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간 잠들기 전 가끔 눈물이 났다. 그리운 사람 때문이다. 아쉽게도 남자는 아니다. 내가 선생님을 이렇게 좋아했었나, 전혀 몰랐다. 아니 좋아하는 건가, 자기 전에 생각나고 가슴이 찡하고 눈가도 촉촉해지는 게 싫어해서는 아니겠지. 자연스레 환담을 나누던 사이도 아니고, 어쩌다 둘이 있게 되면 어색했고, 농담을 막 던지기 쉬운 타입도 아니었고... 이 반대 경우였다고 해도 내가 선생님을 자주 생각한다고 선생님에게 말한다면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빤히 쳐다보기만 할 것 같다.

  선생님과의 공식적 마지막 만남인 줄도 모르고 헤어져버린 후, 선생님에게 편지를 쓸까, 선물을 살까 고민하다 글을 썼다 지웠다 쇼핑몰을 뒤적거리다 말다 다 그만뒀다.

  선생님은 이래서 저래서 좋은 분이었다, 라고 적어내려가기도 구차하다. 선생님은 그냥 말이 아주 적고, 독특한 코드의 농담을 한다. 반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도록 언제나 학생들에게 극존칭을 썼다. 존칭만큼 존중했다. 하찮은 이야기들, 게다가 남의 이야기들을 두고서도 끝까지 파고들어 내 세계에 정말 들어와서 내 옆에서 말했다. 어떤 이야기에도 재미없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공평했다. 나눈 대화는 적었지만 선생님은 나를 이해하고 있구나, 라는 나만의 믿음일지 모를 그런 기분이 들게 했다. 일말의 과장이나 게으름도 선생님은 다 알아챌 것 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만났던 어느 말 많고, 뜨겁고, 에너지틱 해보이는 사람보다도 조용하고 멍해 보이는 선생님이 가장 열정적이고 치열했던 것 같다고 감히 적어도 될까.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은 나더러 회사 생활 해본 사람 같다고 했다. 적당히 웃고 농담하고, 분위기 맞추고, 사람 배려하는 사회성과 제스춰가 나이만큼 몸에 배었던 때. 선생님은 그저 한마디였는데, 나는 그 말이 괜히 기분 나빴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새 그런 제스춰를 집어치우고 산다. 내가 바라던 일이었다. 어떤 界를 넘어선 것처럼 자유롭다.
  나한텐 예민할 거 같아서 쉽게 무슨 말을 못할 것 같다고도 했다. 내 시나리오를 보고선 주인공은 잘난척도 하고, 사는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굉장히 힘들어한다고 했다. 선생님 말을 울지 않고 태연히 듣기 위해 열심히 참았다. 그 시나리오와 나는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선생님이 시나리오에서 그런 걸 어떻게 읽어냈는지 모르겠다. 밀란 쿤데라의 책을 읽었을 때 이후로, 가장 크게 위로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날 밤엔 술을 마시며 펑펑 울었다. 내가 이해받고 싶은 이들이 시나리오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여 이 영화는 때려치우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던 순간에, 선생님이 이 시나리오가 연출된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해줘서 나는 영화를 찍었다. 
 

  앞으로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른다. 7년 후에 또 영화 찍으시고 GV해야 보는 거 아닌가 하는 농담이 진짜가 될 수도 있고.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쓴대도 할 말이 없을 거다. 헤어지기도 전에 그리운 게 선생님만은 아닐 거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피우던 담배나, 많지는 않았지만 꼭 날새며 이어지던 술자리나, 편집실의 한숨들, 별 이상한 농담들. 나는 사람들이 너무 좋을 때가 많았지만, 그런 마음이 너무 과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나고 난 후의 그리움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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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4 01:40 2010/07/04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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