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일본인들과 나와의 관계
- habia
- 2011
-
- 나의 오일 그림 비오는 오후 36 42인치...
- habia
- 2011
-
- 내가 제일 자주 쓰고 좋아하는 운동모자
- habia
- 2011
-
- 무혐의 무선악
- habia
- 2011
-
- 동물과 인간
- habia
- 2011
우리는 무엇을 볼 때 되도록 많은 면의 큰 시야를 한번에 보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아무리 급한 지경에 어떤 것을 꼬나(째려)볼 때나 드려 다 보는 것도 잠시적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최소한 다른 면에 눈을 쉬면서 하지 않거나 좌우 상하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빛들을 힐끔 보면서 하지 않으면 고정된 한곳 빛의 강도나 무의식적으로 드리워 지는 상대적 시야 밖 주변의 어두운 그림자에게 압도 되여 눈조리개의 탄력성이 위축된다. 명당도 몇 분 몇 일이면 시들해 진다.
빛이 변하고 생각이 ‘눈’을 변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중 고등 학교 시절에 혼자 가노라면 길에서 왜 째려 소리를 듣고 휙 돌아 한번 째려보면 몇 아이들이 서 있는 것을 여러 번 보았고 그럴 때 마다 느슨히 다가 가면서 그러면 어쩔래 하면 다 도망 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하였다. 이것은 내가 튼튼한 어깨와 그들과 주변을 한꺼번에 보는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력도 없이 미국 대학원 다닐 때는 너무 많은 책을 읽다가 눈의 원리를 다 까먹어 버렸다.
나는 다행인지 몰라도 지금은 안경을 쓴 안경쟁이 이다. 모든 이는 보는 ‘안경’을 수시로 바꾸어 가며 사물을 관찰 한다. 이것을 영어로는 frame of reference라고 하며 우리는 제 눈이 ‘안경’ 또는 ‘보는 눈’이란 말로 대신 한다. 지금부터 안경이라고 만 요약하겠다. 사람 마다 이것은 다 각각이며 수시로 바꾸어 갈아 끼워가며 관찰 한다고 하는 말이다. 왜 갈아 끼워야 할까? 우리의 눈은 제 삼자로 가기 위한 도구이거나 수시로 정체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제 삼자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사물을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며 참여함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사물의
변화가 없는 예술성이 떨어지는 화면이나 어둡게 펼쳐지는 앞 장면들, 색의 구도가 없는 시야, 혼동스런 장면들, 윗 천정 전등불 들의 난무, 한 쪽으로는 무척 아름다울 때의 애인의 얼굴, 보이지 않는 마음들, 거짓 얼굴, 어느 하나 정신 없이 보다가는 눈이 어두워 지거나 나를 잃기 십중팔구다. 또한 글을 읽으며, 사람들과 대하면서 나는 그들의 눈 안에 정체되고 그 보이는 것과 사물(생각)은 나의 안경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왜냐하면 내가 비추어진 그들과 그들의 안경 속에서 나 자신을 보면서 나의 안경을 바꾸어 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어떻게 눈을 보호하여야 할까?
나는 안경 태(견고함과 편견)가 없는 것 처럼(‘태 없이 보는 것 처럼’) 항상 자신 있는 자세로 크게 떠 보라고 한다. 그리고 위가 사람들이 만든 전등 불로 너무 환하면 큰 나무들의 큰 밑 기둥들이 꺼꾸로 보이는 새벽 언덕의 나무 기둥들 사이로 보라고 한다. 그리고 어둠 침침한 저녁에 앞 차를 바짝 따라갈 때 빨강이 불쑥 퍼져 보일 때는 잎이 별로 없는 높은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얀 하늘로 보라고 한다. 그리고 항상 너무 깊게 오래 보지 말라고..그리고 크게 움직이기 전에 조언을 구하라고..…
언젠가 나의 더 비밀스러운 안경들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 사이로…
최근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