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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는 게 무서운 쪽방의 겨울_참세상

 

씻는 게 무서운 쪽방의 겨울

[기고] 쪽방 생활 8개월, “춥고 외롭지만 여기서 살아야 한다”

슈아 (초보 쪽방생활자) 2011.01.18 17:39

전국이 꽁꽁 얼었다. 서울도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기 일쑤다. 아무리 두꺼운 옷을 켜켜이 입더라도 이 한파를 이기기는 힘들 것 같다. 나는 서울의 한 쪽방에서 산 지 이제 8개월이 넘어선 초보 쪽방생활자다. 당연히 이번 겨울은 내가 쪽방에서 맞는 첫 겨울이다. 쪽방에서 겪은 여름은 무척이나 힘겨웠다. 무더위 속에서 너무나 뜨거운, 꼭 찜질방이 되어버린 나의 작은 쪽방에서 속옷 바람으로 힘겹게 여름을 넘겼다. 그러고 나니 겨울도 ‘별게 있겠냐’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이제 이 겨울의 절반을 보낸 듯 한데, 쪽방의 겨울은 정말 익숙해지기 힘들다는 생각이 매일 든다. 

쪽방의 기나긴 겨울밤

 

쪽방에서의 겨울밤.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다가 추위가 더 매서워 지자 서서히 방안에도 한기가 찾아와 나의 잠자리를 괴롭혔다. 내가 아는 형이 사는 쪽방은 난방이 되지 않아 전기장판을 깔고 자고 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난방은 돼니 나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방안에 흐르는 차가운 공기는 좀처럼 데워지지 않는다. 이불 아래 방바닥에는 그나마 따뜻한 기운이 흐르는데, 이불을 넘어선 피부는 찢어 질듯 차갑다. 이불 속에 온몸을 숨겨도 보지만 이내 잠들면 숨이 막힌 지 손 하나, 얼굴이라도 내밀게 되고. 그리고 두 시간 후면, 대기와 접한 내 피부는 얼음같이 차가워진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잠을 깬다. 한기로 인해 차가워진 피부를 다시 이불에 집어넣어도 보지만 다시 몸이 따뜻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날은 그렇게 자고 깨고를 세 번 이상 반복 한 적도 있다. 그러고 나서 드는 생각은 '아, 이것이 쪽방의 겨울이구나'였다.

 


씻는 게 무섭다
 

내가 사는 건물에는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 그냥 찬물이 아니다. '냉동'찬물이라 해야 적당 할 만큼의 찬물이다. 얼음장 같은 물에 세수하기, 설거지, 쌀 씻기를 하고 나면 손이 찢어질 거 같은 고통이 찾아온다. 나는 커피포터에 물을 끊여서 세수를 한다. 그렇지만 커피포터에 한 번에 끊일 수 있는 물의 양은 매우 적다. 처음엔 여러 번 물을 끊여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았지만 이것도 계속하니까 짜증이 났다. 그래서 커피포터에 단 한번 물 끊여 세수도 양치도 대충하게 되어 버렸다. 차가운 세면장의 물을 몇 번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되도록 세면장에는 가지말자’라는 메시지가 온몸으로 전해지게 된다. 그래서 그냥 대충 산다. 말 그대로 잘 씻지 않게 되어 버렸다. 

 

샤워는 당연히 엄두도 못 낸다. 난 아는 사람들 집을 전전하며 샤워를 했다. 다들 내가 샤워를 하기 위해 놀러 간다는 걸 알고는 있을까? 그러다 가끔 가는 목욕탕은 정말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가 그런다 “와, 얼굴이 좋아 졌다” 그래서 “목욕탕 갔다 왔다”고 말하니까 하는 말. “목욕탕 가기전과 후가 이렇게 다르면 뭔가 문제 있는 거 아냐” “그래요 저 문제 많아요” 
 

온수가 되는 쪽방건물이라도 세면이나 설거지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샤워는 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이다. 너무 추워진 날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은 월세를 내는 쪽방생활에서 집 주인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대게 쪽방은 월세에 전기세가 포함된다.) 그래서 몇몇 쪽방주민들은 쪽방 상담센터에 있는 공동샤워시설을 이용하거나 목욕탕을 자주 가는 방식으로 씻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시멘트 벽, 여름엔 지하수가 흐르고 겨울엔 고드름이 핀다
 

내가 사는 쪽방건물은 40년이 훨씬 넘어버린 낡은 건물로 그냥 보기만 해도 언제 무너질지 모를 정도의 위태로운 모습이다. 벽의 시멘트는 다 벗겨져 있으며 건물 곳곳에서는 물이 샌다. 여름에 건물 안쪽의 한 벽면에서 물이 줄줄 새어 나오는 걸 보았다. 시멘트 벽에 무슨 지하수라도 있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찾아온 겨울, 이곳에 고드름이 자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았는데 이제는 벽면에서 축 늘어져 바닥까지 고드름이 흘러 내려왔다. 이 얼음이 녹는 봄이 되면 꼭 이 건물까지 함께 녹을 것 같아 약간 겁이 난다. 그래도 이 건물이 40년을 버텨왔었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이곳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이들을 위해 아무리 열악해도 10년은 더 버텨줘야 되지 않냐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쪽방에 살다보면, 쪽방촌의 분위기가 겨울이 여름보다 매우 조용하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다. 여름철에 시끌벅적 했던 골목들도, 취객들도, 삼삼오오 모여 얘기 꽃을 피우던 주민들도 겨울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더욱 방안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쪽방촌에는 병이 중하거나 나이가 많은 분들도 많이 계시고, 추위로 인해 다들 되도록 방안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쪽방촌 주민들의 삶은 쪽방의 크기만큼 혼자에 익숙한 삶들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여름에 비해 겨울은 이상하게도 쪽방이라는 공간이 더욱 외롭고 춥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초보 쪽방생활자로 겪는 첫 겨울, 매섭고 외롭다는 생각도 많이 들지만 작은 내 쪽방에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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