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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보다.
영화 보는 내내 입속에서 머물다가,
영화 끝나자마자 나온 첫마디.
"진짜 재미없다"
그리고, 속았다는 느낌.
늙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도 있을 줄 알았더니만,
육체적으로 늙은 남성이, 젊은 여성을 만나면서 생기를 되찾고 새로운 창작욕구를 느낀다는,
그렇고 그런 진부하고 통속적인 내용 그대로다.
요즘 사람들은 너도 나도 식스팩과 베이글에 열광하고 있고,
자본은 그에 발맞추어 젊음을 마케팅하며, 젊음지상주의를 조장한다.
모두가 조금이라도 젊어져 보일려고 환장인 이 시대에,
이 영화가 '젊음과는 또다른 늙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던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1. 일단 대사의 유치함.
이적요와 은교가 처음 만나면서 연필에 대해서 얘기하는 장면에서,
초등학교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닭살 돋는 유치한 말들의 나열에 깜짝 놀랬다.
2. 침대 속에서, 그리고 문신을 그릴 때, 이적요가 은교의 속살을 엿보는 장면은,
남성 관음증을 자극하는 삼류 에로물에서나 나올법한 카메라 샷과 별반 다르지 않다.
누구는, 그 장면에서 영화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왜 하필 그 영화적 상상력을,
젊은 여성의 몸을 엿보며 흥분하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지, 불쾌함만 남았을 뿐이었다.
3. 메시지의 일관성도 없다.
이적요가 그의 제자의 이상문학상 수상에 축사를 하면서,
"늙음은 벌은 아니다'라고 말한 뜻은, 젊음과는 뭔가 다른 늙음의 또다른 의미가 있다는거 아닌가?
그러나 실상 영화의 표현기법은 젊은 여성에 대한 포르노적인 판타지만 있었을 뿐이다.
은교는 상상 속에서 항상 밝은 햇살을 받은 채 순백의 티셔츠와 팬티를 입고 있다.
생각해보니, 영화가 짜증났던 이유는,
나의 뜻에 영화가 맞춰주지 않아서 기분 나빴던건가싶기도 하다.
나의 과한 생각인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이 영화가 젊음을 욕망하는 노인의 애절함?정도밖에 표현하지 못한채, 남성의 통속적이고 왜곡된? 성욕망만 보여줘서 지루했다.
영화라면 현실의 숨은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그 현실을 비유하고 풍자함으로써 그 재미와 자극이 있는 것이지,
이 영화는 그냥 뭐 표면에 드러나있는 진부한 현실만 재현하고 있으니 당연히 재미가 없는 것 아닌가.
더군다나 젊음을 욕망하는 걸 부추기며 마케팅의 수단으로 삼는 자본과도 이해가 딱 맞으니,
더 말할 필요 없이 따분하고 싫증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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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기가 쓴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어 있는지필자를 제외하곤 누구도 확인 할 수 없는 모호한 글일 뿐이다.
화려한 지적 단어들의 나열이 그럴듯 하나 알맹이는 없고
단어에 대한 경외심이나 두려움 때문에 어려운 글이구나 생각하게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단어만 있고 이해하기 힘든 그런 글이다.
왜 이해하기 힘든 글이냐면 내 독해력이 떨어지기 때문은 아닌 거 같고
글 자체가 어려운 것도 아니며 그저, 이해할 수 없는 글이기 때문이다.
글의 소통 가능성을 배제했기 때문인 것 같지만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거 같다.
일단 만화에 대한 취향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할 건 없다고 본다.
허나 영화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서 만화라는 다른 장르의 예술과 현실이라는 화제로 바뀐 것은 좀 아쉽다.
먼저 단어의 정의를 공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실, 실재, 이데아, 상징, 지적쾌락 등등
지금 사용 된 단어들은 상당히 불명확하고 자의적, 폐쇄적이다.
'복잡다단한 심경의 엇갈림'이 무엇이고
판타지-만화에서 보여지는 '현실'은 무엇이고
그려지지 않으며 숨긴 채로 독자에게 다가오는 '실제'는 무엇인지
보여지고 표현되는 '실재'는 무엇이고 '숨겨져 읽히는 '현실'은 무엇인지
단어를 적어놓았을 뿐 그게 무엇인지에 대한 기술은 없다.
더구나 이런 유치한 판타지-만화에서 이데아론이라니... -_-
적어도 이데아론을 끌어올 거라면 자기가 생각하는 이데아론이란 무엇이고
만화의 어떤 부분이 부합하는지 기술되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다.
이건 그저 개인적 감상과. 자의적인 '어떤감성'에 대한 기술인 것 같다.
위 단어들의 정의를 공유해야 논의가 진전되겠지만 이타심을 발휘하여
이 글을 독해,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감상평이 추측되는데
사실 이런 감상은 너무도 자의적이고 판타지와 꿈의 한계를 넘지 못하기에, 이 지점에서 인간을 찾는 것도 무모한 도전으로 보인다. 나는 반론을 위해 반론하는 것은 아니고, 오늘 처음으로 덴마의 최근 두 가지 챕터를 봤으며 이 감상평의 어불성설을 말하고 싶을 분임을 먼저 밝힌다.
이 감상평을 간단히 정리하면
'서로 강함을 위해 싸웠지만 실제 개인의 삶은 절망과 아픔이 있는 삶이다'
더 줄이면
'약육강식의 이면에는 패배의 절망감이 있다' 정도로 요약된다.
첨부된 이미지는 부상을 입고 자기 능력을 영구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실망'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전투의 결과' 즉 '서사의 진행과 결과' 개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프리즘에 투과되어 보여지는 현실' 이라는 것은 싸움과 전투 따위고
인간의 복잡 다단한 실재는 개개인의 감성이 있다는 것으로 가정하고 읽어내면
(내가 잘못 읽었다면 현실과 실재에 대해 논해봐라)
싸우는 파이터 (외형) // 파이터들 개개인의 감성 (내면) 의 개념을
현실과 실재라는 단어로 바꿔 말하는 것으로 밖에 말 할 수 없고 이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저 파이터들은 인간이 아니다. 환타지 속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캐릭터일 뿐이다.
환타지의 세계에 철학적 사고를 접목할 수 있을 만큼 이 만화의 컨택스트는 풍부하지 않다. 이 만화는 작가의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현실세계 에서 볼 수 있는 것에 대한 변용. 두 세컷으로 중간중간 삽입되는 깨알재미에 그 힘이 있는 것이지 중간장르로서 만화의 매력을 살리는 것도 아니고 어떤 비평이나 평론을 시도해도 공상과학 이상에 도달하지 못한다.
상단의 이미지를 '상징' 이라 말하기에도 엄청난 독단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저 장면이 아주 냉정하게 이야기 해서 '절망감' 그 이상을 가르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상징이란 것은 표현하려는 캐릭터나 성격, 주제 따위를 전혀 다른 오브제로 치환시키는 것이지. 저렇게 직접적으로 실망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을 상징이 아니다.
단지 저 이미지는 실망한 캐릭터의 심경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만화 커트일 뿐이다. 만약 저 캐릭터의 엄마가 저 캐릭터로 부터 거울을 선물받았다. 어느날 반대세력의 침공을 피해 도망가다가 그 거울이 깨졌다. 깨진 거울을 바라보는 엄마의 걱정스런 표정이 그려진다면. 저 캐릭터의 신변문제를 거울이란 상징으로 나타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저건 그냥 페인팅으로 실망감을 그려냈 것 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나 컨택스트는 독자가 저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관념에 의존되어 있을 뿐, 순수하게 저 이미지를 두고 상징이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저기 적혀있는 '심경의 엇갈림'이란 '능력을 잃은 절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복잡 다단한 심경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 복잡 다단한 심경이란 무엇인지 좀 더 확실히 해야 했다. 두루뭉술한 감상으로 복잡다단한 심경이라는 단어를 써버린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저 이미지가 절망했다는 것 이외의 무엇을 상징한 것인지 정도는 기술하지 않는가.
생각보다 이 만화는 구구절절 설명하는 부분이 많다. .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능력'들은 당연히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판타지의 당연한 특성이다. 만화 속 능력은 일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독자를 작가의 세계로 들어오게 하고 이제 이 만화을 감상하게 하기 위한 '현실유보작업'을 벌이기 위해선 판타지의 룰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능력을 보여주기 이전에 능력을 설명하는 부분이 수반되어야 한다. 영화는 움직이기 때문에 그 능력과 효과를 그대로 사용하고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만화는 정지된 화면이기에 지루하게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 불가결하다. 그래서 덴마는 그림보다는 대사로 표현되는 성향이 강하다고 본다.
바로 앞장면에서 발락의 승리와 또 다른 성장을 지켜보며 흐뭇하다가
점돌이의 아픔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여기서 흐뭇하다는 독자 소감을 제외하고 정리하면 바로 앞장면에서 발락은 승리하지만 어떤 죄책감을 느끼고 파괴본능이나 공격성에 대해 자기반성을 한다. 그리고 점돌은 발락에게 공격받아 자신의 능력을 잃고 상심한다.
이 이상의 텍스트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두 인물의 내면적 흐름은 너무도 당연할 뿐 더러.
싸움의 결과라는 인과관계가 너무 명징해서 독자가 예측 못할 반전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명장면이고 강한 임프레션으로 독자에게 다가 간 것은 100% 해당 독자 개인의 감상일 뿐. 왜 그렇게 느끼는지 알 수 없지만 이 감상문에 기초했을 때, 그 감상의 설득력은 너무 떨어진다.
자 이제 두 캐릭터의 상반된 감정. 그 차이와 대비를 이데아론으로 연결시켜보자.
진짜 실제는 만화 속 세계에서의 전투. 환타지 '능력'의 충돌.
헌데 알고보니 이 전투와 능력의 충돌 이면도 아니고 이후에는 현실 그러니까 절망, 자기성찰이 있었다는 게 반전이고 지적 쾌락을 느끼는 지점이라는 것인데...
거친 캐릭터가 자기반성을 통해 한단 계 성장하는 것을 보고 흐뭇함을 느꼈다.
그에게 피해를 받은 다른 캐릭터는 능력을 잃은 상실감에서 슬픔을 느꼈다.
이 감상의 흐름에선 반전은 없고 캐릭터가 느낀 감정에 대한 차이만 있다.
작가는 그것을 의도적으로 대비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전투 결과를 각각 그려냈을 뿐이고
이 두 가지에 대해 어떤 개입도 하지 않는다.
대게 작품에서 반전이라 함은 그동안 진행되온 서사를 독자가 읽고 어떤 것을 예상했는데 그것과 전혀 다른 예측치 못한 이야기가 전개될 때 반전이 있다고 한다.
단순히 캐릭터의 내면상태가 대비된다고 해서 반전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무리가 있고 이건 '지적 쾌락'이라기 보단 두 캐릭터에서 독자가 느낀 두 가지 감상의 공존이란 표현이 적합하다. 혹은 저 이미지를 본 독자에게 느껴지는 캐릭터의 절망감. 그것을 봐야만 하는 안타까움이지 이것이 '지적인 무엇'이 될 수 있는지도 역시 무리가 있다.
재밌네. 앞으론 카톡말고 여기서 만나지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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