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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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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13
    이사
    흑점
  2. 2007/07/13
    이혜경, <그림자>중에서
    흑점

이사

병원을 옮겼다. 이사하기 전에 짐을 좀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워낙 살림들이 많았던 탓에, 휠체어에 가득 싣고도 남아서 무겁다고 투덜거리는 동생의 양손에 들려야 했다. 거의 두달간을 지내며 이곳에서의 생활이 몸에 익은 터라. 아직 몸이 불편한 상태에서 병원을 옮긴다는 것에 걱정이 없진 않았지만, 옮기게 된 이유에는 새로운 곳에 대한 약간의 기대감과 함께, 결정적으로 이 곳보다 훨씬 싸게 들 병원비 때문이었다.


차로 얼마가지 않아 도착한 곳은 대로변에 위치한 작은 개인 병원이었다. 입원수속을 마치고. 검사실로 들어가 이제는 제법 익숙한 포즈로 몸을 이리저리 꼬아가며 엑스레이를 찍고. 그래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주사바늘에 찔려 피를 뽑고, 소변검사까지 한 후에 병실에 올라왔을 때에는 이미 거뭇거뭇 해가 저물고 있었다.
놓친 저녁대신 배달시킨 피자를 나눠먹으며 앞으로 병실을 함께 쓰게 될 아저씨와 인사를 하고, 투덜거리는 동생을 달래가며 대충 짐정리를 하고. 동생이 집으로 돌아간 뒤, 새로 받은 어색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서는 겨우 한숨 돌리며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정적.

그 순간, 지금까지 병원에서 지났던 두달간의 시간이 몸속 깊은 곳에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밀려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또 얼마나 이 낯선 곳에서 몇 주를 아니 몇 달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을 견뎌내야 할지. 너무나 낯설고 외로웠다. 심지어 전국에 똑같이 방송될 TV소리마저 낯설게 나를 옥죄어 오는 듯한.

그리고 그 순간 떠오른 곳은. 두달간 돌아가지 못한 안락한 나의 방도, 거의 일년간을 일했던 '언덕길'도 아닌- 황당스럽게도, 성애병원 572호 입원실이었다. 정말 미칠듯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다친 다리를 조금 접지르면 지금이라도 응급차에 실려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

그 병원에서 나는 '말없는 학생'으로 통했다. 틈틈이 시간이 나면 옥상이나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복도 계단들을 찾아서 책을 읽거나 영어공부를 했던 나는, 어떻게하다 병실아저씨들의 대화에 끼였을 때에도 주로 듣고만 있거나, 피할 수없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맞장구정도를 치는 식이었으니 '조용한'이라는 형용사가 붙을만했다. 하지만 정형외과 병동에는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장기입원환자가 거의 없어서 나는 어쩔 수없이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 결국 '조용한 학생'이라는 어정쩡한 별명이 붙어버린 것이었다.

 

애써 이곳까지 찾아 온 친구에 대한 반가움만큼이나, 그 친구의 어깨에 함께 묻어온 바깥세상의 냄새가 먹먹하게 내 가슴을 조이곤 했던 그런 시간들에는, 간호사선생님들의 친절이 작은 위안을 주고는 했었다.
하루에 세 번씩 있는 형식적인 회진, 그 잠깐의 시간에 내 이름을 불러주며 괜찮냐고 물어보는 그 시간이 어찌나 고맙던지. 나는 그 시간이 다가오면 어떤 말을 던질지 곰곰히 생각해 두었다가, 기회를 봐서 던진 그 농이 잘 먹혀들었다 싶다거나, 오히려 저쪽에서 먼저 살갑게 말을 건낸 날에는 한참동안 기분이 들떠있고는 했었다. 퇴원하면 내 이름이야 금방잊혀질 것을, 이 시간의 행복감은 결국 이 때의 내가 얼마나 외로웠었는지는 드러내줄 뿐인 것을 알면서도.

 

*


쉽게 잠이 오지 않았던 그날 밤도, 아침에 깨어보니 끝이 나있었다. 새 병원은 휠체어를 타기 힘들 정도로 복도가 좁은 점이 맘에 걸렸지만 나머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맛이 이상하다는 옆의 아저씨의 말에 지레 겁을 먹어서 인지, 밥도 그럭저럭 씹어 삼킬만했다. 조금만 나가면 대로변의 작은 공원도 있었고, 등나무 밑의 벤치에 앉아서 환자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을 구경할 수도 있었다.

 

낮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로 옮긴 병원은 어떠냐고. 어렸을 적. 할머니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어느 날 없어졌다는 사실에 울고 불며 때를 쓰는 나를 못 이겨, 시장 통에서 갓 태어난 강아지 한마리를 안고오신 할머니. 아무것도 모른채 뒤뚱뒤뚱 자꾸만 내 품으로 파고들려하는 어린 것을 애써 밀쳐내며, 아직 눈물이 채 마르지 않아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을 부러 흘기는 아이처럼. 엄마의 물음에, 성애병원에 대한 일종의 향수병(?)으로 끙끙대던 어제밤의 내 모습이 떠올라,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하며 미심쩍은 눈길로 병실 안을 다시금 쭉 흘겨보았다.

 

 

 

음악은

식스틴 - 이사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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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 <그림자>중에서


*
여자는 막 버려진, 자기가 버려졌다는 걸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강아지 같다. 혼자있는걸 못 견뎌서, 그게 누구든 자기에게 손만 내밀면 핥는 강아지. 이런 여자는 상처받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낯선 강아지의 귀여움에 잠깐 홀린 것 뿐이다. 데리고 가서 털을 씻기고 밥을 챙겨먹이고 똥을 치울 사람은 흔치 않다. 지나치던 사람에게 귀염받는 것도 털빛이 살아있을때까지 만이다. 거리의 먼지로 털빛이 꼬질꼬질해지고, 눈빛 마저 허기진 앙칼짐을 띨때면 돌팔매질까지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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