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저는 한국의 민주화 '기념' 사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지만, 왜 마음에 드는지 생각도 안 하고 뭔가 싫다. 왜 싫지? 재단에 돈이 많아서 싫은 건가... 그러고만 말았는데, 5월광장 어머니회의 "과거청산의 시도들이 현재진행형인 사회구조적 모순을 과거화함으로써 현재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되고 있다"는 말씀을 보니 확실히 알겠네요.
예전에 후일담 소설에 빠졌던 때가 있었는데, 운동에 대한 기억만 있고 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그 이야기들에 곧 신물이 났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여전히 운동을 하고 있고, 그리고 새롭게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공간을 뺏어버리니까요. 캐즘님이 쓰신 것처럼 부인의 욕망이 작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방현석의 소설은 어떻게 평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존재의 형식>보다 좀 더 노골적인 후일담인 <당신의 왼편>같은 소설을 김영하나 공지영의 후일담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저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래도 방현석 껀 볼만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문학에 대한 글도 다른 글들처럼 아주아주 읽을 만 한 것 같습니다. 주님의 힘으로 그 동안 숨겨뒀던 글들이 차례차례 올라오길 바래야 겠네요ㅎㅎ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공지영은 그 시대의 젊은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상처와 모순들을 처연하게 그려낸 것같아 많이 공감되지만, 본인이 운동하며 느꼈던 고뇌에 대해서는 겉핥기식에 단편적인 인물설정을 통해서 드러내고 (멋지고 치열한 남자선배, 순수하지만 감상적인 여자주인공), 김영하는 유쾌하고 재기발랄하지만 사실 공지영만큼의 진지성이라도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후일담 소설이 현재의 목소리를 없얘버리고 과거에 대한 향수로 화석화시키는... 그걸 넘어설 순 없을까 싶네요.
euzi님 반가워요. 부족한 글들인데 재밌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그러고보니 이 글도 곧 2부가 이어질 것처럼 말해놓고 공수표만 날린 셈이 됐네요.(아.. 뒷수습 안되는 성격이 이런 데서도 드러나네요.-.-;)
말씀하신 다문화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입장들은 저도 꽤나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뒤집어서 보자면, 다문화주의가 어떤 윤리적 선으로 이야기되는 것 자체가, 다문화주의를 일종의 통치 전략의 하나로 바라봐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런 점에서 euzi씨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야도 상당히 흥미롭네요. euzi씨 블로그에 자주 들러서 여쭤봐야겠습니다.^^;
마지막에 제가 던진 질문은 스스로 답을 알고 있어서 던진 질문이라기보다는(기대도 안하셨겠지만;;;) 저한테도 화두같은 질문이에요. 다만 저 질문에 답하려면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사회적 담론 지형에 대한 파악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공부해나가고 있기는 하지요. 언젠가 대충 정리되는 대로 거칠게나마 포스팅을 해볼 생각인데, 그게 언제쯤 될런지..^^;
안녕하세요. 캐즘님의 블로그를 최근에 우연히 알게되어 쓰신 글들을 요즘 아주 신나게 읽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제기하신 문제는 저도 많이 궁금해하는 바입니다. 저는 이주민(?)/이주노동자 문제에 있어서 관용이란 가치가 요즘 부쩍 다문화교육/다문화주의담론을 통해 구체화되는 모습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어요. 말씀하신 다양성대 획일성의 논리가 여기선 다문화 대 단일문화 정도로 나타나는 것도 놀라울건 없으면서도 역시 문제로서 흥미롭구요. 개인적으로 유감인 것은 다문화담론/정책이란 것이 자유주의적 탈정치화의 기계로 작동함을 보여주는 수많은 예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다문화(주의)를 마치 어떤 윤리적 선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 같다는 거죠. 꽤 진보적이라는 학자들도 다르게, 혹은 다양하게 살 권리를 옹호하거나 소위 "우리속의 다양성"을 인정하자...고 하는 선에서만 그치는 것도 왜 그런 것일까 하고 생각해볼 의미가 있을거 같아요... 말이 길어졌네요. 위의 브라운의 책소개 감사드려요. 저도 곧 구해서 읽어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