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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단은 '촛불'경기 심판이 아니라 물당번이 돼야합니다!

 

  6월 29일 새벽, 다른 날보다 일찍 들어왔다. 편의점에 갔더니 들리는 말,  "광화문은 전쟁터나 마찬가지래!" 궁금했다. 피시방에 가서 눈팅을 해보니 정말 그랬다. 택시를 타고 다시 갔다. 얼핏 '이 정도면 사제단이 등장할 법 한데...'  과연 그랬다. 서울광장 원천봉쇄를 뚫고 사제단 비상시국미사가 열렸다. 종교행사이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막지 못한다.

 

  6월 30일.  '짜가' 천주교신자인 나는 당연히 눈물 쏙 빼고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감동먹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은총을 입은 것이다. 평소 미사에 가도 성체를 좀처럼 모시지 않던 나도 감격에 겨워 예수님의 피와살을 받아 모셨다. 행진을 마치고와서 일부 젊은이들이 종각앞으로 가자고 연설을 해도, '오늘은 모두가 위로받고 재충전을 하는 날'이라 생각하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라는 신부님 말씀이 고마웠다. 7월 1일. 시청광장 미사후 침묵행진이 벌어졌다고 한다. 무언가 물음표 비슷한 것이 생겼지만 그 '비슷한 것'의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7월 2일. 민주노총 총파업 결단식인가가 열리고 있었다. 노동자가 촛불에 결합해야  촛불이 횃불로 바뀔 조건이 되는 법! 그런데, 시청광장 미사가 예정된 7시가 가까워오자 민주노총 사회자는 다급해진다. 부리나케 결의문을 낭독하곤 노동자는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달란다. 앞에 있던 노동자들이 쭈삣쭈삣 뒤쪽으로 이동하고 그 자리에 미사에 참석할 신도들이 대신 앉는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든다.

 

  민주노총 앰프에선 무슨 노래가 나온다. 마이크를 잡은 신부님이  노래를 꺼달라고 한다.  '그 노래 끝날때까지 참으면 안돼?'  7시까진 약 10분정도밖에 안남았기에 그럴수도 있겠거니 한다. 미사전에 분위기를 함께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미사의 일부이기에. 다음 마이크를 통한 묵주기도다. 6월30일처럼 마이크를 이용하지 않고 묵주기도를 해도 되잖아!  마이크를 잡고 꼭 묵주기도를 해야돼?

 

  자, 미사가 끝나고 광우병 대책회의 활동가가 나와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다. 말미에 사회자는 완곡한 어조로 비폭력 행진을 당부했다. "'분노의 절제'가 필요합니다. 촛불에 참가하신 분들이 모두 '분노의 절제'를 지켜줄 것으로 믿습니다." 사회자는 못미더웠는지 '비폭력'이란 말도 직접 언급했다. 그 정도면 촛불에 참가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7월 5일 대규모 촛불을 위해서 시청광장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정부의 엉뚱한 원천봉쇄를 피해가기 위해 집단적으로 오늘 어떻게 해야할지 다 아는 일이다. 

 

  광우병 대책회의 사회자가 "오늘 행진에는 어제와 달리 방송차가 같이 갑니다. 우리의 뜻을 분명히 알립시다."까지 말한 순간, 아뿔싸! 마이크에서는 사제단 신부님의 목소리가 나온다. "여러분은 오늘은 시험받는 날입니다. 경찰차도 치웠고, 사전에 (경찰의) 양해도 구했습니다. 구호외치지 말고 침묵중에 다녀오십시요. 행진은 차도를 점거하는 것으로 '불법'입니다." 사제단 신부님은 시청광장을 빠져나가는 깃발들을 하나하나 부르며 안녕히 다녀오라고 했다. 특히 진보신당 깃발을 보곤 "지난밤의 상처일랑 잊으십시요. 뒤에 저희가 있습니다." 이런이런! 이럴때 뭐라고 해야하나! 사제단의 자신감 때문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사제단이 '춧불'경기의 심판으로 보인다. 아니 4거리에서 수신호하는 교통경찰이라고 할까?

 

  사제단 김인국 신부님은 꼭 이렇게 얘기해야 했을까?

촛불행진 동안 일어난 수없이 분출된 정제된 시민의 에너지를 모르진 않을텐데.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은 사람도 한마음으로 '인간 콘베이어'를 만들어 '명박산성' 앞에 '국민토성'을 쌓기도 했고,  행진대오에는 음료수와 커피와 빵이 수없이 나왔다. 가히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할만하다. 이런 촛불들에게 광우병 대책회의 사회자의 말을 자르고 침묵을 강조해야 했을까?

 

  촛불에 참여한 많은 깃발들이 신부님에게 기꺼이 호명받길 원하고, 하나하나 깃발을 불러주며 하나되려고 노력하는 것에 성실과 신의가 엿보인다. '거대한 촛불의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에 불과한 광우병 대책회가  주권재민을 외치는 촛불들을 하나로 모으고 지키기위해 정열적으로 일해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거대한 촛불의 바다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분투해왔지 않은가? 그래서 마음이 무겁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촛불의 봉사자가 되어 주십시요. 시청광장을 지켜 촛불들이 켜지는 무대를 만들어 주십시요. 촛불들이 자신의 의사를 잘 표현하도록 도와주십시요.

 

   약45분 걸려 행진을 마치고 시청광장에 오니 신명나는 노래판이 벌어졌다. 그래, 오늘 꿍했던 맘은 다 잊자. 사제단에서 단식까지 해가며 시청광장을 지켜 수많은 시민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시청광장으로 모여 촛불을 들지 않겠는가? 오늘이 화요일, 7월 5일 토요일, 백만의 촛불들이 모일때까지 시청광장 원천봉쇄를 무너뜨리는 사제단 그리고 개신교와 불교의 종교행사가 얼마나 고귀하고 숭고한가! 꽁한 마음으로 생각하지 말자.

 

  하지만, 촛불들의 요구를 막지는 말아 주십시요. 촛불들의 요구를 폭력과 비폭력으로 재단하지 마십시요.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이 '거대한 촛불의 바다'에서 심판역할이 아니라 볼보이 혹은 물 당번이 되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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