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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1842-1846)에 나타나는 유물론적 주체-객체 변증법의 발전

「카를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1842-1846)에 나타나는 유물론적 주체-객체 변증법의 발전」 『총명한 유물론』 제3집 가을호


„Die Entwicklung der materialistischen Objekt-Subjekt-Dialektik in den frühen Arbeiten von Karl Marx 1842-1846“, Beiträge zur Marx-Engels-Forschung, 16, 1984: 69-74.


E. Fischer | 구 민주 독일(DDR) 유물론 철학자


L10✬ R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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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사관의 발전과 마르크스의 헤겔 철학과의 비판적 대결 과정에서, 주체-객체 변증법[이하 ‘주객 변증법’]은 특별한 지위를 차지한다. 역사를 객관적 과정으로 이해할 때,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순전히 역사 속에서 인간이 활동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이 그 역사의 객체인지 주체인지가 해명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그에 상응하는 문제의식은, 인간이 역사를 만드는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특정한 조건 속에서 어떻게 역사를 만드는가 하는 점에 있었다.

 

헤겔의 주객 변증법 규정은 그의 객관적 관념론에 기반한, 잘못된 것이었으며, 역사와 관련하여서는 비현실적인 것이었다.1 헤겔에게서 역사를 형성하는 힘으로서 인간은 [그저] 역사의 도구로 남는다. 절대 이념의 작용인 역사는 헤겔에게서 인간을 자신의 객체로 만드는 주체이다.

 

바로 주객 변증법의 관념론적 규정을 극복하는 데에 인류사의 운동 법칙을 발견하기 위한 전제가 놓여 있었다. 왜냐하면, 사회와 그 역사 속에서의 자연과 인간, 육체와 정신, 현실과 자의식의 객관적 연관을 파악함으로써, 역사 과정 속의 필연성과 자유, 법칙성과 우연의 변증법적 연관을 올바르게 해명하는 것이야말로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주체로서의 인간, 혹은 계급이나 인류에 관한 마르크스의 구상이 발전하는 과정은 복잡한 과정이었다. 여기서는 그중 몇 가지 측면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로, 마르크스는─비록 그 자체로 여전히 관념론적으로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객관적 현실과 개인의 자기의식 사이의 관계, 즉 객관적 현실과 그것의 정신적 반영 사이의 변증법을 분석하였다. 마르크스는 이 객관적 현실의 본질을 처음에는 여전히 그 자체로 완전히 객관적인 이성의 의미에서 파악하였다. 그는 “현실 속에서 세계 전체의 ‘이념’”을 찾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2

 

이러한 점에서 마르크스는 우선 사회, 즉 현실을 객관적 이성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헤겔의 사상을 따르지만, 이 현실은─그리고 이것이 마르크스에게 중요한 점인데─자기의식과 철학에 대하여 독립적이며 규정적이다. 헤겔에게서 이러한 귀결은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그는 자신의 체계 안에서 객관적 현실, 절대 이념 그리고 철학을 동일시한다.

 

마르크스에게 그 귀결은 바로, 현실적인 객관 이성의 요구가 조건 짓고 규정하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는 점에 있었다. 이 시점에서 마르크스에게 주객 변증법은, 독립적이고 규정적인 현실인 ‘객관 이성’과, 그것의 주관적·정신적 반영인 ‘주체적 자기의식’ 사이의 관계이다.3

 

그러나 이제는 또한, 객관 이성으로서 존재하며 바로 이 개별적 자기의식에 선행하여 주어져 있는 현실에 대하여, 철학적 사유─즉 자기의식─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되었다.

 

마르크스는 철학, 즉 이론적 사유나 인간의 자기의식이 사태의 본질(객관 이성)에서 출발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현실의 본질과 일치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행위들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실현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음을 인식하였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철학이 “시대의 정신적 정수”로서 동시에 당대의 “현실 세계와 접촉하고 상호작용하는 상태에 들어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것은 추상적·사변적 체계로부터 “현존하는 세계의 철학”이 되어야 한다.4

 

둘째로, 이러한 토대 위에서 마르크스는 헤겔의 사변적 객체-주체 변증법에 대한 비판을 심화하고 그 신비주의적 성격을 폭로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그의 1843년 저작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이루어진다.5

 

마르크스는 헤겔이 처음에 ‘경험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루지만, 그것이 지니게 되는 의미는 그 ‘경험적 실존’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6, 오히려 ‘이념’이 전반에 걸쳐 주체로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7 이는 이념을 통한 현실의 ‘주관화(Versubjektivierung)’이다. 헤겔은 자신의 사유를 대상[객체]으로부터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되고 추상적인 논리의 영역 속에서 그 자체로 완결된 사유에 따라” 대상을 발전시킨다.8 이로써 모든 것이 전도된다: 마르크스는 ‘신비적 실체’가 주체가 되고, ‘실제의 주체’는 “신비적 실체의 한 계기”가 되며; “조건이 규정되는 것이 되고, 규정하는 것이 규정되는 것이 된다”고 썼다. 절대 이념은 언제나 ‘개념의 관념적 본성’을 따라 현실을 재단하는 주체이다.9

 

마르크스는 이를 통해 두 가지를 비판한다: 첫째, 현실로서의 객관 이성이 개념성 속에서 절대 이념과 동일시된다는 점; 둘째, 이렇게 생겨난 신비화가 현실을 (“어떻게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형성하는 주체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정치적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쟁, 무엇보다도 이 관계 속에서의 인간의 지위는 그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바로 “이념이 주체화”되기 때문에, “실제적 주체들인 시민사회, 가족은 ⋯ 이념의 비현실적이며, 다른 것을 의미하는, 객관적인 계기들로 변모한다.”10

 

셋째로, 마르크스는 저작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와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진정한 주객 변증법의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단계에 이른다. 그는 사회의 모든 현실적 변화와 해방 노력이 현실의 인간을 그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확증하기에 이른다. 언급된 사태들로 인해 시민사회의 소외된 영역으로서 정치적 국가는, 인간을 자기 삶의 과정의 주체로 만들고 정치적 자기소외를 제거하기 위한 인간 해방을 가져올 수 없다. 이는 오직 객관적 관계들(사유재산, 사적 이해관계 등)의 변혁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 결과 속에서 특수한 정치적 삶과 국가의 소외 또한 지양된다.11

 

이는 주체에 대한 마르크스의 구상을 변화시킨다. 이제는 사회적 개인이야말로 자신의 힘을─정치적 힘으로서, 따라서 계급적 힘으로서─인식하고 조직하는 주체가 된다.

 

이제 마르크스에게 주객 변증법은 그 전제조건이 인간 활동의 산물이며 인간의 욕구를 매개로 하여 근본적 혁명으로 이어지는 현실의 객관적 제 관계 속에 존재하는 그러한 과정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근본적 혁명, 곧 근본적 욕구들의 분출은 단순한 정치적 혁명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 사회를 근본적으로, 즉 그 물질적 토대에서 변혁한다. 이로써 비로소 보편적인 인간 해방이 가능하다. 이 혁명의 담지자이자 주체는 더이상 추상적 인간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힘이 개인들의 사회적 힘으로서, 그들이 그것을 의식하게 됨에 따라 혁명적 에너지로 전개된다는 점을 확정한다. 개인들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마르크스로 하여금, 근본적 혁명이 하나의 사회적 주체, 즉 계급들과 온 민중의 사업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인간 해방 및 개인의 자유에 부합하는 사회 변혁을 이룩하는 것[계급]. 마르크스에게 이 계급은 바로 프롤레타리아다.12

 

마르크스의 첫 경제학 연구의 결과인 1844년의 『경제학-철학 수고』 속에는 사회의 물질적 토대와 그 원동력들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서술이 발견된다. 그것은 노동과 물질적 생산에 기초하여, 인간 및 그의 유적 생활(Gattungsleben)인 사회의 변증법적 자기생성 과정에 대한 분석이다. 이제 자신의 행위의 객관적 조건에 대한 능동적 역할 속에서 역사에서 주체의 유물론적-변증법적 규정을 확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전제조건이 마련된다.

 

그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역사의 주체로서의 인간 능력의 발전뿐만 아니라 본질 능력들의 대상화로서의 노동의 역할이다. 노동은 동시에 인간의 유적 생활의 발전과의 관계 속에서 조사된다. 그 본질적인 귀결은 무엇인가?

 

첫째, 인간 노동은 언제나 대상적인 동시에 의식적이며, 목표를 세우고 목적을 설정하는 활동이다.13 동물과 달리 인간은 “자기 삶의 활동 그 자체를 자신의 의지와 의식의 대상으로 만든다. 그는 의식적인 삶의 활동을 가진다. ⋯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활동은 자유로운 활동이다.”14 규정적인 실천적 삶의 활동으로서 노동은 주객 변증법이다.

 

둘째, 이는 물질적-대상적 활동(자연 존재로서의 인간과 자연력으로서의 노동 등)과 의식적이고 목표를 세우며 목적을 설정하는 활동(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등)의 변증법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또한 대상과 객관적 관계에 의한 사회적 행위의 결정 과정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대상과 객관적 관계 자체는 인간 활동 내지 노동의 결과이며, 바로 그것들의 객관적 성격으로 인해 조건을, 그리고 그것들의 사회적 성격으로 인해 개인들의 사회적 활동, 즉 주체적 동력의 규정성을 함유한다.

 

셋째, 사회적 자유에 대한 어떠한 제약도 주체성에 대한 제약과 동일하며─소외된 노동의 경우처럼─따라서 이는 인간을 어느 정도까지는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사회적 조건의 결과이다.15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함께 1844-5년의 저작 『신성가족』, 1845-6년의 『독일 이데올로기』 그리고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청년 헤겔학파들과 포이어바흐와의 대결 속에서 주객 변증법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역사 자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행하고, 소유하며, 투쟁하는 이는 바로 현실의, 살아 있는 인간이다.” 역사는 “자신의 목적들을 추구하는 인간의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16 이 활동은 인간의 실천, 곧 주객 변증법이 완수되는 감성적·대상적 활동이다. 이로써 인간은 현실을 변경하며, 주체로서 자신의 목적들에 맞게 현실을 개조한다. 그리하여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사회와 역사 속에서 주체적 행위의 객관성이 대상 및 그것이 주는 객관적 관계와 객관적 조건에 의해 어떻게 규정되는지가 조사되고 서술된다. 역사의 물질적 토대, 대상 그리고 객관적 조건이 역사 과정의 주체와의 다양하고도 상호적인 관계 속에서 조사되며, 이를 통해 바로 객관적 규정성이야말로 역사적 주체로서의 인간의 의식적이고 성공적인 활동을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점이 입증된다.

 

주어진 각각의 특수한 객관적 상황은 인간의 사회적 활동을 위한 출발점을 형성하며,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다소간 인식된 객관적 가능성에 상응하여 행동하고, 상황을 변혁하며, 새로운 상황을 창조한다. 따라서 주관적 활동은 연속되는 역사적·객관적 상황과 인간 사회의 존재 양식 사이에서의 객관적으로 필연적인 매개로 판명된다. 이를 통해 “인간들 상호 간의 유물론적 연관”이 종합적으로 입증되는데, 이 연관은 “욕구들과 생산양식에 의해 규정되고 인간들 자신만큼이나 오래되었으며, ⋯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를 취하면서 하나의 역사를 제공하는”17 그러한 연관이다. 인간 사회의 발전, 따라서 그 역사는 객관적이며 법칙적인 과정이다. 이 객관적 합법칙성은 인간 활동의 출발점이며, 인간의 역사적 활성화를 위한 규정적 내용이 되고, 역사적 분쟁들의 경과에서 구현된다. 이는 또한 대상성이 주체성과 절대적인 대립 속에 서 있거나 주체성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역사적 효력성 속에서 주체성 바로 그것을 비로소 가능하게 하며, 이를 통해 그것이 주체성의 보편적 전제조건임을 의미한다. 대상, 객관적 관계 그리고 조건으로부터 귀결되는 사회적 상황─주체들, 즉 주체적 활동을 위한 조건 구조(Bedingungsgefige)를 이루는 상황─은 언제나 인간 행위의 토대이자 동시에 지나간 주체적 활동의 결과이다.

 

번역: 한동백 | 중앙사무위원

2026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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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riedrich Engels: Die Lage Englands. In: MEW, Bd. 1, S. 551/862.텍스트로 돌아가기
  2. Marx an Heinrich Marx vom 10./11. November 1837. In: MEGA² III/1, S.15 f.텍스트로 돌아가기
  3. Karl Marx: Anmerkungen zur Doktordissertation. In: MEGA² I/1, 68 f.텍스트로 돌아가기
  4. Karl Marx: Der leitende Artikel in Nr. 179 der „Kölnischen Zeitung“. In: MEGA² I/1, 183. ─ Karl Marx: Verhandlungen des 6. Rheinischen Landtages. Debatten über das Holzdiebstahlgesetz. In: MEGA² I/1, 204 f, 207 f.텍스트로 돌아가기
  5. Karl Marx: Zur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In: MEGA² I/2, 8 ff.텍스트로 돌아가기
  6. Ebenda, 9-10.텍스트로 돌아가기
  7. Ebenda, 11.텍스트로 돌아가기
  8. Ebenda, 15.텍스트로 돌아가기
  9. Ebenda, 18 f.텍스트로 돌아가기
  10. Ebenda, 8.텍스트로 돌아가기
  11. MEGA² I/2, 148 ff, 160, 162.텍스트로 돌아가기
  12. Ebenda, 179 ff, 182 f.텍스트로 돌아가기
  13. Karl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In: MEGA² I/2, 365 f, 409.텍스트로 돌아가기
  14. Ebenda, 369.텍스트로 돌아가기
  15. Ebenda, 404 f, 407 f.텍스트로 돌아가기
  16. Karl Marx: Die heilige Familie. In: MEW, Bd. 2, 98.텍스트로 돌아가기
  17. Karl Marx/Friedrich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In: MEW, Bd. 3, 30.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