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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교육감 후보 박사학위 '논문표절' 의혹

한 중앙 일간지에 강원도교육감 후보 박사학위 '논문표절' 의혹 기사가 실렸다.

그런데 지도교수와 당사자의 해명이 걸작이다.

 

지도교수의 말이다.

 

 

“‘이론적 배경’이란 게 원래 대동소이해 문제 될 게 없으며, 논문의 핵심은 설문조사 부분”,  “나이 드신 분이 그만큼 썼으면 잘 쓴 것”

 

⇒ 박사학위 심사 기준에 "나이 드신 분" 우대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이론적 배경'이 "대동소이" 하다는 지도교수님! 혹시 본인 논문도 이런 식으로 쓰시는 건 아니겠죠?

이론적 배경은 자신의 이론적 문제의식을 풀기 위한 열쇠를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만났던 수많은 다른 문제의식들이 녹아 들어가게 된다. 이론적 배경은 내 문제의식과 선행연구들의 대화이다.

다른 이들의 문제의식과 내 문제의식이 만나는 지점이 무엇이고, 그들의 문제의식이나 이론이 가지는 장단점이 무엇인지를 나의 입장에서 살핀다. 나의 문제의식이 갖는 장점은 무엇이며 내 문제의식을 해결하는 데 그들의 이론이나 문제의식 중에서 무엇이 부족한지를 이야기한다. 당연히 대화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나이지 선행연구들이 아니다. 선행연구들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용도 없이 갖다 쓴 이론적 배경이 어떻게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

 

당사자의 말은 더욱 충격적이다.

 

 

“내가 논문 작성 기술이나 수준이 미약하고, 내가 생각하는 작성 기준이 그 정도여서 나온 오류”,  “표절은 아니다” 

 

 

⇒ 이건 표절을 시인하는 것보다 더 못한 것이다. 지도교수와 심사위원들이 수준미달의 논문을 억지로 통과시켜 주었다는 얘기인데, 이들의 명예와 학자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말이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참담한 선물을 하는 셈이다.

살짝 과장하면 옆 사람 답안을 커닝한 수험생이 '내가 생각하는 시험 보는 기준은 옆 사람의 답안을 그대로 옮겨도 된다는 것이어서 그런 것이지, 커닝은 아니다'. 뭐 이런 식으로 변명하는 꼴이다. 당당하지 못한 태도이다.

논문 작성 기준도 모르고 박사논문을 쓸 생각을 했다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수준미달의 논문을 무사히 통과시켜 준 심사위원들의 제자사랑이 눈물겹다.

학위나 간판이 그 사람의 사유 깊이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껍데기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희생정신이 놀랍다.

 

 

 

 

다른 신문(지역 일간지)에 실린 당사자의 또 다른 해명이다. 중앙 일간지에 실린 해명이 군색하다고 여겼는지 좀 더 적극적으로 변명에 나서고 있다.

 

“직접인용 할 때는 별도의 문단을 만들어 아래 위와 지문 사이에 각각 1행씩을 띄우고, 3글자를 양편에서 안으로 모아서 써야 하나, 논문 작성 시 발생한 단순 착오였으며 표절은 아니다.”

 

   직접인용 할 때는 별도의 문단을 만들어 아래 위와 지문 사이에 각각 1행씩을 띄우고, 3글

   자를 양편에서 안으로 모아서 써야 하나, 논문 작성 시 발생한 단순 착오였으며 표절은 

   니다.

 

⇒ 1) 이렇게 해야 하는데, 편집 과정에서 그냥 썼다는 말이다. 문단 중간에 인용한 것도 편집 실수라는 말인가? 따옴표도 없고, 어디서 가져온 누구 얘기인지도 모르는데, 들여쓰기만 한다고 된다는 말인지? 이건 편집실수로 해명되는 부분이 아니다.

특정한 부분의 들여쓰기 실수가 아니라는 점은 이 논문 이론적 배경의 기본 인용 방식이 문단 시작이나 문단 마지막이 인용표시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2)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표절 대상자로 지목된 교육감 후보(전 교육감)는 실수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지만, 설령 실수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의도적 표절이 아니라 실수에 의한 잘못된 인용이라 할지라도, 실수를 증명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없는 한 의도적인 표절로 간주된다."(정병기. 2009. 『사회과학 논문작성법』. 서울대학교출판부, p. 103)

 

3) 아래 자료는표절 원본 중의 하나로 지목된

대표저자 유현숙(공저자 김태조, 송선영, 이석대)이 2004년에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간한 『국가수준의 생애능력 표준설정 및 학습체제 질관리 방안 III』이라는 연구보고서의 이론적 배경 첫 부분(32쪽)이다.

 

 

 

아래에 있는 문제 논문의 이론적 배경 첫 부분(15쪽)과 비교해 보자.

 

 

이 논문의 두 번째 문장은 앞의 논문 두 번째 문단 두 번째 줄 쉼표 이후부터 네 줄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 분명히 문단 들여쓰기 직접 인용이 아닌 문단 마지막에 인용 표시를 하고 있다. 이 부분은 직접 인용이 아니라서 이렇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인용 표시를 하고 있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몇 년 전에 먼저 출간된 보고서의 내용과 글자 하나 다르지 않게 똑같은 문단을 옮기고 있는데, 정작 인용 참고문헌은 다른 것으로 되어 있다.

유현숙등(2004)이 ILO(2002) 자료를 참고한 것을 원자료를 보지 않고 그대로 재인용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기가 직접 ILO 자료를 보고 정리한 것처럼 인용표시를 달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당연히 겹따옴표나 문단 들여쓰기를 하고 유현숙등(2004)이 쓴 글에서 옮겨 왔다는 표시가 있어야 했을 것이다. 이 대목이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엄격히 말하면, 첫 번째 문장도 유현숙등(2004)의 이론적 배경 두번째 문단 쉼표 앞 쪽을 줄여서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상 한 문단 전체를 통째로 옮겨 적어놓고는 마치 자신이 외국 자료를 본 것처럼 쓴 것이다. 

 

다음은 지도교수의 말이다.

 

“우리 학과 교육심리학 분야는 미국심리학회(APA)의 논문 작성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인용구 마다 각주를 달아 쓰지 않고, 논문 뒷장 참고문헌에 모두 적는다.”

 

1) 참고문헌에 책이나 논문 이름만 있으면, 본문에서 아무런 인용 언급없이 인용을 해도 괜찮다는 말인데, 그야말로 황당한 말이다. 대학교 저학년 학생이 쓴 레포트라면 다음에 제대로 하라고 하면서 넘어가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식 논문에서 이런 변명은 표절을 감추려고 말을 맞추다보니 하는 억지소리라는 말밖에 들을 수 없다.

 

2) 심리학회지에 실리는 논문들이 각주(페이지 아래쪽에 싣는 출처 표시)가 없는 것은 맞다. 하지만, 각주를 달지 않는다고 본문에 인용 출처를 안 밝히고 맨 뒤에 참고문헌만 적으면 된다는 것은 석사 과정 학생들도 하지 않는 소리다.

“우리 학과 교육심리학 분야는 미국심리학회(APA)의 논문 작성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인용구 마다 각주를 달아 쓰지 않고, 논문 뒷장 참고문헌에 모두 적는다”(000, 2010).

이런 식으로 문장이나 문단 끝에 인용 출처를 당연히 밝힌다. 페이지까지 밝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해당되는 참고문헌의 정확한 내용을 맨 뒤 참고문헌 난에 기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논문에서도 이러한 인용 표시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설마 본문에 인용 표시가 한 곳도 없는 논문이 있을 수가 있을까? 급하게 변명을 만들다 보니 앞 뒤 말이 맞지도 않는 억지변명을 한 것으로 보인다.

 

3) 억지 변명이 아니라면 참고문헌을 왜 다는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논문 작성의 기초도 모르는 소리다. 참고문헌은 자신의 글과 생각의 출처를 정확하게 밝힘으로써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쉽게 확인하도록 돕기 위해 적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참고문헌과 주석을 통해 내가 참고한 글이나 생각을 정확하게 다른 이들이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상식이며 기본에 속한다.

 

지도교수의 또 다른 해명이다.

 

“000 후보의 논문은 이론이나 사상연구가 아니라, 저자가 직접 강원도 지역 학생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한 조사연구라는 점에서 표절은 아니다.”

 

⇒ 박사 논문 쓰기 정말 쉽다. 다른 설문 대상(학교급이나 지역)만 바꾸면 이론 부분은 문제 될 것이 없으니 말이다. 석사 논문도 이렇게 쓰면 통과시킬까 말까를 두고 심사위원들 사이에 논란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하물며, 새로운 시각과 이론을 제시해야 하는 박사학위 논문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이다. 더구나 별 거리낌없이 언급하는 태도는 보는 이를 씁쓸하게 한다.

이런 걸 두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고, '눈 가리고 아웅한다'고 말 하는 것일 게다. 교육을 담당했거나 맡고 있는 교육자들의 행태로 보기에는 떳떳하지 못한 면이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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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내가 운영하는 한 포털의 블로그 http://blog.daum.net/folie에 올렸던 글이다. 이제 블로그를 이곳으로 옮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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