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호/ 당초 이 글의 쟁점을 무시하는군요. 아시죠? 김광수가 쓴 글의 쟁점은 '유기혁 열사의 죽음'과 관련해서 노힘을 비판하고 김광수(내지는 해방연대)의 입장이 옳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고, 그다음에는 '그런' 노힘을 비판한답시고 '아가씨와 건달들'을 비유해서 여자들을 지맘대로 짤라버렸던 거였던 거 아닙니까? 쟁점이 두개가 된 거에요. 그런데, 문창호씨 의도와는 다르게 이 글에서는 전자의 쟁점이 문제가 된 게 아니군요... 문창호씨 덧글을 보니, 문창호씨는 '유기혁열사 죽음'에 대한 게 쟁점이 되기를 무척 바라시는 것 같은데 그것도 중요하게 바라보면서, 유기혁열사가 그렇게 죽음으로 내몰렸던 것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입장도 있어요. 바로 문창호씨처럼 ' 이 울분을 어디가서 풀어야 할까' 하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죽음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다는 것... 문창호씨는 자신이 울분이 북받침에도 불구하고 투쟁하기 어려운 상대 앞에서는 혹시 찍소리도 못하고 집에가서 아내나 아이들을 마구 팰 기세로군요.
이 글은 '아가씨와 건달들'을 비유로 삼은 김광수의 '사회주의관'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나온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나도 실은 이 글과 결론이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한가지를 더 얘기하기로 하지요.
당신들(적어도 여기서 등장하는 김광수와 문창호)은, '비정규직'이나 '유기혁 열사'를 그들의 죽음을, 제발 욕되게 하지 마세요. 유기혁 열사는 안타깝게도 죽음으로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죽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비정규직의 투쟁이 너무나 많아요. 이것도 아시겠지요.
문창호 동지.. 사람들은 이미 민투위 문제의 심각성과 노힘의 태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민투위 문제를 희석시키고 있는 당사자는 제가 보기에 노힘의 여성동지의 문제제기가 아니라 바로 문창호 동지나 기타 해방연대 게시판에 덧글을 다는 동지들인 듯해서 안타깝군요. 자본주의 세상의 모든 일이 민투위 문제로 환원될 수 없듯이.. 해방연대의 대응또한 복합적이며, 정밀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한마디 올렸습니다.
문창호님. 몰지각하다니요. 말이 지나치군요.
어처구니없으면 그냥 가는 길을 가시지 왜 반응하세요.
블로거들이 이 글만 읽으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모양인데 진보넷 블로거들 그렇게 바보 아닙니다.
대꾸할 마음이 없으면 대꾸하지 마세요. 진지하게 님의 글을 읽으려고 했는데 그런 마음마저 싹 달아납니다. 에구 허리야.
<b>열사에 대한 도리를 잊지 않았다면
노동자의힘 회원은 공개비판과 탈퇴를 단행하십시오</b>
<b>한 순박한 청년노동자의 죽음</b>
2005년 9월4일 오후6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 해고자였던 고 류기혁 열사가 비정규직노조 사무실 옥상에서 목을 매 자결한 상태에서 발견되었다. 이날의 비정규직노조 성명서는 열사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류기혁 조합원은 지난해 2월 당시 우리노조 2공장 대의원대표를 만나 “월차를 쓰고 싶은 데 하청업체 관리자들이 못쓰게 한다”며 하소연했고,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와 싸우자”는 권유를 받고 흔쾌히 노조가입원서를 작성했다. ……
불법파견 판정이 내려진 지난해 9월22일부터 우리노조가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쟁취!를 위한 총력투쟁에 돌입하면서, 출·퇴근투쟁과 크고 작은 집회를 집중적으로 배치했는데, 류기혁 조합원은 거의 빠짐없이 참가했다.
노동조합 일정에 충실히 참여하기 위해 잔업·특근 등의 연장근로를 못하게 된 경우가 많았는데, 이 때문에 해당업체 관리자들과 잦은 다툼이 일어났다. “넌 간부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자주 빠지냐”, “사람 없어서 절대 못나간다”는,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8시간 노동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관리자의 횡포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다. 관리자들은 “기혁이 때문에 너희가 더 힘들다”며 동료들로부터 왕따까지 조장하기도 했다. ……
우리노조는 결국 노조활동조차 본인의 의사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처참한 하청 신세와 노조탄압이 류기혁 조합원에게 죽음을 강요한 것이라 판단한다. 불법파견을 중단하고 정규직화를 실시하라는 정당하고 절박한 호소에도, 판정 내린 당사자인 노동부도 외면하고 현대자동차는 극악무도한 탄압만 일삼으며 불법행위를 계속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서 류기혁 조합원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결뿐이었다.”
<b>열사를 부정한 인면수심의 이상욱 집행부와 민투위</b>
열사가 자결하신 다음날(9월5일), ‘고 류기혁 사망 건’이라는 마치 사측과 경찰이 작성한 듯한 문서가 현자노조 이상욱 집행부에 의해 배포되었다.
“징계해고의 사유는 무단결근이며, 이 과정에서 업체의 부당성이나 왕따 등의 내용은 없었음.”
“해고 후 비정규직노조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는 등의 2-3주 잠깐 실무를 봄(복직투쟁은 없음).”
“성격이 집요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따른 방향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상욱 집행부가 배포한 문서에는 이처럼 열사의 죽음을 왜곡하는, 열사를 부정하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렇다면 이상욱 집행부는 왜 열사를 부정했을까? 며칠이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상욱 집행부는 9월8일 임단협에 잠정합의하고, 12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가결시키며, 비정규직투쟁을 외면하고 05년투쟁을 마무리 지었다.
당시 전국 최대의 불법파견 판정(9,234명)을 받고, 비정규직노조가 전면파업·농성투쟁 등의 불파철폐 투쟁을 1년여 동안 끈질기게 벌려왔던 현대자동차는 전국적 관심의 초점이었다.
정규직노조가 어떻게 연대투쟁하느냐에 따라 원하청공동투쟁의 본보기가 될 모범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비정규직 양산의 대표적인 수법인 불법파견의 병폐를 사회에 알려내고, 비정규직의 대대적인 정규직화를 쟁취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회를 살리기는커녕 이상욱 집행부는 최악의 패륜행위를 범했다. 이상욱 집행부는 현자자본의 악랄한 비정규직노조 탄압에 의한 열사의 죽음을 인정해놓고는 곧바로 사측과 야합하는 자가당착을 피하기 위해, 교섭장을 박차고 나와 열사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열사를 부정함으로써 반노동자적 행태라는 더한 자가당착을 범했던 것이다.
열사의 죽음 앞에서, 한 청년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고통과 울분을 공감하고자 하기 이전에, 그 죽음이 받아들일 만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가늠했던 이상욱 집행부는 인간 이하이다.
인면수심의 그들은 열사와 함께 열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악랄한 비정규직노조 탄압, 그리고 이에 맞선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처절한 투쟁을, 열사투쟁을 동시에 부정했다. 사실상 자본을 도와 비정규직투쟁을 탄압한 것이다.
더욱이 이상욱 집행부를 배출한 ‘현대자동차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는 대외적으로 “강성”, “좌파”로 알려진 현장조직이었다. 이후 민투위는 내부에서 제기됐던 집행부 임원 6인에 대한 징계제명 요구를 묵살하고, 2007년에는 다시 이상욱을 현자지부장으로 추대함으로써 자신의 반노동자적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b>노힘의 민투위 소속 회원에 대한 징계 회피가 왜 심각한 오류인가?</b>
해방연대는 소위 ‘계급적 좌파’에 의한 열사부정이라는 패륜행위가 발생했던 달의 26일에 ‘노동자의힘’(이하 ‘노힘’)에게 「노동자의힘 회원, 이상욱, 김태곤 징계요청의 건」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해방연대는 자신의 회원이 아닌 위 2인에 대해서 징계를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같이 밝혔다.
“위 2인이 현자노조 집행부의 핵심간부일 뿐만 아니라, 우리 조직과 똑같이 노동자계급의 해방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목표로 투쟁하는 단체의 회원이라는 점에 더욱 참당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귀단체와 우리조직의 회원 전체를 포함한 노동해방투사 전체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러나 노힘은 위 2인뿐만 아니라 민투위 소속의 자기회원들을 누구도 징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근래 사회주의정당 건설이 공론화되자 해방연대는 다시 올해 9월3일 민투위 소속 회원 징계와 자기비판을 “마지막 요청이라는 자세로”, “수용되지 않을 경우에는 노동자의힘이 사회주의정당 건설에 나설 자격과 의지를 결여한 것으로 대중적으로 규정하고 행동”할 것을 밝히며 다시 요청했으나, 노힘은 “징계가 아니라 토론과 실천을 통해 상호 정치적으로 재조직화하는 과정을 밟”겠다는 거부의 답변을 보내왔다(「해방」38호 참고).
이상욱과 민투위의 패륜행위에 동조·방조했던 민투위 소속 회원들을 징계하지 않는 것이 왜 심간한 오류인가를 노힘 자신의 목소리에 근거해 말해보겠다. 아래는 류기혁 열사의 죽음 불과 10개월 전에 노힘 회원이 노힘 기관지 65호에 썼던 글(부제:「현대중공업노동조합 금속산업연맹 제명에 부쳐」)의 일부이다.
“금속산업연맹은 광주캐리어에 이어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을 제명했다. 이 두 사업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하지 않고 탄압하는 반노동자적 행동으로 제명됐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는 여전히 구호와 당위로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노동조합의 탄압을 제명이라는 칼을 뽑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금속 노동자들의 이러한 적극적인 대응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해야 하며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
금속산업연맹의 현대중공업노동조합 징계는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
금속연맹의 현중 제명은 타연맹과 총연맹에 희망을 줬다. 금속연맹이 현중을 제명하지 못했다면 비정규직 운동은 어려움에 빠졌을 것은 분명하다. 금속연맹의 사례는 타연맹에서도 사업장의 크고 작고의 규모를 떠나 운동의 대의를 벗어나면 징계를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근거를 마련해줬다.”
금속연맹과는 반대로 노힘이 열사를 부정해 비정규직투쟁을 탄압한 민투위에 소속된 회원들을 징계하지 않음으로써 보여주고 있는 것은, ‘계급적 좌파’ 운운하는 정치조직이 노동조합보다도 못하다는 실태, 자기들 내부에서 이미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은 죽어 있다는 실토이다.
또한 운동의 대의를 벗어나도 정치조직, 그것도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하겠다는 조직에 걸칠 수 있다는 악습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이처럼 부패한 노힘이 노동해방과 사회주의를 참칭하고 있으니, 건강한 사회주의자에게는 모욕과 수치까지 안겨주고, 동시에 사회주의정당 건설을 어려움에 빠뜨리고 있다.
징계는 하지 말아야 될 일들에 대한 조심과 경계를 의미한다. 그런데 누가 보아도 심각한 패륜행위에 대해서조차 징계를 회피하는 것은 앞으로도 이와 같은 관료주의적 행태들을 묵인, 변호하겠다는 말과 다름이 아니다.
<b>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당연한 예의와 존중이다</b>
굳이 이 글에서 다시 한 번 민투위 사건을 상론하는 것은 해방연대의 노힘에 대한 지난 요구가 결코 무리하고 고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것임을 말하고자 함이다. 해방연대가 요구하는 것은 열사, 한 인간에 대한 당연한 예의와 존중이며, 패륜에 대한 정당한 분노이다.
이상욱과 민투위는 불파투쟁, 열사투쟁을 회피하기 위해 열사를 부정했다. 이는 열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생생한 고통과 울분에 대해 살아 있으면서도 느낄 줄을 모르는, 인간적 유대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더럽히는 인면수심의 짓거리였다.
그런데 기회만 되면 “계급”과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말하는 노힘이 정작 이러한 패륜을 저지른 자들과 한통속이었던 자들은 징계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해방”이라는 말을 공유하는 동지들로서 신뢰를 갖고 오래 기다려왔으나, 노힘은 전혀 반성할 줄 모른다.
노힘의 자정능력은 바닥을 드러낸 것 같다. 그들은 분노하는 법조차 잊은 듯하다. 남겨진 방법은 노힘 내에 아직 남아 있는 양심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것뿐이다.
열사에 대한 도리를 잊지 않은 노힘 회원들은 공개비판과 탈퇴를 결단하여 실천하십시오. 도리를 행하지 않고서 누구도 새로운 세상을 외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제기한 문제의 진정성은 오직 제가 느낀 불쾌하고 폭력적이었던 상처, 그 감정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문제는 이 감정을 그대로 공감하고자 하기 이전에, 이 감정이 내가 진정성 있게 받아들일만 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가늠하려는 태도입니다."
노힘의 활동가께서는 이 문장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이율배반으로 읽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고 류기혁 열사의 죽음 앞에서, 한 청년노동자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그 고통과 울분을 "그대로 공감하고자 하기 이전에", 그 죽음이 "받아들일만 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가늠"했던 (당시 사측과 막바지 임단협 잠정합의한 도출에 임하고 있었던) 이상욱 집행부의 태도는 과연 인간이 할 짓인가?
누구도 감히 이것이 패륜이 아니라고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패륜이 아니라고 주장되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이 거꾸로 뒤집어져야 한다.
그렇다. 우리가 지난 3년 동안 주장해온 것은 바로 인간의 도리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다.
그런데 이 상식적인 문제에 대해 노힘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우리뿐만 아니라 좌파 모두의 문제이고, 토론을 통한 "정치적 재조직화"의 문제라고 한다.
도대체 패륜을 범한 자들과 한통속인 자들을 징계하지 않았던 조직이 노힘 말고 또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왜 좌파 모두의 문제라고 하는가?
또한 패륜을 범한 자들과 한통속인 자들을 징계하지도 않고, 토론을 통해 재조직화하겠다는 소리는 무슨 소리인가? 이건 개소리이다. 어느 법정이 죄값도 치르지 않은 자들을 앉혀놓고 교화를 말하던가?
이는 죄를 죄라고 보지 않기에 나올 수밖에 없는 소리이다. 노힘이 패륜과 도리를 분별하는 눈조차 상실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옛부터 패륜과 도리를 구분 못하면 금수라고 했다. 그래서 난 그들을 지금 경멸한다. 통채로 매도하는 것이 성급한 짓인지는 알지만, 난 이 감정을 너무나 진실되게 느끼고 있기에 숨기지 않겠다.
도리를 말하는데 도대체 들어먹을 생각을 안하는 노힘을 보며 울컥 올라오는,
눈이 따끔거리고, 얼굴이 붉혀지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가슴은 진정되지 않는 이 울분은 어디에다 풀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