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궁에 가면 이전에는 박물관이 있었다.
경북궁 주변으로 불교의 역사적 유물이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그리고 박물관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봤다.
왜 경복궁 주변으로 또한 그 안에 불교의 유물과 탑 비석등이 그렇게 많은가?
경복궁이라면 조선왕조사의 역사적 유물이 더욱 중요한 곳이 아닌가?
하지만 600년의 조선왕조사가 한반도의 반만년 역사의 근본이 불교를 멀리하고는 조선왕조사나 경북궁의 유물은 빈약하다는 것이 아닐까?
조선왕조사의 유물의 빈약함을 묵언으로써 경북궁 주변에 배치되어 경북궁이 위엄을 더할수록 침묵으로 반만년의 미소를 머금고 비석으로써 탑으로써 묵묵하게 지켜내던 경북궁 주변의 불교 유물들 이번에 경북궁 주변을 돌아보면서 광화문을 새롭게 공사하는 것과 아울러 박물관도 이전 하였고 불교의 여러탑과 유물들을 제대로 볼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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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높은 담은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의 서울 한양의 본토의 사람들이 궁궐이 들어서기전 즉 참 평화롭게 살았을것 같다.그러나 조선의 건국과 왕실이 위엄의 궁궐이 들어서면서 경북궁의 담은 신분사회의 계급구성으로써 그 상징의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경복궁의 담이 그 높이로써 역사적 화석으로써 남아있고 지금도 자유주의의 대한민국에서 경복궁의 담을 수리하는 공사는 너무도 중요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경복궁은 화석화된 역사적 유물일 뿐이지만 유교의 성리학등 정말 새롭게 해석되고 인간위에 인간이 있을수 없음의 그 사람존중의 미학이 유교의 내용일수도 있는데 어쩌면 경복궁 하나의 위엄의 보존을 위해 왕조사 밖의 민중사는 서울에서 이렇게도 세월속에 묻혀 있을까?
경복궁 시간을 내어서 한번 가보기를 바래봅니다.
궁궐을 나와서 먹어보는 국수맛도 괜찮을것 같습니다.
서울래기들은 주로 열무국수를 즐기는 것 같고 바닷가에 살은 사람들은 멸치국물 국수를 즐깁니다.
국수집에서 열무국수를 먹는이들을 보면 그야말로 고추가루 열무한조각 들 들어가면 그야말로 난리가 아닌듯 하구요 바닷가의 우리는 멸치국물이니 건데기와는 별로 입니다.