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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05/10/03 11:43
  • 수정일
    2005/10/03 11:43
  • 글쓴이
    pin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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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빙기의 지상에서 --남진우

 

책을 펼치면

글자들이 한 자씩 녹아내린다

페이지를 넘겨도 이내 백지가 된다

 

내 망막을 스쳐지나가는 것들은 다

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영화를 봐도 자막에 씌어진

글씨들은 금세 증발해버리고

배우들이 뜻도 이해할 수 없는 동작만을

무의미하게 되풀이한다

 

내 머릿속에 가득 찬 얼음이

내가 읽어나가는 글을 따라

조금씩 녹아내리는 걸까

지상의 모든 책을 다 읽고 나면

얼음이 다 녹아 텅 비어내린 내 머리는

어떻게 될까

 

밤이면 헐은 위장에

쓰디쓴 술을 쏟아붓고

새벽엔 진통제와 카페인을 쏟아넣는다

몽롱한 몸이 땅 위를 떠다니는 간빙기의 나날들

 

책을 읽는다

영화를 본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하루 해를 넘긴다

                                   

9/23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05/09/23 18:54
  • 수정일
    2005/09/23 18:54
  • 글쓴이
    pin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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