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에서 교육자본, 문화자본의 위력

2007/05/14 04:12

논문계획서를 쓴다고 예전에 보았던 마리옹 그레·이브 생또메의 [뽀르뚜 알레그리, 새로운 민주주의의 희망]을 다시 보고 있다. 목적의식적으로 살펴보다 보니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그냥 넘어갔던 것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러다가 책읽는 진도를 멈춘 부분이 있다. 바로 진보정당 내에서 교육자본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책 내용 중에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가 노동자계급의 참여비중을 증가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교육자본, 문화자본이 참여 피라미드의 기층과 상층의 관계를 심각하게 변질시켰음을 지적하는 대목이 나온다. 물론 전반적으로 학력이 짧은 주민들이 기층에서 다수를 이루고, 전체적으로도 대표자들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누가 참여구조의 최상층에서 기층을 대표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때가 되면 '은폐된 인두세'(저자들은 경제적 능력에 따라 선거권을 차별했던 인두세처럼 오늘날에도 정치사회적 차별체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인두세 poll tax로 명명하고 있다)가 노동자 계급 안에서도, 특히 교육이라는 변수를 통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이러한 참여예산제의 틀이 베르나르 뿌달(Bernard Pudal)의 1930년대 프랑스공산당 연구결과를 상기시킨다고 한다. 즉, 모리스 또레즈(Maurice Thorez)는 당의 구성과 지도부의 심대한 "노동자화"를 이루어 냈지만, 다른 한편 그 서열의 꼭대기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이력을 갖고 있거나 동료들보다 더 많은 문화적 자본을 지닌 노동자들이 자리를 잡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민주노동당 내의 현황을 떠올렸고, 또한 가방끈이 긴 내 자신의 위치를 대입시키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의 대선예비후보로 나온 권,노,심은 모두 서울대와 고려대 출신이다. 문성현 당대표 또한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고... 살아오면서 자신이 노동자로서 많은 기간을 보냈고, 정체성 또한 노동자로 인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문화자본을 부인할 수 없다. 당 대변인만 보더라도 자신의 언론계, 학계 인맥이 활동의 자산으로 작용하고, 정책연구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물론 필요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써야 하겠지만, 거기에서 뭔가 빠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오히려 진보정당 내에서도 교육자본, 문화자본이 작동하고 있음을 깨닫고 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무관심하다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민주노동당의 당원이 된다고 하여 특별히 단련된다거나 새롭게 역량이 축적되지 않는다. 활동가라고 하더라도 당원으로 가입하기 전에 먼저 체득하고 있었던 학습과 경험에 기반하여 활동할 뿐이고, 대부분의 페이퍼 당원들은 당비를 내고 선거 때 투표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피상적이거나 급변하는 정세에 맞춰 당의 입장을 요약본으로 정리한 내용을 전달하는 데 급급하다. 기껏해야 당이 아닌 사회단체에서도 제공되는 내용들이다.

 

이런 상황에선 교육, 문화자본이 작은 당원들은 더 단련되고 성장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그들이 주요 당직에 진출하려 해도 그 역량에 의문을 품고 오바라고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은폐된 인두세'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당 내부에서부터 이를 논의하고 쟁점화할 수 있어야 한다. 당 내에서 여전히 교육자본, 문화자본의 위력이 남아 있는 한, 학벌 폐지, 국공립대 통폐합의 정책은 공문구에 불과할 수 있다. 당원 교육 또한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행해져야 한다. 물론 지금은 이런 말을 꺼내기도 옹색할 만큼, 당원 교육 자체가 부실한 형편이지만서도...

 

그리고 자신이 교육자본, 문화자본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이들부터 각성할 필요가 있다. 의식적으로 당직 내지 공직선거에 있어 나서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다. 당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솔선해서 적극적으로 당직, 공직에 출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민주노동당에는 의외로 많다. 내 자신부터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이들은 좀더 기층에서 당을 지탱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하지 않을까. 바로 그것이 진보정당을 제대로 세우는 길이다. 

 

써놓고 나서 보니 마무리가 잘 안된 느낌이다. 처음에는 확실하게 문제제기하고, 그럴싸한 대안을 내보자 했는데, 스스로도 뭔말을 하는지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ㅡ.ㅡ;;

이 글을 쓰면서, 같은 지역위에 있는, 뭔가 당에 기여하고 싶어하나 그 계기를 만들지 못하는 노동자당원들을 떠올렸다. 활동해봤자 뭘 어떻게 해야할지, 활동 후에 무엇이 남을지, 혹시 단지 몸대주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그 동지들이 의문을 품고 있을 거라, 내 주관적으로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들이 당활동에서 자신이 단련되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할 것인가 고민했는데, 남은 게 없다. 

 

당 활동이 무슨 권력은 아니다. 또한 원칙적으로 당직, 공직에 나서는 것이 개인의 영달이나 권력욕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님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런 자리가 권력화할 수 있고, 앞으로도 상당기간동안은 변함없음을 인지해야 한다.  '당이 요구한다'고 하여, '당원의 뜻'이라고 하여, 자신의 권력욕을 정당화해서는 안된다. 설령 자신이 '정파의 대리인'으로 출마할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교육자본, 문화자본을 없애지 않고서는 진정한 변혁은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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