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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중립' 훼손하는 교과부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는 “민주노동당(민노당) 가입” 혐의를 받고 있는 교사들을 모두 파면, 해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면과 해임을 가르는 기준은 ‘시국 선언’ 참여 여부라고 한다. 해당 교사들의 행동은 헌법에 규정된 ‘정치적 중립’을 어긴 ‘중대한 범죄’이기 때문에 극한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검찰의 기소가 이루어진지 채 한달도 되지 않았으며, 지방선거를 열흘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국가 지배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국가로부터의 중립이다. 막강한 국가 권력이 공무원을 지배 도구로 직접 활용할 경우에 어떤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충분히 지켜볼 수 있었다. 일제시대부터 군사독재 시절까지 교육을 권력의 이데올로기 선전 도구로 삼아왔던 기억하고 있다.

권력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권력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권력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권력의 잘잘못을 비판(비교판단)할 수 없이 입을 다물고 시키는 일만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정부를 편드는 것이며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치적 편향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정부 비판은 정치적 중립을 훼손시키는 것이고,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라는 주장은 궤변이다.

모든 교육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교육 목표 중의 하나가 사고력 신장이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것이 비판적 사고력 신장이다. 아직도 ‘비판’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있는데, 비판은 비교판단의 준말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입하는 00보험이 아닌 다음에야, 무비판적이고 일방적인 정권 선전 교육은 그야말로 위험하고 비교육적이다.

더구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교사들의 대외적 정치활동을 모두 금지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선진국들에서 교사들의 정치 활동은 충분하게 보장된다. 교사들이 정당에 가입하고 학교 밖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학생들을 교육하는 데 편견을 가지게 만든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이것은 마치 종교적 중립을 확보하기 위해 교사의 종교활동 자체를 금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교과부의 이번 징계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와 곡해 문제를 제쳐두고라도 구체적인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가장 큰 문제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어기고 있다는 점이다. 해당 교사들은 “민노당 가입” 혐의를 받고 현재 기소된 상태이다. 아직 정식 재판이 열리지도 않았다. 재판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죄의 유무를 따지는 그야말로 합법적인 절차이다. 그래서 헌법은 최종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중요한 원칙을 명백히 하고 있다.

둘째, 징계 시점에 문제가 있다. 교육감 선거에서 특정 후보들은 반전교조를 선거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는 구속된 공정택 교육감이 반전교조를 내세워 보수기득권층의 표를 결집시키는 데 효과를 본 적이 있다. 이점을 고려하면, 이번 교과부의 징계는 특정 교육감 후보들의 선거 운동을 직접 지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선거 개입 의혹을 살 여지가 충분하다.

셋째, 징계 양형의 기준이 없다. 교과부는 ‘시국 선언’에 참여하면 파면이고 참여하지 않았으면 해임이라고 했다. 단순한 선언 참여가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일인지는 아직 법적인 판단조차 받지 않았다. 전교조 간부들의 시국 선언 주도 문제도 아직 재판 중이다. 단순 ‘선언’ 참여가 중대한 범법 행위라면 왜 검찰은 조사조차 하지 않았으며, 교과부도 참여자들을 징계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이들도 동일한 징계를 적용한 것도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

넷째, 징계의 형평성 문제이다. 지난 겨울 수사 초기부터 꾸준하게 문제가 제기되었던 교장 등의 여당 후원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유독 전교조 교사들만 문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교육비리 척결’을 언급하게 했던 서울시 교육청 인사비리 당사자들에 대한 처벌이 미온적인 것인 데 비해 이번 조치는 지나치게 신속하고 광포하다.

다섯째, 반성을 모르는 교과부의 행태이다. 일제고사 거부나 안내 등을 이유로 강원, 서울 등지에서 파면, 해임되었던 교사들이 1심에서 모두 복직 판결을 받은 지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법원 판결 결과에 항소할 때부터 짐작하긴 했지만, 자신들의 잘못을 전혀 반성하고 돌아볼 줄 모르는 파렴치한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교과부의 광기가 여러 가지 형태로 바로잡히겠지만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자의적으로 휘두르는 전근대적인 정부와 관료들이 역겹다.

 

근대에 탈근대적인 것도 힘든데, 전근대적인 정부까지 대응해야 하니 참 어렵다!

 

아래는 공무원노조와 전교조의 공동 성명이다. 

http://chamkw.eduhope.net/bbs/view.php?board=chamkw_4_1&id=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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