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교수의 총리 내정을 어떻게 바라볼까

2009/09/05 09:59

정운찬 교수가 총리 후보자가 된 것이 정국에 나름 큰 파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하긴 예상치 못했던 카드였으니 당연하달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현재의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로 봤을 때 정운찬 카드는 김종인 전 의원 못지 않게 그럴싸할 뿐 아니라 상징적인 차원의 기용이 아닌 실질적인 정책구현 차원에서 봐야할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신자유주의 정권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지금 그의 기용이 애매할 수도 있겠지만, 이명박 정부는 우파 포퓰리즘 정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을 획득하기 위해서라면 선을 넘지 않는 한도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 점에서 정운찬 카드는 최적의 수 중의 하나인 셈이다.
 
정치적으로 보더라도 정몽준은 아닌 것 같고, 박근혜 쪽에 정권을 넘겨주고 싶지 않은 친이계 쪽에서는 정운찬이라는 대안이 꽤 먹음직했을 터이다. 이재오가 킹메이커는 몰라도 차기 카드로서는 부족한 상황에서 사실 차기를 위한 안정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했던 것이고, 이것이 정운찬 교수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다.
 
그러고 보면 정운찬 교수가 최근 정국현안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적 시선을 표명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정운찬 교수 쪽에서도 나름의 개인적인 욕망도 작용하였으리라. 저번 대선 때도 출마생각이 있었지만 흐지부지되었는데, 지금의 경력을 발판 삼아 다시한번 도약을 해볼 생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나. 그게 인지상정이고...
 
그가 얼마전 기아와 두산전 프로야구 잠실경기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다. 카메라가 자꾸 그를 비추어서 그가 경기장에 온 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두산팬이라고 하는데, 기아가 8회에 김상훈의 만루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하자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라. 그 때는 아무리 공인이라지만 연예인도 아닌데 웬 일로 그를 카메라 앵글이 잡나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민주당은 정운찬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잔뜩 벼르고 있단다. 정세균 대표는 4일 "정 후보자는 대운하, 4대강 사업, 부자감세 등 이명박 정권 경제 정책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온 사람"이라며 "이 정권이 정 후보자를 총리로 내정한 것이 경제정책 기조를 바꾸겠다는 신호인지 지켜보겠다"고 말했고, 이강래 원내대표도 "정 후보자와 이명박 대통령의 소신이 너무 다르다는 게 명백하다"며 "정 후보자가 머리를 숙이고 소신을 굽혀 곡학아세하려는 것이 아닌지 여부를 청문회를 통해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정운찬 교수가 총리 후보자가 된 것은 이명박 정부 및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정운찬 교수가 자기 쪽 사람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정운찬 교수는 커다란 줄기 면에서 양쪽이 차별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음에 틀림없다. 실제 이명박 정부와 민주당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의문이다. 작은 대치선은 있겠지만, 궁극적인 면에서 그들의 행보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를 창출한 것은 바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였다. 내부에 사민주의 지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본질적으로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우파세력들이 이명박 정권의 이해와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경찰국가적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또한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 부분적으로 시도되어왔던 것이고, 이명박 정부는 이를 전면화한 것에 불과하다. 노무현 정부하에서 이러한 흐름에 저항했던 이들은 소수였고, 이명박 정부하에서 그 본질을 꿰뚫어보며 본질적인 차이를 지적하는 이들도 역시 소수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번 정운찬 교수의 총리 내정은 민주당과 소위 진보개혁세력의 레테르를 붙이고 있는 이들이 주장하는 것들이 언제든지 이명박 정부에 의해 수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민주당은 정운찬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중도실용과 친 서민을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 정책의 허구성을 입증하는 좋은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무능한 민주당, 이명박 정부만도 못한 자유주의 우파세력의 본질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덧붙여서 레디앙에 실린 하재근 님의 글, “정운찬, ‘장미’ 아니다…진보정당 헛발질" - 현 정권 딱 어울리는 기득권론자…"MB와 대립하면 대영웅 될 수도"와 프레시안에 실린 김종인 전 의원의 인터뷰, "정운찬, 소신과 배치되는 정책에 침묵해선 안 돼"도 정운찬 교수의 총리 내정에 참고가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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