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자주 보고, 가끔은 쓰기도 한다. 유족을 취재하려는데 잘 응하지 않으면 고인의 보도를 통해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이런저런 의미가 있고 어쩌고.. 얘기를 하면서 설득해보기도 한다. 정말 사회적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고, 사실 그렇지 않은데 나오는대로 지껄이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만약 그런 입장이 된다면, 그저 다들 닥쳐줬으면, 특히나 기사 따위는 절대 나지 않기를 바라는 편일 거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선배가 죽었다. 열흘이 지났다. 나와는 관계가 거의 없달 만한 사이다. 학회 선배지만 학번 차이가 커서 함께 학교를 다닌 적이 없고, 다른 선배들과 술을 몇번 마신 적이 있지만 것도 까마득하다. 그게 전부다. 어쨌든 젊은 그이의 죽음에 대한 어쩐지 죄책감과 애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나와 가까운 선배들..

지난 주말 장례식에 다녀오고 난 뒤 기사가 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담날 기사가 났다. 기사를 본 뒤 매일 종종 울컥했다. 그런 기사는 앞뒤잴 것 없이 끔찍한 짓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누가 남의 삶을 이 따위 몇줄로 정리할 권리가 있을까. 내가 들었던 선배의 삶은 하나도 표현되지 않은 기사. 그런 기사로 선배의 인생을 접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뭐라고 지껄였을까 생각하면 비참하고 죄책감이 든다. 물론 지난 일주일간 나는 평소처럼 생활했지만서도.. 내 마음이 이런데 유가족과 더 가까운 지인들은 오죽할까. 따져보면 확실히 선배의 죽음보다도, 기사 때문에 더 괴로운 거였다.

우리 회사에서 나온 기사는 바로 지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간 내가 썼던 죽음에 대한 기사들도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보단 사실 별 생각없이 그런 글을 써온 나를 더. 단순한 생각도 그 입장에 서보지 않으면 헤아릴 수가 없다, 정말 사람이란 이렇다..
 
주중에 국장 회식이 있었다. 선진국처럼 자살은 전혀 보도하지 않는 그런 가이드라인을 우리가 한번 택해봐야하지 않느냐고.. 국장을 만난 김에 얘기하고 싶었지만, 울컥하지 않고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 어쩌다 친구랑 농담처럼 동기 외 회사 사람들에겐 고충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고 얘기했는데... 헤아려 보니 정말 그래왔다는 걸 깨닫고 왠지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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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실연당한 기분, 이런 기분을 느끼고서야 반증으로 내 열망을 확인하는 방식이란 쫌 서글프다. 그래도 일하면서는 느껴본 적 없는, 거의 1년만의 기분이라 아프면서도 한편 반갑다.

요행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없단 것 정도는 알만큼 나이를 먹었다. '악에 끌리네요' 랬는데 악에 끌리는대로 살지는 못하고 있다 나는.

그리고 내 미래 앞에서 타인의 죽음은 금방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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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3 02:36 2013/12/03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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