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의료보험 민영화에 대응하기: 미국 의료 보험, 무조건 나쁠까?

2008/04/04 02:55

아래 글은 제가 자주 가는 블로그에서 지금 미국에 있는 분이 쓴 글을 담아온 것입니다. 오늘 식코가 개봉하면서 진보진영에서는 식코 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들도 식코 상영에 대해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요. 식코가 말하고 있는 내용이 거짓은 아니고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것들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식코에 관한 글들을 블로그로 퍼오면서, 웬지모를 찜찜함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민영의료보험제도에 반대를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것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지요. 이런 부분을 아래의 글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의료현실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안이 좀더 명확하면 좋겠지만, 그것은 앞으로 진보진영이 계속 고민해가야 할 과제일 겁니다. 진보진영의 좀더 섬세한 대응이 필요한 때입니다.
  
 
---------------------------------
의료보험 민영화에 대응하기: 미국 의료 보험, 무조건 나쁠까? 
 
미국의 보험제도는 무조건 나쁘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물론 상당히 문제가 많은 보험제도임에는 분명하지만 세상 모든 물건이 그러하듯이 무조건 나쁘거나 무조건 좋은 것은 없다. 100%동의하거나 100% 거부할 수 있는 사안이 없듯이. 무슨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꼭 절대반대, 절대찬성, 무조건 사수, 무조건 박살...이런 식으로 구호가 동원되는 것이 나는 우민화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하고 성실한 토론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운동 생전 안해본, 학교에 처박혀있는 샌님같은 소리일 진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FTA이든, 의료보험개혁이든, 국민연금 민영화든 모든 사물에 있는 장단점을 공유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너무 안이한가? ㅋ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식코라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마이클무어는 그 영화에서 도대체 왜 미국 보험제도가 그렇게 무시무시한 것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 프랑스 보험제도가 그렇게 멋진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보험사기의 사례들만 보여줘서 해결하기에는 의료보험제도라는 것은 사뭇 복잡하다. 그래서 나는 선전선동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솔직히 국민들 어린애 취급하며 무선 이야기만 줄줄이 늘어놓는 것도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마이클 무어의 식코에 C-를 준다.

그렇다면 미국 보험의 장단점은 무엇일까?  

1. 의료비가 저렴하다 vs. 의료비가 비싸다.

미국의 의료비가 엄청나게 비싸다는 것이 통념인데 미국의 의료비가 싸다고 생각하는 나는 미친 것일까? 미국의 의료제도는 고용인이 피고용인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고용혜택의 하나로 존재한다. 국가가 개입하는 분야는 극빈자, 65세 이상의 노인, 어린이 정도...경제활동이 가능한 인구에 대해서 국가가 개입하는 정도는 극히 미미하거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직장이 있고 직장에서 제공하는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의료비용은 한국보다 저렴하다. 주치의 한 번 만나는 데 10불, 전문의 만나는 데 또 10불이면 그만이다. 보험회사와 연계가 되어있는 병원/의사를 이용할 경우 각종 검사, 수술, 입원비는 보험으로 100% 커버된다. 그래서 간암에 간 이식까지 받은 내 동료가 병원비 걱정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나와 내 가족이 모두 내 직장에서 제공하는 보험에 가입하는데 드는 비용은 한 달에 48불.

그렇다면 수많은 논문과 영화가 비판하는, 의료비 때문에 파산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우선 의료보험에 아예 가입을 하지 않았거나 가입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비정규직에 고용되어 고용인이 보험을 제공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혹은 보험을 제공하더라도 고용인이 중소기업인 관계로 보험회사를 상대로 좋은 조건을 협상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미국의 의료보험의 내용은 정말 천차만별이여서 보험이라고해도 다 같은 보험이 아니라는 뜻이다. 보험이 없거나 부실한 보험에 들어있거나 혹은 보험에서 "쫓겨났을 때" 지불해야하는 의료비용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일예로 보험 없이 아이를 자연분만할 경우 만 오천불 정도가 든다. 보험이 있으면 산전/산후 처리까지 무료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보험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차별은 정말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2. 의사의 질, 서비스의 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미국 제도에 불만을 갖기가 어렵다. 황당한 의사들이야 전세계에 다 있겠지만, 의료산업이라는 조직을 비교해본다면 미국에서 환자들이 받을 수 있는 의료의 질과 한국에서 받을 수 있는 의료의 질은 그 차이가 참 큰 것 같다. 더우기 과잉 진료와 처방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보니 쓸 데 없이 마이신 먹으라고 하거나, 병원만 오면 주사를 맞고 가라는 둥, 마사지를 받으라는 둥 강매하는 의사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임신중 매달 실시하는 고강도 초음파의 경우 미국에서는 임신 초기에 아이의 건강을 살피기 위해 2-3번 그것도 저강도로 촬영을 할 뿐 고강도 촬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의사들이 대부분 월급쟁이들인 관계로 개인적으로 이익을 내야한다는 부담감에서 좀 자유로운 것이 서비스 질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때문에 월급을 주는 당사자인 보험회사, 병원 체인의 눈치를 보는 의사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식코에서도 나왔지만 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진단과 처방에 대해서 보험회사가 거부하고 그래서 의사와 보험회사가 대판 싸우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미국에서 의사협회, 간호사협회가 앞장 서서 의료보험제도를 개혁하자고 나서는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환자의 입장에서 가장 한국의 의사들에게 화가 나는 것은 이들이 도통 환자들 무서운 줄 모른다는 것이다. 한국 의대에서 어떻게 가르치는 줄 모르겠으나 환자를 어떤 형태로든 대상화하는 의사들이 주를 이루는 한국의 현실은 환자로서는 상당히 두려운 현실이다. 병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처방전에 대해서도, 수술 과정에 대해서도, 부작용이나 위험에 대해서도 친절한 설명을 듣기 어렵다. 심장병을 앓고 계신 어머니에게 새 약을 처방하겠다는 의사에게 그 약의 부작용을 묻자 의사는 내게 "파란약도 부작용 있고, 노란약도 부작용 있고, 지금 어머님께서 드시는 약이 모두 부작용 있어요. 부작용 없는 약 없어요. 그래서 약 안먹을래요?"라고 몰아붙였다. 이 대화가 동네 의원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한국 최고의 심장의술을 자랑하는 서울대 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니, 다른 병원들은 오죽하랴.

3. 감기보험 vs. 억대보험

나는 한국의 보험이 전혀 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감기정도 앓는 사람들에게는 저렴할 지 모르겠으나 큰 병이 걸렸거나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검사를 받아야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의료서비스는 별로 저렴하지 않다. 고질적인 과잉진료 덕택에 보험상 몇 천원이면 고칠 수 있어야할 간단한 질병 조차도 쓸 데 없는 의료서비스를 과도하게 받아서 결국 몇 만 원 내고 나와야한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민이 절실히 보험이 필요한 결정적인 순간, 즉 중병에 걸렸을 때, 늙었을 때 한국의 의료보험이 참으로 허술하다는 것이다. 온국민 건강보험시대에 민간 암보험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일종의 코메디인 것이다.

물론 내 생각에 미국 보험 역시 절대 싼 보험은 아니다. 내 지갑에서 직접 적으로 나가는 돈의 액수가 적다 뿐이지, 회사에서 보험회사에 내는 돈의 액수는 가히 천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지불되는 응급치료비라든가 사회적 비용등을 계산하면 미국의 의료 제도는 억대 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의료보험 민영화에 대응하는 현명한 자세

의료보험 민영화에 대한 기사가 뜨면 민영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꼭 식코와 미국 의료보험제도를 그 예로 가져와서 절대로 민영화만은 막아야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이야기이다. 미국 의료보험제도가 절대로 한국 의료보험제도의 모델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미국 의료보험제도만 아니면 만족할 만한 보험제도는 아니다. 다시 말해서 민영화만 막는다고 한국 보험제도가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믿거나 말거나 한국의 의료보험제도는 그리 좋은 제도가 아니다. 이미 한국 의료 보험 제도 안에 엄청난 의료차별이 존재한다. 이름있는 큰 병원들이 앞다투어 럭셔리 병원을 개원하고자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의사들은 불친절하고, 병원들은 돈만 밝히고, 의사 한 번 만나려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하고 기다린 끝에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 처방과 치료를 100% 믿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치료를 받는다고 하지만 걸핏하면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치료를 받게 되고 결국 큰 수술, 큰 병을 겪게 되면 목돈이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따라서 정말 민영화를 막아야겠다면 끔찍한 미국 제도에 대응하기 위해 현제도를 고수하자는 주장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끔찍한 미국제도도 문제지만 막상 한국이 갖고 있는 제도 또한 그리 사랑스런 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어짜피 돈 많은 혹은 돈이 많고 싶은 사람들에게 미국 제도가 뭐 그리 나쁠까? 칠레 같은 경우도 나라에서 민간보험/부분 민영화를 적용했을 때 중산층 이상은 찬성했다. 이유는 기존의 공공의료서비스의 질이 너무나도 낮다는 것이다. 돈을 더 내고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람들을 막을 방법은 없었고, 그래서 그 선명한 칠레의 의사들도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저 미국 제도가 무섭다는 것, 식코 영화 봤다는 것으로는 민영화를 막기 어렵다. 여론몰이는 민영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처럼 민영화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할 수 있다. 부적절한 의료보험제도 때문에 일 년에 수백명씩 의료사고, 과잉치료, 과잉진단으로 피해를 보는 "한국"사람들의 사례를 다큐멘타리로 못찍으라는 보장 없다.

민영화에 대한 현명한 대응은 현 한국 보험 제도에 대한 겸허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 그래서 단순히 민영화를 막겠다는 수세적인 주장의 나열보다는, 미국식 제도는 엉망이라는 반대론만 펼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공의료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인지 공격적인 개선안을 내놔야하는 것이다. 보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의료비 걱정을 안해도 되고, 의사들 간호사들 친절하고, 과잉진료, 과다처방 없는 시스템을 온국민이 즐길 수 있는 보험제도를 보여주면서 현 의료보험을 개혁하는 것이 그런 좋은 보험제도로 가는 빠른 길이라고, 민영화를 통해서는 갈 수 없다고 설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다. 이렇게 설득하는 것이 좀 느리고, 덜 파격적이고, 좀 돌아가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이게 현명할 것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