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옹호하다>, 테리 이글턴

 

-과학과 신학의 다툼은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혹은 어느 쪽의 '설명'이 더 나은지를 놓고 벌어지는 게 아니다. 쟁점은 우주의 기원을 말할 때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느냐다.

-과학과 신학 간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을 선물로 보느냐 아니냐 하는 데에 있다. 이는 세상을 엄밀하게 조사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신학자는 우리가 설명을 원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우주가 설명 가능할 정도로 앞뒤가 들어맞는 것이라고 우리가 가정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지 따위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세상은 어떤 실리적인 목적도 없이 오직 그 자체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했던 오스카 와일드가 좋아했을 방식으로- 무척 희귀한 부류에 속한다.

-미학자가 사물의 아름다움과 감각적인 개성에 사로잡힌다면, 신학자는 사물의 존재가 아찔하리만큼 우연적이라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인다. 반면에 과학자와 기술자는 그런 사물들의 속성을 파악하여 인류를 위해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사물 자체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거나 감탄하는 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생물학을 접할수록 자꾸 더 종교와 신이 궁금해진다. 어떻게 DNA와 RNA와 효소나 세균 등등 이런 온갖 것들이  다 제각각 역할을 하면서 생물을 구성하고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런 정교한 기능과 반응의 프로그래밍은 어디서부터 연유한 건지.. 과학인데 과학으로는 설명이 다 되지 않는다.

 

생물학에 대한 관심도 따지고 보면 2년전 이 책을 읽은 게 계기다. 다시 2년만에 보니 마치 나는 이제 신학자가 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 정도로 이 책과 더 닮아 있고, 문구들은 더 와닿는다. 그런데 신학을 공부하거나 교회를 나가볼 마음은 들지 않는데, 대신 생물학 공부를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과학을 스스로 공부한다고 나서게 될 줄이야... 반년전까지 평생 한번도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인데, 정말 아찔한 우연이다. 테리 이글턴이 세상의 존재가 그렇다고 말하듯, 내겐 생물학 세미나가 어떤 실리적인 목적도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게 만든다.

 

나는 '시간을 낭비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왔던 것 같다. 좋아했던 걷기나 운동도 시간이 아까운 일이라 생각해 생활 속에 선뜻 집어넣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실리적이지 않은 일들로 내 시간을 채워갈수록 나는 더 충만하고 행복하다고 느껴진다. 아이키도를 하는데 길 때면 하루에 2시간까지 쓰는데 전혀 아깝지 않다. 언젠가 쓸모있을 것 같은 영어나 중국어를 버리고, 그저 끌리는 외국어를 배운다.

 

인생은 내가 키를 잡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뒤의 일이다. 체념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왠지 지레 이건 종교적인 생각같은데, 라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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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2 00:14 2013/04/0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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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eronimo
    2013/06/04 14:01 Delete Reply Permalink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저는 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분자생물학자이자 신학자인 A.맥그라스의 저서들을 읽어 보시면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1. Re: 어느바람
      2013/06/05 19:31 Delete Permalink

      신학 공부하시는 분이라니 부끄럽네요. 소개해주신 책, 흥미로워 보여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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