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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학자로서 마르크스」 『총명한 유물론』 제3집 여름호
„Marx als Logiker“,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31 (11), 1983: 1273-82.
J. Zelený | 구 사회주의 체코슬로바키아(ČSSR) 유물론 철학자
L19✬ R19
카를 마르크스가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논리라고 부르는 그 문제의식의 파악과 탐구에서도 새롭고 중요한 무언가를 성취해 냈는지의 여부는 오늘날 이념 투쟁 속에서 결코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마르크스를 위대한 경제학자로 인정하면서도 그가 논리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부르주아 측에서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변증법이, 논리나 ‘논리적으로 타당한 연역’의 이론과는 무관한, 단지 일종의 역사 이론이자 순전히 경험적이고 기술적인 이론에 불과하다고 종종 주장한다. 예를 들어 K. 포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냐하면 논리는 ⋯ 연역 이론으로 지칭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변증법이 연역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고 가정할 만한 어떠한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1 또다른 예로, W. 베커의 격렬한 반마르크스주의적 공격들도 그와 같은 방향을 향하며, 그와 같은 샘에서 물을 올린다. 그는 거리낌 없이 “마르크스 『자본론』의 경제적 기초 이론들의 방법론적 비합리성”에 대해, 그리고 변증법적 방법이 “능숙한 합리화─속되게 말하자면 마르크스적 전제들의 비합리성을 은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말한다.2
우리는 먼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정립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가일층 발전시킨 유물 변증법이 실제로 “연역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점을 해명하고자 한다. 동시에 우리는 ‘논리적으로 타당한 연역’의 이론 분야에서 마르크스가 발견한 내용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데 공헌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I
포퍼가 말하기를, 논리가 거칠게 말해 연역 이론으로 지칭될 수 있다고 해서, 그가 도대체 어떤 종류의 연역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그것이 아직 충분히 규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그것이 무엇이든, 화이트헤드와 러셀의 『수학의 원리(Principia mathematica)』에서 상세히 전개되고 적용된 바로 그 연역 이론을 현대 논리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들 중 하나로 간주할 수는 있다. 따라서 유물 변증법이 과연─그리고 무엇을─“연역과 관련이 있는지”에 관한 우리의 주제 조사를, 우리는 『수학의 원리』에 제시되어 있는 바와 같은 연역 이론으로서의 논리에의 화이트헤드와 러셀의 견해에 관한 몇 가지 변증법적-유물론적 논고들로 시작하고자 한다.3
유물 변증법이 (『수학의 원리』가 이해하는 바의) 연역과 관련을 맺는 것은, 공리적-연역적 체계의 틀 안에서 어떤 명제와 그것의 부정이 동시에 도출되도록 이끈다거나, 혹은 동일한 공리 체계 내에서 정리로서 명제 ~(p&~p)의 타당성을 부정할 것이라는,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다. 그러한 유치한 발상들을 유물 변증론자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왜곡이며,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가치가 거의 없다.4
유물 변증법이 연역과 관련을 맺는 것은 무엇보다도, 『수학의 원리』에서 연역 이론이 고찰되는 그 시야의 협소화(Verengung des Horizonts)를 변증법이 비판하고 극복한다는,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이다. 이제 우리는 이 논제를 더욱 상세히 전개하고 논증하고자 한다.
우리가 『수학의 원리』에서 마주하는 바와 같은, 연역 이론으로서의 논리의 좁디좁은 시야는, 본래 이 저작에서 수리논리의 전체 구상 자체가 비교적 제한적이지만 비록 당시 시대로서는 웅대한 과학적 과제, 즉 전체 수학을 논리적 기초들로부터 완전히 연역 가능한 것으로 제시하는 그 과제에 맞추어져 있었다는 사실에서 이미 드러난다. 『수학의 원리』의 저자들 스스로가, 예를 들어 프레게, 페아노, 칸토르의 천재적인 저작들로 이어지면서 그들에 의해 구상된 수리논리가 비교적 제한적인 목표 설정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는 점을 빈번히 명시적으로 강조한다: 즉, 그 목표는 바로 통상적인 산술과 기하학을 논리로부터 도출하는 데 성공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논리적 수단을 보장해야만 했다. 화이트헤드와 러셀에 의하면, 제안된 수학적-논리적 연역 이론의 검증은 “해당 이론이 우리로 하여금 일반적인 수학을 연역할 수 있도록 해 주는가”5의 여부에 달려 있다. 이와 관련하여 논리적 분석의 주의는, “수학의 이 혹은 저 구간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수학적 사고에 필요할 수도 있는 그러한 명제, 명제함수, 유(類) 및 관계의 속성들”6에 집중된다. 그리하여 (『수학의 원리』가 이해하는 바의) 연역 이론의 몇 가지 중요한 구성 요소 역시, 예를 들어 ‘환원 가능성의 공리(Reduzibilitätsaxiom)’ 같은 것들이, 해당 이론이 미리 주어진 목표에 더 잘 부합하도록 하기 위해 순전히 실용적인 이유로 받아들여진다.7 그리고 일부 주장은 사실상 주어진 것에 대한 주장으로서 순전히 경험적으로 승인된다.8
화이트헤드와 러셀은 수리논리에 대한 자신들의 전체 서술 앞에서9, 제1판 및 제2판의 「서론」을 통해 기본적 논리 개념들에 대한 그러한 해석을 앞세우는데, 이는 주장된 내용의 근거 지어져 있음과 그 근거 지어지는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실상 프레게와 페아노의 논리적 분석 개념이 이후 연역의 목적을 위한 출발점으로 적합하다는 단순 확언에 불과하다.
이처럼 『수학의 원리』는 이전의 것들보다 본질적으로 정교해진 정밀한 절차들─모든 단계와 전제 조건이 명시적으로 표현되어 있기에─외에도, 그 근거 제시 방식이 충분하게 성찰되지 않은 주장을 적지 않게 포함하고 있다. 정확성과 근거 지어져 있음의 진보는 근거 없음의 증가를 대가로 치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학의 원리』에서 수리논리를 구성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당대의 수학을 그 함의된 논리적 구조의 관점에서 선행적으로 분석하는 것이었다는 점이, 연역의 본질에 관한 물음에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는 충분히 성찰되지 않고 있다. 이는 “순수 수학을 그 논리적 기초로부터 연역하는 것”10을 다루는 것이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상반된 학문적 테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화이트헤드와 러셀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편으로는 주어진 수학을 분석하여, 그 안에 어떤 전제 조건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이러한 전제 조건들이 서로 양립 가능한지, 그리고 더 근본적인 전제 조건으로 환원될 수 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그에 반해, 우리가 전제 조건들에 관한 결정을 내린 후에는, 그로부터 다시 앞서 분석했던 사실들을 필요한 만큼 재구성하고, 또한 우리 전제들로부터 충분히 보편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 명시적으로 정립할 가치가 있는 만큼의 다른 결론들을 도출해야 한다. 선행하는 분석 작업은 최종적인 공리 기술에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데, 이 기술은 단지 분석의 결과를 특정 미정의 개념들과 증명되지 않은 명제들로 제시할 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석을 더는 진전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는 개념과 공리들을 정의하고 증명할 수 있는, 더 단순한 개념과 공리들을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을 이유는 없다. 주장되는 바는 오직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는 개념과 공리들이 충분하다는 것일 뿐, 그것들이 필연적이라는 것은 아니다.”11
연역적 체계 형태로 수학을 과학적으로 근거 지으려는 시도를 펼치는 저자들로서 화이트헤드와 러셀이, 실제로 적어도 세 가지 사고 과정을 부각하고 있으며, 이들 각 과정은 논리적 구조의 공통된 특징 외에도 저마다 고유한 특색을 지니고 있음이 명백하다. 그들은─본래적인 형식화 연역 도출 과정과 더불어, 그리고 그보다 앞서─당대 존재하던 수학을 분석하는 데 필요한 사고 과정을 작동시켜야 했는데, 그들은 당대의 수학을, 과거의 수학보다 더 잘 근거 지어야 할 주어진 진리들의 복합체(Komplex gegebener Wahrheiten)로 받아들였다. 이는 본래적인 연역에 선행하는 것이지만, (『수학의 원리』의 구상에서) 연역을 구성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사고 작업이다. 나아가 그들은 자신의 연역 체계를 구축함에서, 원자 관념이나 원자 명제의 ‘도입’이 문제시되는 경우마다 특정한 사고 절차를 적용해야만 했다. 이는 『수학의 원리』의 연역적 체계에서 증명된 것이 아니라, “설명적으로만 설명된”(“only descriptively explained”) 것12이다.
『수학의 원리』 유형의 연역 체계를 구축함에 있어 이러한 다양한 사고 과정이 필연적으로 공존하는, 더 엄밀히는 혼합되는 그 논리적 본질은 충분히 성찰되지 않은 채 비판 없이 수용되고 있는데13, 이는 연역 이론으로서 이 논리가 지닌 좁은 지평을 드러내는 또다른 표현이다.
현대논리학 문헌에 정통한 누군가는 여기서 다음과 같이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학의 원리』에서 논리를 연역 이론으로 보는 관점의 시야가 좁다는 점에 관해 지금까지 언급된 모든 내용은 타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첫째, 이 저작에서부터 이미 “분석을 더 진전시킬”(“to carry the analysis farther”) 가능성과 필요성이 표명되어 있다.14 둘째, 연역 이론으로서의 논리학의 이러한 질문과 전제의─『수학의 원리』에서 충분히 성찰되지 않은─상당수가, 굳이 유물 변증법을 적용하거나 논리학 분야에서 마르크스가 이룬 발견들을 고려할 필요도 없이, 현대의 ‘철학적 논리학’에서 다뤄지고 연구되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15
이러한 질문들과 유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변증법적-유물론적 비판의 고유성을 명확히 하고 연역 이론으로서 수리논리가 지닌 좁은 지평을 극복해야 한다. 아울러 ‘철학적 논리학’이 제기하는 질문들에 대한 변증법적-논리적 답변의 고유성을 정립해야 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변증법적-유물론적 합리성 유형 안에서 수리논리의 위상을 결정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달리 말하면: 『수학의 원리』의 저자들이 직접 시사한, 분석을 진전시켜야 할 과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 예컨대 셰퍼(Scheffer)의 방식(『수학의 원리』의 연역 체계라는 좁은 지평에 머무는 동시에 명제 논리의 원시 함자 수를 줄이는 것)이나, 스트로슨(Strawson)의 방식(‘철학적 논리’의 문제들을 주제화하여 탐구하되, 그것들을 유물 변증법의 토대 위에 세우지 않는 것), 혹은 마지막으로 수학적-논리적 문제들을 변증법적 유물론적 합리성 유형의 더 넓은 틀 속에 포섭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P. F. 스트로슨은 논리를 형식적 부분과 철학적 부분으로 구분하고16, ‘철학적 논리’가 탐구하는 전형적인 질문의 예로 다음을 제시한다. “논리적 상수들을 구별해 주는 특징은 실제로 무엇인가?” 논리 입자(logischen Partikel)라는 개념을 일반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도대체 이 명제(Aussage)란 무엇일까? 어떤 명제가 참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염두에 두는 것일까? 한 명제가 다른 명제에서 파생된다거나 그 명제에서 추론될 수 있다면, 일반적으로 두 명제 사이의 관계는 어떤 성격을 띠는가?”17
연역 이론으로서의 논리(『수학의 원리』의 관점에서)가 지닌 협소한 지평에 대한 변증법적-유물론적 극복의 고유성은─변증법이 연역 이론으로서의 논리와 어떤 의미에서 관련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 소위 철학적 논리의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1차적 접근으로 개괄할 수 있다: 마르크스(및 엥겔스와 레닌)의 발견을 바탕으로 하여 논리학적- 및 인식론적 문제를 연구하는 유물 변증법적 논리는, 무엇보다도 바로 이러한 물음들과 그 유사한 물음을 제기하거나, 스트로슨 등이 논리의 철학적 부분에 포함시키고자 했던 그러한 물음의 해결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그는 소위 ‘철학적 논리’의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적 문제를 막연하게 다룰 뿐인 데 반해, 유물 변증법의 논리는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접근을 찾아내는데, 우리는 이에 대해 추후 연역 이론으로서의 논리가 지닌 좁은 지평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더 자세히 규정하고자 한다.
스트로슨은 소위 ‘철학적 논리’의 문제들을 연구하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철학적 논리학자의 문제들이 통상적으로 철학의 다양한 영역에 속하는 다른 문제들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명제 이론이 인식론이나 존재론으로부터 실제로 분리될 수 없다는(“that the theory of the proposition cannot really be separated from the theory of knowledge or the theory of being”) 주장은 비록 수용할 만할 수 있을지언정 다소 의문스러운 테제이다.”18 스트로슨이 여기서 비록 옹호 가능할지언정 오히려 거부해야 할 입장의 하나로 제시하는 바를, 마르크스-레닌주의 변증법적 논리에서는 단호하고 명확하게 수용한다: 물론, 명제의 일반 이론(술어의 일반 이론19)은 “실제로 인식론이나 존재론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변증법적 논리는 여기서 ‘또는’ 대신 ‘그리고’를 말한다. 변증법적 논리는 어떤 의미에서, 인식론과 존재론이 ‘철학적 논리’와 불가분의 일체를 이룬다고 확신하는 ‘철학적 논리’의 대표자들과만 접점을 갖는다(분리가 가능하고 유익한 형식논리의 일부 분야와는 달리)고 말할 수 있다.
오스틴의 앞서 언급된 접근 방식과 관련하여, 변증법적-논리적 관점은 ‘총체 발화 상황’을 유물론적, 즉 사회·역사적 및 실천적 의미에서 포착한다는 점에서 그와 구별되며, 따라서 연구의 주된 목표이자 최종 목표를 “총체적 발화 상황 속에서 총체적 화행”에 대한 해명에 두는 것이 아니라, 사고·실천·존재 양식의 연관성을 고려하여 논리적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간주한다.
II
이제 변증법이 (『철학의 원리』의 관점에서) 연역 이론으로서의 논리와 어떤 의미에서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변증법적-유물론적 비판과 이 논리의 협소한 지평을 극복하는 작업이 지닌 그 고유성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유물 변증법의 관점에서 볼 때, 그 협소함은 『수학의 원리』가 추상적 동일성에 기초한 사고의 집합 존재론 내부에서만 움직이며, 그 경계 안에만 머문다는 것, 즉 의도적으로 그 경계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추상적 동일성에 기반을 둔 사고의 집합 존재론에 포섭되어 있다는 것은, 『수학의 원리』에서 모든 사태, 보편·특수·개별 간의 모든 관계, 그리고 일반화와 특수화의 모든 과정을 집합 존재론의 개념들로 환원하는 것이 근본적인 의미를 지님을 의미하며, 이때 원소와 집합(a∈K) 사이, 그리고 집합과 그 자신의 하위 집합(K⊂L) 사이의 관계는 고정된 제 규정의 관계로서 전제된다. 최종적으로 원시 구조 ‘a∈K’와 ‘K⊂L’로 분석될 수 있는 고정된 사태들은 1차적 존재 양식으로서 전제된다. 논리적 문제성에 대한 마르크스의 개념 구상에서 보았을 때, [『수학의 원리』의 근본적 관점에서는] 집합 존재론의 개념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들을 포함한 모든 규정이 궁극적으로는 생성(Werden)의 제 계기라는 점이 고려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화이트헤드와 러셀은 다음과 같이 썼다: “세상은 다양한 속성을 지니면서 서로 다른 관계에 있는 사물들로 이루어져 있다.”20 이는 비역사적 구조(ahistorischen Strukturen)의 논리적 관점에서도, 발전론적 사고(Geiste des Entwicklungsdenkens)의 관점에서도 수용되고 해석될 수 있다.21
그러나 (『수학의 원리』의 관점에서) 연역 이론으로서의 논리는, 앞서 언급된 존재론 사상을 추상적 동일성에 기초한 사고의 집합 존재론이라는 단순화하는 체계 속으로 몰아넣는다. 속성과 관계에 관한 명제들은 온전히 집합에 관한 명제들로 전환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22 이 맥락에서 중대한 것은 『수학의 원리』에 제시된, 관계에의 단순화·일면화된 관점인데, 이는 모든 경우에 있어 진행 중인 것, 곧 과정적인 것을 정적-구조적인(Statisch-Strukturelle) 것, 즉 집합 존재론의 영역으로─추상적 동일성(그리고 물론 추상적 차이를 동반하는)의 장으로─환원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xRy’(“x loves y”)는 ‘x∈R'y’(“x is a lover of y”)로 변환될 수 있다. 이리하여 오로지 정적-구조적 접근 방식만을 사용하게 된다.23 ‘변수(Veränderlichen)’라는 개념과 ‘변수’의 사용(실제로는 보편화와 특수화의 개념을 뜻함)은 이 구상에 완전히 종속된다. ‘변수’는 변수를 표현하지 않고 특정 한계 내에서의 불확정성을 표현한다.24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분명히 해두자면, 추상적 동일성에 기초한, 사고의 협소함 속에서 움직이는 그러한 논리의 새로운 형태를 정립한 것은 여러 면에서 진보적인 이론적 성과이며, 형식논리의 중요한 현대화와 결부되어 있다. 컴퓨터 기술과 관련하여, 이 논리가 수학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분야에서도 과학적 언어의 형식화를 위한 이론적 토대로서 지닌 큰 중요성은 명백하다. 따라서 변증법적-유물론적 합리성 유형에서는 수리논리학의 부상이 온전히 인정받으며, 추가적인 발전과 최대한의 기술적·이론적 적용을 위한 자유로운 여지를 확보한다.
그러나 연역 논리를 절대화하고25 이를 바탕으로 인간 지식의 전체에 대한 통일적인 관점을 수립하려는 시도는 유물 변증법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 예를 들어 R. 카르납(Carnap)은 그의 저작 『세계의 논리적 구조(Der logische Aufbau der Welt)』에서 ‘새로운 논리’(즉, 『수학의 원리』에서 보이는 유형의 논리)와 경험의 틀 안에서 사유 가능하고 근거 지어질 수 있는 것만이 과학적으로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타르스키의 『수리논리학 입문(Einführung in die mathematische Logik)』에서는 수리논리학에 대한 이와 유사한 사상이 다소 다른 형태로 비친다. 타르스키는 현대 수리논리학이 “원래는 수학의 기초를 공고히 하려는 비교적 제한된 과제로 인해 탄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이 학문은 훨씬 더 포괄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즉, 그것은 “인류의 모든 인식에 공통된 기반을 제공해 줄 통일된 개념 장치를 수립하고자 한다. 게다가 그것은 일부 과학 분야에서 참된 인식을 확립하는 유일하고 정당한 수단으로 이해되며, 또한 모든 학문 분야에서 적어도 가정된 전제들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보조 도구 역할을 하는 연역적 방법의 완성 및 정교화를 추구한다.”26 유물 변증법은 이러한 고려에서 첫 번째와 세 번째 사상을 수용하지만, 두 번째 사상(수리논리학을 전체 인간 인식에 대한 통일적인 기초로 마련하고자 하는 지향에 관한 것)은 거부한다.
헤겔의 논리학과 인식론에서 신비화되지 않은 핵심에 착근하는 카를 마르크스는, 발전론적 사고의 논리를 위한 초석을 놓음으로써 논리학사에 중대한 공헌을 했다. 이는 형식논리학의 제 문제의 그 제한적 견해에 대한 비판과 해명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세계를─궁극적으로는 스스로 발전하고 생성하는─과정의 총체적 연관으로서 합리적으로 영득(領得)하는 사유 형식의 이론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수학의 원리』가 이해하는 방식에서의 연역, 그리고 무릇─보다 일반화하여27─추상적 동일성에 기초한 사고 영역에서의 연역(이를 F-연역이라 부르기로 하자)은, 인간의 인식과 기술에 있어 비록 매우 뜻깊고 대단히 중요한 추론 형식이기는 하지만, 논리적으로 타당한 도출의 유일한 형식은 아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화폐 형태를 단순 가치 형태로부터 도출함으로써 화폐의 본질을 설명할 때28, 우리의 앞에 놓여 있는 것은 F-연역이 아니라 변증법적-논리적 사고 전개, 곧 변증법적-논리적 도출(dialektisch-logische Ableitung)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 두 형태의 논리적 도출을 다음과 같이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전자의 경우에는 F-연역을, 다시 말해 비역사적 구조(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사고방식)의 영역에서 한 명제를 다른 명제로부터 도출하는 것을 말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변증법적 사고 전개를, 다시 말해 발전 구조와 그에 상응하는 발전론적 사고의 영역에서의 도출을 말하는 것으로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29 비역사적 구조는 발전 구조의 한 측면이다. 발전 구조는 비역사적 구조를 하위 측면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 외에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없다.30
이 문제는 앞서 언급한 종속이 매우 특정한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복잡해진다. 즉, 우리는 그것을 오일러 다이어그램을 통해서도, 비역사적 구조를 발전 구조의 한계선에 있는 사례로(그리고 형식논리를 변증법적 논리의 한계선에 있는 사례로) 간주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표현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것은 비역사적 구조의 사유 형식으로 포착될 수 있는 중요성을 지니며31, 이는 단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필수적이다. 발전 과정을 합리적으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비역사적 구조의 사유 형식을 그 진가대로 발휘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오로지 비역사적 구조 안에서의 사유만으로는 발전 과정을 합리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분명히 이러한 문제들은 추가적인 고찰을 요구한다.32
때로는 F-연역적 도출과 변증법적 도출의 차이 및 그 관계를 “순수 형식적” 도출과 “내용적” 도출의 대립을 통해 표현하려는 시도와 마주칠 수 있다. 형식과 내용의 이원론적 대립은 마르크스 이전 논리학 구상뿐만 아니라 헤겔 이전 논리학 구상에 속하는 잔재이기도 하다. 이는 오늘날 주로 “순수 논리적”인 것과 “사실적”(“경험적”)인 것을 서로 형이상학적으로 대립시키는 견해의 형태로 존재한다. 예컨대 R. 카르납은 논리학 내의 F-논리적 관계를 무엇보다도 “모든 실제 사실과 독립적이며, 따라서 전통적인 의미에서 형식적”33이라는 점으로 특징짓는다.
마르크스의 구상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논리도, 그러니까 F-논리적 도출 관계조차도 “모든 실제 사실과 독립적이며, 따라서 이러한 의미에서 형식적”인 것은 없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헤겔 이전의 전문 논리학자들이 심지어 판단 및 추론 전형의 형식적 내용조차 간과했음을 볼 때, 경제학자들이 물질적 이익의 전적인 영향 아래에서 상대적 가치 표현의 형식적 내용을 간과한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34 이 언급은 과거의 경제학자들이 가치 형태를 오로지 양적 측면에서만 고찰했기 때문에 화폐의 비밀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는 지적과 맞물려 나온다. 이 마르크스적 사상에 대해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출하기란 쉽지 않다. 벌써 이 이유만으로도, 마르크스 자신이 『자본론』 제2판의 편집 과정에서 이 대목을 삭제했다는 사실은 그가 이를 자신이 의도한 바를 완전히 정확하게 표현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음을 시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문맥을 고려할 때는 다음과 같은 해석을 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마르크스는 헤겔이 판단 및 추론 형식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새로운 차원, 곧 발생론적 차원(die genetische Dimension)을 발견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의 신비화 속에서 이 발견은 변질되었다. 이전의 논리학에서 순전히 기성의,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 수 없는) 주어진 구조의 형태로만 고찰되었던 모든 판단 및 추론 형식들은─헤겔이 말했듯 “해골의 생명 없는 뼈들”은─헤겔 논리학에서 이념의 자기생성 계기들로 제시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절대적 사태로 취급되는, 보편·특수·개별의 통일이 지닌 다양한 형태들의 운동하는 과정이다. 유물론적 탈신비화에서 이는 헤겔이, 이전의 논리학에서 알려진 판단 및 추론 형식에 대해 그것들이 추상되어 나온 현실의 전체적(역사적) 발전 과정과의 연관성을 간과하지 않는 방식으로 탐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헤겔은 이 방식에 있어서 변증법적-유물론적 합리성 유형에 특유한, 사유 형식의 변증법적-유물론적 역사화를 예비한다.
경제적 가치 형태가 단순한 양적 비율의 표현에 그치는 것을 넘어, 발생론적 연관을 도외시하지 않은 채 교환 및 노동의 성격의 역사적 발전 단계와 연계되면서, 비로소 가치 형태 [자체]의 [실질적] 내용 속에서 파악되듯이, 판단 및 추론 형식 역시 발생론적-구조적(genetisch-strukturellen) 연관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이를 분석할 때 추상적 동일성의 영역에 속하는 집합 존재론이라는 좁은 시야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비역사적 구조를 발전 구조의 종속적 계기로, 비역사적 구조의 논리를 발전론적 사고 논리의 종속적 계기로 이해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논리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을 절대적으로 분리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논리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사실적인 것, 발전적인 것)을 반드시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변증법적 논리 속의 다양한 판단 형식의 발전론적 연관성과 발전론적 분류에 관한 『자연의 변증법』35 속 엥겔스의 청사진들은, 판단 전형의 형식적 내용을 간과하지 않은 것의 예로 제출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자본론』 제1판에 담긴 마르크스의 생각이 뒷받침해 준다.36
연역 이론으로서의 논리학(『수학의 원리』의 이해에 따르면)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외연적이다. 즉, 명제논리는 진리치 함자들의 연산계에 지나지 않으며(명제 결합체의 진리치는 오로지 연결된 명제들의 진리치에 의존한다)37, 술어논리에서 등급(집합)은 궁극적으로 그 외연, 즉 원소들의 모음을 통해 규정되고, 그에 따라 [동일성의 견지에서] 두 등급은 동일한 원소들만을, 그리고 오직 그 동일한 원소들만을 가질 때만 동일한 것으로 취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38
변증법적 논리, 즉 발전론적 사고의 논리는 순수한 외연적 논리로 환원될 수 없다. 이는 비외연적, 즉 내포적인 논리적 관계와 형식에의 탐구를 포괄한다. 그러나 이 사태를 단순화하여, 모든 비외연적, 즉 내포적 논리 이론이 그 자체로 변증법적 논리 이론의 구성 요소이며, 예를 들어 이러한 이유로 양상논리(C. I. 루이스 등의 견해에 따르는)가 “변증법적 논리의 한 분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양상논리는 『수학의 원리』의 논리처럼 무제약적으로 외연적이지는 않다는 점에서 ‘비고전적’이다; 이 의미에서 그것은 내포적이다. 그러나 명제 결합체를, 논리 상수들을 오직 진리치의 함수 인자로만 이해하는 명제 연산으로 환원하는 한, 이 논리는 추상적 동일성의 영역에서 집합 존재론의 경계 내에 머물 뿐이며, 그것을 변증법적 논리의 일부로 간주할 이유는 없다. 특정 논리적 구상이 발전론적 사고의 논리에 속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결정적 기준은, 그것이 추상적 동일성에 기조를 둔 사유의 경계 내에 머무르는지, 아니면 발전론적 사고의 방향으로 그 경계를 넘어서는지에 있다.39
III
앞선 모든 내용으로부터 알 수 있듯, 유물 변증법이 연역 이론으로서의 논리학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변은 필연적으로 합리적 사유의 본질과 발전 형태에 관한 물음으로 귀결된다. 일부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는 변증법을 수용하는 것이 “과학과 비판, 즉 합리적 사유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40 그들은 오히려, 현재의 과학 및 사회발전 단계에서 과학적으로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즉 합리적인 사유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이야말로, 새로운 역사적 합리성 유형의 토대로서 유물 변증법의 습득을 점점 더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다.<끝>
번역: 한동백 | 집행위원
2026년 8월 16일
- K. Popper: Was ist Dialektik? In: Logik der Sozialwissenschaften. Hrsg. von E. Topitsch. Köln/(West-)Berlin 1969. S. 273.

- W. Becker: Zur Kritik der Marxschen Wertlehre und ihrer Dialektik. In: Kritischer Rationalismus und Sozialdemokratie. Hrsg. v. G. Lührs u. a. Bonn - Bad Godesberg 1975. S. 211.

- Vgl.: A. N. Whitehead/B. Russell: Principia Mathematica. 2. Bd. Cambridge 1960. Vol. 1.

- Vgl.: K. Popper: Was ist Dialektik? A. a. O. S. 266.: 포퍼는 변증론자들이 모순의 배제 원칙(모순율), 즉 “두 개의 모순적 명제들이 결코 양립하여 동시에 참일 수 없다거나, 혹은 두 개의 모순적 명제의 연언으로 이루어진 명제가 순전히 논리적 이유들로 인해 거짓으로서 거부되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그 법칙의 포기를 요구한다. 만약 변증론자들이 이제 모순들의 결실성에 호소한다면, 그들은 전통 논리학의 이 법칙의 포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변증법이 이런 방식으로 새로운 논리로—변증법적 논리로—이어진다고 주장한다”고 ‘설파’한다. 우리는 변증법적 논리, 즉 논리적 문제의식에 대한 변증법적-유물론적 관점이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 A. N. Whitehead/B. Russell: Einführung in die mathematische Logik. München/Berlin 1932. S. 1.

- A. N. Whitehead/B. Russell: Principia mathematica. S. 87.

- A. N. Whitehead/B. Russell: Einführung in die mathematische Logik. S. 124.

- Vgl.: A. N. Whitehead/B. Russell: Principia mathematica. S. XV. bzw. S. 94.

- Vgl.: Ebd. Part I. Sections A, B, C, D.

- Ebd. S. 90.

- A. N. Whitehead/B. Russell: Einführung in die mathematische Logik. S. 2.

- Vgl.: A. N. Whitehead/B. Russell: Principia mathematica. S. 12.

- 변증법이 연역 이론으로서의 논리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탐구는, 오늘날의 수리논리학을 대상으로 화이트헤드와 러셀이 당대 수학에 행했던 것과 어떤 의미에서는 동일한 작업을 수행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다만, 여기에는 매우 본질적이라 할 한 가지 변경 사항이 따른다. 『수학의 원리』의 저자들은 전제 조건들에 대한 비판적 규명과, 과거보다 더 잘 근거 지어진 수학적 지식의 기술을 추구했으나, 그 과정에서 지식(여기서는 수학적 지식)을 근거 짓는다는 관념 자체가 과연 연역 체계 자체에 의해 근거 지어지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에 의해, 어떤 성격을 띠며, 어떤 조건과 적용 한계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검증하지 않은 채 남겨두었다. 변증법적-유물론적 합리성 유형에서는, 특히 이러한 물음이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 되며 변증법적 논리학에서 정당한 주제의 하나가 된다.

- A. N. Whitehead B. Russell·: Principia mathematica. S. VI.

- Vgl.: Philosophical Logic. Ed. by P. F. Strawson. Oxford 1967.

- Vgl.: Ebd. S. 1.

- Ebd. S. 1 f.

- Ebd. S. 2. - Vgl. 이와 관련하여 이 부분에서 재인용된 오스틴의 사상도 참조하라: “총체적 발화 상황(total speech situation)에서 나타나는 총체적 화행(total speech act)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규명하고자 하는 유일한 실제 현상이다.”

- Vgl.: Philosophical Logic. S. 2.

- A. N. Whitehead/B. Russell: Einführung in die mathematische Logik. S. 63.

- 여기서 발전론적 사고라는 개념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존재, 실천, 사유의 양식을 인식함에서 일관되고 가능한 한 전면적으로 발전의 관점을 취하는, 즉 “형성된 모든 형태를 운동의 흐름 속에서 포착하는” 사고방식. 다시 말해, 그것의 모든 사유 규정이 생성의 더 구체적인 규정으로 포착되는 그러한 사고방식이다.

- Vgl.: A. N. Whitehead/B. Russell: Principia mathematica. S. 81. - 타르스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따라서 많은 논리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집합과 속성이라는 두 개념을 구분할 필요가 전혀 없으며, 특별한 ‘속성 이론(Theorie der Eigenschaften)’은 불필요한즉─등급 이론만으로도 온전히 충분하다.”(A. Tarski: Einführung in die mathematische Logik. Wien 1937: S. 44.) 여기서 ‘집합(Menge)’과 ‘등급(Klasse)’이라는 개념은 동의어이다.(Vgl. dazu: A. N. Whitehead/B. Russell: Principia mathematica. S. 23.) 이후 집합론의 발전은, 예를 들자면, 체르멜로-베르나이스의 구상(Konzeption von Zermelo-Bernays)에 ‘집합’과 ‘등급’ 사이의 구분을 도입한다.

- 화이트헤드와 러셀은 이 맥락에서 관계 이론을 등급 이론으로 무제한 환원할 가능성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하기는 하지만, 『수학의 원리』의 연역 체계를 실제로 구축하는 과정에서는 “‘xRy’ 형식의 모든 명제는 클래스의 원소 자격을 주장하는 명제로 환원될 수 있다”는 원칙을 광범위하게 적용한다.(A. N. Whitehead/B. Russell: Principia mathematica. S. 243.)

- Vgl.: Ebd. S. 4, 40, 95. - 또한 이와 관련하여 타르스키가 ‘다변수(variablen Zahlen)’ 또는 ‘다변량(variablen Größen)’에 대해 언급한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Vgl.: A. Tarski: Einführung in die mathematische Logik. S. 2.).

- 이러한 의미에서의 절대화 가능성에 대한 단서는 벌써 Α. N. Whitehead/B. Russell: Principia mathematica. S. 3.에서 찾아볼 수 있다.

- A. Tarski: Introduction to Logic and to the Methodology of Deductive Sciences. 2. Aufl. Oxford/New York 1959. S. XI.

- 따라서 [상식적으로 이해되는 귀납과 연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귀납 논리는 연역 추론의 한 유형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 이러한 맥락에서 마르크스는 “방정식 분석을 통한 가치 도출”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러한 도출을 “이러한 형태의 화폐 기원의 증거”로 간주한다.(Vgl.: K. Marx: Das Kapital. In: K. Marx/F. Engels: Werke. Bd. 23. Berlin 1962. S. 18, 62.). 또한 마르크스는 ‘자본 일반(Kapital im allgemeinen)’이라는 개념이 화폐 개념에서 도출되는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우리는 그 발생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 이 변증법적 발생 과정은 자본이 형성되는 실제 운동의 이상적인 표현(ideale Ausdruck)에 불과하다.”(K. Marx: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Berlin 1953. S. 217.)

- 일반적으로 F-연역이랑만 자동적으로 연관되는 삼단논법의 정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두 가지 유형의 연역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Vgl.: Aristoteles: Anal. Pr. 24, b 18; Anal. Post. 100 b 5-6.)

- 하지만 이는 단지 부차적인 측면에 불과하다. L. S. 로고프스키(Rogowski)와 다른 이들이 변증법을 형식화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구체적 보편을 추상적 보편 아래에 종속시키려는 것을 목표로 한다.(Vgl. auch: La formalizzazione della dialettica. Hegel, Marx e la logica contemporanea. Ed. di D. Marconi. Torino 1979.) 이는 마치 아들이 아버지를 낳았다고 증명하려는 것과도 같다. G. H. 라이트(Wright) 등을 비롯한 이들에 의해 다뤄진 ‘변화의 논리(logic of change)’ 역시, 추상적 동일성에 기초한 사고의 집합 존재론이 지닌 경계 내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논리 이론이 과학적 가치가 없거나 무용지물이라는 점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며, 단지 이 이론이 변증법의 부분적 형식화를 이룬다는 견해에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만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 예를 들어, ‘만물유전(panta rei)’주장과 같은 발전론적 사고의 근본적인 판단은, “만물유전은 참이다”라는 명제가 성립하고, “만물유전은 참이 아니다”라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정된 규정을 지닌다. 즉, ‘p&~p’는 성립하지 않는다.

- 이와 함께, “오성이 모든 논리적인 것의 한 측면이다”라는 점 및 “오성과 이성의 불가분한 통일성”에 관한 헤겔 사상에의 비판적이고 신비화되지 않은 활용에 대한 요구가 새로운 조명 아래 드러날 수 있다.(Vgl. dazu: J. Zeleny: Verstand und Vernunft in Hegels „Wissenschaft der Logik" und in der materialistischen Dialektik. In: Dialektik 2. Köln 1981.)

- R. Carnap/W. Stegmüller: Induktive Logik und Wahrscheinlichkeit. Wien 1958. S. 30.

- K. Marx: Das Kapital. 1. Bd. Hamburg 1887. S. 21.

- Vgl.: F. Engels: Dialektik der Natur. In: K. Marx/F. Engels: Werke. Bd. 20. Berlin S. 492.

- 예를 들어 마르크스의 사상을 『수학의 원리』에서 등장하는 ‘분리 규칙’(“참인 기초 명제에 의해 함축되는 것은 무엇이든 참이다.”, 94쪽)과 같은 그토록 중요한 추론 전형에 도입해 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수학의 원리』 유형의 논리 체계 속 분리 규칙은, 진위가 확정되어 있는 병렬 명제들의 결합이라는 특정 경우에 그 결과 혹은 후건이 항상 특정한 진리치, 다름 아닌 고정된 두 진리치 중 하나를 갖게 될 것이라는 특수한 논리적 필연성을 표현한다. 이러한 형태의 F-논리적인 필연적 귀결은 현실 세계의 발전 과정에 내재한 필연성에 그 주요 기초를 두고 있다.”

- Vgl.: A. N. Whitehead/B. Russell: Einführung in die mathematische Logik. S. 17.; vgl. ferner: A. N. Whitehead/B. Russell: Principia mathematica. S. 8, 21 f., 72, 187.

- Vgl.: Α. N. Whitehead/B. Russell: Principia mathematica. S. XXXIX.

- ‘외연-내포’ 문제는 비역사적 구조의 영역에서와는 달리 발전 구조의 영역에서는 다르게 제기되는데, 이는 집합론이─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절대적인 존재론적 기초로 이해되는지, 아니면 발전 구조 내에 종속적인 계기로 편입되어 있는지에 따라 중대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직관주의 논리 역시 이미 순수하게 외연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수리논리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수학의 원리』의 관점에 따른 것보다 더 고유하게 수학적인 논리이다. 그것은 유물 변증법을 향한, 그리고 변증법적-유물론적 합리성 유형 속에서 수리논리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한 한 걸음을 의미하는데, 바로 형식논리의 좁은 지평을 더욱 자각하게 하고 이 논리의 절대화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서 바로 그렇다.

- Vgl.: K. Popper: Was ist Dialektik? A. a. O. S. 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