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를 거부한다는 당신에게

2006/05/29 20:53

1.
진보블로그를 둘러보다가 531 지방선거에서 투표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일부러 자신이 투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사람이 꽤 된다는 의미이리라.
당신의 결정을 존중한다.  
국가에 대해서, 의회에 대해서, 부르조아 선거에 대해서 다른 생각이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고, 나 또한 과거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며, 나마저 현재의 정당들 중에서 내가 속한 민주노동당에 대해서조차 불만이 많기에, 게다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소위 당내 좌파라고 하는 활동가들마저도 선거에 매몰된 모습을 보이는 것에 실망하게 되는데, 당원이 아닌, 나보다 더 왼쪽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어쩌랴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들이 투표를 거부하는 것에 대해 말릴 의사가 없다.
사실 찍을 사람이 없는데, 무슨 투표를 할 것인가.
   
2.
투표참여 여부는 예전부터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거운동이 무엇인지, 선거투쟁에서 얻을 것은 무엇인지, 투표를 통해 변혁이 가능한지...
이러한 것은 국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와 연관되어 있다.
       
나는 투표참여가 국민의 '신성한' 권리와 의무라는 헛소리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투표를 거부하는 이들이 국가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묻고 싶지도 않다.
 
3.
다만,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몇 가지의 사례를 들어 투표거부를 합리화하지는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당신이 투표를 거부하는 몇 가지 이유를 댄다면, 나 또한 그 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근거를 들어 투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투표할 때만 국가기관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 무엇을 하더라도 국가기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투표거부를 통해 자신이 무엇인가 저항하고 있다, 국가기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파악하는 것 자체가 관념론적인 것이다.
 
민주노동당원인 나는 선거를 통해 변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지 자기 활동의 근거를 '왜곡된 형태로나마' 확인하는 장일 뿐인 선거에서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하면서 변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환상 아닐까.
 
4.
민주노동당, 엄청나게 문제가 많은 당이다.
선거 때 보이는 양태 또한 보수정당과 다르지 않게 보일 수 있다.
주장하려고 하는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을 강조하고, 기호와 당명을 반복하면서 대중을 표찍는 기계로 생각하는 모습도 많다.
보수정당과 마찬가지로 지연과 학연을 강조하고, 개인적인 인연을 부각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 내용마저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경우 또한 심심지 않게 보인다.
 
그래서 나는 민주노동당의 수많은 문제를 인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비판의 대상은 될지언정 보수정당과 함께 도매금으로 부르조아 정치의 한 부속물이 된 증표인 양 얘기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 동안의 활동을 지켜봤을 때, 앞으로의 활동을 예견할 때, 민주노동당은 소위 좌파들과 함께 연대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평소에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반전평화 투쟁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하기를 거부하면서 적대적으로 나섰던가. 아니면 이를 외면해왔던가.
물론 부족한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민주노동당은 그만큼 노력해왔고, 선거를 투쟁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해왔다.
그렇지 못했다면 선거 중이건, 아니면 선거 이후이건 비판받아야 한다. 이는 민주노동당에 좋은 보약이 될 것이다.
 
5.
하지만 단지 밖에서 투덜거릴 뿐이라면 그냥 잠자코 있기 바란다.
당신이 지역에서 현장에서 얼마나 열심히 활동해왔는지 모르지만, 당신이 얼마나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가는지 모르지만, 체르니코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나오는 사회주의적 인간형의 전형으로 알려진, '특별한 인간'이 아니라고 한다면, 투표거부에 대해 구차한 이유를 대지 말라.
 
그리고 투표를 신성한 국민의 권리와 의무라고 생각하면서 투표소로 향하는 수많은 민중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자.
자신의 주변 가족친지들, 친구들은 보수정치의 손아귀에 남겨두면서 자신만 그런 부르조아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인 척하는 것은 위선 아닌가.
   
당신이 투표거부의 명분으로 얘기하는 투쟁들, 민주노동당원인 나도 잘 알고 있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민중들과 그 투쟁을 어떻게 승리로 이끌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내가 투표하는 시간에 투쟁하는 당신이 그 대신 얼마나 가치있는 활동을 할지 지켜보겠다.
  
투표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당신의 자유이다.
나는 투표하는 것을 세상을 바꾸는, 뭔가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약간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치르는 일상의 한 실천일 뿐이다.
당신 또한 투표거부와 함께 자족적인 무엇인가를 하면서 스스로 대견해하지는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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