하는 11명의 조합원이 가장 중요하고, 그들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 11명은 이미 투쟁의 요구와 관련한 합의도 이룬바가 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이제는 일상적 시기를 가정한 조합운영체계가 한계에 다다랐다. 앞서 얘기했듯 원인이 뭐였던가는 차치하더라도 조합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를 멈추었다. 이제는 조합집행력을 특정의 개인에게 맡겨두지 않고, 투쟁하는 조합원들 전원의 집단지도체제로 전화해야 한다.
금속노조를 만들던 시기 민주노조운동의 현장파는 조합의 민주적운영을 위한 몇가지 쟁점들에 대해 일련의 일치된 견해를 표명한바 있다. 중임은 가능하되 연임은 불가능하게 하자는 둥, 교섭권 위임의 조건과 내용은 어떠해야 한다는 둥...
난 종탑농성투쟁에 반대하는 캠페인에 나선 자들 중 어느누구에게도 운동적인 관점에서 유의미한 비판을 단 한마디도 들어본 바가 없다. 다만, 모든 비난과 하소연과 심판과 중재의 중심은 “ ‘유명자’를 ‘배신’하는 것은 용납할수 없다” 는 것이다.
나는 제대로된 비판에 목마르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우리가 투쟁의 계획과 전망,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발 나한테 그 내용을 알려주길 바란다.
2) 비대위는 유명자를 배제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대표자는 민주적으로 선출되어야 하고, 필요하면 소환되어야 한다. 민주노조는 기본적으로 총회민주주의등의 직접민주주의가 조직의 최고의사결정 기구임을 보증해야 한다.
재능지부 조합원 절대다수가 비대위 구성을 선언했을때, 어느 누구도 유명자의 비대위원 자격을 문제삼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여전히 유명자는 재능지부 조합원이고, 비대위원이다.
4. 정리하자면
문제는 단순하게 요약된다.
1) 지금의 정세에서 지부 조합원 절대다수는 투쟁요구안을 관철하기 위해서 종탑농성등의 고강도 투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효과적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집행을 위해 조합원전원으로 구성되는 비대위로 전화해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했다.
2) 유명자는 지금의 투쟁이 있기까지 다른 조합원들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기여를 해왔고, 따라서 어떠한 권리의 유보도 없는 상태로 여전히 조합원이자, 비대위원으로서 비대위에 참여할 수 있다.
3) 단지 유명자는 지난 1896일간의 투쟁속에서, 투쟁을 계획하고 집행을 점검하며, 조합원들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수렴하는 지부장으로서의 리더십이라는 측면에서 조합원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을 뿐이다. 당연하게도 향후 투쟁 과정에서의 헌신과 바람직한 리더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므로써 그녀는 과거의 지위를 되찾을 수도 있다.
유명자를 엄호하느라 나서고 있는 사람들 중에, 내가 정리한 바와 다른 실체적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발 나한테 좀 알려주기 바란다. 그것이 이 민주노조운동의 ‘대의’나 ‘원칙’상의 중요한 문제라면 나는 어느누구와도 토론할 것이다. 하지만, 역겹게 포장된 레토릭을 한겹 벗겨내 보면 결국, “ ‘유명자’를 ‘배신’하는 것은 용납할수 없다” 는 아우성 뿐이라면 나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 그냥 그렇게 사시라. 그게 원칙이고, 대의고, 비타협이고 주장하는 것도 좋다. 다만, 유명자를 제외한 다른 조합원을 엿먹이는 짓거리만은 좀 안보이는데 가서 해 줬으면 좋겠다.
다음번에는 “ ‘유명자’를 ‘배신’하는 것은 용납할수 없다” 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 얘기할 예정이다. 사실 “ ‘유명자’를 ‘배신’하는 것은 용납할수 없다” 고 주장하며 비대위를 파렴치범으로 만들고 있는 사람들 중에 ‘제대로된 말’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내가 나서서 뭔가를 말하기도 참 난감하다. 아마도 당신들이 나한테 좋은 소스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노동중심성을 견지한 자칭좌파정당인 진보신당’의 정진우부대표와, 쌍차지부 이창근씨, 하종강선생, 이선옥작가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왜 (아무도 배신하지 않은 ) “ ‘유명자’를 ‘배신’하는 것을 용납할수 없” 는지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
덧붙여 운동조직 ‘노혁추’와 ‘노건투’, ‘노정협’은 꼭 책임 있는 자세로 이 사태에 대해 코멘트 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그게 당신들의 “운동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