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대림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 마창노련의 선봉은 여전히 투쟁하고 있다.

 

1987년 창립한 마창노련은 지역연대투쟁의 대명사, 노동자 단결의 대명사로 이름을 떨쳤다. 그 마창노련에서도 투쟁의 선봉에 섰던 핵심적인 사업장은 대림자동차, 통일중공업(현 S&T중공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마창노련이 해산된지 15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 선봉에 섰던 노동자들은 여전히 차가운 겨울바람을 온몸에 맞으며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마창노련 시절 600명이 넘었던 조합원은 이제 200명 가량으로 줄어버렸고, 투쟁을 시작했을 때에는 청년이었던 조합원들은 이제 대부분 중년의 나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대림자동차 지회는 23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마창지역에서 자본의 탄압에 중심에 서서 노동자의 자존과 생존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대림자동차는 수년간 악화되는 이륜차 시장상황에 대해서 대안을 만들지 못하고, 계속해서 단기적인 실적위주의 사업을 진행해왔다. 중국 등에서 싼 이륜차의 수입, 50CC 이하 등록제 추진 등의 상황에서 연구개발 투자는 커녕, 공장부지 매각, 노동자 인원축소 등으로 대응해왔을 뿐이다.

 

올 초부터 대림차 자본은 공장이전과 인원감축을 노동조합에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경영위기를 노동자 정리해고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10월 30일 사측은 667명(비조합원 포함) 중 295명을 잉여인력으로 통보하고 정리해고를 노동청에 신고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대응은 어려운 조건에서 시작되었다. 분열을 만드는 자본의 지배전략 대로 사측은 노동자들을 분리해내기 시작하였으며, 전체 조합원 중 인원감축에 투쟁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은 절반에 미치지 못하였다. 지역연대로 투쟁을 돌파해갔던 마창지역의 단결력도 과거에 비해 많이 약해진 실정. '자본의 위기전가에 맞서 싸우는 경남공투본'은 지역연대투쟁의 흐름을 다시 만들고, 대림자동차 투쟁의 긴박함을 알리기 위해 11월 13일, 지역토론회를 개최하였지만, 이러한 지역의 분위기를 바꾸지는 못하였다. 진보신당 경남도당도 투쟁단을 결성하여 11월 11일 대림자동차 공장 앞 천막농성에 돌입하고 지역 제 사회단체에 공동투쟁을 제안하였지만 성과없이 끝나고 말았다.

 

경남지부가 공장 정문에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지역 지회가 돌아가며 순회철농을 하기로 하였지만, 정리해고를 막아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11월 30일 정리해고 통보 시 지역 잔업거부 투쟁을 하기로 결의하였지만 이것도 실행되지 못하였다. 개인적으로는 경남지부가 대림자동차 노동자의 정리해고를 막아내기 위해서 진지하게 임했는지 심히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어찌되었든 이런 상황에서 경남지부는 지부선거에 돌입하게 되었다.

 

대림자동차 노동자 중 194명이 정리해고 전 사측이 시행한 희망퇴직을 신청하여 공장을 떠났다. 11월 30일 총 60명에게 정리해고가 통보되었다. 이중 1명이 관리직 과장, 1명이 공상환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참여하고 있던 노동자들이었다. 사측이 인원감축으로 노리는 것은 노조를 파괴하고 노동자들을 노예처런 순종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게 분명해졌다.

 

 

대림자동차 지회는 아침 정문 선전전(7시 10분- 7시 50분)과 저녁 소집회(저녁 7시)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12월 2일부터는 회사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퇴거를 요구하고 있으며, 식당을 아침, 저녁은 운영중단하고 점심만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부터 노동자들은 아침 선전전이 끝난 이후에 정문 앞 대로 변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은 희망을 놏치지 않는다. 한 노동자는 저녁 소집회 발언에서 회사에 입사한지 딱 23년 하고 7개월만에 해고되었다면서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아침에는 찬바람을 맞으며 먹는 밥이지만 이런 밥이 원래 더 맛있는 법이라고 말하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대림자동차의 노동자들은 노동자에게는 "해고가 살인이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다. 10년전 정리해고제의 도입에 반대해 총파업을 벌였던 노동자들은 이제 10년이 지나 정리해고에 의해 생존이 유린되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대림자동차의 투쟁은 그들만의 투쟁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생존을 확보하고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정리해고에 맞서 마산 창원 지역 노동자들의 단결투쟁, 전국 노동자들의 총투쟁을 만들어가야 한다.

 

공산당 선언의 한 문구에서처럼 "노동자들은 때대로 승리하나, 그것은 단지 일시적일 뿐이다. 그들의 투쟁들의 진정한 성과는 직접적인 전과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더욱더 확대되는 단결이다." "노동자들의 단결로 정리해고 박살내자!" 이것이 승리의 답인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본론」을 통해 확인해보는 맑스의 생태론

「자본론」을 통해 확인해보는 맑스의 생태론

 

 

 

 

1. 「자본론」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 : 생태주의적 독해

 

맑스가 「자본론」을 출간한지 142년이 된 지금에 와서도, 맑스의 사상이 여전히 생명력을 상실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세계적 공황의 발발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음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맑스의 「자본론」는 자본주의 생산양식 고유의 법칙을 규명하고자 한 시도였다. 맑스는 「자본론」을 쓰면서 자신과 엥겔스가 발전시킨 “유물론적인 역사파악”(소위 사적 유물론)을 일관되게 적용하였다. 그는 자신의 방법론을 「자본론」 1권의 2판 후기에서 러시아의 학자 카우프만의 서평을 인용하여 밝힌 바 있었다. 이 방법론에 따르면 인간 역사는 생산자와 생산수단이 결합되는 특수한 형태와 양식에 따라 사회구조의 경제적 시대가 결정되며, 이는 생산력과 생산관계, 생산양식, 사회구성체 등의 범주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경제적 시대에 부합하는 생산양식들에는 각각에 고유한 운동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본다. 맑스는 이러한 “유물론적 역사파악”의 방법론을 자본주의라는 생산양식을 규명하는 데 적용하였다. 따라서 맑스의 「자본론」의 주 대상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고유의 운동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맑스가 「자본론」에서 자신의 연구대상을 자본주의 생산양식 고유의 운동법칙에 한정하였다고 하더라도, 방대한 분량의 책 속에서는 이외에도 다양한 주제들이 때로는 중요하게 때로는 지나가는 말들로 다루어지고 있다. 가령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전망, 자본주의 이외의 생산양식에 대한 언급, 자신의 교육관, 민족, 인종문제에 대한 언급 등이 책 곳곳에 들어 있다. 따라서 이 서평에서는 이 책에서 맑스의 중심 연구대상이었던 자본주의 체제의 운동법칙 자체에 대해 평하기보다는, 중심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다른 주제에 대해서 평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서평에서 다룰 주제는 맑스의 「자본론」에서 확인해볼 수 있는 맑스의 생태론이다. 맑스는 많은 생태주의자들에 의해서 반생태주의적, 혹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생산력을 강조하는 생산력주의자로 그려진다. 그러나 최근 맑스주의자들 사이에서의 많은 연구 성과들은 맑스의 사상 속에서 풍부한 생태주의적 사상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들의 성과는 맑스의 초기저작뿐 아니라 후기 맑스의 저작에서 가장 중요한 「자본론」속에서 풍부한 맑스의 생태론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2. 맑스주의에 대한 생태주의자들의 입장

 

「자본론」에 대한 생태주의적 독해에 앞서 맑스주의와 생태주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여러 입장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 맑스주의적 생태론 논의에서 대표적인 인물인 존 벨라미 포스터는 자신의 글 “Marx's Theory of Metabolic Rift”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맑스의 사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반생태주의적이며, 소비에트의 실천과 구별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 … (2) 맑스가 생태주의에 빛을 비춰주는 통찰을 제공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프로메테우스주의”(친기술적, 반생태주의적 시각들)에 굴복하였다고 주장하는 경우 … (3) 맑스는 농업 안에서 생태주의적 퇴보에 대한 분석을 제공하였지만, 그의 핵심적 사회분석과 분리된 채로 남아 있다고 논하는 경우 … (4) 맑스는 그의 다른 사상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자연과 환경 퇴보(특히 토양 비옥도와 관련하여)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발전시켰으며, 생태주의적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제기하였다고 단언하는 경우”

 

스스로를 맑스주의자라고 간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2), (3), (4)에 분포해있는데, 가령 테드 벤튼의 경우에는 (2)의 입장을, 제임스 오코너는 (3)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2), (3)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맑스주의가 생태문제를 이해하는 데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입장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맑스주의를 수정하거나, 혹은 맑스주의의 이론구조 내에서 용해될 수 없기 때문에 맑스주의와 생태주의를 병렬적으로 결합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테드 벤튼의 “맑스주의와 자연의 한계 - 생태주의적 비판과 재구성”과 제임스 오코너의 “자본주의 ,자연, 사회주의: 이론적 서설”은 이러한 입장을 가장 잘 드러내는 글이다.

 

 

3. 맑스의 초기 사상과 후기 사상의 연속성

 

그러나 이러한 입장들은 맑스의 사상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가령 테드 벤튼의 경우, 초기의 맑스와 엥겔스는 생태주의적 접근의 단초들이 존재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후기의 맑스와 엥겔스는 일부 농업문제 등 생태적 이슈를 다루고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철저한 유물론으로부터 의미심장한 후퇴”를 보여주고 있다고 보았다. 즉 “맑스와 엥겔스의 철학과 역사이론에서의 유물론적 전제들과 그들의 경제이론의 기본개념 간에 중대한 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알튀세의 영향을 받은 서구 맑스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사고는 초기의 맑스와 후기의 맑스 사이의 단절적 측면을 절대시한다. 맑스가 “정치경제학의 비판을 위하여, 서문”에서 “이전의 철학적 의식과 결별”한 것을 언급하지만, 이러한 맑스의 언급이 과장된 나머지 맑스의 사상이 지닌 연속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청년기 맑스는 유물론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학습하였으며, 이러한 유물론적 관점이 후기에도 일관되게 유지하였다.

맑스의 초기 사상은 1844년 쓴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잘 나타난다. 여기서 맑스는 인간을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인간을 “직접적으로 자연 존재”로 보았다. 즉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로서 다른 생명종과 같은 생명활동을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에 대해서 특권적인 위치를 부여한다는 생태주의자들의 비판과는 전혀 상반된 생각이다. 두 번째로 맑스는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욕구충족을 위해 자신의 바깥에 있는 자연 대상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였다. 즉 맑스는 자연존재로서 인간과 인간의 바깥에 존재하는 자연존재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였다. 세 번째로 맑스는 비단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존재 전체가 서로가 서로에게 대상으로서 존재한다고 파악하였다. 이는 모든 자연 존재는 서로에게 대상으로서 상호 긴밀한 영향을 끼치는 관계를 맺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맑스는 이 수고에서 “유적 존재”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한다. 이 개념은 철학적으로 난해한 개념이라는 이미지를 주지만, 이 개념의 영어 표현을 보면 오히려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유적 존재”의 영어 표현은 “species-being”으로 “종으로서의 존재”라는 의미를 지닌다. 즉 맑스는 하나의 생명 “종”으로서 인간이 가지는 특징들을 이해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 개념 역시 맑스가 인간을 자연 속에 존재하는 그 스스로 역시 자연인 존재로 보았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 맑스는 “유적 존재”로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동일성을 지니지만, 다른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은 인간의 활동이 “동물보다 더 보편적” 특징을 지닌다는 점, 즉 인간은 “대상적 세계의 가공 속에서” 자신을 유적 존재로서 증명한다는 점으로 보았다. 이는 인간이 노동을 한다는 점이 유적 존재로서(하나의 생명 종으로서) 인간의 중요한 본질이라는 것이다.

초기 맑스가 전개하였던 이러한 사상은 사라지거나 약화되지 않은 채 「자본론」에서 더욱 발전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4. 「자본론」 속의 생태론

 

「자본론」속의 생태론과 관련하여 우선 언급하고 넘어갈 것은, 바로 생태주의자들나 일부 맑스주의자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이다. 이들은 맑스가 인간의 노동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여, 생산과정에서의 자연의 역할을 축소, 부정하였으며 그 결과 “자연의 한계(limits of nature)”를 인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류인 것은 맑스의 「자본론」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옹호가 아니라 “비판”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맑스는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생산물의 생산은 인간의 노동뿐 아니라 자연이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맑스는 생산물의 필요충족적 측면을 생산의 가장 기본적인 측면으로 보았으며, 이를 “사용가치” 혹은 “부”라는 용어로 표현하였다. 그러면서 “노동은 그것에 의해 생산되는 사용가치, 즉 물적 부의 유일한 원천은 아니다. 월리엄 페티가 말한 바와 같이 노동은 물적 부의 아버지고, 토지는 그 어머니다.”(「자본론」 1권)라고 말하였다. 사용가치의 두 원천 중 노동만이 가치의 척도로 인정되는 것은 상품생산이 발전하면서이고, 이러한 가치 법칙이 일반화되는 것은 상품생산이 일반화되는 자본주의 속에서이다. 따라서 가치의 원천으로서 인간 노동을 특권화하고 생산물의 생산과정에서 자연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맑스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맑스는 이러한 가치법칙의 폐지를 중요한 사회주의 운동의 과제로 보았다.

「자본론」에서 노동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는 중요한 인간의 특징으로 제기된다. 이는 앞서 말한 1844년 수고의 문제의식과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자본론」1권 1장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용가치의 창조자로서의 노동, 유용노동으로서의 노동은 사회 형태와 무관한 인간생존의 조건이며,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 따라서 인간생활 자체를 매개하는 영원한 자연적 필연성이다”(「자본론」 1권)

 

여기서 맑스는 인간은 먹고, 마시고, 번식하는 등의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자연을 이용하고 변형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인간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영원한 자연적 필연성”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맑스의 생각은 「자본론」 1권 7장에서 보다 자세하게 전개된다.

 

“노동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과 자연 사이의 신진대사를 자기 자신의 행위에 의해 매개하고 규제하고 통제한다. 인간은 하나의 자연력으로서 자연의 소재를 상대한다. 인간은 자연의 소재를 자기 자신의 생활에 적합한 형태로 획득하기 위해 자기의 신체에 속하는 자연력인 팔과 다리, 머리와 손을 운동시킨다. 그는 이 운동을 통해 외부의 자연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변화시키며, 그렇게 함으로써 동시에 자기 자신의 자연(즉 인간본성: 인용자)을 변화시킨다. 그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하며, 이 힘의 작용을 자기 자신의 통제 밑에 둔다.”(「자본론」 1권, 7장)

 

여기서 맑스는 인간과 자연사이의 관계를 물질대사(혹은 신진대사, metabolism)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적 관계는 노동을 통해서 매개된다. 맑스는 여기서 노동이 다른 유기체의 생명활동과 다른 차이는 노동자가 단순히 “자연물의 형태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적을 자연물에 실현”시키는 의식과 의지를 지닌 합목적적 활동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

그리고 맑스는 이러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는 노동이 어떠한 형태와 내용을 지니느냐가 인간사회의 역사적 시기를 구분한다고 보았다.

 

“노동과정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단순한 과정인 한, 그것의 단순한 요소들은 노동과정의 모든 사회적 발전형태들에 공통된 것이다. 그러나 노동과정의 특수한 역사적 형태들은 각각 이 과정의 물질적 토대와 사회적 형태를 더욱 발전시킨다. 일정한 성숙단계에 도달하면 그 일정한 역사적 형태는 벗겨지며 더 높은 형태에 자리를 양보한다.”(「자본론」 3권, 51장)

 

이러한 맑스의 인식이 지니는 의의는 인간과 자연사이의 관계를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생산력의 발전과 연관되어 있는 사회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내용을 지닌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따라서 맑스는 생태문제가 단순히 인간이 자연을 지나치게 이용하고 변형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맺는 특정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즉 생태위기는 인간과 자연사이의 자본주의적 관계가 야기하는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맑스는 지금과 같은 정도의 생태위기는 아니었지만, 사회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낳은 19세기 농업위기를 분석하면서 이러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전개하였다. 가령 맑스는 이 농업위기를 보면서, 자본주의적 대토지 소유가 “생명의 자연법칙이 명령하는 사회적 신진대사의 상호의존적 과정에 회복할 수 없는 균열이 생기도록 하며 지력을 탕진”(「자본론」 3권 47장)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다음의 인용에서처럼 노동자와 자연을 모두 파괴한다고 보았다.

 

“자본주의적 농업의 모든 진보는 노동자를 약탈하는 방식상의 진보일 뿐 아니라 토지를 약탈하는 방식상의 진보이며, 일정한 기간에 토지의 생산력을 높이는 모든 진보는 생산력의 항구적 원천을 파괴하는 진보이다. 한 나라가 대공업을 토대로 발전하면 할수록[예컨대 미국처럼], 이러한 토지의 파괴과정은 그만큼 더 급속하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동시에 파괴함으로써만 사회적 생산과정의 기술과 결합도를 발전시킨다”(「자본론」 1권, 15장)

 

즉 인간의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생산이 목적이 아니라 잉여가치의 획득이 목적이 된 생산, 이를 위해 노동자들을 생산수단에 분리시켜 노동의 소외를 심화시키는 생산, 그 결과 생산을 위한 생산이 목적이 되어버린 생산으로 정의할 수 있는 자본주의는 인간과 자연을 모두 파괴함으로써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맑스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생태파괴적 본성에 대한 대안으로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된 신진대사의 상황을 파괴함으로써, 신진대사를 사회적 생산을 규제하는 법칙으로서 그리고 인간의 완전한 발전에 적합한 형태로 체계적으로 재건할 것을 강제한다.”(「자본론」 1권, 15장)

 

“이 영역[필연의 왕국:필자]에서 자유는 오직 다음과 같은 점이다. 즉 사회화된 인간, 결합된 생산자들이 자연과의 신진대사를 합리적으로 규제함으로써 그 신진대사가 맹목적인 힘으로서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신진대사를 집단적인 통제 아래에 두는 것, 그리하여 최소의 노력으로 그리고 인간성에 가장 알맞고 적합한 조건 아래에서 그 신진대사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아직 필연의 왕국이다. 이 왕국을 넘어서야만 진정한 자유의 왕국―즉 인간의 힘을 목적 그 자체로서 발전시키는 것―이 시작된다.”(「자본론」 3권, 48장)

 

여기서 맑스의 대안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이윤 추구, 생산 그 자체가 목적인 생산 등을 위해 자본이라는 대상이 주체인 인간을 종속시키는, 전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처럼 인간이 사회의 운영과 통제에 대해서 소외되어 있는 상황, 인간의 노동이 소외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자본의 이윤추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질대사의 균열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이 관계를 맺는 과정을 “사회화된 인간”, “결합된 생산자”들이 직접 통제할 때에만 물질대사의 균열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간 개개인의 다방면에서의 발전이 진행될 때에만 물질대사의 균열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이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식의 발전과 이 지식을 올바로 이용할 수 있는 인간본성의 발전을 의미한다. 인간이 자연의 맹목적 힘에 지배받지 않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지식이 발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을 자연과 공존하는 관계를 맺는데 이용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이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해가야 한다.

또한 이는 인간이 자연과 맺고 있는 노동의 형태를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인간발전과 양립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맑스는 인간노동이 자연(nature)을 자신의 목적에 맞추어 변화시키는 과정인 동시에 스스로의 본성(nature) 역시 변화시키는 과정으로 보았다. 여기서 인간과 자연간의 관계를 매개하는 노동이 어떤 형태를 취하는가는 인간의 발전과 긴밀한 연관이 있음은 분명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에 치유하기 힘든 균열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인간발전을 왜곡시키고 있음은 자명하다.

 

 

나가며

 

맑스의 풍부한 생태주의적 인식은 비단 위에서 언급한 정도에 그치지 않고 「자본론」의 많은 부분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이러한 인식이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관된 체계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정도이다. 더욱이 맑스의 인식은 인간과 자연간의 관계를 역사적 발전 속에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며, 따라서 현재의 생태문제를 지금의 역사적 시기에 인간과 자연이 맺는 특정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맑스는 생태문제를 인간발전의 문제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인간을 그 스스로가 자연인, 자연의 일부로서 바라보면서, 인간과 자연 사이에 발생하는 균열은 결국 인간이 발생시킨 문제이자, 인간의 발전을 퇴보시키는 문제로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즉 맑스는 1844년 수고의 인식대로 일관되게 “완전한 인간주의=완전한 자연주의”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요컨대 비단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연구로서만이 아니라 맑스주의적 생태론의 보고로서 「자본론」은 무궁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