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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날짜가 맘에 들지 않긴 하지만, 어쨋든 스승의 날이다. 우리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다.  내년이면 정년 퇴임인데도 여전히 평교사로 계신다. 아버지 동기는 물론이거니와, 후배분들 대부분이 교장으로 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평교사이시다.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 교통사고로 인해 한쪽 팔을 사용하지 못하신다.
내 기억 속에는 아버지가 두 팔을 사용하셨던 기억이 없다.  그저 사진 속에서 아기였던 나를 안고 계신 모습을 볼 수 있을 뿐...

2년 전 쯤 스승의 날이 가깝던 어느 날 일요일, 아버지는 아침부터 안절부절 하지 못하시며 점심때가 다 되어 주섬 주섬 옷을 챙겨 입으시고는 일요일임에도 학교에 출근하신다고 하며 서둘러 나가셨다.  나는 그냥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이야기 하신다.
"그냥 애들이 부르면, 가서 같이 있다고 오면 되지 뭘 그렇게 빼느냐?"고....
옛날 제자들이 스승의 날이라고 동창회를 하면서 스승이었던 아버지를 초대했던 것인데, 아버지는 한사코 거절하며 학교에 출근해야 한다고 핑계를 둘러대셨던 것이다.  모처럼 친정에 와 있던 누나나, 어머니나, 나는 그런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해했다. 그래서 재차 어머니 말에 동조하면서 가시라고 재촉하는데, 양말을 신으시던 아버지가 이야기를 하신다.
"나는 걔들 앞에 나서는게 떳떳하지 못해서 가지 않는거야!"
"뭐가 그렇게 떳떳하지 못하신데요?"
"그 때가 언제였나면, 내가 교통사고 당해서 아주 힘들었을 때 담임 했던 애들이야, 내가 힘드니까 애들한테 화만 내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애들 때리고... 잘 했던 애들이야 아무렇지 않았겠지만, 걔들 중에는 날 아주 안좋게 기억하는 애들도 있을거라구! 그런데 내가 어떻게 스승이라고 걔들 앞에 나설 수 있겠어.. 나는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이 찡해져 옴을 느꼈다.
그리고 뭐라고 나무라는 어머니한테,  "엄마나, 나나 아빠한테 뭐라고 할 게 못되네... 그냥 아빠가 판단하실 일이네.."

* * *
나는 한 때 아버지의 모습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엘 가거나 같이 조깅할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목욕하는 사람들이나 이상한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길이 싫었다.  나는 남들의 그런 눈이 나에게까지 꼿히는 것이 싫어서 아버지와 떨어져 있으려고 했다.  그랬던 그런 나의 기억을 내가 아직 어렸을 때이니까라고 위안해 보지만 여전히 너무나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만일 아버지 처지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그런 생각을 해 보면 아버지처럼 의연하게 묵묵히 생활 할 자신이 없다. 내가 아버지 옆에서 느꼈을 시선을 아버지는 언제나 온 몸으로 직접 느끼셨을게다.

예전에 아버지와 함께 근무하셨던 분으로부터 아버지 별명을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 별명이 홍길동이시란다. 왜 그런 별명이 생겼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는 언제나 남들보다 앞서서 걷고, 여기 계신가 하면 어느 새 저쪽에 가서 궂은 일을 하시고...
아버지랑 같은 학년이 되어서 일 하면 참 불편하단다.  자기들 보다 나이 드신 분이, 거기다 몸도
불편하신 분이 궂은 일에 앞장서시니 자기들이 영 불편하다는거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아버지랑 벌초를 가면 아버지는 거의 쉬시는 법이 없다.  몸이 불편하셔서 모든 일을 다 도맡아 하시지는 못해도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은 처음부터 끝 까지 쉼 없이 하신다.  그러니,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쉴 틈이 없다.  잠시 쉬노라면 아버지는 여전히 일 하고 계신데 맘이 편칠 않으니 그냥 그렇게 쉴 수 없는 것이다. 아마, 아버지를 홍길동이라 부르시는 그 분도 나와 같은 기분이셨을게다.

* * *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요즘들어 아버지가 부쩍 힘들어 하심을 느낀다. 내 기억에 아버지가 감기에 걸리신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요즘엔 아주 가끔씩 아주 심하게 앓으신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아버지가 정말 나이가 드셨구나 하는 생각에 직접 표현하진 못하지만 마음이 싸아 하다.

우리 집 3남매 중 아버지와 가장 많은 트러블을 일으킨 사람이 바로 나다. 누나나 동생은 아마 내가 일으킨 트러블 때문에 감히 트러블을 일으킬 생각조차 못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자다가도 가끔씩 아버지 생각에 갑자기 감정이 복받쳐 올라 주체하지 못하고 한참을 흐느끼며 우는 적이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누군가 내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대답한다. 세상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타인으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존경스럽다는 삶은 내가 직접 보고 느낀 것이 아니기에, 나는 내가 직접 보고 느껴온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나는 지금까지 태어나서 아버지나 어머니께 단 한번도 사랑한다는 소리를 해보지 못했다. 언젠가는 꼭 한번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아직까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꼭 한번 하고 말리라...
"아버지 사랑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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