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88만원 세대>를 좀 더 읽어봤다. 솔직히 말해 완전히 다 읽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거의 다 읽었다. 끝을 내지 못한 것은, 변명하자면, 도저히 더 읽기가 어려워서였다. 무개념이 난무하고, 분석이나 과학적 증명 대신 근거없는 억측과 무지막지한 비논리가 판을 치니... 어차피 "토익책을 덮고 짱돌을 들어라"라는 결론을 보기 위해 이 책을 더 읽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더 읽은 김에 더 정리해 보련다.
앞의 글에서 이 책의 저자들이 말하는 "경제학적 개념들"이란 것이 사실은 현상에 대한 재진술일 뿐인, 아주 피상적인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더 나쁜 것은, 그들은 여기에 덧붙여 전통적으로 경제학에서 벼려져 온 (비록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에서는 거의 무시당하기는 하지만)
진정한 "개념들"에 대한 무지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그들이 "노동"이라는 개념을 쓰는 방식을 보자.
"학생들이 '공부'라는 이름으로 수행하는 일은 지적 노동이며, 그것도 경쟁이라는 명확한 틀을 가지고 있는 중노동이다." (40쪽)
대체 저자들은 "노동"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더구나 위 구절은 흔히 부르주아 학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아주 천박한 짓거리, 즉
노동을 "이론적으로" 천시하는 짓거리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우리가 이론에서든 현실에서든 노동을 굳이 신성시할 필요는 없지만, 위와 같은 몰개념적인 표현이 경제학자, 아니 "경제학 박사"의 손끝에서 나왔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공부"가 "(중)노동"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들에게 "임금"이라고 줘야 한단 얘긴가?
"착취"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이 말은 원래 자본주의에서 자본-노동 사이의 임노동관계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즉 자본가에게 고용된 노동자는 자본의 통제 아래 노동을 수행하게 되는데, 노동자가 받는 임금(=가변자본)은 그가 실제로 자본가를 위해 행한 노동량에 훨씬 못미치며 그 차액을 자본가가 가져간다. "착취"는 바로 이런 사정을 표현한다. 이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자들은 요새 젊은 세대가 나이든 세대에 의해 "착취당한다"라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쓰고 있다.
그래, 이해를 못 하는 바도 아니다. 그들은 10대/20대가 나이든 세대들에 의해 뭔가를 "빼앗기고 있다"라는 얘길 하고 싶었을 거다. 그러나 "빼앗기고 있다"라고 하면 될 일을 왜 "착취"라고 하냔 말이다. 내가 지금 말장난을 하는 건 아니다.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위에서 봤듯이 "착취"란 생산의 범주다. 그러나 저자들은 그것을 "분배"의 영역에서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문제가 되는 거다. (그러니까 나는, 단순히 마르크스가 그렇게 썼기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란 얘기다. 이 얘긴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다.)
그런데 잘 보면 저자들의 무지(또는 "매우 특이한 이해")는 단순히 경제학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잘 읽지 않지만, 마르크스는 <자본론> 2권에 영국의 좁은 다락방에 갇힌 채 쭈그리고 앉아 면실을 자아내는 키 작은 소년 소녀들의 모습...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묘사하고 있다. (54쪽)
글쎄... "사람들은 잘 읽지 않지만"이라? 대체 왜 이런 구절을 붙이는 걸까?
"사람들은 잘 읽지 않지만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란 뜻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잘 읽지 않기 때문에 자기들도 안 읽어봤다"는 뜻일까? 그러나 불행히도 <자본론> 2권에는 저런 묘사가 없다. 1권에는 있지만 말이다. 이 책 전체의 논지로 봤을 때 "토익책을 덮고 <자본론> 같은 책도 좀 봐라, 자식들아"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을 "사람들은 잘 읽지 않지만"이라는 구절이 더더욱 "기만적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이래서다.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고? 설마.. 오타 아니겠냐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니, 심지어 나는, 내가 <자본론> 2권에 있다는 저 내용을 기억 못하는 것 아닌가 하면서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의 곳곳에는, 실제 저자들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저것이 "오타"가 아닐 것이라는 심증을 굳게 만드는 예들이 적지 않다.
사회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 '세대'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진행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물론 루이 알튀세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와 같은 개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누가 어떠한 의도로 통제하는지 설명하긴 좀 곤란하다. (32쪽)
어차피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A)에 대해 더 설명하거나 논의할 것도 아니라면 사실 저 대목에서 굳이 알튀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저자들은 했는데, 불행히도 저 짧은 문장은 (때때로 짧은 구절이 핵심을 표현해주기도 한다지만) 저자들의 무지만을 표현할 뿐이며,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마르크스주의를 음해하려는 매우 불순한 의도까지도 읽을 수 있다. (일전에 홍기빈에 대한 글에서 나는, 굳이 마르크스를, 또 알튀세르를 엿먹일 게 아니라면, 잘 알지도 못하는 저런 식의 얘긴 하지 말라고 했었다.) 내가 여기서 ISA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것에 대해 "'누가' 통제한다는 건데?"라고 묻는 것보다 부적절한 것은 없다. 그런데 진짜로 어이없는 것은 따로 있다. 위와 같은 몰이해를 과시한 다음 저자들은, 바로 한 페이지 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난해서 결혼할 수 없고, 그래서 10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하는 우리나라 이팔청춘들의 사랑은 슬프다. 그러나 사랑이 제약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지금의 청소년들의 삶이 슬픈 것은 아니다. 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더 큰 음모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33쪽)
대체 "누가 어떠한 의도로" 음모를 꾸민다는 건가? (이 자리에서 논의를 더 자세히 진행시킬 수는 없지만, 내가 굳이 이런 부분을 지적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위와 같은 일관적이지 않은 표현들은,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이나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 말하자면 "사회적 과정" 내지는 "경제과정"에 대한 저자들의 이해가 매우 불명확함을 내비치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다루는 대상에 대한 저자들의 지식이 부족하거나 또는 단순히 틀렸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그 밖에도 많다. 먼저 그들은 "독일 68세대의 이론을 대변했던 사람들은 프랑크푸르트학파라고 부르는데,
주로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강의했던 마르쿠제와 아도르노 같은 교수들이었다"(156쪽)라고 했는데,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프랑크푸르트 대학"이 아니라 그 대학의 부설 "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거다. 더구나 마르쿠제는 사회연구소에 가입한 바로 그 해에 독일을 떠났다.
뿐만 아니라 저자들은 프랑스 68운동을 주도했던 학생들이 아주 딱딱하고 어렵기 짝이없는 싸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가지고 있어야 또래그룹에 낄 수 있었다면서, 이것을 일컬어 "역사의 미스테리"라고 했는데, 내가 알기로는 그런 주제를 다룬 책들이 적지 않다. 더구나 이 책 <88만원 세대>의 성격에 비춰보면,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났는지를 간략하게라도 설명해 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은데, 오히려 저자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숨기기에 급급할 뿐이다.
그것도, "역사의 미스테리"라는 아주 거창하고 우아한 수사를 써가면서 말이다.
"세대" 문제에 관하여지금까지 나는 <88만원 세대> 곳곳에 드러난 논리적 결함이나 개념에 대한 천박한 이해/구사 등등을 지적했다. 이제는 (사실은 많은 이들의 관심은 여기에 더 있을 것 같은데) 이 책이 분석의 대상이자 단위로 삼고 있는 "세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많은 이들이, 특히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에 친화성이 있는) 고전적인 좌파들은 "세대"라는 것에 치를 떠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이들은 단순히 <88만원 세대>가 "세대"에 기반을 두고 분석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이 책을 비난하기까지 한다. (물론 이런 얘길 내놓고 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거다. 그것만으론 논거가 부족하다는 걸 자기들도 알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두고 얼마전 이 블로그에서 댓글을 달았던 어떤 이는 "자기들끼리 수군댄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단순히 "세대"를 전면에 내세웠다고 해서 욕먹을 일은 아니다. 이 대목에서 분명히 구별해 둬야할 것이 있다. 즉 "세대"를 어떤 식으로 쓰느냐 하는 건데... 여기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분석의 단위로서의 세대, (2)
분석의 대상으로서의 세대. 이렇게 구분하면 명확해 지듯이, 흔히 "세대론"이 욕먹는 이유, 즉 세대라는 개념으로 전통적인 "계급"을 대체한다는 것은, 세대가 분석의 "단위"로 쓰였을 때다. (물론, 미리 밝혀두지만, 저자들은 이런 식의 구분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다. 책의 어딘가에서 그들은 그저 세대가 계급 같은 것보다 더 나은 단위라는 암시를 줬던 기억은 난다.)
나는,
세대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있지만 주어진 경제를 전체적으로 분석하는 단위로 삼을 수는 결코 없다고 생각한다.
(1) 분석의 단위로서의 세대세대가 분석의 단위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갑갑한 게 있다. 좌파진영에 있는 많은 이들이, 분석단위로서의 세대에 반대하면서도 "왜"라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많은 이들이 결국 하는 얘기는, "마르크스가 그랬으니까"다.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가 그랬다는 것은 이유가 못 되고, 그가, 아니, 마르크스를 포함한 당대의 이름난 정치경제학자들(여기엔 저자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존 스튜어트 밀도 포함된다)은 물론 이른바 "고전파" 경제학자들(아담 스미스, 데이빗 리카도)이 "왜" 그랬는가,
왜 그들은 세대나 기타 다른 것이 아닌 "계급"을 분석의 단위로 삼았는가가 중요하다.
이에 대한 대답은 "경제"가 무엇인가, "경제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게 할 수 있다. 앞에서 저자들의 "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아주 피상적이고 천박하다고 했는데, 그들이 아무런 문제없이 "세대"를 분석단위로 삼을 수 있고 나아가 기존의 계급범주 등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비웃을 수 있는 까닭도 결국은 그들의 독특한 "경제(학)" 이해방식에 있다.
기본적으로 경제학이란 한 사회의 물질적 흐름을 다루는 학문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정치경제학"이란 근대시민사회(civil society; bürgerlicher Gesellschaft)의 물질적 부의 흐름에 대한 학문으로서 출현했다. 한 사회(=근대시민사회)의 물질적 부(material wealth)란, 맨 먼저 누군가에 의해 생산될 것이며, 일단 생산된 다음에는 시장에서 유통될 것이다. 한편 그 생산에 참여한 주체들은 적절하게 보상을 받을 것인데, 이런 보상은 주로 화폐형태의 소득으로 이뤄지며, 그들은 다시 그 화폐를 가지고 시장에서 소비행위를 한다. 물론 이때 소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애초에 그들이 만든 바로 그 물적 형태의 부일 것이다. 바로 이렇게 한 사회의 물질적 부는, 생산-유통(교환)-분배-소비라는 일련의 과정을 계속해서 번갈아 가며 거치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경제학자들이 당대 자본주의 경제를 위와 같은 네 가지 측면에서 다룬 것도 바로 그래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밀을 일컬어 가장 인간적인 경제학자라고 칭송했는데, 그들은, 아니 우석훈은 스스로 경제학자라고 생각한다면 밀의 인간적인 면모보다는 그가 왜 세대를 단위로 경제를 분석하지 않았는지를 생각해볼 일이다.) 그렇다면
"계급"이 분석단위로 채용된 것은, 당연하게도 위와 같은 네 가지 (어떤 학자들에겐, 세 가지) 영역에서 상당히 일관된 방식으로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한 사회의 경제적 과정을 굴러가게 만드는 단위로 "계급"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 사회의 양대계급인 노동자와 자본가는, 먼저 생산의 영역에서 협력 또는 대립하면서 물질적 부를 상품의 형태로 생산해내며, 분배의 영역(자본가의 이윤, 노동자의 임금)에서도 그들의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그들의 소비행태 또한 서로 다른데, 원칙적으로 자본가는 "생산적 소비" 즉 다음기의 생산을 위해 자신들의 이윤을 소비하고 노동자는 "생계적(또는 비생산적) 소비" 즉 자기 자신과 가족들의 생활을 위해 소비한다. 등등.
경제학의 영역에서 전통적으로 계급이라는 범주가 정당화되었던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사정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대"는 어떤가? 당연히 세대는 위와 같은 역할을 못한다. 비록 (앞에서 지적한 대로) 저자들은 "착취"라는 생산의 범주를 세대 간의 문제에 대입하고 있지만, 매우 명백하게도 "세대"란 생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대체 생산의 영역에서, "세대"라는 이름으로 구분된 한 사회의 인간집단들이 어떤 일관된 상호작용을 한단 말인가? 20대와 40대가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가?? 다른 영역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소비"의 영역에서는 "세대"라는 구분이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세대별로 서로 다른 소비패턴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솔직히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쉽게 답할 수 없다. 다만 설령 이 문제에 "그렇다"라고 대답한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저자들에게 호의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오히려 정반대다.
저자들은 이 책 곳곳에서 "세대"라는 개념이 그저 (이를테면 상이한 소비패턴을 기준으로 한 시장분할을 위한) 마케팅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사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거다.
저자들은 이른바 "386세대"니 "사치세대"니 하는 규정들이 인위적이고 포괄적이지 못하다고 하면서 좀 더 경제학적으로 의미있는 방식으로 세대를 규정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결국 그런 식의 시도는 거듭될수록 안타까움만 자아낼 뿐이다. "세대"는 그저 "세대"일 뿐이다. 거기에 어떤 일관된 경제학적 의미를 집어넣으려 하는 순간 그런 "세대" 규정은 저자들이 경계하는 "마케팅의 도구"로 전락하기가 쉽다. 그러지 않기 위해 저자들은 "억지"도 부린다.
73년에서 80년 사이에 자신의 경제적 삶을 시작한 지금의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유신 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사람들을 일부에서는 '한국경제의 재건세력'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 '건전한 보수'라 부르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중도'라 부르기도 하는데, 어쨌든 현재 한국경제를 일종의 인구 피라미드로 구성한다면 최상위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규정된 유신 세대라고 부르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172쪽)
나는 이 구절을 읽고서 '건전한 보수' 또는 '중도'가 세대에 대한 규정임을 처음 알았다! 세상에 이런 억지가 어디 있나. 그리고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이 "최상위"에 있다고? "최상위에 있는 사람이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이다"라고 하면 맞는 얘길지 모르나, 그 역은 결코 참이 아니다. 대체 그럼 "사오정", "오륙도"는 뭔가. 대체 예컨대 "58년 개띠"를 무슨 수로 "경제학적으로" 한데 묶냐는 말이다.
억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KTX 여승무원과 철도공사 이철 사장 사이에서 벌어진 정규직 전환 투쟁"을 "유신 세대와 20대" 사이의 갈등으로 만들어버린다! 뭣보다 사태를 "여승무원 vs 이철 사장"이라고 묘사하는 것도 어이없지만, 저자들 말대로라면 사장이 만약 홍정욱 같은 이로 바뀌면 갈등은 "20대 vs 386세대"가 되는 건가? "성별갈등"이라고 하지 않은 것이 기특할 정도다(차라리 "성별갈등"이라고 보는 게 훨씬 더 그럴싸하지만 말이다).
결국 주어진 (국민)경제의 분석단위로서의 "세대"란 위와 같은 억지 없이는 결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저자들은 "세대"를 분석의 단위로 설정해 놓고도 "세대 간 갈등"과 "세대 내 갈등"이라는 매우 애매모호한 개념을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분석단위로서의 세대"의 타당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세대"라는 구분 자체가 취약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온갖 보조적인 수단들이 필요한 것이다.)
(2) 분석의 대상으로서의 세대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세대"란 적어도 분석의 "대상"으로서는 타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 난 짐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또 경제학자들이든 사회학자들이든 특정한 세대, 예컨대 이 책에서 다루는 것처럼 요즘 젊은 세대에 대한 분석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젊은 세대를 "분석의 대상"으로 다룬다 했을 때 떠오르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뭣보다
해당 세대를 특정한 방식으로 특징짓는 것일 게다. 저자들에겐 "88만원 세대"라는 규정이 바로 그 최종적인 산물이다. 물론 이런 특징화란 가장 기본적으로 "그 나라의 다른 세대들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다른 나라의 같은 세대들과는 어떻게 다른가"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다. 한편 저자들에게 또하나 특히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바로 "세대간 상호작용의 양상"이다. 저자들은 제2부 제1장에서 이런 다양한 작업들을, 그것들을 서로 명확하게 구분하지도 않은 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비록 매우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말이다.
왜 성공적이지 않았단 말인가? 까닭은 그들이
비교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비교의 원칙? 그거 간단하다. 뭔가를 비교할 때는 비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적 요인들을 최대한 통제해 줘야 한다는 거다. 귀족출신 홍정욱이랑 나같은 가난뱅이의 "능력"을 비교하려면 적어도 우리의 현상태만 볼 게 아니라 그와 내가 처해 했는 상황을 고려해서 그것의 효과를 적절히 통제해줘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예컨대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의 특징을 규명하기 위해 외국과 비교를 하려 한다면, 적어도 시기적으로 "88만원 세대"와 동일한 세대를 비교대상으로 삼아야 하는데, 저자들은 이런 식의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그들은 엉뚱하게도 이를테면 "프랑스의 68세대"와 비교를 행한다.
"88만원 세대"와 "프랑스 68세대" 비교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보자. 원칙적으로 이런 비교는 "88만원 세대"를 다른나라의 경우에 비춰 규정하기엔 매우 부적절하다. 더 적절한 비교 대상은 "오늘날 프랑스의 10대후반~20대초반"인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비교를 통해 저자들이 목표로 했던 것은 (그다지 명확하진 않지만) "세대간 상호작용의 양상"을 보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이 경우에도, 더 적절한 것은 "68세대"가 이전세대와 어떻게 상호작용했냐가 아니라, 오늘날의 프랑스 젊은 세대가 그들의 기성세대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느냐다.)
그러나 비교대상의 부적절함의 문제는 단순히 "시기"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2부 제1장에서 영국/독일/프랑스/미국/일본과 같은 외국의 사례, 그리고 유신세대/전두환세대/X세대 등의 한국의 older 세대와 "88만원 세대" 사이의 관계 등을 검토하면서 결국 저자들이 내린 결론은 "88만원 세대는 아주 불쌍하다"라는 것이었다. 왜? 다른 세대들이 가졌던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분석과 결론은 완전 넌센스인데, 책을 잘 읽어보면 저자들이 "88만원 세대"에 비해 운이 좋았다고 평가한 다른 나라의 세대들과 한국의 앞세대들의 "운"(luck)은 그들이 상당히 나이가 든 뒤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런 식의 비교를 통해 내릴 수 있는 논리적 결론이란, "오늘날 한국의 20대는 참 운이 없다"가 아니라 예컨대 "외국의 사례들을 봤을 때, 비록 오늘날 한국의 20대가 처한 상황이 좀 암울해 보이긴 하지만 앞으로 나아질 것이다. 너무 걱정 마라." 정도가 아닐까 싶다. 좀 웃기겠지만 그렇다. 아니, 또 아는가. 한 10년쯤 뒤에 오늘날의 빌빌대는 "88만원 세대"에게 대박이 터질지... 그 때가 되면 저자들이 동정해 마지않는 "88만원 세대"는, 저자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유럽의 "68세대"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는 것 아니냔 말이다.
그리고 저자들은 서유럽의 이른바 "68세대"가 무슨 대단한 것이나 되는 듯이 ("역사상 가장 똑똑한 세대")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건 상당부분 신화화된 거고, 또 이른바 "68세대"란 (저자들이 비판하는 마케팅의 개념들과 같이) 그다지 포괄적인 개념이라 할 수도 없다. 그들이 나중에 엄청난 (경제적) 기회를 누렸다는 것보다는, 당대에 그들에 대한 시각이 어떠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68년에는 똑똑한 혁명가만 있었던 게 아니며, 그런 이들이 "절대다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여담인데, 이 대목에서, 당대 영국 젊은이들의 삶과 좌절을 그린 Quadrophenia라는 영화를 저자들에게 권한다.)
(물론 내가 지금 "68세대" 또는 "68혁명"을 폄하하자는 게 아니라는 것은 여기서 길게 변명할 필요는 없을 줄로 안다. 오히려 저자들이 "68세대"와 "68"혁명"을 "신화화"하고 있는데,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런 신화화는 여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포디즘" 숭배도 아주 걱정스럴 정도다. 전혀 통제가 불가능하다. 다음 구절을 보라.
만약 3세계에도 이러한 풍요를 조금 나눠줄 수 있고 지구 생태계의 위기가 없다면, 포드주의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은 가장 멋진 곳일지도 모른다. (83쪽)
저자들은 여기서 "포디즘"을 미화하고만 있는 게 아니라 포디즘에 대한 무지까지도 드러내고 있다. 세상에, "3세계에도 ... 풍요를 조금 나눠줄 수 있고 지구 생태계의 위기가 없"는 포디즘이 어딨나? 제3세계의 제국주의적 수탈과 환경의 무분별한 파괴는 포드주의적 번영의 가장 중요한 물적기반이었다. 또 일부 자율주의자들이나 '열린 마르크스주의' 논자들이 효과적으로 보여줬듯이 각종 비정규/비표준 노동에 대한 초과착취에 기반을 둔 "백인 남성 노동자들만의 번영 체제"였다. 그게 바로 포디즘의 본질이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흔히 (그리고 저자들이 생각하듯이)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가진 "세대"들, 이를테면 일본의 "단카이 세대", 한국의 "유신세대" 등의 규정들이, 또 더 중요하게는, 그런 세대들이 공유한다고 여겨지는 공통의 특징들이, 사실은 상당부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사후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봐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과정에서 그와 같은 "세대명칭"들이 갖는다고 여겨지는 공통의 특징들을 수용해내기 위해, 바로 그 "세대" 개념들은 점점 더 그 포괄범위가 줄어드는 경향, 생물학적으로 같은 세대에 속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요컨대 이 책에서 말하는 "88만원 세대"란 "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매우 성급한, 진지함이 결여된, 인상에 기반을 둔 규정이다. "성급함"에 대해 우스갯소리 하나. 192쪽에 보면, 저자들은 40-50대와는 달리 오늘날 20대는 "아는 사람[친구]이 운영하는 카페보다 스타벅스를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한다. 내가 보기엔 이런 규정은 매우 성급한 것인데, 까닭은, 아직 우리 20대들에겐 아는 사람 또는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내가 보기엔
저자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그들의 "세대" 개념은, "마케팅 개념"으로는 아주 적절하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되고 있다.)
이제 글을 끝내야겠다. <88만원 세대>에 대해서도 이제 그만 써야겠다. 비록 지금까지 거의 "까대기"로 일관했지만, 맨앞에서 밝힌대로 나는 이 책이 행한 것과 같은 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저자들은 누구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을 했다. 그러나 정말이지 나는 이런 시도가 "경제학적이지 않게" 이뤄졌었다면 훨씬 더 나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 책에 난무하는 "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시스템적으로 고려하면...", "진화경제학에서는..." 등의 어법은 내게 거북함만 줬다.
대체 "경제학"은, "시스템적 고려"는, "진화경제학"은 어딨냐고! -- 그래서 이 책은 "경제학 입문서"가 되기에도 (비록 그런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매우 부족하다고 판단내리지 않을 수 없다.솔직히 위와 같은 거창한 수사들은 기존의 우석훈의 글에서 많이 봤던 거다. 그래서 그다지 낯설지만은 않았다. 이렇게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간 경제학적이고 시스템학적인 글 말고, 이 책만큼 오늘날 젊은이들의 처지에 sympathetic하면서도
이 책보다는 좀 더 modest(이 말은 우리말로 번역할 때 꽤 난감하다)하고 realist한 글을 기대하며 잡다한 글을 마친다.
(본문에서는 미처 지적하지 못했는데, 우석훈의 글은 논리적인 증명이나 실증적인 논거보다는 "인상"에 많이 기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준다. 이 책에서도 그랬다. 다음 예를 보자.
정치적으로는 89년 입학생까지를 잘라서 386으로 구분하지만, 경제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90년대 초반에서 중반 입학생까지를 동일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정치적 구호로 본다면 대체로 90년대 초반 근처에서 차이가 나게 되지만, 경제적 패턴으로 본다면 전두환 대통령의 과외 금지 효과가 더 강한 것 같다. (176쪽)
어떤 사람들은 위와 같은 언필칭 "분석"을 두고 그가 "기지가 넘친다"라는 식으로 칭찬할 수는 있겠지만(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러고 있는 줄로 안다), 그가 스스로 자임하듯이 만약 그가 진지한 "경제학자"라면 자신의 넘치는 기지와 통찰력을 그저 "말"의 형태로 "선언적으로"만 제시할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또는 실증적으로 보이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부록 - "첫 섹스의 경제학"에 대한 메모>저자들은 "첫 섹스"와 "오늘날 한국의 10대"와 "그들의 경제적 상황"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 바 있다. "한국 10대의 첫 섹스가 늦는 것은 그들이 돈이 없어서다"라고. 당장 떠오르는 게 이거다. 저자들의 이 주장에 따라 단순하게 생각하면, 섹스와 동거를 하는 10대는 부자여야 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서 알기로는, 굳이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일찍 섹스도 하고 동거도 하는 애들은 대체로 별볼일 없이 사는 애들이라는 거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라. 오히려 집도 좀 살고 공부도 좀 하는 애들은 그런거 못한다. 가난해서 공부에도 별 관심 없고, 집에서도 별로 신경 안쓰는 애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리며 섹스도 하고 가출도 하고 동거도 한다. 뽄드도 빨고 더러는 마약에도 손댄다. 얘들이 돈이 많아서 섹스/동거를 하나? 또... 돈이 많든 적든, 얘들이 경제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서 섹스/동거를 하는 건가?
뭐 요새는 외국으로 유학가는 애들이 무지하게 많이 늘어났고 또 그들은 대체로 성적으로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생활한 테니, 그리고 또 이들은 대개 부유층에 속할 테니, 돈많은 애들이 섹스를 일찍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뭔가? 결국 저자들 말대로 하고싶어 안달이 난 섹스도 못하고 빌빌대는 애들은 그만그만하게 살고 그만그만하게 공부도 하고 그만그만한 부모의 통제도 받는, 그만그만한 애들 뿐인가? 이들이 아무리 다수라 해도, 적지 않은 예외를 감당하기에는 "10대는 돈이 없어 섹스를 못한다"라는 저자들의 명제는 너무도 취약해 보인다. 그리고 요새는, 내가 알기로는, 적지 않은 10대들이 연애경험이 있다. 그런 그들에겐, 동거까지는 몰라도 "섹스"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저자들이 내놓는 "첫 섹스의 경제학"은 그리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거다.
누군가는 내게 "그럼 한국 10대의 첫 섹스가 늦은 까닭은 뭐냐?"라고 물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내 대답은 (첫번째 글의 댓글에서 했듯이) "별로 그에 대해 생각해본 바가 없다"지만, 나는 아무 데나 경제학을 들이대지는 것은 그다지 좋은 태도는 아니라고 덧붙이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저자들이 말하는 경제학"에 입각하더라도, 내가 보기엔 "첫 섹스의 경제학은 없다".
댓글 목록
관리 메뉴
본문
저요!! 저요!!! 전 90년대 하반기... 97년부터 99년까지 다녔어요 99년에 잘 안 가다가 2000년인가 01년인가 생각나서 가봤더니 닫았..ㅜㅜ 웹싸이트가 있었는데 유료였고.. 지금도 있는지 몰겠네염 거기 3층은 비가 새가지구... ㅎㅎㅎㅎㅎㅎ 아 그립다ㅜㅜ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으음... 홍대 빽스테이지 2를 주로 다닌 저로서는;;저는 주로 紅(Kurenai)를 주로 신청했었었던거였댔죠...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흐.. 뎡야핑님께서 인천출신이란 것은 예전에 "쩔어"에 대해 쓰신 글을 보고 알았죠. 어찌나 자랑스러워 하시던지.. ㅎㅎ 그죠, 그립죠? ^^ 웹싸이트가 있었죠. 그거 발견하고 얼마나 흥분했는데요... 저는 돈내고 가입까지 했는데, 얼마뒤에 그게 사라졌더군요 (-_-) 저는 평생회원이었는데... 제 수명보다 "심지"의 수명이 더 짧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못했었던 거죠 ㅋㅋlaron님. 저도 홍대 빽스테이지2에 종종 갔었어요. 대학때는 심지 대신 그쪽으로 많이 갔던 것 같네요. 저도 쿠레나이 좋아합니다. 그 곡이 실렸던 앨범(그 무시무시한 자켓!)을 빽판으로 사서 들고다니며 얼마나 개폼을 잡았던지... ㅎㅎㅎ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이럴수가. 덩야핑님과 EM님이 모두 신지를 드나드셨다니!! 저도 고등학생이던 90년대 중후반에 종종 드나들었었는데..-.-; 그러고보니 왔다갔다 하면서 마주쳤을 수도 있겠네요. 세상 좁군요.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음악감상실 다녀 본 적은 없지만 좋은 얘기네요, 90년대의 향기가 솔솔 풍겨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절 그렇게 해서 엑스 재팬의 노래 같은 게 퍼졌던 거로군요ㅎㅎ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아니, 캐즘님도!!? 흐... 그러게요. 재밌습니다.. ^^네.. 사실 그땐 그냥 X였죠. X-Japan이라고 이름을 바꾼건 아마.. 제 기억엔, 미국에 그전부터 X라는 밴드가 있어서였는데... 암튼 그게 그들의 미국진출과도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90년대의 향기... 네 맞습니다. 언젠가 선배랑 얘기하면서, 당시엔 연애하면 갈곳이 없었다고 하니까, 이분이, "없긴 왜 없어, 빵집이 있잖아!"이러던데... 크크 "빵집"이라뇨! 사실 저희는 빵집 세대는 아니고... 그렇다고 요새처럼 스타벅스나 각종 패스트푸드점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나름 중간에서 애매했던, 바로 그 90년대였죠. ^^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이럴수가... 저도 95년까지 심지 죽순이였는데... 대학간 다음부턴 드문드문 갔어요. 저도 주로 4층을 갔는데.. 우와 그 화장실 냄새까지 생각나네요. 그보다 먼저 사라진 주안역 '성림'도 자주 갔었어요. 쟈키 언니들이랑도 알고 지냈는데 후후후 방가방가 친하게 지내요 와와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반갑습니다, 나름님. "성림"도 생각이 나네요. 저는 그쪽은 별로 안 갔지만요. ^^ 지금은 제가 한국에 없으니 좀 그렇지만, 나중에라도 언제 한번 심지를 추억하는 트리뷰트 뮤직비디오 감상회라도 한번 열면 좋을 것 같네요 ㅎㅎ햐... 화장실!! 네, 화장실이 감상실 안에 있었죠. 안에 누구 들어가면 화장실 바로앞 소파에서 얼굴 찡그리며 기다리던 생각이 나네요. ㅋ 냄새나는 화장실 소파에서도 잠은 잘 왔는데... (-_-)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ㅋ 간만에 심지 생각나서 검색해봤더니..em님 블로그가 검색되네요.ㅋ 글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네 그땐 그랬죠.. 지금도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간만에 nirvana꺼나 하나 듣자하고 신청하고, 뮤비가 나오니..어둠속에서 "우우우~~~"하는 야유소리에 깜짝 놀라 같이 우우~~했다는ㅋㅋ(제가 신청한거 아닌척 할려고...)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반갑습니다, 도토리님. ^^심지를 그리워하시는 분을 또 한분 뵙네요.
네... 그렇네요. 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 같은 곡은 자신이 신청한 게 아닌척하는 연기를 필요로하기도 했지만, 예컨대 viper의 a cry from the edge 같은 곡은 "내가 신청했다구! 자, 한번 들어봐!"라고 말하듯, 전주부분부터 기타치는 흉내를 내며 일부러 티를 내곤 했었죠. ㅎㅎ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94년 6월부터 95년 4월까지 5층 밤 타임 VJ였던 작자입니다.저 역시 고등학교시절 꿈이었던 심지 VJ가 되었을 때의 기쁨은 잊을 수
없구요, 월급 3만원에 휴일도 없었던 그 시절이었지만 정말 제 인생에
잊을 수 없는 나날들이었습니다. 군대갔다오고 학교마치고 지금은
금융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그때 내가 어떻게 이리 '평범한
사람'이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ㅋ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누구냐?넌..당시에 내가 두번째로 연장자였는데..^^ 박민철 형 담으로.ㅋㅋ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방가방가 || 저도 "방가방가"!! ㅎㅎㅎ저도 CHANG님이 누군지 궁금하던 중이었는데... 아마 얼굴 뵙게 되면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가만 그러고보니 방가방가님도 알아볼 수 있을 지도... 아... 그때 친구들도 다 보고싶네요. ^^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우와... CHANG님은 그러니까 저의 영웅, 저의 로망이셨던 거군요! 반갑습니다. ^^ㅋㅋ 월급이 3만원이었군요. 하긴 그땐 돈을 내고서라도 시켜준다면 감지덕지 했었을 것 같네요 ^^
이렇게 추억을 공유하는 분들을 많이 뵙게 되니, 이 글을 쓰길 잘했단 생각이 문득 드네요 ^^;;;
CHANG님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언제 기회 되시면... ^_^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심지-ㅁ-전 테슬라의 러브 송만 나오면 잤어요!
나의 내 친구들의 붙박이 장소였던 심지.
선배 언니는 뻑하면 학교 땡땡이 치고 심지에 틀어박혀서 담임선생님한테 머리 잡혀 끌려 나오기까지!!
아 그립다 심지.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Tesla의 Love Song도 대단했지요. ^^reddrugs님 덕분에 유튜브에서 찾아서 간만에 뮤비를 봤네요.
사실 Tesla는 나름대로 무척 흥겹고 강렬한 음악을 하는 팀인데,
이 Love Song 덕분에 발라드 밴드로 많이 알려진 것 같네요.
어쨌거나 그때 음악을 좀 들었던 사람들 중에선 상당수가
이 곡에 얽힌 추억 한두개 쯤은 가지고 있을 것 같네요 ^^
근데 그 학교는 담임선생이 심지까지 찾아갔나보군요ㅋ 아마도 동인천 학교이신듯..ㅎㅎ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오랜만에 심지 검색했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저도 고딩때 열심히 다녔는데..팝송도 듣고 일음도 듣고..그 윗층에는 메탈 음악들리고..1900원에 하루종일 있고..근데 그때 연애하는 사람도 왔는지 몰랐네요. 일요일 오전에 가면 일음 2시간씩 틀어주고..귀한 자료도 많고..울적한날 혼자 가서 가슴이 쿵쾅거릴정도로 큰 소리를 듣고 정말 행복했죠. 지금 아무리 컴으로 검색해서 음악을 들어도 그때만큼 좋지 않네요. 제가 신청한 곡이 나오면 이렇게 좋을 순 없었어요. 언니랑도 같이 가고..혼자 가서 있다보면 낯익은 뒷통수들(친구들)이..그때 방황하던 친구들이 많았나봐요. 위로가 되었던 공간인데 대학교 1학년때인가 2학년때인가 갔더니 공사하고 있더군요. 더 좋은 인테리어 하고 새단장 하는줄 알았는데 계속 가보아도 이젠 없고..저도 눈물이 나더군요. 오늘 같은 날 꼭 가고 싶은데..^^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제가 한창 드나들땐 1100원인가 했던 것 같은데.. 그러고보면 심지는 싸기도 무지하게 쌌던 것 같아요^^ 아... 근데 지금 문득, 돈을 내면 창구에서 주인아저씨 또는 아줌마가 종이쪼가리를 한장 같이 주셨던 기억이... 거기엔 도장 같은게 찍혀 있었고, 우린 거기에 신청곡을 적었지요. 물론 나중에 다른 종이에 신청을 해도 상관없었지만, 도장이 찍힌 종이에 우선권이 있었던 듯... 물론 결국은 vj맘이었겠지만요 ^^근데 강냉이님은 오늘 뭐 안좋으신 일이라도..? 하긴 뭐 한국은 요새 날씨도 꾸리꾸리한 것 같던데... 그런날엔 심지에 틀어박혀 하루종일 죽때리는 것도 좋지요 ㅎ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오!!! 심지!!! 인현동골목의 그 어두컴컴한 환타스틱했던 장소! 전87년부터 90년도까지 다녔습니다. 인천여고 출신이라 제집 드나들듯이 자율학습 땡땡이치고, 여차하면 동시상영 인천극장으로 대피하고... 심지에서는 죤 본 조비를 워낙 좋아해서 월간팝송 끼고 다니면서 뮤비를 봤습죠. 재수와 대학을 다니면서 대학로 인켈아트홀로 나와바리를 바꿨죠. 근데 동인천 부근 대동학생백화점 이층에서도 심심찮게 분식점 쟈키가 있어서 음악이나 뮤비를 신청하면 틀어줬습니다. 그시절이 그리워 요즘 만수3지구에선 중년아지매 아자씨들의 신청곡과 함께 춤도 출수 있는 LP판 최대보유자인 전직 피디출신이 경영하는 카페에 죽순이 죽돌이들이 모여든다는 풍문이... 정말 반값습니다. 인천출신이라니.... 전 89년도에 졸업한 386도 아니요, X세대도 아닌 낀세대네요. 쭉 님의 블로그 목록 흟어보다 '심지'에 필이 팍 꽃혀서 리플답니다.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위에 있는 다른 덧글에도 썼지만, 이 포스트는 진짜 쓰기 잘했단 생각입니다. ^^;;89년도 졸업하셨으면 저보단 한참 선배님이시네요. "한참"이라고 한 건... 이를테면 같은 시기에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이런 말씀임다. ^^;; 그나저나 그 만수3지구... 저도 가보고 싶네요. 아... 진짜 가보고 싶어요... ㅠㅠ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96~97년, 군제대하고 99년도에 다시 심지에서 4층 VJ 했던 넘입니다. 초보시절에 모르는 명곡들을 어떻게 찾아줘야 하나 Index 다 뒤져보고 다른 VJ 혹은 사장님까지도 졸라보는걸 나름 희열로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당시의 기회로 훗날 지방가서 방송국 라디로 일도 하게되고 공연도 많이 보고 외국도 다녀오고 현재는 자동차 설계로 인생의 승부를 보고 있죠, 하지만 저도 제인생에서 최고의 꿈이 실현된 순간은 심지에서 일하던 시절이라고 지인들에게도 수차례 말해왔습니다. 불켜놓으면 여간칙칙해보이는 쇼파, 청소중에 지나가는 쥐까지도 사랑했습니다. 월급 3만원은 최고의 보너스였죠. 이후 시대가 좋아져서 유튜브도 있고, 좋아하는 Rock 공연도 당시보다는 훨씬 많아졌지만, 심지때만큼의 로망을 따라오지 못한다는걸 뒤늦게 깨닫네요. 다음달, X재팬 공연을 예매했는데, 가끔 오는 손님들도 X 짜증내시는걸 저는 매일같이 들었으니 어땠을까요, 그걸 제가 보게 될줄이야 감회가 새롭네요. 문득 검색해봤더니 Top으로 뜨네요. 올리신글 댓글 모두 확인하며 가슴 훈훈해 지고 돌아갑니다.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반갑습니다, 쪼꼬파이님. 위에 Chang님에 이어 vj하셨던 분께서 또 방문해 주셨네요.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 X재팬 공연을 보시는군요. 재결성 얘기는 어딘가에서 들은 것 같던데... (재결성 얘기가 나왔으니 말씀인데, Loudness도 대단하더군요^^)그때 심지 주변에서 서성거렸던, 어떤 의미에서는 "문제아"들이, 쪼꼬파이님이나 위에 덧글 남겨주신 여러 분들처럼 지금은 각자 나름대로 삶의 영역을 일궈가면서 멋지게 살아가고 계시네요. 왠지 뿌듯해집니다. ^^;;
이렇게 심지는, 비록 그 몸체는 사라졌지만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네요. 위에 punky님 말씀대로 만수3지구에는 이미 모임이 만들어져 있다는 건데... 어째... 온라인에도 심지를 기념하고 또 심지를 맘속에 담고있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하나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문득 듭니다. ^^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갑자기..문득 오래전 심지가 생각났습니다. 없어졌는지도 모를정도로 잊고 살았는데 말입니다. 인천에서 다시 심지를 만든다니 기쁘기 이루말할수 없습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