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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3/29
    월드컵이 다시 우리를 부르고 있다
    too lazy
  2. 2006/03/29
    대형서점과 함께 미래를 꿈꾸는가
    too lazy
  3. 2006/03/15
    노동운동의 문화적 재조직화를 위한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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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다시 우리를 부르고 있다

 월드컵이 다시 우리를 부르고 있다

_최준영 / 문화연대 정책실장 chobari@gmail.com


“월드컵이 ... ... 우리를 부른다.” 2002년 ‘한국’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되찾아주었던(?) 월드컵이 2006년 다시 우리를 TV 앞으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2006년의 월드컵은 2002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오고 있다. ‘오대영’이라는 오명과 함께 기대반 의심반으로 시작된 2002년 월드컵이 결국 자발적인 광장문화의 형성이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으며 한국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냈다면, 2006년의 월드컵 광풍은 온 국민을 붉은악마로 호명하면서 국가적인 동원체계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에서의 ‘꼭짓점 댄스’나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팀의 4강 진입은, 이러한 월드컵 광풍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자, 다시 첫 번째 문장을 보자. “월드컵이 (자본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른다.” SKT는 145억원을 들여 월드컵 기간 동안 시청 앞 광장의 독점적 사용권을 획득하였다. 2002년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점유하였던 시청 앞 광장을, 이제는 SKT의 허용방침 아래 ‘사용’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3.1절에 보여주었던 미디어의 광분 - 지상파 방송 3사가 몽땅 앙골라와의 시합을 중계 방송한 것은 관두고라도, 그에 앞서 거의 하루 종일 월드컵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했었다 - 은 2006년 월드컵 시기에 국가와 자본, 미디어가 보여줄 모습의 예고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월드컵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애써 기억해 내야 한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수많은 사회적 현안들과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이 언론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대~한민국’이라는 구호 아래 뭉쳤던 사람들만이 아니라 월드컵에 의해 배제되었던 사람들에 대하여. 그리고 지금. 아직 3달이나 남은 월드컵을 가지고 광분하는 미디어와 자발적이었던 응원문화를 장악하기 위한 자본의 발빠른 움직임을 보면서, 아직도 해결 안 된 비정규직 법안과 사회양극화 문제 그리고 한미FTA가 또 어떤 식으로 묻혀버릴 지를 상상해본다. 월드컵이 ‘다시’ 우리를 부르고 있다.

 

*한국노총 기관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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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서점과 함께 미래를 꿈꾸는가

 대형서점과 함께 미래를 꿈꾸는가

_최준영 / 문화연대 정책실장 chobari@gmail.com



이제 “교보 갔다 올게”라는 말만으로는,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있을지언정 ‘무엇을 하러 가는지’는 알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음반, 다이어리를 구입하거나 학용품 혹은 생일선물을 사는 것과 같은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교보문고에 간다. 친구와의 약속 장소를 교보문고로 잡는 경우도 많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도 않을뿐더러 간단한 스낵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교보문고는 학생들과 연인들의 약속장소로도 활용된다. 책도 사고 음반도 사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결정적으로 서점은 돈 벌어서 좋고...


한편 이러한 대형서점들의 활약(?) 덕분에 동네서점들이 고사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서점 자체의 ‘복합문화공간화’에다 주변의 문화시설과의 지리적인 매개까지 가능하게 되면서 동네서점을 찾는 발길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동네서점의 개수는 서울지역만 하더라도 2000년 678개에서 2004년에는 413개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지난 3월 22일 3000평 규모로 오픈한 잠실 교보문고에 대응하여 인근의 중소서점 상인들이 이익의 80%가 줄어드는 것을 감내하면서까지 20~30%의 책값인하(마일리지 등으로)를 결정했다는 사실은, 대형서점의 등장이 동네서점에 미치는 파괴적인 효과를 보여주는 일례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파괴적인 상황이야말로 ‘진실로’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대형마트에 대한 별다른 규제를 하지 못함으로써 지역의 재래시장이 줄줄이 문을 닫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형서점들의 시장 독과점에 대한 규제나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동네서점의 위기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대형서점의 입지조건이나 매장크기에 대한 제한 - 실제로 도서정가제 토론회에서 동네서점을 살리는 ‘가장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대안’은 완전한 도서정가제 실현보다는 서점 매장크기의 제한이라고 얘기한 적도 있다 - 등과 같은 조치들이 불가능하다면, 이제 우리는 대형서점과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해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형서점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대형서점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이윤의 사회적 환원 등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시장의 독과점이란 게 결국 소비자에 대한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형서점의 사회문화적 ‘윤리’에 대한 문제제기와 규제를 통해서만이 대형서점과 동네서점이 공존하고 또한 ‘책’과 관련한 대중의 권리 - 접근에 있어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을 권리 등 - 가 증진될 수 있는 미래를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독서문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이윤의 사회적 환원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서점이 잘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 바로 ‘책 읽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대형서점이 막대한 시장점유율을 기반으로 얻는 이윤의 상당부분을 독서문화진흥에 투여해야 한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부 베스트셀러 중심의 마케팅, 학습지 중심의 도서판매 등은 단기적이니 매출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특정 분야에 대한 집중현상으로 인해 출판문화의 다양성을 해치게 되고, 결국 중장기적인 매출하락의 위험을 서점 스스로 안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도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양질의 도서가 유통될 수 있도록 대형서점 스스로가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책에 대한 접근이 차별받거나 배제된 계층의 사람들 - 저소득층, 도서지역 등 - 에 대한 문화복지 차원의 서비스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이른바 ‘복합문화공간화’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대형서점의 이른바 ‘복합문화공간’은, 말이 ‘복합문화공간’이지 실상은 상업시설의 집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보문고를 비롯한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등 3대 대형서점들 모두 사실상 ‘다종문화상품판매전략’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영업전략을 주요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복합문화공간’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돈 안내고 앉아 있을 공간도 부족한 것이 대형서점들의 현실이다. 따라서 가장 우선적으로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부담없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커다란 수고가 드는 일이 아니다. 책장 간의 간격을 더 넓히는 것만으로, 빈 공간에 의자를 놓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책을 위해 서점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이 밖에도 ‘문방구 어음’과 같은 전근대적인 유통 관행에 대한 개선 문제는 대형서점이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문방구어음’과 같은 관행이 상존하고, 같은 도서임에도 불구하고 도매가가 달라지는 불합리한 관행. 그리고 대형서점과 대형출판사에 의한 일방적인 계약이 성립하는 불합리한 거래로 인해 출판시장 자체가 교란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형서점 스스로가 출판유통의 투명성, 공정성, 합리성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서점은 책을 ‘만나고’ 또 ‘사는’ 공간이다. 이 단순한 정의 가운데 (대형)서점이 나아갈 방향이 있다. 서점을 찾는 독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 ‘책’과 ‘독자’를 중심으로 서점 내부의 공간을 구성하는 것. 그리고 독서문화진흥이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대형서점의 운영윤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오프라인 대 온라인, 대형서점 대 동네서점, 도서정가제 문제, 유통구조 합리화 문제 등 산적한 출판유통 관련 문제들을 해결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도 바로 ‘책’과 ‘독자’에 대한 고려를 전제로 한 출판 관련 주체들의 윤리의 복원과 이 주체들 간의 공존과 선순환을 위한 구조의 창출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 그런데 우리에겐 대형서점과 함께하는 미래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대형서점의 독과점적 존재를 전제한 대안 모색과 함께 영국의 헤이온와이(Hay-on-Wye)와 같은 전문화, 특성화, 집중화된 대안적 출판유통 모델을 고민하는 것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무리일까. 좀 더 근본적인 질문과 고민이 필요하다.

 

*출판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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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문화적 재조직화를 위한 과제들

노동운동의 문화적 재조직화를 위한 과제들

: 지역에서의 통합적 사회운동의 필요성


최준영 / 문화연대 문화개혁센터 ptrevo@jinbo.net


2005년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의 채용관련 금품수수 사건과 이에 뒤이어 터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뇌물수수 사건은,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었을 뿐 아니라 노동운동의 위기와 한계에 대한 논쟁을 가속화시켰다. 민주성, 투명성, 도덕성이라는, 정권과 자본에 대한 투쟁에서 중요한 무기가 되었던 가치들을 스스로 저버린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현장 조합원을 포함한 대중들은 허탈과 냉소로 대응하였다. 또한 이로 인해 그 동안 노동운동 내부에 지속되었던 문제들 - 사회적 교섭 논란, 대기업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갈등, 정파 간의 갈등문제 등 - 까지를 포함한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폭발한 전투적 노동운동의 성과가 96년 민주노총의 출범이라는 계기를 맞게 된 지 10년 만에 노동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불과 10년 만에.


가히 ‘잃어버린 10년’이라 칭할만한 지금의 위기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지점이 있다. 우선 현재의 위기는 노동운동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라는 점이다. 사실 이전에도 노동운동 위기론이 사회변동의 중요 고비마다 제기되곤 하였다. 대표적으로 1991년~1992년 시기에 정치민주화와 경제 불황, 그리고 동구 사회주의 체제 몰락과 공안정국 등을 배경으로 노동운동 위기논쟁이 전개되었으며, 또한 1998년 외환위기 상황에서도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심각한 위기진단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이 같은 위기 진단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운동은 1987년의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사회민주화의 핵심 추동주체로 인정받으며 지난 10여 년 동안 꿋꿋하게 노동정치로의 시민권을 확장해왔다.1)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그렇지 않다. 이른바 ‘노동 양극화’라고 이야기되는 대기업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격차 확대, 이주노동자 문제 등 새롭게 제기되는 노동 현안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 임금투쟁을 넘어서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대응 부족,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급격한 확대 등 민주노조운동 내․외부를 둘러싼 문제들로 인해 ‘과연 노동운동이 사회변혁운동의 핵심주체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위기 논의가 사회운동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해법 또한 사회운동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 - 사회운동 간 새로운 연대의 복원 및 형성 - 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언급한대로 지금의 위기는 ‘사회변혁운동의 위기’라 할 수 있고, 따라서 새로운 사회변혁운동의 주체와 구심을 형성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운동 차원에서 위기에 대한 논의와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후 서술하겠지만, 이는 새로운 사회운동 간 연대의 복원 및 형성을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사회변화의 흐름, 90년대 이후 성장한 시민운동의 역량, ‘작업장 밖에서’ 이루어지는 주체형성과정, 지속가능한 대안적이고 생태적인 삶의 구축 등을 고려한 사회운동의 전략 변화가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노동운동의 문화적 재구조화’를 제안하고자 한다. 그리고 ‘지역’이라는 공간적이고 사회문화적인 기반 하에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통합적 사회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 이는 노동문화운동의 변화, 혹은 노동운동과 문화운동의 연대 등과는 구분되는 문제의식이다(물론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이를 기본적인 전제로 포함해야 하는 문제다). 즉 사회변혁운동의 새로운 주체와 전략을 형성하기 위한 제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선 노동운동의 문화적 재구조화를 요구하는 조건들을 검토하고, 이어서 재구조화의 방향과 원칙 그리고 구체적인 방안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노동운동의 위기, 노동자 주체형성의 위기


작년의 비리사건으로 촉발된 노동운동 위기 논쟁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2)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한 (현상적인) 접근으로는, 우선 노동조합의 조직률에서 확인 가능하다. 2002년 현재 노동조합 조직률이 전체 임노동자의 11.6%에 그치는 가운데, 그 대다수가 300인 이상의 대기업 노조로 조직되어 있다. [표]에서 볼 수 있듯이 300인 미만의 노조 조직이 조합수로는 5,813개(89.3%)에 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조합원수의 22.0%에 그치고 있는 반면, 300인 이상의 대공장 노조는 그 수로는 10.7%밖에 안되지만 조합원수로는 78.0%를 차지하고 있다. 해당 사업체 규모별 노조조직 현황을 살펴보면, 300인 미만 사업체에 종사하는 전체 노동자의 2.8%만이 노조가 조직화되어 있는 반면, 300인 이상 대기업의 69%에 노조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임시․일용직의 경우 노조 가입률이 1.23%로 집계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은 2.4%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중소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조합의 조직적 보호는 매우 미흡한 가운데, 대공장 중심으로 기업별 노조활동이 편중되어 있는 것이다.3)


[표] 조직 규모별 노동조합 현황(단위 : 개소, 명, %)4)

구분

총계

49인 미만

50~299인

300~999인

1,000인 이상

조합수

6,506(100)

3,079(47.3)

2,734(42.0)

485(7.5)

208(3.2)

조합원수

1,605,972

(100)

52,895

(3.3)

299,803

(18.7)

219,557

(13.7)

1,033,717

(64.3)

*출처 : 노동부(2003)


비정규직의 문제 또한 심각하다. IMF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갈수록 늘어났고, 현재는 절반이 넘는 노동자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 등의 노동조건에서 크게 차별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른바 ‘노동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노동조합운동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이다. 특히 2004년 초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투쟁과 관련하여 결국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민주노총 금속연맹으로부터 제명조치를 받게 되는 일련의 과정5)들은, 현재 대기업 정규직노동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노동조합운동의 조직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가속화된 이른바 ‘사회적 교섭’ 논란 또한 노동운동의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사회적 교섭 문제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즉 ‘사회적 교섭’을 제안하며 결과적으로 노동운동 내부의 갈등을 유발하는 구조 자체에 대한 논의는 부재한 채, 노사정위 참가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입장이 갈렸다. 그리고 이는 결국 2005년 2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폭력사태6)로 결과하였다. 이는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민주적인 논의구조와 합의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이 밖에도 적절한 긴장과 상호 비판을 넘어서는 대립과 갈등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내부의 정파문제나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부족한 대응, 앞서 언급한 노동조합의 비리문제, 그리고 임금투쟁을 넘어서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노동조합의 활동의 부족 등이 노동운동의 위기를 증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노동운동은 사회변혁운동의 주체로서의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르게, 이제는 노동운동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전략 변화를 이루어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노동운동의 위기를 ‘노동자 주체형성의 위기’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회변혁운동의 새로운 주체 형성을 위해서는 ‘노동운동의 위기’를 노동자와 노동자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환경들(작업장 안팎을 포함시키는)로까지 확장시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가 어떻게 사회변혁운동의 주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가(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


노동운동의 문화적 재구조화에 대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문제는, 비단 WTO나 FTA의 문제 혹은 시장개방의 문제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신체, 의식을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을 ‘경쟁’과 ‘효율’과 같은 자본의 논리로 지배하려 한다. ‘노동자 주체형성의 위기’는 자본의 논리에 노동자의 일상이 구조화되면서 노동자 스스로 자본에 대항하는 저항주체로 조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노동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절대적인 착취와 배제, 차별에 직면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부정해서도 안 될 문제이다. 하지만 주거, 교육, 의료 등의 영역에서 노동운동 스스로가 공공성의 확대 나아가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생활에서는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남겨둔 채 자본의 일방적인 지배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집과 자동차를 소유하고, 자녀들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며, 휴가 때는 스키와 골프를 즐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는 가운데 노동자의 일상과 의식의 자본의 소비패턴으로 조직되고 있다.


하지만 인간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가. 그것은 건강한 먹거리를 먹고 건강한 집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며 남녀노소 등 아무런 차별 없이 여유와 문화를 즐기고 창조하면서 사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경쟁력 강화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며 ‘너 죽고 나 살자’ 식으로 사는 것이 아닌 것이다. 20%만 잘 살고 80%는 불안해지는 그런 구조 속에서 잘 사는 20%에 진입하는 것도 아니다. 또 ‘똑똑하고 잘난’ 지배 엘리트들이 하자는 식으로만 끌려가는 삶도 아니다. 온갖 제도와 규칙들은 ‘공동체적 삶의 질’ 차원에서 더 좋은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의논해서 바꿀 수 있어야 한다.7) 노동운동과 문화운동의 연대 혹은 연계가 아니라 ‘노동운동의 문화적 재구조화’를 제안하는 문제의식은, 노동운동 위기에 대한 현상적인 대응을 넘어 노동자의 일상까지를 포함하는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데서 출발한다. 노동운동의 위기 극복이 이제는 더 이상 상층에서의 선거나 합의, 현장과 동떨어진 총파업 투쟁,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현상적인 대응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일상에까지 침투한 자본의 논리에 결연하게 맞서 비자본주의적인, 생태적이고 문화적인 대안적 삶의 방식을 재구조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노동운동의 강화에도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공동체 마을을 이룬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공동체적 삶을 실천하다보니 자연스레 생태친화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반대로 생태친화적인 삶을 구성하려면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하게 된다고도 한다. 공동체성의 강화는, 결과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의 기초조직부터 튼튼하게 만들 것이다. 주요 공공영역에서 자본의 소비패턴이 아닌 공동체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 상품 소비가 아닌 방식의 문화생활의 대안을 모색하는 것, 화석연료의 지속적인 소모가 아닌 생태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개발하는 것 등 더 많은 상품의 소비가 아닌 다른 방식의 삶의 질 향상을 공동으로 상상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제 문제는 비단 노동운동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문제가 노동운동에만 한정되는 문제는 아니다. 생태적이고도 문화적인, 비자본주의적인 대안적 삶을 구축하는 문제는, 전환기를 맞는 한국의 사회운동이 함께 논의해야할 문제이다. WTO 협상 체결이 눈앞에 닥쳐왔고, 한미FTA 체결이 2007년 상반기까지 추진되는 상황에서 이는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 이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을 포함한 민중운동, 지역의 풀뿌리운동까지를 포함하는 사회운동의 전략이 논의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논의는 노동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의 질적, 양적 성장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생활체육, 문화생활, 생협 등 흔히 비정치적이라고 여겨지는 영역까지를 포함하는 사회운동의 전략 수립을 통해 사회운동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대안세계화운동과도 연결되는 전략의 문제이기도 하다.


노동운동의 문화적 재구조화, 원칙과 방향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노동운동의 문화적 재구조화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선 노동운동의 문화적 재구조화의 원칙과 방향을 대략 다음의 여섯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사회변혁운동 주체의 확장이다. ‘대기업 남성 정규직노동자’로 표현되는 노동운동의 주체를 노동자 ‘민중’으로까지 적극적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비정규직노동자,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는 물론 실업자 및 노동자 가족까지도 사회변혁운동의 주체로 확장시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렇게 된다면 운동의 성격과 구체적인 실천도 상당부분 달라질 수 있다.


둘째, 확장된 현장성의 구축이다. ‘현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단, 노동운동의 현장을 ‘작업장 내’로만 한정하지 말고 ‘작업장 안팎’으로까지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노동자의 일상생활, 취미활동 등의 영역까지도 정치의 영역으로 포함시켜 일상에서 벌어지는 자본의 모순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실제로 노동자들의 일상에서의 문화활동은 대부분 문화상품의 소비로만 한정되어 있고, 또한 주류 미디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독해능력을 길러내고 대안적 문화활동을 조직하는 것 또한 노동운동의 ‘현장활동’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셋째, 새로운 사회운동 간 연대성의 강화와 통합적 사회운동의 실현이다. 주체의 확장, 확장된 현장성을 기반으로 사회운동 간 새로운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90년대 이후 크게 성장한 시민운동의 다양한 의제들을 노동운동에 반영하고,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통합적 사회운동을 실현해야 한다. 다만 ‘통합적’ 사회운동이라는 말이 조직의 통합, 혹은 이념의 통합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개별 사안에 대한 형식적 연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연대성을 실현한다는 것은 자기 운동의제가 확장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형식으로는 오히려 수평적 네트워크의 구조가 적합할 것이다.


넷째, 지역성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연대성의 강화와 통합적 사회운동의 실현은 자연스레 ‘지역’이라는 공간과 사회문화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될 수 있다. 현재 기업별 노동조합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되는 산별노조 건설의 노력이 현실에서는 상층 중심의 협상이나 혹은 오히려 개별 노동조합의 투쟁력을 반감시키는 경우도 있다. 종적인 노동운동의 질서 구축 또한 지역을 중심으로 한 횡적인 운동질서의 구축이라는 전제 하에 추진될 필요가 있다. 지역의 다양한 현안에 대해 연대운동의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서로의 운동의제를 자기운동의 과제로 삼고 실천적인 연대성을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섯째, 생태친화적인 삶의 방식의 재구축이 필요하다. 삶의 영역까지 침투한 자본의 논리에 대한 대안적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생산성 향상’의 파괴적 성격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노동운동 내부의 반생태주의를 극복하려는 프로그램을 추진해야 한다. ‘삶의 질’, 그리고 ‘인간다운 삶’의 문제가 상품의 소비가 아닌 스스로의 삶의 생태친화적으로 재구축함으로써 가능하다는 사실을 현실의 실천으로 나타내는 것이 필요하다.


여섯째, 노동운동의 공동체성을 복원해야 한다. 정권과 자본의 노동통제 전략에 의해 파편화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공동체성을 복원하여 노동운동의 기초를 탄탄하게 만들고, 지역의 공동체운동 또한 강화시켜내야 한다. 노동자 개개인이 분절화, 파편화되는 것에 맞서 동아리, 스터디모임, 써클, 동호회 등 작업장 안팎에서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노동운동의 공동체성을 복원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러한 공동체들이 지역 사회에 뿌리내리고, 이를 통해 지역의 주요한 현안에 대하여 발언과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노동운동의 문화적 재구조화를 위한 방안들


노동운동의 문화적 재구조화라는 말이 매우 추상적으로 읽혀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현실의 투쟁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지금의 노동운동의 위기는 노동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전략적인 대안 모색을 강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수준에서라도 가능한 방안을 상상해낼 필요가 있다. 아래의 방안들은 현재 수준에서 상상 가능한 노동운동의 문화적 재구조화 관련 고민들을 정리한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실천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여러모로 부족한 제안임이 사실이지만, 부족한 부분은 이후 사회운동 차원의 적극적인 논의와 실천을 통해 보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상력과 함께 현장에서의 실천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 ‘노동운동의 문화적 재구조화’의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 사회운동진영 내부의 활발한 논의와 공감대의 형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현재 제기되고 있는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한 성격 규정, 자본의 논리에 의해 조직되는 노동자 주체 형성과정에 대한 평가 등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의 문화생활 패턴에 대한 조사 등 기초적인 연구 작업도 있어야 할 것이다. 지역의 사회문화적 관계망까지를 포함한 연구 조사를 통해 이후 지역에 기반한 노동운동의 실현이라는 과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연대성에 기반한 지역에서의 통합적 사회운동의 실현’이라는 주제에 대한 토론도 필요하다. 기존 연대활동의 관성에 대한 평가와 함께 비자본주의적, 생태적이고 대안적인 삶의 방식의 재구축을 위해 운동의제를 확장시켜내고 사회운동 간 연대활동을 강화시켜내야 한다.


두 번째로, 노동현장에서의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천해야 한다. 기존 투쟁의 보조적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통해 노동자의 의식향상과 새로운 공동체의식의 형성 등을 기대할 수 있다. 기존 문예패 활동을 중심으로 한 노동문화운동이 유의미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투쟁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기능하였다면, 이제는 노동시간을 줄여내는 것 그리고 특근이나 야근이 아닌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공동체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로, 지역 차원에서의 사회운동 간 공동의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 및 가족, 실업자 등 확장된 사회운동 주체형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여기에 지역의 사회운동 자원을 결합시킴으로써 대안적인 흐름을 형성해야 한다. 여성, 환경, 문화 등 다양한 사회운동의 흐름에 대한 교육,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문화프로그램,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길러내기 위한 문화강좌 등에 지역의 사회운동단체와 노동조합, 전교조, 문화활동가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통합적 사회운동을 위한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문화센터는 이를 위한 유효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노동조합이 운용할 수 있는 공간이나 지역의 관련 시설 등을 활용한다면, 노동자문화센터를 당장에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즉 노동조합은 사람들이 밤늦게 찾아갈 수 있는 ‘개방선터’를 만들어서 모임장소를 제공하고, 서비스와 상품을 소개하며, ‘민중대학’이나 영국의 ‘지역사회센터’ 혹은 덴마크의 ‘생산학교’ 등을 본따 노동자들과 실업자들(과 그 가족들), 퇴직자들, 연금수혜자들, 사춘기 연령의 젊은 부모들을 위해서 교육과정이나 주제토론회, 영화클럽, 수리점들을 제공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보수를 받는 노동시간 이외에는 오직 소극적이고 지루함만이 있을 뿐이라는 낡은 관습적 생각을 실제적인 방식으로 반박해야 한다. 또 노동조합은 상업적 소비문화와 오락에 대해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즉 노동조합은 애초에 자신들이 발생하게 되었던 협동조합과 결사의 전통과 노동자계급문화 서클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고, 또 자발적인 조직활동과 협동적 서비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수행할 공통적 이해가 걸린 작업계획에 대해서 시민이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는 광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8)


실제로 노동자문화센터와 같은 공간을 통해 할 수 있는 공동체 문화프로그램은 많다. 대구 성서지역의 경우, 이주노동자라디오방송과 같은 계기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발언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철학강좌, 아줌마문화강좌, 지역의 문화유산을 탐방하는 답사프로그램 등도 당장에 있는 사회운동 역량으로 충분히 시행 가능한 프로그램들이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이나 미디어 기술의 대중적 보급은 좋은 계기로 활용될 수 있다. 노숙인 미디어교육과 같이 지금도 간간히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프로그램들이 노동자문화센터와 같은 계기를 통해 더욱 확산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생협과 같은 공동체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면 지역의 농민운동과도 직접 연계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사회운동 간 접촉면을 넓힘으로써 통합적 사회운동을 위한 문화적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이 밖에도 지역에서 가능한 많은 방안들을 상상해 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이 문화권, 문화생활비, 그리고 문화센터 건립과 같은 문화적 요구를 담은 임단협 요구를 내걸고, 이에 대해 지역의 사회운동단체들이 연대하여 캠페인을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조합-공공문화기반시설-학교 등을 연계한 공공문화교육프로그램을 연구할 수도 있다. 또 지역의 다양한 현안에 대해 노동운동을 포함한 지역사회운동 차원의 공동대응을 확산시킬 필요도 있다. 노동운동의 경우, 기업별 혹은 산별 운동과제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운동의제들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사회운동 또한 비정규직 문제, 노동시간 단축문제, 일자리 확충 문제 등을 연계한 적극적인 활동을 조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지역에서 노동조합, 진보정당 및 각 영역의 사회운동 주체들이 참여하는 구체적인 실천을 조직하는 일이다. 지역의 사회문화적 환경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구체적인 프로그램까지 실험하고, 그 경험을 다른 지역으로 유통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결론을 대신하여


지금까지 노동운동의 문화적 재조직화에 대한 고민을 서술하였다. 노동운동의 문화적 재구조화의 문제의식은, 지금의 위기에 대한 ‘기술적인’ 대응이라기보다는 운동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고민이다. 다만 충분한 조사와 연구, 그리고 실천의 부족으로 인해 피상적 수준의 대안제시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한계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우리의 삶의 조건 전반을 자본의 방식으로 조직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는 단지 국제협약 문제이거나 혹은 작업장 내로 한정된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우리의 의식까지 해당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의 대응 또한 삶 자체를 변화시켜내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대안적인 실천을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와 함께 실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의 문제다.


‘노동자’, ‘지역’, ‘연대성’은 사회운동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중요한 키워드이다. 종적이며, 또한 상층지향적인 운동의 패러다임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횡적이며, 동시에 현장지향적인 운동을 통한 근본적인 변화만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다. 지역에서의 통합적 사회운동의 실현, 새로운 연대성에 기반한 사회변혁운동의 실천이 필요하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자세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실천이 요구된다.

 

* 이 글은 문화과학 45호(2006년 봄)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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