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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6/08/21
    [8/21] 이기영, 두만강(풀빛, 1989) 1권 발췌
    돌민

[8/21] 이기영, 두만강(풀빛, 1989) 1권 발췌

이기영, 두만강(풀빛, 1989) 1권 발췌

 

271쪽

 이씨부인은 아무 말도 못하고 앉았다. 그는 오직 얼굴이 푸르락붉으락할 뿐이었다.

 "그런데 인제 나라가 망하고 양반이 망하게 되니까, 그들은 우리의 철천지웬수인 왜놈들과 부동해서 돈 가진 새 양반이 되어보려고 또다시 백성을 못살게 굴지 않소. 누님! 왜놈은 임진조국전쟁 때부터 우리나라와 웬수지간이요, 우리 아버지를 죽인 웬수요! 그러므로 왜놈과 결탁하는 조선놈은 어떤 놈이든지 나의 웬수요. 누님! 그렇지 않소? 나는 이 웬수들을 용서할 수 없소. 이런 놈들은 누구든지 웬수로 미워하겠소. 그놈들을 저주하겠소!"

 이번에는 진경이가 두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바람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또다시 소동을 일으켰다. 진경이는 참으로 극도의 격분이 치밀었다. 한식경을 울고나서 그는 옷소매를 쳐들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313쪽

 성천마마는 장래의 운명을 예측하고 영감에게 지금이라도 창복의 몫을 분재해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러면 한길주는 또 그게 뭬 그리 급한 일이냐고 코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래저래 그는 남 몰래 애가 탔다.

 성천마마는 첩이 된 죄로 창복이한테도 큰소리를 못하였다. 왜 아들에게 떳떳한 어미로 못되었던가? 첩은 자식에게도 죄인이다. 그는 아들의 눈치를 은근히 살피었다.

 성천마마의 고민은 남 모르게 커갔다. 아들에 대한 동정은 창복이가 씨동이와 친한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자기도 여자동무가 없는 것을 미루어서 알만하다. 양반의 첩은 상놈도 아니요 양반도 아닌 반신불수다. 이러한 신분상 관계는 그야말로 상하불급의 고립된 처지에 빠지게 하였다. 

 

452쪽

 곰손이는 산전을 파서 겨우 끼니를 이어갔다. 그런데 석혈(石金鑛)이 터지면서 광산길을 닦은 것이 하필 그의 밭 가운데를 뚫고 나갔다. 그 결과로 밭은 거의 절반이 없어지고 양편 귀때기가 남은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자기 집 밭으로 길을 내는데 그는 부역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남 몰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산전이 있었기 때문에 덕만이를 은밀히 만나서 그 일을 도와주지 않았던가!

 

487쪽

 그중에도 김관일, 권치백이 두 집 식구들과 춘실이네 식구들은 더욱 친한 정리를 떼치기가 섭섭하였다. 그들은 제가끔 길양식으로 가다가 먹을 것을 만들어왔다. 덕성이네는 미싯가루와 송화가루를 한봉지씩 가져오고, 치백의 아내는 흰무리떡을 쪄오고, 감자와 강냉이를 삶아온 이도 있었다. 그때 마침 칠앗 임첨지 내외는 사위가 떠나는 것을 보기 위하여 꿀 한단지와 이차떡을 한목판 해가지고 왔다.

 "아니 짐이 무거운데, 뭘 이렇게들 가져오시고 원!"

 곰손 어머니는 그들의 동정심이 한편으로 기쁘면서도, 타국으로 멀리 떠날 생각을 하니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것은 떠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보내는 사람의 마음들도 마찬가지였다. 참으로 이들은 왜 제 나라 땅에서 못 살고 산 설고 물 설은 타국으로 가야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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