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10/03

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3/26
    이미지 프레시안 - 건투를 빈다
    사람
  2. 2010/03/25
    책 후원, 함께 하실래요?
    사람
  3. 2010/03/25
    요즘은 식신..(1)
    사람
  4. 2010/03/18
    경계와 운동의 철학
    사람
  5. 2010/03/12
    송두율이라는 질문-침묵과 망각의 카르텔
    사람
  6. 2010/03/11
    <사람> 목차 (2010. 3-4월)(2)
    사람
  7. 2010/03/09
    래군 선배에게
    사람

이미지 프레시안 - 건투를 빈다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것과 별개로. 고통을 증명한다는 것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수잔손택이 <<타인의 고통>>이란 책에서 한 질문이다.

<프레시안>이 '이미지 프레시안'(http://www.imagepressian.com/)이란 걸 만들었다.

왜 '포토 프레시안'이 아니라 '이미지 프레시안'인가?
같은 책에 이런 구절도 나온다.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서 뭔가를 기억한다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사진만을 기억한다는 데에 있다. 이렇듯 사진만을 통해서 기억하게 되면 다른 형태의 이해와 기억이 퇴색된다."

"사진은 객관적인 기록인 동시에 개인적인 고백이 될 수 있으며, 실제 현실의 특정한 순간을 담은 믿을 만한 복사본이자 필사본인 동시에 그 현실에 관한 해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형태의 이해와 기억을 위해서 필요한 건 도대체 무엇일까?

사진을 통해 맥락을 드러내는 것, 이야기 하기 혹은 말걸기가 어느 만큼 가능할 것인가?

'이미지 프레시안'은 어떤 이해와 기억을 우리에게 전할 것인가?

아무쪼록 '이미지 프레시안'이 충실한 기록자인 동시에 현실에 관한 탁월한 해석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책 후원, 함께 하실래요?

이미 두주전에 돌렸던 메일이나

오늘 처음 블로그에 글을 올린 기념으로 다시 인증^^

메일 보내고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소장하고 있던 책을 나누겠다는 분부터 정기후원으로 등록하겠다는 분까지..ㅋㅋ

정말 책이 도착했는지는, 후원회원이 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음만으로도 행복해진 몇일이었다. 

이번 주말은 어려우니 담주 주말에 '휙~'하고 들려 책장에 책이 늘었는지 돌아봐야겠다^^

 

---------------------------------------------------------------- 

제가 지난 1월 용인 수지로 이사를 갔답니다. 요즘은 동네 곳곳을 돌며 이곳저곳을 익히고 있는데요,

지난 주말에는 수지에 위치한 <느티나무 도서관> http://www.neutinamu.org/ 을 방문했었지요.

지역 도서관운동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겐 익숙할지도 모르겠는데,

이 도서관은 재개발로 쑥대밭이 된 동네에 아이들이고, 어른이고 함께 모여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한 주부의 바램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 바램들이 모이고 모여서 어느새 10년, 도서관은 넉넉한 그늘을 가진 도서관으로 성장했는데요,

주말에 가보니 아이들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맘대로 뛰어놀던 모습이 아주 인상깊었습니다.

 

근데 한가지 아쉬었던 건, 나름 모양새를 갖춘 도서관에 인권도서는 눈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딱 한권 있더라고요. 책세상에서 낸 <인권>... 물론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직접행동 등의 책이 비치돼있긴 했지만

인권도 꽤 큰 분류라고 치면 그럴텐데 익숙할만한 이주, 여성은 물론이고 관련한 서적은 없었습니다.

비영리 민간기관이고, 사람들의 소액 후원금으로 운영되다보니 보니, 대부분의 도서는 구입보다는 '증정'과 '기부'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해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는데요,

각 단체에서 발행했던 책( 혹은 발간중인 책)이나 여유분으로 갖고 있는 책, 또는

각 활동가들이 필자로 참여했거나 다 읽어서 누군가와 함께 볼 마음이 있는 책을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기증하면 어떨까했답니다.

해서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메일을 띄우는데요, 

제게 모아주셔도 좋고 직접 느티나무 도서관으로 기증의사를 밝히셔서 보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아참, 우편비를 따로 챙겨드리지 못하는 건 이해해해주실 수 있죠?

이 김에 느티나무 도서관 홈페이지도 함 방문해보시고요, 동참이 가능하신 분들은 연락주세요..(3월 안에 연락을 주심 좋겠지요?^^;)

좀 낯선 내용이긴 할텐데 인권활동가분들의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리고요, 혹여 별 반응이 없으시더라도 넘 슬퍼하거나 좌절하진 않겠습니다. ㅋㅋ

 

그럼 좋은 한주 되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요즘은 식신..

요즘의 나를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사실 '식신'이라는 말보다는 '좀비'라는 말이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지만

임산부가 스스로를 좀비라고 칭하는 것은 너무 거시기 한 거 아니냐는 항의와 반발에 부딪히다보니

대체할 말로 떠오른 것이 '식신'이었다.

식신. 좀 우습지만 이 말만큼 요즘의 나를, 나의 관심사를 잘 드러내주는 말이 있을까?

나는 요즘 매일 먹을 것과 씨름을 하고 있는데

이유인 즉, 지난달 입덧이 끝나기가 무섭게 식욕이 돌더니

눈 뜨자마자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고, 아침을 먹고 나면 간식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고, 간식 후에는 점심을, 점심 후에는 또 간식을 고민하는 그런 싸이클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

해서 내 24시간 중 8시간은 잠으로, 나머지 16시간은 먹는 것으로 구분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블로그 개설에 이런 저런 고민들과 삶의 흔적들을 남겨야할 것 같은데

그게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느 정도의 거리두기가 가능할지 역시 걱정..

어쨌거나 ‘재밌지’는 못하지만,

가끔 들려 ‘삶의 소소한 단상’을 화두로 흔적을 남기려고는 해볼 생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경계와 운동의 철학

 

여기 그림 하나가 있다.  

 

있는 것

없는 것

 

 

위에 있는 그림 중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실선은 과연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는 것은 하나인가, 여럿인가?
없는 것은 없는 것이라는 형태로 있을(존재할) 수 있는가, 없는가?
 

 



<있음과 없음>은 흔히 '존재와 무'라고 철학에서 일컬어지는 있음과 없음에 대한, 존재론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윤구병의 존재론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책을 읽고 3시간 가까운 강의를 들었지만, 감히 존재론에 대해, 윤구병의 존재론에 대해 입을 뻥긋하기도 벅차다. 어쩌면 철학에서 가장 머리 아픈 분야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수학과 자연과학, 불교와 도교, 기독교 등 종교의 영역까지 맞닿아 있는 분야여서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존재론은 윤구병의 말에 따르면 '모든 의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하는' 엄밀성을 가져야 한다(그래서 논리학, 수학과 맞닿아 있다. 집합, 직선과 삼각형, 원주율, 적분과 미적분이 등장한다). 다시 그의 말에 따르면 존재론(그리고 철학)의 과제는 "가장 큰 하나인 있는 것과 가장 작은 하나인 그 무엇을 양극단에 두고 이 두 끝, 한계 사이에 우주 전체의 삼라만상이 어떻게 배열되는지, 차례로 하나하나를 겹쳐서 우주의 전체 구조와 그 구조에 따르는 기능을 밝혀내는 일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 이러한 존재론의 과제는 종교와 철학에서 과학으로, 빅뱅이론에서 소립자까지를 탐구하는 자연과학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거의 신앙에 가까운 과학에 대한 믿음이 생겨났다. 하지만 자연과학, 수학은 아직도 원주율(파이)의 어떤 규칙성도 질서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쩌면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직선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법칙을 곡선의 세계, 원에서 찾고 있으니 말이다. "자연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되어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윤구병은 농사짓는 철학자이다. 철학과를 나와 한국 잡지계의 독보적인 존재인 <뿌리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을 지냈고, 어린이 책으로 유명한 보리출판사름 만들었고,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1995년 변산에서 공동체 학교를 열고 농사를 짓는 이다. 그래서 그의 존재론, 그리고 철학은 서양철학에도 뿌리를 두고 있지만 한편 불교, 도교의 사상과도 맞닿아 있다. 

있는 것과 없는 것보다 있을 것과 없을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말하는 좋은 세상은 "있어야 할 것이 있고 없어야 할 것이 없는" 세상이며 그럴 때 존재론은 객관성이 아닌 당파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존재론에 대해 입을 열었다가는 선무당이 사람잡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다시 첫번째 질문,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실선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답을 하자면 실선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 실선이 있는 것이라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나가 되고, 실선이 없는 것이라도 마찬가지다. 왼쪽으로 가면 좀 있는 것, 좀 더 있는 것, 조금 더 더 있는 것...오른 쪽으로 가며 조금 없는 것, 조금 더 없는 것, 조금 더 더 없는 것... 바로 실선, 경계에서 운동이 생겨난다. 실선이 없으면 다 있거나 다 없는 세상이 되고 말기에 실선, 경계야 말로 존재하는 세상을 현실로 인식하게 하는 열쇠이며 운동의 출발점인 것이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관계만이 아니다. "어떤 하나가 다른 하나와 관계를 맺어 둘을 이루면.. 이 둘 사이에는 이 하나도 아니고 저 하나도 아닌 것이 나타나는데... 둘이 없으면 크기도 없고 공간도 없"다. "둘은 이 하나와 저 하나의 만남의 다른 이름이고, '실체'의이름이 아니라 관계의 이름"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서 해가 뜨고 지는 일까지, 운동에서 관계맺음은 핵심이고 본성이다. 운동은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 본성에 대한 탐구, 경계에 대한 존재론, 존재에 대한 질문, 운동하는 존재의 철학이 절실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송두율이라는 질문-침묵과 망각의 카르텔

#8.
지난해 어느 다큐 감독으로부터 '송두율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곧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계도시2>라고 했다. 솔직히 <경계도시1>을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송두율이라는 이름은 마치 금기의 언어인 것처럼 내 몸 어딘가를 찌릿하게 했다.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래는 <경계도시2> 공식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SYNOPSIS
2003 년,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 37년만의 귀국을 감행한다. 그러나 그는 열흘만에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간첩’으로 추락하고, 한국사회는 레드 컴플렉스의 광풍이 불어온다. 그리고 그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의 친구들조차 공포스러운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2003년 그는 스파이였고, 2009년 그는 스파이가 아니다. 그때 그의 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한국사회는 그때와 얼마나 다른가?

DIRECTOR’S NOTE
Dynamic Korea, 한국사회는 여전히 숨 가쁘다. 그렇게 사건으로부터 6년이 흘렀고, 사건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지나버린 과거 사건일 뿐이라면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리고 우리는 그때로부터 과연 얼마나 멀리 왔는가? 송두율 교수 사건을 통과하면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스스로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무엇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우리를 움직이는지... 이 영화가 한국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내면의 거울이 되기를 희망한다.

[출처] [경계도시 2] 작품정보|작성자 bordercity2 


#7.
몇 해 전 출판사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를 우연한 자리에서 만난 적 있다. 나였는지, 그 자리에 다른 누구였는지 모르겠지만 후마니타스에서 낸 책들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책이 무었인지 물었고 그 대답이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라는 책이었다. 첫 장을 펼치자 책은 2003년 여름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가 귀국했을 무렵,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던 중 '노동당 입당', '북한 정치국 위원'이란 말들이 언론에 등장했을 때, 한 강연장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라고 강요받았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독일 국적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다시 한 번 허탈했을 때, 그의 부인과 아들이 구명운동을 하고 다니는 것을 지켜봤을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고백하자면 나또한 그와의 '비판적 거리두기'라는 허울좋은 명분 아래 그저 광기를 피하고, 혹은 마녀사냥을 외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6.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1부는 구속 이후 심경을 메모형식으로 담고 있는 '한 경계인의 비망록'이며, 그가 한국에 머물렀던 2003년 가을부터 2004년 여름까지 썼던 강연문(그러나 끝내 발표되지 못한 강연문도 포함되어 있다)과 편지글, 재판 과정에서의 최후진술 등을 담은 것이 2부다. 3부는 그가 독일에 돌아온 이후 사회와 철학, 통일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이고, 4부는 박상훈 대표와의 대담이다. 
 

#5.
그리고 부록으로 '사태 전개의 기록'이 붙어 있는데, 여기서 나는 '송두율 사건'의 이해를 위해 이 부록을 먼저 짧막하게 요약하고 싶다. 

- 송두율 교수는 2003년 9월17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귀국하여 국정원에 자진출두, 이후 네 차례의 조사를 받는다.  
- 9월30일 국회에서 정형근 의원이 송두율 교수는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자백했다고,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이 사건이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 간첩 사건'이라고 언론에 공표했다. 
- 10월14일 송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노동당 탈당, 독일국적 포기 등을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 
- 10월22일 송 교수는 서울구치소에 입감되었고 2004년 1월까지 그의 스승이자 저명한 철학자 하버마스, 노벨문학상 수상자 권터 그라스 등이 탄원서를 제출했다.
- 2004년 4월13일 국제엠네스티는 송 교수를 양심수로 지정했다.
- 7월21일 2심판결에서 일부 무죄 및 집행유예로 석방되었으며 광주 망월동과 그의 고향 제주를 방문한 뒤 8월5일 독일로 출국했다. 

#4.
그는 국정원 조사를 각오하고 귀국했다고 했다. 물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간단하고 형식적인 조사라고 했지만 그러하더라도 이러한 조사를 거부하며 끝내 귀국을 거부했던 윤이상 선생에 비춰 국정원 조사를 받아들인 그에게 나는 약간의 실망감을 가졌다. 그런데 4부 대담을 보면 사실과 다르다.   
"조사에 응하려 했다면 그전에 벌써 한국에 갔겠지요. ... 국정원과 기념사업회가 그렇게 하기로 했다며 입국 시 공황에서 내게 요구했던 것이었을 뿐입니다."
당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얼마나 그를 모시고 싶었는지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나는 그의 말에 무게를 두고 싶다.
어쨌든 결코 간단하지도 형식적이지도 않은 국정원의 조사 가운데 그는 1973년 북한 입국 시 노동당에 가입하는 서류를 작성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란 말이 보수 정치인과 언론을 통해 툭 튀어져 나왔다.
이 때부터 과연 그는 정치국 후보위원인가 아닌가, 그가 거짓말을 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젊은 날 북한에 입국하며 노동당에 가입했다는 말을 스스로 밝히지 않은 것의 연장선 상에서 그를 못 믿을 사람이라고 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송씨에게 실망... 국민에 보다 진솔해야" , "송씨 친북행위, 민주화운동 욕되게 해"... 보수 정치인의 말이 아니다. 김근태, 장기표의 발언이다. '좌파 지식인의 배신', '사상적 간통'... 물론 보수 언론의 경우 더욱 심했지만 국가보안법을 없애라고 요구해온 이른 바 개혁진영, 진보진영에서의 이같은 태도는 또한 놀라웠다. 이들이야 제도권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작가 황석영이 그를 찾아가 "공개적으로 전향할 뜻을 발표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고 영구 귀국 의사를 표명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전향공작 전담반이 아니라 한국사회 존경받는 작가가 말이다.
국가보안법 체제,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자신이 속한 정치조직을 미리 말하지 않는 것도 죄가 되는 사회였다. 형법 어디를 뒤져도 거짓말이 죄라고 써있지 않지만 적어도 북한과 관련되어 거짓말을 한 사람은 죄값을 치뤄야 한다.
결국 재판에서 그가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부분은 무죄가 선고되었다. 독일국적을 가졌던 그가 북한에 들어간 것도 죄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죄는 단 한 가지, 북한을 좋게 이야기하고 남한을 헐뜯었다는 것. 그건 이미 그의 저술활동을 통해 이미 드러나있던 것이었다.  
 

#3. 
3부 '다시 경계의 공간을 열며'에서 그는 경계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경계선은 원래 전투적 개념이다.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선으로서 공격과 방어를 가르는 배타적 개념이다. ... 그러한 경계가 선이 아니라 면이나 공간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경계면이나 경계공간은 이미 이쪽과 저쪽 사이에 자리 잡을 수 없는 제3의 어떤 존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배타적인 이쪽과 저쪽은 대체로 이러한 제3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려 들거나 아니면 그것이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불안해하기도 한다."
"0과 1 사이에는 무수한 가치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제3의 무엇을 인정하는 이러한 태도는 불확실성이나 애매성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그것도 당장에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논거는,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헛소리거나 아니면 중간에서 미적거리는 기회주의자의 억지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경계인'이 때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태도로부터 비롯된다."

#2.
그는 이 책 서문 말미에 이렇게 썼다.
"야만과 광기가 무섭게 휘몰아쳤던, 너무나도 낯선 땅에서 그야말로 모든 것을 바쳐 남편과 아버지를 지켜냈던 아내와 두 아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1.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송두율 교수가 일상의 철학적 주제를 엮어 만든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고 그에 대한 긴 편지를 받았다.
" (2004년 독일로 돌아간 뒤) 지난 2년 반 동안 선생님 문제에 대한 논의를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른바 '송두율 사건'은 선생님의 출국과 더불어 사회적 공론의 의제에서 갑작스럽게 실종되어 버린 겁니다. .. 모든 논의는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 결국 2003년 가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약 10개월, 그리고 그 안팎의 시기를 추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기록'을 다시 접하면서 과연 이 땅에서 지식인이라 부를 만한 여지가 얼마나 남았나 하는 회의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밀란 쿤데라는, 권력의 핵심은 망각하게 하는 것이라며 기억하기 위한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우리는 그 평범한 진리조차 실천해 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 그래서 이번 책이 '침묵과 망각의 카르텔'이라 부를 만한 그간의 상황에 대해 뭔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0.
며칠 전 윤구병 선생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연을 들었다. 거기서 철학하는 일은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또한 묻지 않으면 답할 수 없다고 했다. 혹시 나는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제대로 된 답만을 구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깨우치기 위해서는 들어야 하고, 듣게 위해서 물어야 하고, 묻기 위해 제대로 된 물음을 찾아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람> 목차 (2010. 3-4월)

 

격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서는 일상에서 인권과 관련된 이야기, 인권에 대한 고민과 주장, 인권이론 등 인권을 위해 애쓰는 여러분의 글을 기다립니다. 

편집부 이메일(esaram0@gmail.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채택되는 원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원고료와 1년 정기구독권을 드립니다.

 

격월간 『사람』 정기구독 1년 3만6천원 / 2년 6만원
웹진(www.esaram.org)이나 이메일로(esaram0@gmail.com)로 신청

인권재단 사람 후원회원 월 5천원 이상 / CMS신청 또는 계좌이체
인권재단 사람 후원회원이 되시면 격월간 『사람』을 보내드리며 도서출판 사람생각에서 발간하는 책을 80%에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정기구독 및 후원회원 문의 02) 363-5855 / 031) 211-5855
구독·후원계좌 신한은행 100-020-833848 재단법인인권재단사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래군 선배에게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3-4월호 발송을 오늘 마쳤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많이 늦었죠. 아래는3-4월호에 실린 편집인의 글입니다.

책을 들고 면회를 가려고 했는데 인가가 워낙 많은 분이라 다음 주에나 볼 수 있겠네요.

 

--------------------------------------------------------------------------

 

래군 선배에게

 

봄볕에 기대어 담배 한 개비를 물었더니 이제야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른바 ‘용산 수배자 3인’ 중 한 명이었던 선배가 명동성당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기자회견을 한 뒤 제 발로 경찰서에 간 게 벌써 50일 전입니다. ‘벌써’라는 말에 섭섭도 하겠지만 갇힌 사람에게는 더디 가는 시간도 형벌의 한 가지인 셈이지요. 게다가 담배 한 대도 못 피울 테니, 제가 대신 또 한 개비를 물었습니다.


지난해부터 제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금연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 얼마나 장수하나 두고 보자’는 못된 심보가 들기도 하지만, 한편 담배를 배운 후 한 번도 작심삼일을 넘기지 못했기에 그네들의 결단이 부럽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담배를 끊으면 독한 놈이라 했다지만 요새는 ‘아직까지도’ 담배를 피우는 게 독한 거라네요. 사실 사람이 독해서가 아니라 담배의 중독성이 심한 탓일 테지요.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중독으로 치자면 어디 담배뿐인가요. 아침에 일어나면 핸드폰 문자부터 확인하고, 사무실에 나가면 컴퓨터 앞에서 이메일부터 열고, 퇴근하면 TV를 켜면서 못 다 본 신문을 펼치고.
 

그렇게 신문을 뒤적이다가 선배가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아 서울 왕십리 뉴타운지구에서 겨울철 강제철거가 또 실행되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지난해 12월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서 60대 철거민이 목숨을 끊은 지 한 달 만에,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딱 1년 만에 다시 시작된 겨울철 철거였습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북아현동과 염리동, 성동구 금호동과 왕십리, 동작구 상도동과 성북구의 장위동, 동대문구 휘경동과 답십리, 은평구 갈현동과 서대문구 가재울……. 서울만 해도 재개발 136곳, 뉴타운 재개발 113곳, 재개발 예정지역 77곳이라 하니 수도서울은 그야말로 지뢰밭입니다. 용산참사 이전에도 이후에도 한국사회에서의 재개발 병, 개발중독은 전혀 회복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아니 4대강 사업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으니 지금까지는 그저 서막에 불과한 것인지 모릅니다.
 

어디 재개발 문제뿐인가요. 비정규직 문제가 큰일이라고 너나없이 말하지만 새해 선물로 정리해고 통지를 받아야 했던 한양대학교 미화원 여성노동자들은 설 연휴 전날도 눈발을 맞으며 집회를 열어야 했고, 설 연휴 방송사들이 앞 다투어 다문화 운운하는 동안 이주노동자들 40명은 영문도 모른 채 단속을 당해 그 중에 비자가 없는 사람은 수갑이 채워져 출입국관리소로 끌려가야 했습니다. 인권을 빙자하여, 북한 인민의 인권을 볼모삼은 북한인권법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통과했고, 명분 없는 전쟁의 늪 가운데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파병을 하는 법안은 별 문제 없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아마도 선배가 밖에 있었다면 일일이 챙기고 관여했을 일들이지만 솔직히 선배가 나와 있다 한들 뭐가 달랐을까 싶습니다. 
 

인권운동의 오랜 숙원인 사형제 폐지도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으로 물 건너가고, 헌법재판소의 집시법 야간집회 금지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은 밤 10시까지만 합법으로 하자는 어처구니없는 여당의 법안으로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이 와중에 법무부는 차별금지법도 제 입맛대로 어떻게 만들어볼까 하는 모양이고, 오늘 인터넷에 들어가니 쌍용차 파업 이후 “사망 6명, 자살 기도 2명, 환자 70명”이란 기사가 떠 있습니다. 또 담배가 땅깁니다. 
 

요즘에는 ‘이명박’과 ‘김연아’를 거론하지 않고 글을 써야겠다 싶습니다. 칭찬이 됐든 비판이 됐든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끝도 없는 블랙홀 같으니 말이죠. 대신 ‘삼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말 출판계에 있는 후배에게서 삼성 X파일에 대해 양심선언을 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과 관련된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전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출판계에서는 책을 낼 경우 세무조사를 각오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고 합니다. 책이 나오고 그나마 양심적인 언론들도 책 광고를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그것이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에 이 책과 관련한 칼럼이 거부되어 논란이 됐고 그 와중에 김용철 변호사의 책은 인터넷 서점을 중심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언론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과정에서 삼성의 실질적인 압력은 없었을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예전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와 보안사가 그랬듯이 절대 권력은 입김 없이 그저 눈빛만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이니까요. 이미 삼성은 그런 경지의, 신성불가침의, 알아서 자기검열이 작동되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요? 그래서 김용철 변호사의 책 제목처럼 삼성을 생각하는 일, 삼성에 대해 말하는 일은 대단한 용기와 각오와 결단을 요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은 창간과 동시에 삼성 문제를 고민했죠. “대한민국과 삼성은 전쟁 중”이라며 특집으로 삼성 문제를 다루기도 했습니다. 2005년의 일이니 지난 5년 사이 삼성은 아마도 그 싸움에서 승리를 거둬 대한민국을 온전히 접수한 모양입니다. 삼성과 관련된 인권문제, 노동권 문제나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 등에 대해 『사람』은 물론 인권운동에서도 대응을 게을리 하거나 회피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삼성은 더 이상 하나의 기업, 거대 자본, 재벌이 아닌 그 무엇이 되어버렸습니다. 권력 이상의 권력, 국가보안법처럼 하나의 지배체제로 한국사회를 억압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삼성의 문제, 한국 속에서 삼성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삼성, 삼성 속의 한국의 문제를 어찌하면 좋을지, 선배가 나오면 머리를 맞대어봐야겠습니다.
 

안에서 박지원의 『열하일기』 완역본을 재미나게 읽고 있다지요. 잘은 모르지만 저는 박지원의 시대와 지금 시대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중심축이 바뀌는 격변기, 변방의 지식인으로서 비주류와 주변부에 주목하고 주체성을 고민하며, 거기서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의 가치를 찾아 나섰던 연암의 삶이 선배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압록강을 건너 산해관을 지나 북경을 돌아오는 봇짐 속에 선배는 무엇을 담아왔을지도 꼭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봄꽃이 일찍 필 거라고 합니다. 나오면 담배는 제가 한 갑 사드리지요.
 

 강곤 드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