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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밥솥, 핸드 믹서기, 이불
뭐가 좋을까?
십수년 만에 고향가는 길
가족들에게 선물될 만한 것,
아님
장가갈때 갖고 갈 만한 것.
쌈박한 핸드믹서기를 사기로 결정,
집을 나서려고 슬슬 움직이는데
다다다다 문자에 전화에
T는 벌써 인천공항이란다.
그래 그꼴 안봐서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이 바닥을 치자
그 자리에서 슬픔이 솟구친다.
이런 젠장.
보고 싶잖아.
전화를 한다.
나: 머야, 이렇게 가면 어떡해?
(괜히 큰소리다)
T: 아이고, 머야는 내가 해야되는데.
그동안 연락도 안하니까 나 삐져서 지금 나라에 가는 거잖아.
(그 와중에 농담이다)
싱가포르를 거쳐 다카로 간다고, 몸은 괜찮다고, 처음엔 감옥에 있는 게 싫어서 빨리 가려고 했는데 막상 돌아가려니 잠도 한 숨 못 잘 만큼 심란했다고, 한국에 다시 올거라고, 그래도 방글라데시 놀러 오라고 그리고 나도 주저리주저리.
T: 전화통화 오래 못해요. 우리 형 잘 부탁해요. 알잖아요? 형이지만 내가 동생처럼 생각하는거. 말 좀 잘 해주고. 형이 제일 걱정되. 정말로.
나: 뭐 내 말은 듣나? 에효.
T: 알잖아요? 이제 부탁할 사람 아무도 없는 거. 정말 사람이 없어.
생각해보니 아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 시절 함께했던 친구들. 다들 잡혀가거나, 지쳐서 돌아가거나, 결혼해서 흩어지거나. 이십대의 젊음을 고스란히 바친 마석 성생공단은 떠난 이들에게 무엇으로 남았을까? T도 밤새 잠 못자고 그 생각을 했겠지.
T는 갔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오랜 친구 고향 돌아가는 길
얼굴 한 번 보는 일,
그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머릿속으로 잔뜩 말장난만 하고 있었나.
나: 미안해요.
T: 괜찮아요.
나: 그래, 우리 또 만날 거잖아? 한국 빨리 와요!
T: 응. 그래야죠. 나 방글라데시 있을 때 놀러와요. 꼭!
이주는 시작과 끝이 없다.
누구든 언제든 길게든 짧게든 이주를 할 것이고
그 길에서 우린 또 만날 거라고.
결국 또 만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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