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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25
    평화의 언어, 그리고 듣는다는 것
    고ㄴ
  2. 2011/03/22
    잡지와 인권, 인권잡지 이야기(준비호?)
    고ㄴ
  3. 2011/03/11
    아랍 혁명과 불가능한 꿈
    고ㄴ

평화의 언어, 그리고 듣는다는 것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 병역거부가 말했던 것, 말하지 못했던 것 
임재성 지음 / 그린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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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2P'라는 이름의 미사일이 리비아 트리폴리로 날아가고 있다.
‘국민보호의 의무(Responsibility to protect)’라는 이 신개념의 전쟁명분은 “자국 국민을 집단학살, 전쟁범죄, 인종청소, 반인륜적 범죄로부터 보호하지 못하는 나라에 대해 국제사회가 집단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럼 미사일은, 인도적 개입이라는 폭격은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일방적인 군사적 우세 속에 진압당하고 있는 리비아 시민군과 리비아 민주주의를 방어하고 평화를 평화롭게 가져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있나?
평화는 까다롭고 복잡하고 예민한, 참 어려운 문제다. 

2.
평화라는 단어를 언제 처음 듣고 입 밖으로 내게 되었을까? 기억을 더듬으면 여덟, 아홉 살 무렵 엄마 손을 잡고 갔던 어느 교회 부흥회였으리라. 박수를 치며 불렀던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지금 생각하면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우리에게’가 아니라 ‘내게’인가, 그리고 과연 강은 평화로운가?
사람들이 흔히 입에 올리는 평화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어떤 상태라기보다는 한 개인의, 그 내면의 어떤 상태인 듯하다. 그런 평화는 종교적 구원이나 명상과 깨달음을 통해 얻어지는 어떤 경지다. 물론 내면의 갈등이 평화의 경지로까지 이르는 길은 쉽지 않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두 사람 사이에서, 삼각관계에서, 성장배경이 다르고 입장과 세계관이 다르고 가치관이 충돌하는 사람들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의 평화일 것이다.
평화는 조용하지 않고 소란스러우며 정적이기보다는 동적이고 갈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굽이굽이를 돌아가는 길인지 모른다, 강물처럼. 

3.
병역거부자들은 전쟁에 (그리고 전쟁연습과 훈련에) 참여하는 대신 평화를 이야기한다. 검사와 판사와 기자들, 그리고 한국사회는 그들에게 “왜 군대에 가지 않느냐?” “다 거부하면 나라는 누가 지키냐?” “네 집에 강도가 들어와도 평화롭게 당할 거냐?”는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진다. 병역거부자들의 답변들은 이런 질문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는 (산업기능요원, 소방청, 교도대 등 이미 수많은 종류의 대체복무가 실시되고 있음에도)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이 약속되었다가 이 정부 들어서 물거품이 되었다. 오히려 해병대 지원자가 늘었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뉴스 앵커가 주말마다 병영체험을 하는 영상이 TV에 방영된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속에서 ‘국가를 위해 죽어간 숭고한 죽음’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넘실댔던 한국사회에서 병역을 거부하고 군대 대신 감옥을 선택했던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4.
이 책의 필자는 ‘평화학’이라는 생소한 학문(혹은 연구방법)으로 병역거부자들,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했던 운동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분석한다. 그들이 애초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인지, 차마 하지 못한 말은 무엇이었으며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었던 말은 무엇인지에 주목한다.
그 가운데 필자는 “대체복무제의 정당성이나 ‘부작용’ 없는 외국 대체복무 운용 사례가 아니라, 양심의 자유가 포괄하는 범위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국제 인권규범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젊은이들이 어떤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남들 다 가는 군대를 거부하며 부모 속을 찢어 놓으면서까지 감옥에 갔는지 (...) 이들은 손가락질당해야 할 파렴치한도, 불쌍한 피해자도, 강철 같은 신념의 소유자도 아닌 우리 시대의 평범한, 하지만 폭력에 민감했던 사람들이었음”을 드러내며 공감을 시도해보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5.
평화는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타인의 아픔과 고통, 또는 존재와 욕망에 공감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왠지 아쉽다. 이는 요즘 특히 유행하는 ‘공감’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너나없이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들 하지만 권력의 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말길이 트이길 기대할 수 없듯이 공감이 한 개인의 성찰과 깨달음을 넘어 어떤 사회적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는 그저 막막할 따름 아닌가. 우리의 공감대를 넓히고 그 깊이를 더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6.
“병역거부자가 말했던 것, 말하지 못했던 것-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평화의 언어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침묵은 복종을 뜻할 때도 있지만 때론 저항의 언어가 될 때도 있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라는 사파티스타의 말처럼 언어에는 분명 평화를 이끌어올 힘이 있지만 반대로 평화를 깨는 도구가 될 때도 많다. 그렇다면 평화학은 “잘 듣기”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참 많고 달변이 되는 법, 글 잘 쓰는 법을 다룬 책은 넘쳐난다. 그러나 어떻게 들을 것인가, 무엇을 들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세상이다. 매장된 350여만 마리의 가축들과 일본 쓰나미 피해자들, 아랍 혁명에 나선 민중들의 말을 듣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의 언어는 너무나 빈곤하고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가.  
입에서 튀어 나오는 말들 너머의 진심을 듣는 일, 행간을 읽고 공감하고 더 나은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이 평화학이라면 이 책은 좋은 출발점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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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와 인권, 인권잡지 이야기(준비호?)

누가 《사람》이 어떤 잡지냐고 물으면 우스갯소리로 ‘인권독립잡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 냉정히 말해 자본으로부터는 독립한 잡지라지만 ‘인권재단 사람’의 기관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여섯 살이니 경제적으로는 힘들겠지만 정서적으로나마 재단으로부터 독립하고 최소한 제 앞가림은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올봄부터 한 달에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하고 담배 한 갑보다는 겨우 5백 원 비싼 정기구독자를 열심히 모아볼까 합니다. 인권단체들에게 파격적인 할인가에 공동구매도 제안해볼 생각입니다. 한국인권운동의 기관지 《사람》은 너무 야무진 꿈일까요? - <사람> 49호 편집인의 글에서
 
 
《사람》 3-4월호(통권49호)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바로 가기)
 
이번호에서는 반차별 운동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혐오’에 대해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기획단계에서는 참 신선하고 좋은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소주제를 구성하고 필자를 물색하다보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혐오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과 이해의 깊이가 참 얇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반차별 운동,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죠.
멀리 아랍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중봉기에 대한 소식은 격월간지의 성격 상 부득이하게 다루지 못했지만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시위, 필리핀 인권활동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학생인권조례의 등장으로 학교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진 교사의 자기고백과 성찰이 담긴 글도 권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아랍 혁명과 불가능한 꿈
人터뷰 누가 민주주의의 적인가
人터뷰 풀을 누이고 일으키는 바람
인권이 내게로 왔다 포이동에서 맺은 인연
특집 혐오라는 사회적 질병
특집 혐오범죄, 그 폭력의 구조
특집 혐오발화는 어떤 힘을 갖고 있나
기획 인권조례제정 이대로 좋은가
기획 삶을 바꾸는 조례제정운동
사람in 인권 존중이 사라진 학교, 학생인권은 안녕한가
사람in 인권 어느 필리핀 인권활동가의 죽음
사람in 인권 방글라데시 노동자 시위, 현장을 가다
사람in 인권 천안함 연평도 이후 한국사회 군사주의
사람in 인권 엠비(MB)식 법치에 물 만난 경찰
인권의 장르를 찾아서 은밀한 독재
엄마에게 쓰는 편지 누구에게나 자리가 있는 복지
사람답게 조카의 사춘기
희망을 위한 직접행동 충돌하는 민주주의와 직접행동
 
 
 
50호 발간 기념 앙케이트
 
격월간《사람》에서는 50호 발간을 기념해서 월 3천원 CMS 정기구독자 확대 사업을 구상 중입니다.
광고성 메일을 돌리기가 뭐해서 구차하게(?) 잡지와 인권, 인권잡지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격주간 뉴스레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래처럼 조촐한 이벤트도 준비했습니다.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중에서 
 

하나, 가장 좋았던 호는 몇 호인가요?

 

둘,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누구의 혹은 어떤 주제의 글이었나요?

 

셋, 재미 있고 소개해주고 싶었던 연재가 있었나요?

 

넷, 앞으로 꼭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4월 25일까지 이름, 연락처와 함께 이메일(esaram0@gmail.com)로 보내주세요. 네 가지 문항을 모두 적어주신 분에 한해 추첨을 통해 도서출판 사람생각 발행 단행본 3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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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혁명과 불가능한 꿈

지난해 12월 17일, 튀니지 시디부지드라는 지역에서 스물여섯 살 청년이 자기 몸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 청년은 시디부지드 지역에서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부족 출신이라 합니다. ‘부아지지’라는 이름의 이 청년이 행상수레를 빼앗기며 여성 공무원에게 뺨까지 맞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가 겪은 모욕은 부족 전체의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이틀 뒤 시디부지드 청년들이 거리로 나섰고 경찰과 충돌이 발생하자 시위는 인근 도시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습니다. 벌써 몇 달째 이어지고 있는 아랍 혁명의 불씨가 당겨진 겁니다.

결국 채 한 달도 못 버티고 1987년부터 집권해온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불길은 이집트로 번졌습니다. 1월 25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있는 타흐리르(해방) 광장에 수만 명이 모여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합니다. 수백 명의 사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대규모 시위는 연일 계속되었고 18일 만에 미국과 각별한 관계였던 무바라크 대통령 또한 30년 동안 독차지했던 권력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이제 혁명의 기운은 북아프리카와 아랍 전역으로 퍼집니다. 이란 아지즈(자유) 광장으로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여듭니다. 바레인에서는 일주일 넘게 시위가 이어지고 수도 마나마의 중앙광장을 시민들이 점거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예멘에서는 사복을 입은 경찰관이 친정부 시위대로 가장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차별 공격하여 10여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이라크에서도 수천 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해 9명이 사망했으며 모로코에서도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헌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입니다. 8주 동안 민주화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요르단과 수백 명이 도로를 점거한 오만, 튀니지 혁명 이전부터 싸움을 벌여왔던 알제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나라, 멈추지 않는 정부군의 학살과 수천 명의 희생자 속에서도 혁명의 불길이 꺼질 줄 모르는 리비아가 있습니다.

예측불허의, 모두의 예상을 간단히 뛰어넘는 아랍 민주주의의 전진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집트에서 무바라크가 물러나고 군부가 권력을 이양받자 1980년 서울의 봄과 5월 광주, 87년 6월 항쟁을 떠올리며 우려를 내비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타흐리르 광장에서의 시위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튀니지 민중은 혁명의 과실을 가로채려했던 총리까지도 물러나게 했습니다. 각본 없이 시작된 드라마는 세계사를 다시 쓰고 있는 중입니다. 정치적 지도자도 조직도 없이,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폭발한 이 저항은 그 자체로 새로운 가능성이자 희망입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가 시위를 조직하고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2008년 촛불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아랍 혁명은 우리의 어제가 아니라 다가올 내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랍 민중의 봉기는 독재정권에 대한 반대와 함께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한 경제상황의 악화와 그로 인해 가장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절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십여 년간 아랍 국가들의 복지체계가 말할 수 없이 망가졌으며 여기서 국가는 제 역할을 전혀 못했다는 이야기들이 뒤늦게 들려옵니다. 이 혁명이 어떻게 폭압적인 체제를 무너뜨리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획득하는가와 함께 새로운 경제질서를 요구하고 또 만들어갈 것인가를 주의 깊게 봐야겠습니다.

또 누구는 북한이나 중국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저는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왜 튀니지의 독재정권이 가장 먼저 무너졌는지에 대해 튀니지의 벤 알리 정권은 억압적인 경찰체제인 반면 이집트와 같은 나라는 좀 더 유연하고 지능적인 독재를 펼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권력이 분산된 독재체제는 명확한 독재자의 얼굴을 가진 체제보다 무너뜨리기 어렵다”는 것이지요(‘혁명, 연쇄와 징후’, 르몽드디플로마크, 2011년 2월호).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2008년 촛불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양상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민주적 통제란 굴레를 아예 벗어버린 검찰과 제 철을 만난 듯 활개를 치는 경찰은 공권력을 들이대며 계기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하고 공포를 조장합니다. 정권과는 대립과 타협을 반복하며 줄다리기를 하지만 자본의 이익과 논리 앞에서는 철저히 복무하는 사법부는 또 어떻습니까. 게다가 너무 쉽게 권력에 길들여진 방송과 권력 길들이기에 흠뻑 취한 보수신문들, 급속도로 퇴행하는 학계와 종교계와 문화계, 학교에서 기업까지 벅찬 싸움은 곳곳에서 벌이지고 있습니다.

더 교활하고 그래서 더 잔인합니다. 봄소식보다 먼저 날아든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열세 번째 죽음이 그렇습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에서 보낸 보도자료에는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쌍용자동차는 2009년 파업을 끝내며 무급자에 한해 1년 뒤 순환복직을 한다고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막연한 희망에 기대어 생활고를 견뎌내던 한 노동자는 파업투쟁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던 부인이 집 베란다에서 투신한지 10개월 만에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장례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또 한 명의 쌍용 노동자는 자신의 차에 연탄불을 피우고 또 그렇게 세상을 등졌습니다. 개별 사업장에 대한 개입은 하지 않겠다던 정권은 공권력을 투입해 살인적인 진압을 펼쳤고, 법원은 노동자 96명을 구속시키고 아무렇지도 않게 80억 원이 넘는 손배가압류와 110억 원 구상권 청구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합법적으로 합의된 약속을 회사 측은 지킬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 어떤 권력집단도 이를 강제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죽음의 행렬 뒤에 권력을 거머쥔 자본의 얼굴이 어른거립니다.

국가기관들을 수하로 부리는, 임기가 없기에 레임덕도 없는 자본은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우리네 삶을 제 입맛에 맞게 요리합니다. 제1야당에서 무상의료란 말이 등장하고 여기저기서 유행처럼 복지국가가 거론되지만 재벌총수의 야구방망이 폭행에는 떠들썩해도 재벌기업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것은 뉴스에 나올 수 없게 된 한국사회에서는 허망한 소리일 따름입니다. 자본권력에 대한 각성과 성찰, 변화된 권력구조와 지배방식에 대항하는 새로운 저항이 기획되고 실천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내일은 그저 예측 가능한 절망일 수밖에 없겠지요.

오는 5월이면 50번째 《사람》이 나옵니다. 6월은 창간 6주년이 됩니다. 누가 《사람》이 어떤 잡지냐고 물으면 우스갯소리로 ‘인권독립잡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인권은 그렇다 치고, 광고료에 의지하지 않고 영리목적의 광고는 아예 싣지 않으니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잡지가 분명합니다. 간혹 몇 부나 찍는지 궁금해 하는 인권활동가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영업비밀이라 그럽니다. 잡지나 신문의 발간부수가 영업비밀인 까닭은 그에 따라 광고료가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인데 광고에 기대지 않는 《사람》이 발간부수를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창피해서 둘러대는 것이지요. 냉정히 말해 자본으로부터는 독립한 잡지라지만 ‘인권재단 사람’의 기관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여섯 살이니 경제적으로는 힘들겠지만 정서적으로나마 재단으로부터 독립하고 최소한 제 앞가림은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올봄부터 한 달에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하고 담배 한 갑보다는 겨우 5백 원 비싼 정기구독자를 열심히 모아볼까 합니다. 인권단체들에게 파격적인 할인가에 공동구매도 제안해볼 생각입니다. 한국인권운동의 기관지 《사람》은 너무 야무진 꿈일까요?

아랍 혁명을 보며 불가능한 꿈꾸기를 멈추지 말자는 어느 혁명가의 말을 다시 새겨봅니다.   

 


- <사람> 2011년 3-4월호(49호)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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