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전날, 고향에 내려가서 엄마가 주는 첫 끼니를 입에 넣고 있을때, 할아버지가 위독하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그날 병원에 가서 본 할아버지는 참담했다. 모르핀 때문에 헛것을 보는지 계속 손을 휘두르며 고통 때문에 소리를 자꾸 질렀다. 손을 잡으면 세게 쥐어서 빼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알아본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슬퍼하다가 웃다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주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그날로부터도 사흘 전에 할아버지는 큰딸인 엄마와 통화하면서 '오랜만이다'라고 말한 후로는 말을 못했는데, 그날 병원을 떠나기 전에 모레 추석날에 다시 오겠다는 엄마 아빠와 나의 말에 할아버지는 '모레'라고 두 번 크게 되뇌었다. '모레'가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다. 당신 말씀처럼 그날로부터 모레인 추석날에 돌아가셨다.

외가 식구들이 다 모여 있다가 저녁 식사를 하러 가고, 나와 동생만이 병실을 지키고 있을 때, 호흡이 점점 느려졌다. 다행히 할머니와 삼촌이 그 전에 왔다. 눈물이 나지 않을까봐 걱정했었는데, 걱정은 소용 없는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라서 회사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더니, 사망진단서를 가져오면 5일 휴가와 조의금을 준다고 했다. 그런데 외할아버지라니까 아무것도 없단다. 뭘 받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엄마, 외조부는, 울컥 더럽게 서러웠다.

 

-7남매의 막내였던 할아버지가 태어나고 할아버지의 엄마와 아버지는 곧 돌아가셨다는 걸 장례를 치르면서 알았다. 막내 동생을 키웠던 할아버지의 누나들은 장례식장에서 끊이지 않고 자주 구슬프게 곡을 했다. 둘째날 밤 듣도 보도 못했던 친척들이 모여 밤새 떠들고 술을 푸던 장례식장에서 할아버지의 그 누나 중 한 분이, 눈물 맺힌 눈으로 내 옆에 와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그이의 손자, 아마 마흔 줄에 가까워보이는 남자가 할머니 손을 붙잡고 할머니 많이 마시지마, 하자 할머니는 속이 상해서 그래. 할머니, 손주가 어떻게 해줘야 할까. 남자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외할머니는 아버지가 죽었는데 자식들이 잠을 잔다고 화를 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베트남에서 시집 와서 그새 아이를 품은 스무살 외숙모, 딘. 내 눈에 아직도 철없어 보이는 막내 외삼촌은 서른 일곱. 장례식 내내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딘과 슬픔을 나누거나 장례 절차에 대해 논의하려는 친지는 드물었다. 상주인 남편은 그녀를 자주 혼자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질문을 습관처럼 자주 던졌더니 딘은 틈이 나면 내 옆으로 와 매달렸다. 말을 걸거나 특별히 뭔갈 한 것도 아닌데, 매달린다고 느껴졌다.

 

-김남복씨(75).. 나는 혼자서 섬에 다녀간 일이 몇 번 있었는데, 처음은 초등학교 1학년 때다. 그때 50대였던 할아버지가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필기 시험을 7번째에야 통과했던 일이 기억난다. 마지막은 삼년 전 여름.. 할아버지와 바다에 나가 팔뚝만한 삼치를 잡았고, 그때 이후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전에 없이 내게 가끔 전화를 걸거나 내가 전화를 걸어 주기를 바라서 그렇게 했다.

 

-할아버지 칠순 때, 소도시지만 그래도 자식들은 호텔에서 칠순잔치를 연다고 애썼고 많은 친지들이 모였다. 할아버지는 어색한 듯이 연회장 밖을 자주 서성였다. 할아버지가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고, 동생에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가 폐암인 줄 알았더니, 그건 오진이었고 전립선암이었단다. 척추로 전이돼서 침대가 조금만 움직여도 많이 아파했다. 벤틀레이터의 심박수와 심전도가 서서히 0으로 수렴해갔다. 골든타임에서 많이 봤었는데.

 

-할아버지를 보내고 서울로 돌아와 머리를 잘랐다. 생각보다 짧게 잘랐다 남자같다.

마찬가지로 자주 오열했던 외할머니는 아버지가 죽었는데 자식들이 잠을 잔다고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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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6 21:35 2012/10/0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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